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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딸) [괴문서] 메지로 아르당과 어느 티타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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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제법 쌀쌀한 어느 날이었다.



 늦가을, 슬슬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기이기 때문이었을까. 재팬컵의 후끈한 열기가 거짓말처럼 가라앉아버린 추위였다.



 그나마 우마무스메들이야 히토미미보다 체온도 높거니와, 아무래도 추위를 상대적으로 덜 타기도 하고, 하루가 멀다고 달리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추위에 강하다.



 하지만 우마무스메가 아닌 일반인들, 그중에서도 고된 일에 찌들어 사는 트레이너들에게 있어 늦가을 환절기의 추위란 몸도 마음도 시리게 만드는 저주스러운 것일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평소의 머그컵보다 두 배는 더 큰 텀블러에 녹차를 가득 타 놓고선, 피로 가득한 얼굴로 홀짝홀짝 궁상스럽게 마신다.



 물론 그의 앞에는 언제나의 모니터, 그리고 그의 앞에는 언제나의 키보드가 놓여 있다. 중앙 트레센의 살인적인 업무는 그에게 휴식이라는 것을 당췌 허락하지 않는다.



 그나마 하야카와 타즈나 이사장 비서가 업무를 조금 도와주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미 우마무스메들의 당근별 옆의 어딘가로 귀천했으리라.



 뭐, 그래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담당 우마무스메들―솔직히 여섯 명은 조금 많다고 생각하지만―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행복하게 달리는 것이 그의 보람 중의 하나니까.



 그렇기에, 비슷한 이상을 공유하는 황제의 담당 트레이너로 적격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황제의 이상이 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하리라.



 아무튼, 담당 우마무스메들의 행복 가득한 미소를 보는 것이 나름의 보람일진대, 그가 개인 사무실에서 오후 일곱 시의 티타임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의 첫 손님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그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을까, 그는 조심스레 한 마디 건넨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니?”



 “후후,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



 그로서는 당최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아무런 목적의식도 없이 이쪽을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니, 그런 비효율적인 행위를 이해할 수도, 이해할 마음도 없었다.



 다만, 아무래도 메지로 아르당은 그가 조금이나마 더 신경 쓰는 담당 우마무스메다보니, 혹여나 컨디션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뭔가 불편한 점이라도 있으면 숨기지 말고 말해 줘.”



 “불편하다니…오히려 행복한 기분인걸요♪”



 “…….”



 그렇게 말하는 메지로 아르당의 귀가 쫑긋쫑긋,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뭐, 아무래도 좋다. 메지로 아르당의 컨디션에 문제가 없다면, 딱히 그녀의 행동을 신경 쓸 이유도 없으니까. 그것보다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를 처리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평소처럼 일하면 되는 것이다.



 ……평소와 같았다면 말이다.



 메지로 아르당의 컨디션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컨디션을 걱정해야 했었다. 환절기였기 때문일까, 머리가 지끈거리고 오한이 찾아오는 것이, 아무래도 정상 컨디션은 아닌 것 같았다.



 자연스레 인상이 살짝 찌푸려진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잠시 멈춘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눈을 감고, 눈썹을 꿈틀거리며 머리에 찾아오는 고통을 참는다.



 그리고 그런 트레이너의 모습을, 메지로 아르당은 전부 보고 있었다.



 “트레이너 씨.”



 그녀답지 않게 조금, 낮은 톤의 목소리. 그러나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눈매가 축 처지는 것이, 타인의 감정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트레이너 본인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괜찮으신가요?”



 걱정하고 있었다.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걱정을 끼쳐 버린다는 것이 그의 자존심을 살살 긁는 듯했다. 트레이너 실격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한다.



 “괜찮아. 뭘 좀 생각하느라 잠깐 그런 거야.”



 “트레이너 씨.”



 하지만 그 말에, 오히려 메지로 아르당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평소에는 청초하고 순수한 아이인데, 가끔 이렇게 보여주는 갭이 어떤 의미에서는 무섭다. 메지로는 메지로라는 것일까.



 “아르당,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一”



 “거짓말하지 마세요, 트레이너 씨.”



 “…….”



 그의 본질을 꿰뚫는 메지로 아르당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귀가 뒤로 살짝 눕는 것이, 여기에서 뭔가 더 말을 했다간 담당 우마무스메가 정말로 화를 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잠시 트레이너 씨를 노려보던 메지로 아르당은, 하아, 작은 한숨을 내쉰 후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트레이너 씨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세요.”



 “…….”



 “물론 악의가 있는 거짓말이 아니라, 저희를 배려하는 거짓말이라지만…솔직히 트레이너 씨의 거짓말, 좋아하진 않으니까요.”



 “…….”



 한참 어린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꾸중 같고 설교 같은 말을 들으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부모님도 이런 말을 하진 않으셨으니, 완전히 잊고 있었던 감각이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른이, 아이에게 말과 논리에서 밀릴 순 없다. 쓸데없는 자존심일 수 있겠지만, 그것 또한 그의 인생을 만들어 온 자존심이기도 했으니까.



 “때로는 필요한 거짓말도 있는 법이란다, 아르당.”



 “충분히 이해해요, 트레이너 씨. 하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트레이너 씨의 메지로 아르당, 저에게만큼은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잖아요?”



 “……?”



 네가 나의 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순간적인 기지로 크흠, 작은 기침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황제의 트레이너라 할지라도,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간 메지로 아르당의 컨디션이 절부조로 박살 나는 것은 물론이요,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이 반드시 올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대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조용히 돌려 말한다.



 “우리가 그런 사이던가.”



 “앞으로 그렇게 될 사이니까요.”



 “금시초문인걸.”



 “트레이너 씨만 모르고 계실 뿐이죠.”



 담당 우마무스메의 그 말이 이상하리만치 불길한 느낌이 들어, 조심스레 대놓고 물어본다.



 “나 몰래 무슨 이상한 짓 하는 건 아니지, 아르당?”



 “후후…이상한 짓은 하지 않으니까요.”



 당주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그를 메지로의 일원으로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공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구태여 말하지 않는다. 이상한 짓은 아니니까, 트레이너 씨에게 위해를 끼칠 만한 것은 아니니까.



 “뭐…아르당이 하는 말이니 믿을 수 있겠지.”



 “…….”



 그렇게 말하는 트레이너 씨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트레이너 씨에게 진실을 종용하는 메지로 아르당 본인이, 트레이너 씨에게 거짓말을 하리라곤 추호도 생각하지 않으신다니,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요.



 물론 트레이너 씨에게 거짓말 같은 저급한 짓은 하지 않지만, 모든 사실과 모든 진실을 알려드릴 필요도 없으니까.



 트레이너 씨도 숨기는 것이 있으니만큼, 메지로 아르당 또한 비밀이 있는 것이 공평할 테니까.



 하지만 그런 메지로의 다른 일면도, 지금의 이 시간, 둘만의 티타임을 방해할 수는 없다. 다시금 예의 주제로 되돌아와, 메지로 아르당은 흠흠, 목을 가다듬은 뒤에 트레이너 씨를 바라본다.



 “트레이너 씨, 조금…편찮으시지요?”



 “……딱히.”



 “거짓말은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잠깐 지끈거렸을 뿐이야. 지금은 멀쩡해.”



 “그러니까, 컨디션이 나쁘신 거네요.”



 그렇게 말하며 메지로 아르당은 소파 앞의 책상을 살짝 앞으로 밀어낸다. 그리곤 3인용 소파의 맨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 뒤, 다시 트레이너 씨를 바라본다.



 “피로가 쌓이셨을 때는, 조금 푸시는 것이 좋아요.”



 “오늘 해야 할 일이 산더미야.”



 “트레이너 씨의 건강보다 중요하진 않으니까요.”



 “적당히 관리는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말에 메지로 아르당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야, 트레이너 씨는 본인이 자기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생각하시겠지만, 메지로 아르당이 보기엔 전혀 관리를 안 하는 수준이다.



 아니, 관리를 안 하는 정도면 다행이지, 혹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과중한 업무에 치여 사는 것처럼 보인다.



 “피곤하실 때는,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시는 편이 좋아요.”



 “그래…이것만 마무리하고.”



 “트레이너 씨.”



 메지로 아르당이 입술을 비쭉 내밀며 그를 부른다. 그 목소리에 걱정과 더불어 명확한 경고가 들어가 있음을 깨닫자, 제아무리 그라도 무시하고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아르당.”



 그래서,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담당 우마무스메로서의 선을 명확하게 그어준다. 하지만 그가 잘못 생각한 것이 있다면, 메지로 아르당은 그의 생각보다 더 대범한 우마무스메였다는 점이다.



 “지금,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세요, 트레이너 씨.”



 “아르당, 내 일은 내가 알아서―”



 “부탁드릴게요, 트레이너 씨. 조금…쉬어 주세요.”



 “…….”



 하지만 메지로 아르당의 부탁, 그것도 살짝이지만, 눈가를 글썽이며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처럼 말을 한다면, 그가 뭐라고 더 세게 말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메지로의 아가씨답게 전부 계산하고 하는 행동이겠지만, 문제는 그 사실을 안다 해도 트레이너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말이었다.



 심볼리 루돌프가 이랬다면 냉정하게 딱 잘라 말했을 테고, 사토노 다이아몬드가 이런 행동을 했다면 딱밤으로 마무리했을 것이다. 토카이 테이오나 키타산 블랙, 그리고 메지로 맥퀸 같은 경우는 이런 계산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논외다.



 그래, 다른 담당 우마무스메도 아니고 메지로 아르당이다. 레이스 성적과 무관하게, 그가 가장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아이. 그렇지 않으면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유리 다리임을 알기에,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은 다리를 달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토키노 미노루의 다리를 망가뜨렸던, 씻을 수 없는 과거에 대한 그 나름의 속죄이기도 하니까.



 그렇기에, 좋건 싫건 그는 메지로 아르당에게, 그녀의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 조금 눈이라도 붙일까.”



 그리고 메지로 아르당은, 그런 트레이너 씨의 작은 틈을 놓치지 않는다. 그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는 순간, 메지로 아르당은 소파에 앉은 채로 그녀의 허벅지를 손으로 톡톡 치며 트레이너 씨를 부른다.



 “그러시다면, 마침 좋은 베개가 있네요.”



 “아니아니, 그건 조금…아니지.”



 메지로 아르당의 의도를 알아차리자, 그는 손을 내저으며 거부 의사를 표한다. 아무래도 트레이너와 담당 우마무스메의 관계이다 보니, 어딘가에 책잡힐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래도, 기왕 눈을 붙이시는 거…소파에 누우시면 더욱 편하실 거라구요…?”



 “그렇긴 하겠지만…….”



 “그리고 기왕 소파에 누우시는 김에, 부드럽고 폭신한 베개를 베면, 피로가 더더욱 빨리 풀리실 거예요.”



 “아니, 그건 안 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금 거부 의사를 표명했지만, 메지로의 중전차 아가씨는 물러섬이 없다. 여전히 손바닥으로 자기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며, 담당 트레이너 씨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한다.



 “안 될 이유는 전혀 없어요.”



 “부적절한 행동이잖아.”



 “그런가요? 트레이너와 담당 우마무스메라면 이 정도는 문제없는 것 아닌가요.”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으니까.”



 “글쎄요, 트레이너 씨에게 드리는 평소의 답례일 뿐인걸요.”



 “아르당…….”



 말이 안 통한다. 이렇게나 고집스러운 아가씨였던가. 곤란한 표정으로 담당 우마무스메를 바라보다가, 아무리 봐도 그녀가 물러날 것 같지 않자,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져본다.



 “조금 있으면 다른 아이들도 올 텐데, 무릎베개 같은 건 아무래도 조금…그렇지?”



 “누군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깨워드릴게요. 트레이너 씨는 듣지 못하시는 작은 소리도, 우마무스메는 들을 수 있으니까요.”



 “……”



 정말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강하게 나온다면, 그로서도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정색하며 딱 잘라 절대로 안 돼, 라고 한다면 메지로의 아가씨도 한 수 접어 들어가겠지만…그렇게 했다간 몇 주간 그녀의 컨디션이 절부조일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한 달 정도 뒤에 아리마 기념을 앞두고 있다 보니, 그녀의 컨디션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녀의 고질적인 유리 다리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든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부상을 방지한다고 하더라도, 컨디션까지 그가 조절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그가 한발 물러나 주는 것이 맞으리라. 이렇게 고집스러운 면은 그의 첫 담당 우마무스메였던 신마, 토키노 미노루와 묘하게 닮았다.



 이런 아이들만 골라서 담당하는 것은 아닌데, 왜 담당하는 우마무스메마다 하나같이 어디 한 군데에서 고집스러울까. 당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조금…실례할게.”



 “후후…얼마든지요♪”



 그렇게 살짝 들뜬 목소리로, 메지로 아르당은 그녀의 교복 치마를 단정하게 펼친다.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이렇게 무릎베개를 받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소파로 걸어간다.



 그리곤 살짝 얼굴을 붉히며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아르당의 옆에 앉은 뒤, 천천히 머리를 그녀의 허벅지에 올려놓는다. 자연스레 시선이 그녀의 얼굴로 향했지만, 반쪽만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른쪽의 시야는 메지로 아르당의 거대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흉부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괜스레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하기야, 옛날에도 토키노 미노루에게 비슷한 자세로 무릎베개를 받은 적이 있었지. 그때는 이쪽도 철이 없었을 때라, 뭐가 옳은지 그른지, 무엇이 담당 우마무스메를 위하는 길인지 파악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런 실수를, 지금의 담당 아이들에게 되풀이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부득이한 일이 가끔 일어난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속으로 삼 여신 이 망나니같은 드라마 중독자들을 욕하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으헤헤 웃으며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겠지, 빌어먹을 달리 아라비안, 바이얼리 터크, 고돌핀 바브.



 “편하게 눈을 감으셔도 괜찮아요, 트레이너 씨.”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메지로 아르당이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말한다. 그녀 또한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것이, 누가 보아도 흥분 상태에 돌입한 우마무스메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피로에 찌든 트레이너 씨가 이를 알아차릴 리 만무했다. 메지로 아르당의 안내대로 천천히 눈을 감고, 의식을 어둠에 맡긴다. 설마, 조금만 있으면 다른 애들과 하야카와 타즈나가 방문할 텐데, 그 사이에 무슨 짓을 하겠는가.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아니고 메지로 아르당인데, 심볼리 루돌프와 더불어 그가 가장 신뢰하는 메지로 아르당인데, 그에게 이상한 짓을 할 아이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래…무릎베개 고마워, 아르당.”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정말로 피로 때문이었을까, 트레이너 씨가 눈을 감고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의 가슴께가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메지로 아르당은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나 피곤하셨으면, 평소에 과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시는 트레이너 씨이기 때문에, 그것도 메지로 아르당을 위해서―물론 다른 담당 우마무스메들도 있지만, 그래도―물심양면으로 애쓰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어찌 보면 트레이너 씨의 피로는 곧 메지로 아르당이 원인이라는 의미다.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또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그런 트레이너 씨가 귀여워 견딜 수가 없다. 



 분명 연상인데, 제법 나이 차이가 나는데, 그래도 이상하리만치 이 사람이라면 나이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으음…….”



 메지로 아르당의 보드랍고 탱글탱글한 허벅지 위에서 머리를 살짝 뒤척이며, 잠꼬대라도 하시는지 옅은 ㅅㅇ을 내는 것을 보라,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키스라도 하고 싶지만, 차분히 그의 가슴께에 손을 올려놓는 것으로 참는다.



 피곤한 트레이너 씨를 깨울 만한 행동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메지로 아르당은 욕망에 홀라당 넘어가는 그런 천박한 우마무스메가 아니니까. 언제나 기품있고 청초한, 트레이너 씨 취향의 아가씨이니까.



 그저, 트레이너 씨의 잠든 얼굴을 보며 만족할 뿐이다.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오직 메지로 아르당에만 허락된 얼굴이니까.



 “무릎…베개….”



 무슨 꿈을 꾸고 계신 것일까, 잠꼬대가 또렷하게 들린다. 꿈에서도 무릎베개를 받는 것일까. 트레이너 씨의 무의식 속에서도 메지로 아르당이, 그의 머리 누일 곳을 맡아 두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끓어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가며, 괜스레 히죽히죽, 자기 뜻대로 얼굴을 통제할 수 없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질투가 난다. 꿈속의 메지로 아르당이 아니라, 현실의 메지로 아르당에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으니까. 트레이너 씨가 머리를 올려두고 있는 곳은, 여기 현실 속 메지로 아르당의 허벅지이니까요.



 “……후후.”



 하지만 꿈속의 메지로 아르당은, 트레이너 씨가 깨어나면 사라질 존재다. 현실의 메지로 아르당은 영원히, 트레이너 씨의 곁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진정한 정실로서의 여유를, 꿈속의 메지로 아르당에게 조금쯤 보여주는 것도 괜찮으리라.



 “언제나…고마…워….”



 그래도 역시, 꿈속의 메지로 아르당에게 감사하는 트레이너 씨의 모습은, 조금 질투가 난다. 부우一, 볼을 부풀리며 트레이너 씨의 뺨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른다. 둔감 둔탱이 트레이너 씨, 남자들은 다 이런 것일까.



 그러면서도 내심, 트레이너 씨가 감사를 표하는 자의 이름이, 그의 입 밖으로 나오길 기대한다. 다시 한번 듣고 싶으니까. 메지로 아르당에게 바치는 트레이너 씨의 감사를.



 그래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차분히 진정시키며, 트레이너 씨의 입에서 나올 자신의 이름을 기대하며 귀를 기울였다.



 “……미노루.”



 “…….”



 이 새끼를 언젠간 반드시 개같이 뾰이하겠다고 메지로의 이름에 맹세했다.

 

 

 

 ==========

 

 

 

 서순 지켜

댓글
  • 린성신관알타 2024/11/28 22:01

    또 신마님이십니까....

  • KaidoHKS 2024/11/28 22:40

    아직 아르당은 미노루를 이기긴 힘들거 같........


  • 린성신관알타
    2024/11/28 22:01

    또 신마님이십니까....

    (WHLJ4R)


  • KaidoHKS
    2024/11/28 22:40

    아직 아르당은 미노루를 이기긴 힘들거 같........

    (WHLJ4R)


  • 메에에여고생쟝下
    2024/11/28 23:04


    거기서 그 이름이

    (WHLJ4R)

(WHLJ4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