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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블릿 의인 노광일님의 기록! (feat. 특종 놓친 한겨레)

공개되는 것을 꺼려하셨던 것 같아 염려되지만, 그래도 오늘 jtbc에서 태블릿 의인이셨던 노광일 님이 실명으로 인터뷰를 하셨기에, 그동안 알려졌던 관련 사실들을 오유에 기록으로 남깁니다.


저도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파편적으로 접했던 것들이기 때문에 이제서야 전체 스토리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암튼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기에.. ㅎㅎ

관련자료는 총 4개 입니다. 일단 쭉 읽어보셔요.



1. 2017.5.16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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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티비시 기자가 사무실에 찾아온 게 10월18일이다.

“맞다. 그날 아침 어느 기자가 찾아와서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자기 신분을 안 밝혀서 냉대했다. 한 시간쯤 지나 다시 찾아와 신분증을 보여주길래 ‘그러면 진작 말하지 왜 이제야 말하느냐’며 적극 협조해줬다.”

-4층 더블루케이 빈 사무실에는 어떻게 올라가게 됐나?

“기자가 ‘혹시 사무실 좀 들어가볼 수 있을까요?’라고 묻더라. 그래서 ‘한번 올라가 봅시다’ 하고 같이 올라가 문을 열어주고 ‘찾아보라’고 했다. 기자가 고영태가 쓰던 책상 쪽으로 가서 서랍을 열어봤는데 거기서 문제의 태블릿피시가 나왔다. 기자가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물어서 ‘물론이다. 필요하다면 다 가져가라’고 했다.”


-더블루케이 사무실 문이 열려 있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아니다. 문은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 수 있고,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문에는 보안장치가 있어서 보안카드를 대야 한다. 카드를 안 대고 문을 열었다가는 당장 보안업체 직원들이 출동한다. 내 손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보안카드를 대서 문을 열어줬다.”


-남의 물건을 가져가도록 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 정도는 안다. 문제가 되면 법적인 책임을 지고 직장도 그만두려고 했다. 난 그저 조그만 단서라도 나와서 취재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줬다.”

-10월18일에는 제이티비시 말고도 과 기자도 여기에 왔다. 왜 제이티비시만 도왔나?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손석희 사장을 믿은 거다. 두번째는 신문보다는 방송의 파급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궁금하다. 나이는 어떻게 되고 고향은 어디인가?

“1957년 생이다. 올해가 환갑이다. 고향은 전남 함평이다.”

-한겨레 창간 독자였고, 경향신문 배가 운동을 한 걸 보니, 언론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조아세를 기억하시는가.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시민모임’의 준말로 조선일보 절독운동을 벌이는 단체인데, 내가 초기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2003년 2004년에는 지하철역 여기저기를 다니며 조아세 유인물을 뿌렸다. 한겨레 경향신문이 호외를 찍으면 그걸 들고 서울역 고속버스 터미널 같은 데를 돌면서 시민들에게 나눠 주고는 했다. 지금은 그저 몇 군데 후원하는 정도다. 뉴스타파, 민언련, 팩트TV. 국민TV 등등에 한 만 원씩 돈을 내고 있다. 이런 단체에 내는 돈을 다 합치면 한 10만원쯤 된다. 내가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그걸 모아서 내는 거다. 글을 쓸 재주도 없고, 돈도 없으니 이렇게라도 독립언론을 돕고 싶어서 하는 거다.”

-한 달에 봉급을 얼마나 받는데 10만원씩 내나?

“4대 보험 해주고 한 달에 140만원씩 받는다. 명절이면 조금 더 챙겨주신다.”

-언제부터 언론에 관심이 있었나.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 때가 내가 중 2였다. 아버지가 ‘김대중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를 하시길래 이장 집에 가서 모르는 한자는 옥편을 찾아가면서 신문을 하루 종일 읽었다. 그때는 신문 들어오는 집이 이장 집밖에 없었다. 그러다 중학교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서 신문 배달을 하면서 방송통신고를 다녔다. 그때가 1974년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때다. 신문을 돌리면서 신문을 열심히 읽었다. 그 뒤 호텔에서 웨이터 생활을 하면서 방송통신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 영업사원으로 들어갔다. 55살이 정년인데 그때까지 27년을 다녔다. 진급은 못했다. 내가 윗사람들한테 아부를 잘 못해서.”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노사모 초창기 멤버다. 2002년 대선 때는 참 열심히 뛰었다. 내가 제약회사에서 한 일이 약국의 약사들에게 약을 파는 영업사원이었다. 그런데 그 약사들을 상대로 국민참여경선 신청서를 모으고 후원금을 걷었다. 내가 모은 국민참여경선 신청서가 한 200장 됐다. 그랬더니 회사 전무가 ‘너 그렇게 하면 노무현이 뭐 복지부장관이라도 시켜준다고 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참 우연이다. 최순실의 사무실이 있는 곳에, 그것도 결정적 증거인 태블릿피시가 있는 곳에 선생님 같은 분이 근무하고 있었다는 것이.

“나도 곰곰이 생각해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났을까 하고. 아마도 하늘에 계신 우리 노짱님(노무현 대통령)이 이걸 하라고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2.  2002.12.28 ≪시사저널≫ 고제규 기자
     


"2002년 11월24일 밤 11시50분, 관악구 노사모에서 제일 발이 너른 노광일씨(45)는 초조했다. 단일 후보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평소 눈팅(인터넷에서 글을 읽기만 하는 것)을 즐기던 노씨도 이 날은 인터넷에 직접 글을 쓰고 퍼 날랐다. 

‘국민후보 노무현을 단일 후보로 만들자’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날렸다. 

노사모 회원들은 ‘가급적 외출을 삼가자, 여론조사 전화가 오면 침착하게 대답하라’는 세세한 지침을 받았다. 

10분 뒤 노씨는 쾌재를 불렀다. 노짱이 단일 후보로 결정된 것이다."


3. 2017.10.24 ≪Jtbc 뉴스룸≫




4. 2017.1월 ≪월간조선≫ 



 —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번 최순실 스캔들의 대미(大尾)가 jTBC가 입수한 태블릿PC였습니다. 그 PC의 입수 경위를 두고 말이 많았지요. 누군가 고의로 넘겼다는 설도 있었고.
  
  “제가 알기론 jTBC 기자가 입수한 게 맞아요.”
  
  — 어떻게요.
  
  “문제의 건물에 jTBC·한겨레·경향신문 기자가 같이 갔대요. 그런데 그 건물 관리인이 신문을 8개나 보는 사람이래요.”
  
  — 준(準) 기자네, 그분.
  
  “한겨레신문 기자한테는 “너희 신문은 논조가 마음에 안 든다. 특히 정치담당하는 성모 기자라는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그 친구 글이 제일 마음에 안 든다’고 했대요. 세 기자가 아무 소득 없이 그냥 물러나왔는데 jTBC 기자만 ‘휴대폰을 놓고 온 것 같다’며 다시 건물로 들어갔답니다.”
  
  — 그랬더니요.
  
  “그 관리인이 ‘내가 손석희를 좋아한다’고. 그러면서 직접 열쇠로 책상서랍을 열어 줬는데 그 안에 태블릿PC가 들어 있었다는 겁니다. 전원이 꺼진 채로, 충전장치도 없이.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참고) 이 자료를 보면 단순히 손석희 사장을 존경해서 태블릿 피씨가 JTBC로 넘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겨레의 성OO 기자님이 엄청난 한 몫을 하신겁니다. 왜 한겨레 창간 독자이신 분에게 까지 오늘의 한겨레는 탐탁지 않게 되었을까요? 물론 자신들에 대한 비판엔 익숙치 않은 진보언론들이기에, 한겨레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하겠죠. 그래도 기자들 사이에서라도 토론이 있기를...


[정리]

위의 자료들을 토대로 노광일님에 대하여 정리해보면 대충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그분은 우연한 의인이 아니라 언제나 또렷이 깨어 있었던 시민이었습니다. 

2. 한국의 기울어진 언론환경에 일찍부터 주목하여 비판적으로 언론을 바라보는 시민이었습니다. 

3. 불의를 참지 못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었습니다.

4. 의 성OO 기자를 싫어하여 태블릿을 한겨레에 주지 않았지만, 김의겸 선임기자와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건 저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성OO 기자님, 기자님 덕분에 후배들이 대형 특종을 놓쳤네요. 흐뭇 하시겠습니다. ㅎㅎ)


결론적으로 바라보면 모두 하나 같이 김대중 대통령님과 노무현 대통령님의 가치와 통합니다.

지난 민주정부 10년,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허망하게 사라진 것 같지만, 두 분의 대통령님은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들을 사회 곳곳에 심어두고 가신 것 입니다. 

그리고 그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일어나 불의에 항거하였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민주정부 3기를 맞이 하였습니다. 

허망하게 지키지 못했던 지난 민주 정부들을 반면교사 삼아, 노광일님처럼 깨어나 참여하여, 끝까지 이 정부를 성공하도록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되세기게 됩니다.


댓글
  • 콜디스트윈터 2017/10/25 04:37

    이분이 나라 구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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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신의충격 2017/10/25 04:38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냥 한 말이 아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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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psiman70 2017/10/25 05:24

    의인이시에요 나라를 구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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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구조사원 2017/10/25 06:04

    말이 현실이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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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의지배자 2017/10/25 07:27

    진짜 노선생님 말씀대로 그 분께서 하늘에서 도왔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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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뽀르뚜가 2017/10/25 07:33

    한겨레 창간독자에게도 까이는 한겨레. 성모시기 기레기 보고 있냐. 이 특종 니가 놓친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쌤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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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ssc 2017/10/25 07:38

    결국 그 의인께서도 과거에 노짱을 지키지못하셨던분. ㅜㅜ 그시대에 40대를 보내신분 ㅜㅜ 그분들이 벌써 지금 60대를 목전에 두고계시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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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유로운산책 2017/10/25 08:00

    일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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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링귤스 2017/10/25 09:13

    한겨레 손에 들어갔더라면 jtbc처럼 기민하고 치밀하게 밀어붙이지도 못했을 것 같아요
    TV와 신문이라는 매체의 차이도 컷겠지만
    국당 요주의 인물 등등 통해서 아름아름 소문이나 흘리거나, 가오 잡으려다 타이밍 놓치고 또 헛발질 했을 것 같은...
    이껀으로 탄핵 실패했었다고 상상하면... 어휴 떠올리기만해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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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의들불 2017/10/25 09:39

    오오...믿고 걸러주는 성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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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뿌리 2017/10/25 09:42

    어떤 설레발치는 세력들보다
    의기롭고 정의로운 행동입니다.
    모든 순간순간의 진실된 선택이
    수렁에서 나라와 시민들을
    구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경의를 표하고
    저를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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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의들불 2017/10/25 09:52

    국회가 멀어서 청와대 행진을 한다고?
    광화문에서 좃선은 지척이다, 이놈들아.
    .
    노광일 선생께 부끄럽지도 않냐? 이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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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닐다 2017/10/25 10:10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가슴이 살짝 벌렁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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