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일인데,
알고 지내는 사업가 한분이 독서모임을 주최하는데 나를 초대함. '모임장'으로.
진짜 존나 죽어도 개같이 하기싫었는데
이분한테 술얻어먹은게 적어도 300만원어치라 죽은눈으로 미소지으면서 '넵 알겠습니다' 하고 동의함.
문제가 있다면 남녀 혼합 10명 가량의 독서모임이었는데, 날 빼고는 전원 사업가 지망생이었다는 점.
[독서모임 1회차]
사업가분 답게 내 기준으로는 공모전 광탈한 이세계 딸딸이물보다도 더한 불쏘시개로밖에 보이지 않는 자기개발서를 서적으로 가져옴.
이걸 읽고 일주일 후에 느낀점과 함께 이것을 어떻게 삶에 접목할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말씀하셨음.
난 단 20분만에 300페이지가 넘는 내용을 전부 독파함.
'자기자랑+자기자랑+자기자랑+ 왜 나는 성공했는가= 실리콘 밸리의 사업가가 가진 인생관을 따라했기 때문'
라는 이야기였음.
아? 이게 무슨 소린지 모른다고? 그냥 서점에 가서 자기개발서 하나 집어보셈. 3분의 1 확률로 저런 소리가 적혀있는 책일거임.
문제는 제가 이걸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사업가 지망생들, 혁신적인 소시오패스의 아이콘 시1발티브 블로우잡스를 본인의 우상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저런 이름으로 부를 정도로 저 개십새끼를 혐오하는 저는 이 독서모임의 독서모임장으로 뭘 해야 할까요?
정답-> 술맥이기
죽이기로 작정하고 그냥 술과 리큐르를 합해 도합 7종+친구한테 빌려온 칵테일 도구를 가져갔음.
"여러분 이런자리 보통 딱딱하면 나올말도 안나와요 일단 한잔씩 합시다"
라는 명목으로 평균도수 30도짜리 칵테일을 한명이 소감문 발표할때마다 한 잔씩 마시기로 함.
결과= '극 호평! 다음에도 오고싶다!'
나는 모임장이었지만 칵테일 관련 언어 말고는 단 한마디도 안했음.
[독서모임 2회차]
역시 자기개발서였음
->칵테일 돌림
난 그날 뭘 했는지 전혀 기억 안남. 잔 돌릴때마다 모임원들이 나한테 맥여서 필름이 나가버렸음.
뭔가 개소릴 존나 했던거같음.
다행이도 누구도 기억 못하는 분위기임.
독서모임 주최자이신 사업가님은 나한테 업혀서 근처 모텔로 2차 갔음.
[독서모임 3회차]
원래 독서모임 장소가 주최자님 사업장에 있는 회의실이었는데,
소감문을 발표할 책과 노트는 들고 오되, 모임 장소가 주최자님이 예약한 오마카세집으로 변경됨.
주최자님이 돈도 없는 내가 구태여 양주와 리큐르등을 싸들고오는걸 보다못해 미안해서 그렇게 하기로 정함.
물론 내 의도는 그렇게 아름다운게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 오마카세는 맛있었고 주최자님은 자리 한번에 100만원 가량을 태우게 됐음.
칵테일 돌릴때와는 다르게 그래도 이때는 조금 독서모임같았음.
사케가 취해봤자 얼마나 취하겠음?
그래도 내 헛소리를 그럴듯하게 만들어주는데는 충분했음.
[독서모임 4회차]
3회차 끝나고 네명이 갑자기 사라짐. 최근 일이 바쁘다고 나갔음.
예상컨데 일이 바쁜건 아니었을거임.
주최자님은 침울해지셨음.
나는 우울한 김에 이번 모임은 그냥 시원하게 놀아제끼자고 제안함.
한 달간 열심히 했으니 빠져나간 사람들이 후회할만큼 존나 신나게 한판 놀아보자고 제안.
이 악마적인 개소리에 모두가 동의.
4차까지 달림. 노래방과 오락실, 볼링장등을 포함해 오후 4시부터 오전 4시까지 달림
총 12회차, 3개월을 각잡고 독서모임 운영했는데
모임장으로서 주최자님께 선물받은 12권의 책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남.
왜냐하면...
4회차 이후로는 보통 3차가 기본이었거든.
유감스럽고 죄송하지만 3권정도는 냄비받침이 됐을거임.
하지만 그때 4차까지 갔던 모임원들은 전부 아직 나를 선배님, 혹은 모임장님이라고 부르고있음.
수개월에 한번정도 만나는 정도지만, 만날때마다 가끔 사업적인 조언도 구함.
음. 그간 개소리를 그럴듯하게 하는 방법을 배워서 이런저런 개소리로 무마하고있음.
초롱진돌
2024/10/17 23:59
그냥 술만 퍼마셨잖아 ㅋㅋㅋ
lean28
2024/10/18 00:01
자기개발서나 성공한 사람의 무슨무슨 이야기들은 진짜 쓸모가 없더라
그냥 이름 난 소설가 책 한권 드는게 나음
장 물랭
2024/10/18 00:16
표면적인 명분은 집어치우고 참석자들 모두가 원하는 걸 얻은 셈이니 결국 성공한 모임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