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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비법, 비경영 출신으로서 2년 동안 노무사 공부했던 이야기

0/ 서




이 시험이 제게는 큰 의미가 있었지만, 다른 분들께는 별 것 아닌 작은 성취로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 결과로서 제가 길게도 써놓은 이 글이 그냥 허섭한 조각글 내지 푸념덩어리 같은 걸로 치부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그럼에도 혹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썼습니다. 원래 이렇게 긴 글을 쓸 예정이 아니었는데 2년 동안 준비하면서 남들한테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았나 봅니다. 이해 부탁드릴게요.






1/ 수험 돌입 시의 상황
설명을 깔고 들어가자면 2015년 9월부터 12월까지는 졸업학기 다니면서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한 공부를 했었고, 16년 1월에 GS1기로 신림동 강의 듣기 시작해서, 8월까지 전업으로 동차 달린 뒤 경조 55점 크리 맞고 떨어졌습니다. 다른 건 평균 60점이 나왔는데 경조가 제대로 빵꾸가 났더군요. 이후 12월까지는 거의 손 놓고 점심에 3시까지 서빙 알바 뛰었습니다. 3월까지는 알바 계속 하면서 주말에 노동법만 1기 들었는데, 이건 모의고사를 노동법만 보기 때문이었습니다. 4월 초에 2기 시작되면서 알바 그만 두고 다시 본격적으로 달렸고 2차까지 전업으로 공부했습니다.
이 시험은 어차피 다 시작하는 상황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수능 같은 것과는 다르니까요. 제가 취한 방법은 결국 제 상황에 적합한 방법이었을 뿐이고, 이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효과적이리라는 보장은 없을 겁니다.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제가 어떤 지점에서 시작했는지를 알려드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생명/심리 복수 전공을 택했었기 때문에 이 시험에 그다지 도움되는 과 선택은 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전에 학교를 다니면서 혹은 휴학 상태에서 변리사 공부를 2년 정도 했었고, 이 과정에서 민법 등을 깊게 공부할 기회는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거의 막바지에 열린 셈인 민법 채권, 물권 수업을 한 학기 동안 수강했었고, 노무사로 목표를 변경한 이후에는 1차 시험 선택과목에 대비하기 위해 경제학 원론을 수강해놨습니다. 덕분에 1차 시험은 꽤나 손쉽게 넘어간 부분이 있긴 하고,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었습니다.
동차 때 학원 시스템 등을 몰라서 다른 사람들 GS0기 듣고 있을 때 혼자 임종률 저 노동법 한번 정독하면서 요약 정리했었습니다. 1차 노동법 들을 때 야아아악간 도움이 되긴 했었습니다만,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시간 대비 효율 안 나오는 짓이고, 절대 시험에 안 나오는 부분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훑게 되기 때문에 빠르게 붙고 싶으시면 독학은 금물이라 봅니다.
2/ 1차 시험
위에 쓴 것처럼 변리사 공부와, 기회가 닿는데로 수강한 민법 및 경제학 수업을 밑천 삼아서 1차 시험에는 거의 시간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GS2기 중간에 1차 시험이 있었는지 2기와 3기 사이에 있었는지 가물가물한데, 시험 직전 열흘 정도만 투자했습니다.
민법은 아예 손 놓고 있다가 한림에서 황보수정 강사님 최종정리 특강을 인강으로 신청해서 문제풀이 겸 중요판례체크만 했습니다. 아마 민법 기초가 없으신 분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해서 점수벌이를 충분히 하시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억이 명확치 않습니다만 7,80점 왔다갔다 하는 수준으로 나왔을 겁니다 아마.
사회보험법은 마찬가지로 합격에서 이주현 노무사 마무리 강의 인간 신청해서 처리했습니다. 이틀 정도면 다 들을 수 있는 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1차 시험 준비에 쏟은 열흘 중 대부분은 사회보험법에 투자했습니다. 아예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마무리교재에서 버릴 부분은 깔끔하게 버리면서 외울 것들 골라 외우고 문제풀이 했습니다. 두음자 따주는 것 외우고, 버리라는 챕터 과감히 버리는 게 필요한 듯 합니다. 어차피 1차는 절대평가로 커트만 넘기면 되는 시험이고, 여기에 긴 시간 할애하는 건 2차 공부할 시간만 갉아먹는다고 봅니다. 이래저래 운이 좋아서 84점인가 받았었습니다.
노동법은 1,2 중 하나(노조법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는 판례 위주의 내용이라 2차 강의로 대부분 커버가 되었던 걸로 기억하고, 다른 하나가 2차에서 별로 다루지 않는 내용들 중심이라 오랜만에 보니 되게 생소하더군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임종률 저를 봤던 기억을 더듬어 가며 스터디원한테 김광훈 노무사 마무리특강 자료만 구해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각각 80점, 60점 대 점수 나왔던 것 같습니다.
경제학은 학교에서 경제학원론 들은 것과, 학기 중에 혼자 맨큐 2회독 했던 것, 시험 직전에 하루 투자해서 1회독 다시 돌린 걸로 시험 봤습니다. 솔직히 둘다 시간 낭비 수준으로 강의력 떨어지는 양반들한테 들어서, 그냥 혼자 회독 돌린 걸로 봤던 것 같고, 70점 초반인지 그랬습니다.
1차는 결국 거기에 시간 투자를 얼마나 할 것인가의 문제라 봅니다. 어차피 절대평가제로 보는 시험이고, 실제로도 응시자 60퍼가 붙을 정도로 난이도 높지 않습니다. 2차 공부하고 있다면 노동법도 반은 먹고 들어가고, 사보법은 일주일 잡고 달리면 됩니다. 결국은 민법이 관건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전 베이스를 이전에 깔고 들어갔던 지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언드리기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쫄려서 1차에 너무 시간 붓는 분들 종종 계신데, 그건 진짜 지양해야 할 상황이라 봅니다.
3/ 2차 시험
1. 신림 실강을 들어야 하는가? : YES
원래 작년에 정보가 부족했을 때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박문각으로 가려고 하긴 했었습니다. 스터디원 분이 신림에서 직강 듣는 걸 추천해서 결국 신림에서 주말 실강을 듣는 걸로 결정을 봤는데, 수험 생활 중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봅니다.
우선은 분위기가 다르고 긴장감이 다릅니다. 인강으로 들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경쟁자들을 눈으로 보고, 대형 강의실에 가득 차 있는 숫자도 실감나며, 고등학교나 대학 때와는 달리 조는 사람 없이 집중하는 분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자극이 되는 게 있더군요. 내가 흐트러지려고 할 때 그 인원들을 보는 건 꽤나 중요한 동력원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더불어서 실강을 듣는 게 오히려 시간을 아끼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혼자 인강으로 들을 때 하루에 최대 소화 가능한 숫자가 6강 정도였습니다. 필요할 때 멈추고 다시 켜고, 속도도 올릴 수 있고 하니 생각하기로는 인강이 더 많은 숫자를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토요일에 주말 실강을 들으면 총 9강을 듣고 가게 되는 셈인데 전 집에서 혼자 9강을 들을 자신이 없습니다. 분명히 풀어지게 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모의고사와 첨삭 부분입니다. 1기부터는 노동법, 2기부터는 나머지 과목들도 수업 시작과 동시에 매주 모의고사를 치는 게 일반적인 커리큘럼인데, 혼자 그렇게 각 잡고 모의고사를 시도해서, 오픈북의 유혹을 참고 시간을 맞춰서 전력을 다해 쓰는 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본 모의고사는 다시 첨삭 및 점수가 부여되서 석차의 형태로 돌아오는데, 이 역시도 제게 굉장한 모티베이션 중 하나였습니다. 실제 시험에서 결국 어떤 점수를 받게 되느냐 와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반드시 공부해야 할 단기 목표를 세워준다는 것만 해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도 내 이름을 찾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기분 좋고 내가 쪽팔리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 주의 시험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빡시게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지 역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주제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해야 할 지에 대한 정보가 되어주는 셈이죠.
신림까지 1시간 조금 더 걸리는 위치에 살고 있었던 지라 그 시간/체력 소모가 적진 않았고, 토요일에 수업 끝나고 집에 가면 일요일 수업에 맞춰 나가기 전까지 잘 시간도 좀 모자라긴 하더군요. 그래도 엔간하면 신림에 실강 들으러 가는 걸 추천드립니다.
2. 일반적 공부법들 : 형광펜, 필기구, 공부시간, 단권화, 스터디, 글씨체, 폰
형광펜과 포스트잇 : 이번 시험 준비하면서 학창 시절에 생전 쓴 적 없었던 형광펜을 몇 통 비워가며 썼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필수적인 도구 중 하나입니다. 이 공부는 결국 내가 2차 시험장에 들어가서 쓸 내용들을 몇달에 걸쳐 머릿속에 구겨넣는 일이지만, 동시에 2차 시험 직전 하루 만에 내일 시험 볼 2과목 씩을 빠르게 훑어볼 수 있는 환경을 완성해나가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일주일 전에 본 것보다 전날 본 게 훨씬 유리하고, 전날 본 것보다 쉬는 시간 동안 본 게 훨씬 더 잘 기억납니다.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가 자세히 봐야할 내용과, 대강 넘어가도 될 내용들을 분명히 구분해야 하고 빠르게 훑으면서도 한눈에 내용이 파악되는 나만의 교재를 만드는 게 필수적일 겁니다. 형광펜과 포스트잇은 이 과정에서 필수재가 됩니다. 형광펜으로 내가 봐야하는 내용들을 체크하고, 포스트잇으로 중요한 지점들을 확실히 표시해놓아서 빠르게 페이지를 찾아볼 수 있게 하는 거죠. 과목별로 약간 사용 방법이 달랐는데, 그건 과목별 항목에 따로 설명해놓겠습니다.
필기구 : 개인 취향이 가장 가미되는 요소일 겁니다. 일반적으로는 사라사니 제트스트림이니 하는 물건 중 하나를 정하고, 그걸로 끝까지 가는게 보편화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 눌러쓰는 습관 때문에 그런 펜들이 영 안 맞아서 동차 초반에 파일럿 코쿤 만년필을 구입해서 썼었습니다. 눌러쓰는 버릇을 좀 억제하는 효과도 있고 뭐 이런저런 강점들이 있더군요. 결국 동차 때는 시험도 그 만년필로 봤고, 올해도 2기까지는 해당 만년필을 사용했습니다. 다만 막판에 손목 피로가 쌓이고 하다보니 무거운 금속제 만년필이 부담되는 측면이 있어서 펜텔의 에너젤 리퀴드 젤 잉크펜으로 바꿨고, 그 덕을 좀 봤다고 생각합니다. 무거운 펜으로 쓰다가 적당히 가벼운 걸로 넘어가니 글이 좀 빨라지는 느낌이 있더군요. 제가 사라사 대신 저 펜을 굳이 선택한 이유는 손목을 꺾어쓰는 안좋은 습관 때문에 잉크가 천천히 마를 경우 번짐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에너겔 리퀴드 젤 잉크는 선을 긋고 마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정말 짧아서 좋았습니다.
공부시간 : 엉덩이로 공부한다는 말들 하는데, 전 길게 못하는 타입이라 공부 시간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집중해서 하는 시간은 하루 6시간 남짓 됐을까 싶네요. 시간에 의미를 두는 대신에 양을 정해놓고 그 목표량을 소화했는지에 집중했습니다. 토,일요일에 학원 다녀오고 나면 무조건 월요일 하루는 쉬었고 제 기억으로 시험 바로 전주 빼고는 계속 월요일은 쉬는 날이었습니다. 조조영화 보고 점심으로 와퍼 뜯는 걸 낙으로 삼았던 기억이 나네요. 특히나 올해는 작년에 봤던 걸 또 보는 공부인데, 제가 반복을 워낙에 싫어하다 보니 2기까지는 일부러 좀 설렁설렁하면서 3기에 달릴 힘을 비축한다는 느낌으로 페이스유지했습니다.
단권화 : 책 하나로 정했으면, 엔간하면 다른 책 안 보는 게 답이라 봅니다. 강사 책마다 편집 방식이나 목차, 순서 등이 다르기 마련인데 섞이기 시작하면 머리만 아픕니다. 최대한 단순화하고 규칙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복사집에서 다른 강사들 문제 찾아보고 하는 것도 불안만 증폭시킬 뿐이라 봅니다. 특히 행정쟁송의 경우에 강사마다 워낙 커리큘럼 차이가 커서 괜히 주화입마 들기 딱 좋아보였습니다. 최소한 2기까지는 과목 별로 내가 끝까지 볼 교재를 하나 정하고, 거기에 모든 정리를 몰아넣는 게 시험 직전에 가장 체계화된 정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이라 봅니다.
스터디 : 전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쓰기 스터디만 했습니다. 작년에는 4명, 올해는 3명 파티로 해서 과목 1~2개 정하고 1기에는 50분, 2기에는 100분 동안 각 잡고 써본 뒤 돌려보는 식이었고, 스터디에 쓰는 문제는 스터디원들이 전부 풀어본 적 없는 타 강사 작년 문제 중에서 실제 출제된 문제는 재끼는 뭐 그런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쓰는 감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 답안지 쓰는 방식에서 참고할 만한 걸 가져오는 용도로 보면 될 거 같습니다. 전 작년 1월에 법학 답안지 자체를 처음 써보게 되어서 스터디원들께 참 많이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글씨체 : 올해 좀 고생했던 부분입니다. 원래가 악필인데 그래도 작년에는 글씨를 못 쓴다는 지적을 직접적으로 받거나 한 적은 없었습니다. 최소한 알아볼 수는 있었다는 소리겠죠. 근데 괜히 연말연초에 백강고시체 시작했다가 안 좋은 쪽으로 시너지가 나서 2기 초반에 고생 많이 했습니다. 기껏 시간 투자해서 연습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작년에 안 받던 글씨 지적을 받게 되니 진짜 스트레스 받더군요. 결국 사선으로 올려쓰는 방식이 제게 안 맞는다는 판단이 들어서, 백강고시체에서는 획수 줄이는 노하우만 뽑아쓴 뒤 나머지는 폐기했습니다. 근데 솔직히 작년 글씨하고 지금 글씨하고 비교하면 작년 게 차라리 낫더라구요. 이건 개인차가 워낙 커서 뭐라 말하기가 힘든데, 필기 시험이 가지는 한계점이고 시험 제도가 개선되어야 하는 문제라 봅니다. 내용이나 공부 수준과는 전혀 관계 없는 요소 때문에 불리한 출발선에 서게 되면 당연히 짜증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폰과 인간관계 : 재작년 9월에 단톡방 다 나오고, 인간관계를 꽤 많이 끊어버렸습니다. 폰카톡은 지우고 컴카톡은 남겨놨던 것 같네요. 동차 시험 볼 때까지 거의 친구 두어명 빼고는 연락도 안했고 친구 만나러 나가는 일도 두세달에 한번 정도 있었던 거 같네요. 진짜 게임에 목숨 거는 스타일인데 나름 큰맘 먹고 게임도 다 끊었습니다. 쉴 때는 차라리 영화나 드라마를 봤는데, 이쪽이 훨씬 시간 관리하기 좋았습니다. 적어도 계속 달리다가 취침시간을 한참 넘겨버리는 일은 없더라구요.
2년차에는 스스로 꽤 유하게 굴어서 3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롤도 하고 히오스도 하고 쉬는 시간에는 게임도 꽤 했습니다. 대신 3기 넘어가면서는 다시 다 지웠습니다. 인간관계도 첫해 수준으로 빡세게 굴진 않았지만 단톡방은 수험 시작하면서 다시 나왔습니다. 개인톡은 내가 대답하지 않으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지만, 단톡은 나 없이도 대화가 쌓이기 때문에 그거 확인하는 데에 재미들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는 느낌이라서요. 딱히 2G폰으로 회귀한다든지 하는 짓은 안했습니다.
3. 과목별 공부법
1) 노동법(김기범) : 63.55
노동법은 결국 각 논점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끌어가는 게 중요하다 봅니다. 문제 읽고 사안 파악이 되면, 그 스토리의 요점을 추출해서 논리 구조를 건설하고, 거기에 연관된 판례 기준을 제시한 뒤, 그에 따라 사안을 포섭하는 게 기본적인 흐름이고, 각 사안마다 특수한 지점들이 있으니 그걸 잘 외우고 있어야겠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판례를 쪼개고 쪼개서 각 판례 내에서의 스토리를 파악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김기범 노무사의 경우 1기까지 두꺼운 책을 쓰고, 2기부터는 출제가능성 높은 논점만 따로 편집한 책을 썼는데 후자를 단권화 교재로 썼습니다. 작년엔 형광펜으로 판례와 법조문을 구분해 다른 색으로 처리했었는데, 별로 의미 없었습니다. 두꺼운 1기 교재에 포스트잇으로 A,B급 논점 따로 정리해놓는 것도 큰 의미 없었구요. 2기 들어선 이후에는 1기 교재는 거의 펴보지도 않은 것 같네요. 사례집도 사실 거의 볼 일 없었습니다. 그냥 단권화 교재만 봤고, 이 책은 형광펜질이나 포스트잇 작업도 안했습니다.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겠더라구요. 그냥 판례 쪼개기만 해서 판례들의 고유한 구조를 빠르게 파악하려고 애썼습니다.




대부분의 판례는 전제, 이유, 결론, 세부판단기준 같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어 보였습니다. 때문에 이걸 서로 다른 기호(대괄호, 소괄호, 등)로 구분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판례를 쪼개서 이해하는 건 동차 때는 생각을 못했고 유예 때 좀 판례가 자세히 보이더군요. 참고로 대부분의 두문자는 저 요소 중 '세부판단기준'을 외우기 위해 사용하게 됩니다. 전제-이유-결론은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지만 각각의 판단기준은 그런 식으로 외울 수 없다보니 두문자를 따는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막판에는 앞서 말한 교재와 더불어, 1~3기 동안 나온 모의고사 문제들을 싹 다시 풀어보고 목차 세워보고 했습니다. 뭐 여튼 작년과 올해 모두 김기범 노무사가 빠지는 것 없이 논점을 잘 찍어준 덕분에 좋은 점수가 나왔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수업 준비나 교재 연구, 모의고사 문제 같은 각 요소에서 열과 성을 다 하는 수업이라고 봅니다. 답안 작성 요령 측면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보구요.
동차 때는 60.5 정도 나왔습니다.
2) 행정쟁송법(조현) : 61.75
행쟁은 다른 것보다도 무조건 한번 빠르게 일독을 하고, 전체 그림을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행쟁은 모든 논점 소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문제가 나올 때도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내용을 연결할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보니 멘탈 터지기 딱 좋은 듯 합니다. 노동법이야 각 세부 사안을 각각 쌓아올려서 전체 그림을 만들어가지만, 행쟁을 그런 식으로 접근하다가는 과목 전체를 이해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 쉬워보였습니다. 숲 전체를 본 뒤 각각의 나무를 훑어보는 식의 공부가 필요한 과목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조현 강사가 교재 초반에 행정쟁송 절차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들어가게 설계해놓은 것, 그리고 문제를 풀 때 항상 그 전체를 훑고 풀게 만들어놓은 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행쟁에서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써야할 논점을 빼먹는 건데, 조현 강사가 항상 강조하는 걸 시험장에서 기억해내면 그런 식으로 점수 날려먹는 일은 없지 싶습니다.
다만 매우 높은 모의고사 난이도와 다소 아쉬운 교재 마감 수준은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듯 합니다. 모의고사 난이도가 높은 건 장단점이 있는데, 드래곤볼 무천도사 트레이닝마냥 어려운 문제만 풀다보면 실전 문제는 되게 가소롭고 단순하게 느껴지는 장점이 있는 반면, 매주 시험 볼 때마다 멘탈이 조각 날 수 있습니다. 전 막판까지도 모의고사 50점을 못 넘겼던 것 같네요. 작년에는 멘탈 꽤 작살났었는데 올해는 원래 그러려니 하고 좀 해탈한 채로 보긴 했습니다. 좀 예외적으로 다른 강사 문제집을 하나 사서 풀어봤는데, 잘 풀려서 안심한 점도 있었습니다. 모의고사 문제가 어렵다는 건 안 가르쳐준 판례를 기반으로 문제를 내거나, 앞뒤 논점 간의 연결고리를 못 찾을 경우 전체 답안이 꼬여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두 가지 경우를 포함합니다. 전자는 커리큘럼을 좀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후자는 앞에 쓴 것처럼 전체를 조망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장단이 있습니다. 교재는 전체적인 완성도나 구성에 있어서는 훌륭한데, 오탈자나 폰트 등의 편집 실수가 거슬릴 수 있습니다. 가독성에 영향을 주는 실수들도 종종 있구요. 이런 부분에 대해 개선이 좀 있으면 좋을 듯 합니다.




노동법과 마찬가지로 판례와 법조문을 다른 색으로 칠하는 등으로 접근했었는데 그다지 효과적인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단권화 교재 말고 사례집은 대목차, 중목차, 소목차 등 목차 단계에 따라 다른 색으로 칠하고, 조문 번호를 빨간색으로 밑줄, 판례는 로 묶어놨는데 이게 가독성 향상에 엄청 도움이 되더군요. 조현 강사의 강점 중 하나가 사례집에서 답안 써놓은 요령이 기가 막히다는 건데, 책 편집이 그렇게 썩 눈에 잘 들어오는 방식이 아닙니다. 거기에 형광펜 처리만 잘 해놓으면 진짜 좋은 답안 작성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에 나눠주는 정리자료가 좋았습니다. 첨삭은 강사 본인이 직접해주시는데, 표로 각 항목을 나누어 상중하 점을 주는 시스템은 좋습니다. 근데 어차피 모의고사 잘 못 보면 그건 목차 못 만들어서 망한 거라 코멘트가 그렇게 의미 있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작년에는 58점 정도 나왔었습니다.
3) 인사노무관리(김유미) : 56.74
많은 분들이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데, 전 솔직히 이거 21페이지인가 써놓고 제가 64점은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근데 까보니까 이번 시험에서 가장 점수가 안 좋더군요. 세부 점수 훑어보면서 법과목들 아니었으면 떨어졌겠다 싶어서 진짜 좀 식겁했어요.
잡탕 과목인 경영학의 특성 상 인사노무 역시 심리학과 경제학 등등을 대강 어떻게 버무려놓은 느낌이었는데, 심리학 전공한 덕을 조금은 본 느낌이 있었습니다. 인사 공부는 결국 학술적 용어를 얼마나 정확하게 외우고, 그걸 어떻게 말빨로 잘 비벼놓느냐의 싸움 같습니다. 김유미 노무사 책을 기준으로 얘기하면 책이 크게 서론(전략,환경 등) - 각론(확개평보유이) - 기타 이슈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셈이고, 실제 50점 짜리 시험 문제도 서론이나 이슈에 입각한 얘기를 살짝한 뒤 거기에 대해 각론을 써보라는 식으로 자주 나오더군요.




김유미 노무사의 책은 목차가 굉장히 체계적으로 짜여져 있다는 게 강점이라고 봅니다. 덕분에 형광펜질이 빛을 발할 수 있죠. 대목차-중목차-소목차 등 단계별로 색을 각각 다르게 부여하면 정말 눈에 잘 들어오게 편집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뒤에는 뭐 외우는 거죠 뭐. 형광펜질 해놓고 보면 각론 부분은 그 각각의 챕터에서도 또 다시 파트가 나뉘는 게 보이실 건데, 그걸 토대로 해서 나무가 가지 치는 식의 느낌을 가지고 체계를 저장해놓는 게 중요한 듯 합니다. 그 과정에서 써먹을 수 있는 그래프나 표를 최대한 정확하게 암기해줘야 할 테구요. 작년에는 기본교재를 가지고 단권화했는데, 올해 판본 새로 나온 걸 또 사자니 영 아까워서, 얇게 나오는 정리교재를 단권화 교재로 썼습니다. 어느쪽이든 간에 포스트잇을 통해서 빠르게 각 챕터로 이동할 수 있는 체크포인트를 만들어놓는 게 좋습니다. 없으면 진짜 한참 뒤적거리게 되요.
김유미 노무사 역시 수업 준비 빡시게 하고, 특히 첨삭에서 큰 강점이 있습니다. 그 많은 인원을 강사가 직접 채점하는 경우는 아무래도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아마 신림에서 이 정도로 꼼꼼하게 첨삭해주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언변이 화려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닙니다.
작년엔 62점-_- 나왔는데 올해 오히려 대폭 하락했네요. 대체 왜...
4) 경영조직론(전수환 -> 김유미) : 58.51
1차 선택은 경제학을 했었는데, 노경을 대강 보니 솔직히 좀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더군요. 그래프 같은 거 그릴 때 사소한 실수를 되게 잘 하는 편이다 보니 제대로 해낼 자신이 별로 없었고, 인사와 연계해서 시너지를 낼 수도 있고 심리학 관련 내용도 섞여있는 경조로 결국 흘러갔습니다. 작년에 물론 얘 때문에 떨어지긴 했는데 이번에도 과목을 바꿀 생각은 안했습니다. 노경이든 민소든 이제 와서 새로운 걸 시작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경조는 기본적으로 인사와 겹치는 이론도 많이 등장하고, 느낌도 비슷하지만 답안지 서술에서는 방법론 차이가 꽤 있다고 봅니다. 인사는 결국 현실 적용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의 내용이 주를 이루기 마련이라 대강 비벼 쓰면 글이 나오지만, 경조는 이론 설명을 시키는 문제가 많다보니 내용을 모르거나 어떤 이론을 쓰라는 건지 파악이 안되면 그냥 나가리가 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학자 이름이나 이론 이름 띡 던져 주고 내용 쓰라는데 이게 또 이름들은 죄다 비슷비슷해서... 일단은 거기부터 확실히 외워놓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경조는 개인-집단-조직 순서로 점차 큰 사람 덩어리를 다루게 됩니다. 전 그나마 심리학 공부하면서 주워들은 게 있어서 개인 파트의 하이라이트인 동기부여 쪽은 꽤 쉽게쉽게 가긴 했습니다. 어차피 죄다 심리학자들 튀어나오는 부분이니까요. 다만 집단 단계의 리더십 이론 쪽 넘어가면서부터는 좀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무래도 외울 게 많긴 많더라구요.
작년에는 전수환 강사 수업을 들었었는데, 교재 구성이 저와는 잘 안 맞는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동차이고 공부량을 줄이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교재가 두껍지 않은 편인 전수환 강사를 선택했는데, 전체적으로 목차로 세분화된 수준이 높지 않고 통 문단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내용을 체계화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필연적으로 각 사안에 대해 자세한 서술을 할 지면이 부족해지는 측면도 있을 테구요. 첨삭 점수가 좀 널뛰기를 하는 편이고 너무 점수가 후해서 내가 지금 어느 수준에 와 있는가 하는 걸 가늠하기가 좀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다만 강사의 강의력이나 전달력은 뛰어나다는 점이 강점이었습니다.
올해 김유미 노무사가 경조도 강의를 시작한 걸 보게 됐는데, 첫해라고 하니 좀 고민을 하다가 교재라도 건지자는 생각에 옮겼습니다. 인사와 교재 포맷이 같다 보니 거기서 오는 익숙함 같은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분화나 목차 정리가 잘 되어 있는 편이라 형광펜질에 적합한 점도 괜찮았구요. 전 아예 두꺼운 책으로 단권화를 해버렸고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교재였습니다. 다만 몇몇 이론이 너무 교재 곳곳에 반복해서 서술되어 있는 경우가 있어서 오히려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고, 초판이다 보니 오탈자가 인사 교재보다는 좀 있는 편이었습니다. 첨삭은 인사와 똑같이 만족스러웠네요.
작년에 55점으로 제 동차 불합격 1등 공신이었습니다.
4/ 멘탈관리
수험생활하면서 몇번인가는 다들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시기가 올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언제 멘탈이 터졌었나 좀 복기를 해보자면...
1년차 0기 시즌에 판 돌아가는 걸 아무것도 제대로 모르고 몇개월 혼자 독학한 뒤, 1월에 처음 스터디에서 이쪽 돌아가는 생리를 알게되지 그 중요한 수개월을 허공에 내던졌다는 생각 때문에 진짜 힘들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전 법학 답안지 쓰는 방법을 아무것도 모르고, 2~4년 차인 스터디원들은 능숙하게 써내려가는 걸 보고 내가 이걸 붙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변리사가 앞으로 수년은 더 걸릴 것 같아서 빠르게 붙을 수 있는 시험으로 선회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거든요. 이틀 정도 내가 이 시험을 해야 하는 게 맞는지 한참 고민했었고, 결론 내린 뒤에는 뭐 공부 상의 난점만 겪었던 듯 합니다. 조금 참고가 될까 해서 말씀드리자면 노동법 최고 답안 베껴쓰는 걸 서너부 정도 했었습니다. 법학 답안지 쓰는 방식이나 그 문장을 익히는 데에 나름 도움이 되더군요.
동차 때 1기를 인강으로 소화한 행쟁이 꽤나 어렵게 느껴졌고, 여기에 조현 강사 특유의 모의고사 난이도까지 더해지면서 꽤 스트레스를 받긴 했습니다. 2기 때는 공부시간의 80퍼를 행쟁에 쏟은 수준이었으니까요. 다만 그렇게 고생하면서 체계가 한번 잡히고 나니 2년차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더군요. 조현 강사 모의고사 점수가 너무 안 나온다 싶으면 다른 강사 문제집 한번 구해다 풀어보세요. 잘 풀릴 겁니다.
2년차에는 몇번 고비가 있었습니다. 시험 결과 발표날 한숨도 못자고 꼴딱 밤샌 채로 확인하고는 일주일 동안 드라이진 두병을 비웠던 것 같아요. 이 미친 짓을 1년 더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제정신으로 못 있겠더군요. 그러고도 제 자리로 돌아오는 데에 두달은 더 써야 했습니다. 알바로 시간 보내는 게 꽤 도움이 됐던 듯 해요. 뭐 사실 이건 2년차 공부하면서 왔던 위기는 아니었으니...
우선은 노동소송법 관련 개정안 때문에 하루 정도 공부가 손에 안 잡힌 날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지금도 제대로 소위원회 처리도 안 되어 있는 걸로 압니다만, 여튼 간에 나름 파괴력 있는 뉴스였으니까요. 뭐 그랬습니다.
두번째는 3기 시작과 동시에 왔는데... 3기 1주차 모의고사 결과를 받아들고 나니 죄다 처참해서 어이가 없더군요. 2기 때도 1주차에서부터 막주 갈수록 점점 석차가 반등하는 중이었는데, 3기 1주차에 다시 고꾸라지니까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돌이켜 생각하면 다들 제일 앞파트들을 자주 반복했다 보니 답안 퀄에서 차별화를 못한 건가 싶긴 한데, 여튼 간에 멘탈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토요일에 그래놓고 일요일도 그다지 점수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코인노래방에서 혼자 세 시간 정도 소리 지르다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뭐 신림 코인노래방 엄청 싸서 좋긴 하더군요. 위에도 모의고사 관련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놨지만, 결국은 학원 채점 시스템이 실전을 완전히 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물론 그래도 멘탈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럴 때 자기가 빠르게 회복할 방법을 각자 모색해놓는 것도 중요할 테지만요.
5/ 채점방식
발표 후 며칠 간 채점에 대한 성토가 꽤나 올라왔습니다. 저 역시도 운이 좋아 붙었지만 그 성토의 맥락에는 꽤나 공감하는 편입니다.
1. 필체가 답안 인상에 주는 영향이 크고,
2. 지나치게 많은 응시자로 인해 채점의 퀄리티가 영향 받기 쉬우며,
3. 명확한 채점 기준을 제시해주지 않는 점
등이 가장 큰 문제 아닌가 합니다.
글씨체 관련해서는 타이핑이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가고시들이 아직 그런 시도를 하고 있지 않은 걸로 압니다. 그 결과 단시간 내에 개선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개인 고유의 필체가 실제 당락을 좌우할 정도의 요소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고, 채점자들 역시 매년 채점평에 글씨체 얘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실제 필드에서 모든 작업이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실무 능력과 관계도 없는 필체를 시험용으로 다듬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이 참으로 헛되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타이핑을 도입하게 되면 학원 모의고사부터 시작해서 일대 개혁이 필요하긴 하겠군요.
응시자 숫자는 사실 매우 쉽게 조정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 상태를 방치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뭐 경제난과 취업난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요 몇년 새에 2차 응시자 숫자가 급증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이미 2008년의 981명을 제외하고는 최근 10년 간 1차 합격자가 천명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이 부분의 해결을 위해서는 그냥 변리사 1차처럼 합격자 수의 3배수 합격시키면 됩니다. 지금 2차 합격자가 250명이니 연간 상위 750명으로 자르든지 하는 식으로요. 대체 왜 이걸 그대로 방치한 채, 3천명 분량의 시험지를 채점하게 하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시험 후, 발표 전의 행정처리 기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채점 기간은 한달에서 길어야 한달반 정도 될 건데, 6주 30일 동안 채점한다고 해도 하루 100부입니다. 하루 8시간씩 꼬박 채점한다고 해도 한부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4.8분이네요. 이 기간에 출제위원들이 채점에만 올인하는 것도 아닌데 이 시간은 고작해야 1,2분 수준에 머물기 십상이겠죠. 그 잠깐 동안 읽히는 답안지 써내기 위해서 수험생은 100분 동안 쉼없이 손을 놀려야 하고, 길게는 수년을 준비합니다. 이건 오늘도 고시촌 등지에서 자기 인생 갈아넣고 있는 응시자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어찌되었건 채점이 완료되었다면 최소한 채점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실제 제출된 답안지 중 동의 절차 통해서 최상위 점수 받은 것들 몇부라도 공개를 하든가요. 그러면 최소한의 기준선은 되어 줄 수 있겠죠. 이런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대충 훑어보고 인상비평한다'라는 비판을 피할 방도가 뭐가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장 붙은 저만 해도 경영학 과목 점수가 저렇게 나온 것에 대해 사실 별로 타당성이 있어보이지 않습니다. 저야 어찌되었건 증 받게 되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의 열패감은 어떤 식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떨어지더라도 좀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시험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6/ 결
12년 말 즈음부터 해서 계속 이런저런 시험에 응시하고 떨어지는 날들의 반복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 다 사회 진출하는 와중에, 전 2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성취가 없으니 패배감에 쩌들고 피폐해져 자존감은 정말 바닥을 치게 되더군요.
올해 상반기까지 집이 아파트 꼭대기 층이었는데 작년에 불합격 통지 보고 창 밖을 내려다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거리는 투명한 유리벽으로 막혀 있었고, 그걸 지나가려고 대가리를 들이 받을 때마다 머리통만 깨져나가는 그런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렇게 머리를 한번씩 찧기 위해 버렸던 것들, 포기해야 했던 것들, 덜어냈던 것들... 그 결과로서 느껴지는 끝도 없는 무능감과 열패감...
합격자 발표 후 제가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야 도달한 자리에 훨씬 어린 친구들이 같이 와있는 걸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스쳤습니다. 그럼에도 그 패배의 기억들조차 제 일부로서 긍정해야 하는 것이고, 그 또한 경험이자 선택들로서 제 자신을 구성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걸 겪지 못한 사람은 보지 못한 그런 풍경들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혹시 이 시험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먼저 갈지자 그려가며 헤맸던 기록을 여기 남깁니다.

댓글
  • sergelang 2017/10/15 01:34

    정성글은 ㅊㅊ

    (PS1dFC)

  • 정유라 2017/10/15 01:37

    정성글

    (PS1dFC)

  • 국뽕한사발 2017/10/15 01:39

    고생하셨습니다

    (PS1dFC)

  • spacedst 2017/10/15 01:44

    축하드립니다.
    노무사는 진로가 보통 어찌되는지 궁금하네요.
    자격 가산점 붙여서 대기업 공사들 가는지,
    노무법인 취업하는지,
    개업하는지.

    (PS1dFC)

  • 인트로74 2017/10/15 01:45

    파리바게트 글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글쓰는걸 좋아하시고 잘하시는듯^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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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면환장 2017/10/15 01:46

    한없이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감사합니다.

    (PS1dFC)

  • 당근매니아 2017/10/15 01:48

    spacedst// 대기업공사 인사 쪽으로 빠지는 경우, 노무법인이나 로펌에 들어가는 등 사건 업무하는 경우, 직접 노무법인 개업하는 경우, 법률연구원 같은 곳으로 빠지는 경우 등이 있는 것으로 대강 압니다. 저도 이제 막 붙어서 진로 탐색 중이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보통은 노무법인에서 실무경험 3년은 쌓고 다른 선택지로 넘어가는 걸 추천하더군요.

    (PS1dFC)

  • 당근매니아 2017/10/15 01:49

    벤자가르// 14년인가 15년에 거의 막바지로 들었던 것이니 이제는 없지 싶습니다. 그때도 몇과목 개설 안되더라구요.

    (PS1dFC)

  • spacedst 2017/10/15 01:53

    노무법인도 대부분 노무사 2~3명 있는 고만고만 수준인걸로 아는데.
    대우가 어느정도인지..
    노무사도 개업용 자격증 같은데

    (PS1dFC)

  • DBZARA 2017/10/15 01:57

    축하드립니다만...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인사나 특히 노무관련 실무경험 없는 노무사들은 현직 인사노무 담당자들이 엄청 무시하는 경향이 좀 있어요. 자문을 받아도 현장경험이 없으니 자꾸 법얘기랑 판례만 들고와서 현실적인 해결책을 못주니 자문계약이나 이런거 따오기도 힘든게 현실이긴 합니다.

    (PS1dFC)

  • 당근매니아 2017/10/15 02:00

    DBZARA// 조언 감사드립니다. 말씀해주신 그런 부분도 있고, 제가 사건 위주로 뛰는 걸 목표로 공부했던 것도 있어서 산재로 빠질까 하는 생각도 요새 하고 있네요.

    (PS1dFC)

  • 마이페이지 2017/10/15 02:01

    고생하셨네요. 축하.

    (PS1dFC)

  • DBZARA 2017/10/15 02:08

    산재쪽 생각하신다면 손해사정사도 따시는게... 잘아는 선배님이 산재쪽 전문인데 손사까지 따셔서 잘 나가시더군요~

    (PS1dFC)

  • 인궈궈궈 2017/10/15 03:25

    축하드립니다!! 승승장구하시길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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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ntimeter 2017/10/15 07:03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정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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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이름차탄 2017/10/15 07:19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휼륭한 노무사 되십시요. 직장인으로 노무사을 준비하고 있는데 집중도가 너무 낮아 힘이 많이 듭니다. 좋은 글 정말 많은 도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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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크리타타 2017/10/15 09:16

    30중후반에 현업에 있다가 자격 따려고 하는데 참 이게 쉽지 안헤요
    나태해서 ㅋㅋㅋ

    (PS1dFC)

  • detop 2017/10/15 10:46

    다른 직장에 다니는 중에 노무사 합격하면 수습(?)은 어떻게 마치는지요...? 현 직장을 그만 두고 노무법인에 들어가야 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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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훈47 2017/10/15 11:11

    축하드립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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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사변 2017/10/15 11:42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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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은한방™ 2017/10/15 13:51

    축하합니다. 고생하셨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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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MPH 2017/10/15 14:00

    웹에 글쓸때도 이정도로 정리해서는 써야 공부한 티가 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PS1dFC)

  • 모쿠슈라 2017/10/15 14:28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다른 시험을 준비 중인데 올해 발표나고 등산하면서 커다란 괴석 위에서 아래를 한참 바라보기도 했었는데.. 글 읽으면서 많은 반성과 또 응원을 받게 되네요.
    아무튼, 항상 건승하시길 바라겠습니다.

    (PS1dFC)

  • pernish 2017/10/15 15:35

    뭐 개인적으로 어떤 시험이든 볼 일은 없지만..ㅋ 이런 글은 참 좋은 정보네요

    (PS1dFC)

  • indianhead 2017/10/15 18:05

    ㅇ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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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님 2017/10/15 18:51

    정성스러운 후기네요ㅋㅋ
    ㅊㅋㅊㅋ

    (PS1dFC)

  • 우당탕쿵쾅 2017/10/15 19:25

    시험과는 상관없는 상황인데도 글쓴님 마음과 인생이 녹아져있어 참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시든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PS1dFC)

  • 야리부리 2017/10/15 21:07

    저번에 파리바게뜨 글 올려주셨던 분이군요!!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관련분야 이슈에 대한 글 자주 올려주세요

    (PS1dFC)

  • 야구는인생 2017/10/15 21:39

    공부하시는 틀을 완벽히 갖추신 듯합니다. 꼭 노무사가 아니더라도 수험 생활을 준비하는 많은 분들이 참고하실 만한 정성스러운 후기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이슈와 연동하여 써 주신 좋은 글도 잘 읽었습니다. 좋은 노무사로 많은 활동 부탁드립니다.고맙습니다.

    (PS1dFC)

  • 목포김기춘 2017/10/15 22:06

    흐트러졌던 저를 다시 다잡을수 있는 글이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어린친구지만 이런건 배울점 이네요

    (PS1dFC)

  • 보잭홀스맨 2017/10/15 22:21

    저도 회사생활과 공부 사이에 줄타기를 고민중인데 좋은글 추천드려요

    (PS1dFC)

  • 박지영 2017/10/16 00:50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합격도 축하드려요!!!

    (PS1dFC)

  • zzzz 2017/10/16 16:40

    학교게시판에서 많이 보던 분인데 ㅎㅎ
    잘되셨으면 좋겠네요. 응원합니다.

    (PS1d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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