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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은퇴.

"진짜 나 아무 것도 안한다??"
몇 번이고 엄마가 확인하기에, 쿨하게 엄마 보는 앞에서 호텔뷔페 예약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말고, 우리도 시댁에서 아침 먹고 오니까, 엄마도 가볍게 아침 먹고, 뷔페에서 많이 먹을 준비나 하고 계셩. 물 한잔도 집에서 안마시고 갈라니까."
23살에 시집와서 낼 모레 환갑, 그리고 작년 제사와 차례에서 은퇴했다. 그놈의 죽은 조상때문에 얼마나 괴롭고 힘든 날이었는지. 그놈의 조상 노래를 부르던 아빠, 무슨 심경의 변화였는지 재작년 제사때 다음부터는 절에 올릴테 집에서는 신경쓰지 말라고 선언했다. 뭐, 친가의 이구역 미.친년인 내가 그 제사때 고모삼촌 있는 자리에서 이제부터 음식을 사서 쓰던가, 전씨집안 여자 혼자서 제삿상 차려내는거 부끄러워 하라고 지랄지랄을 했다. 강단있고 뚝심있는 우리 아빠가 나의 지랄맞음에 새삼 놀라 선언을 한건 아니겠지만, 나름 혼자 뿌듯하기는 했다.
우리엄마의 제사 역사... 아마 엄마 혼자 제사 모신건 25년쯤 되지만, 사실 처음부터 혼자지낸거나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일찍 할아버지를 여의시고, 밭일되 논일은 기똥차게 해내셨지만, 동시에 집안일은 큰딸에게 그대로 물려주셨고, 그 큰딸은(내 큰고모) 고대로 울 엄마에게 토스해주셨다. 명절에 시골 가면 빨래가 산, 청소가 산이라고 하셨다. 그 시절엔 세탁기도 없어서 그 빨래를 이고지고 냇가가서 두들겨가며 빨래했단다. 하루는 김장 하라고 배추를 백포기 쌓아둔걸 배추 쪼개고 절이고 하다하다가 열받아서 반절은 두엄자리에 파묻어버리셨단다. 처음에 이 에피소드를 듣고 박장대소 했지만, 그 박장대소 했던 나는 배추를 파묻은 그때의 울 엄마보다 나이가 많았다. 20대의 젊은 처자는 무슨 생각으로 그 고된 시집살이를 버텼을까.
아무튼, 책으로쓰자면 대하소설인 우리엄마의 인생이야기. 아빠는 추석이라고 절에서 차례모시고 혼자 시골로 들어가버리고, 아들놈은 다이어트한다고 밥먹으러 안간단다. 딸부부와 손자와 엄마 요렇게 단촐하게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호텔 뷔페로 향했다.
"엄마, 봐, 요즘에 누가 집에서 이렇게 음식하고 그래. 다 나와서 외식하고 사먹지."
젊은 부부나 커플끼리 온 손님보다 노부부, 노부부와 자녀가족들이 손님의 주였다. 
"그래, 이렇게 나오니까 기분 전환도 되고 좋네."
"다음 설에도 식당 예약 할라니까, 그냥 손털고 놀고 있으쇼."
그날따라 우리 아기는  아기 의자에 뻗어 잘 주무시고,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마쳤다. 이번 추석이 정말 엄마의 명절로부터의 은퇴날이었다. 
작년부터 차례와 제사를 절에 올렸지만, 그래도 그나마 작년엔 사위 온다고 장봐서 음식이라도 했는데, 그걸 안하니 아직 뭔가 불안하고 허전하다며 웃는 울엄마. 딸래미는 절대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하다보면 해버릇 한다고 나 전 한장 못부치게 했던 우리 엄마. 과년한 딸램 34살에 시집간다니, 미쳤다고, 시집이 뭐 좋아서 가냐고, 그냥 버는 돈으로 여행다니고, 쇼핑하면서 살지 미쳤다고 시집간다고 울던 우리 엄마. 그리고 그놈의 35년 노동에 얻은 훈장이라고는 허리디스크와 무릎관절염뿐인 우리 엄마.
우리 엄마의 명절 은퇴를 축하드립니다. 비록 못난 딸년이 정말 부침개를 못부쳐서 가끔 사위 김치전 10장씩은 아직 부쳐주고 계시지만.... 오래오래 우리 명절마다 손자 손잡고 외식 다닙시다.

댓글
  • 갈색머리앤 2017/10/06 18:24

    축하드려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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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네z 2017/10/06 18:41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어머니
    앞으론 내려놓고 편히 있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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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ccusing_me 2017/10/06 19:17

    김치전만 배우세요. 나중에 스스로 생각나실터이니.
    굳잡 던 애니왜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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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넌내취향 2017/10/06 19:46

    캬~~~~~~  강탄산에 취하고 갑니다
    어머님이랑 매년 즐거운 명절 추억 많이 쌓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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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너스미션 2017/10/06 20:02

    명절이 길어서인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간 시즌이었어요. 이런 공방전 속에서 각자의 묘안을 찾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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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후랄라 2017/10/06 20:06

    캬 탄산이 톡톡 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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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지러워요 2017/10/06 20:09

    멋진따님이세요~!!
    저도 그렇게 멋진딸이었음 좋을텐데
    아직은 부족한 딸이네요ㅠㅠ
    사위랑 손주들 온다고 이것저것 음식하는엄마..
    저도 은퇴시켜드리고 싶네요..ㅎㅎㅎ
    저도 다른음식은 그럭저럭인데
    엄마의 비빔국수는 흉내낼수도
    어디가서 먹어도 맛있는집을 찾을수가 없어요
    덕분에 입맛없는 더운여름에
    저희 엄마도 더운데 소면삶아서 한그릇씩
    내어주시곤 하시죠ㅎㅎ 꼭더울때 더욱 생각난다는..
    언제까지나 내옆에 계실게 아니란거 잘아는데
    더잘해드려야 하는데..ㅠㅠ
    더잘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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