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은 트레이너들에게 있어 금이다.
트레이너는 담당 우마무스메들이 레이스에 나가 전력으로 달리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기본적인 트레이닝부터, 레이스 출주 신청,취재 혹은 인터뷰 일정, 식단까지 수많은 일들을 조정하고 조율해야 한다.
그렇기에 항상 몸이 둘이라도
부족한 것처럼 바쁘게 일하고 또 일한다.
그리고 잘 시간이 되었을 때,
트레이너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침대나 이불 위로 풀썩 쓰러져 잠을 잔다.
마치 하루종일 사용한 스마트폰에 충전기를 연결하듯
침대와 한몸이 되어 피로를 천천히 녹이고 몸을 회복시킨다.
그러니 도중에 잠이 깨지 않고 숙면하는 것도
실력 있는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선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나는 잠을 잘 자는 편이 아니었다.
잠에는 곧잘 들지만 중간에 깨는 경우가 부지기수일 정도로.
푹 자지 못하는 원인은 단순했다.
매일 밤 가위에 걸렸으니까.
몸이 서서히 녹는 것처럼 잠에 빠지려던 순간,
귓가에 사이렌이 울리는 것처럼 이명이 들려오고
시야는 fps 게임에서 죽기 일보 직전처럼 좁고 어두워지며
앞에는 어느새 귀신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몸은 전기 충격기에 맞은 것 마냥 저릿저릿하게 굳어 움직일 수 없다.
공포스러운 얼굴이 다가와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 일 수 없는데 목소리를 낼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도망치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공포가 몸을 덮을 수록
점점 커져오는 이명 소리에 고통스러워하다가
불현듯 땀범벅이 된 이불과 함께 몸을 일으킨다.
이 일련의 과정이 매일 밤마다
마치 루틴처럼 반복되는 것이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벌벌 떨며 곤히 자고 계신 부모님을 깨워
"엄마아빠 곁에 있으니 귀신은 나오지 않을거야" 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다시 잠에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
지금은 꿈에 나오는 귀신이 두렵지 않다.
그야 그 귀신은 정말 영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단순히 숙면 상태에 들어가지 못한
뇌가 멋대로 출력한 이미지였으니까.
이제는 가위에 눌린다는 걸 '수면마비' 라고 부른다는 것도
그 대처법도 몸에 완전히 익었으니 걱정할 것은 없었다.
대처법이 뭐냐고?
영화 E.T. 마냥 신체 부위 어느 것이든 좋으니 서로 접촉하는 것이다.
손가락과 손가락이어도 좋고 정 무리다 싶으면 혀를 깨무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자극을 받는 것.
그거면 된다.
그렇게 가위에 걸리긴 하지만 바로 풀어내며
어떻게든 쿨쿨 잠을 자는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언제나 그렇듯 잠을 자다 가위에 눌린 나는 덜 깬 꿈을 보고 있었다.
오늘의 귀신은 저번에 봤던 아동 영화의 악역이 기괴하게 비틀린 형태였다.
끔찍하기도 해라.
삐- 하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이명이 지긋지긋해졌기에
간신히 찔끔찔끔 움직이는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맞닿게 하려던 찰나,
확- 하는 감각과 함께 가위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가위에서 깨어난 해방감보다 공포감이 솟아났다.
가위에서 벗어나려면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
방금 자극은 내 손가락끼리 맞닿아 생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집에는 나 혼자 뿐.
누군가, 내 집에 있다.
그런 불길한 생각과 함께 눈을 뜨자
눈 앞에 보인 건 뜻 밖의 인물이었다.
"...카페?"
"..."
무척이나 긴 흑색 머리칼에 살짝 빛이 죽어보이는 눈동자까지.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보았다면 귀신으로 착각할 정도로
생기가 없는 모습을 한 건 내 담당 우마무스메인 맨하탄 카페였다.
다만 평소보다 더 생기가 없는데다
무언가 초조해보이는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우리집에 들어온건지는 그렇다 치고
뭔가 걱정 시킬만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카페는 왜 이리 불안해 하는걸까.
잠시 뒤 카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트레이너씨가 몸을 계속 떨기에...저는 '그들' 에게 사로잡히신 줄로만 알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아무리 시도해도 바뀌는 것...없이 떨고 계서서...
그만...돌아오시지 못하시는건가 하고..."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눈물이 흘러넘칠게 분명한 카페의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땀을 삐질삐질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내 증상은 카페가 보고 다니는 '영적 존재' 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가위에 눌린 것 뿐이다.
하기사 가위 눌린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보기란 불가능 하니까
밖에서 보기엔 덜덜 떨고 있으니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이겠지.
하지만, 나를 그만큼 걱정해준거구나.
그 마음이 대견스러웠기에 손을 뻗어
그대로 카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카페가 있으면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항상 돌아올 수 있어.
게다가 이건 그런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가위에 눌린 것 뿐이야.
그러니까...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 어디 안가."
"정말로요...?"
"정말의 정말로. 그렇게 걱정되면 같이 잘까?"
"...네?"
생각해보니 말이 이상했다. 일반적으론 말 그대로의 의미가 맞긴 하지만
보통 같이 잔다는 말은 그게...고등부에게 말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지.
"...트레이너씨가...싫지 않으시다면..."
부끄럽다는 듯 슬며시 몸을 배배꼬는 카페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거절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야, 하룻밤 정도는 괜찮겠지.
몸을 슬쩍 옮겨 자리를 내주자 카페는 천천히 몸을 눕혔다.
완전히 누운 것을 확인한 나는 이불을 들어 카페에게 덮어주었다.
"카페, 침대가 아니라 바닥인데 딱딱하진 않니?"
"아니요...늘 자던 침대의 감촉이 아니라...오히려...신선한 기분이에요..."
어느새 평소의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온 카페의 말투에 안도하며
잠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잘 자렴, 카페."
"안녕히 주무세요, 트레이너씨."
그날은 바로 옆에 카페가 있었던 것 덕분인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었는지 몰라도
자는 동안 한번도 가위에 눌리지 않고 숙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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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 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키자 옆에는 누군가 먼저 일어난 흔적이 있었다.
나도 다른 동료들에 비해 일찍 일어난다고 생각했건만, 카페는 더 일찍일어나는구나.
졸린 몸을 이끌고 거실로 향하자 어디선가 커피 향기가 은은하게 방을 채우고 있었다.
누가 커피를 끓이고 있는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테지.
"좋은 아침, 카페."
"아, 좋은 아침이에요...트레이너씨...어젯밤은...푹 주무셨나요?"
"덕분에, 뭔가 평소보다 몸이 가벼운 느낌인걸?"
반갑다는 얼굴로 내게 인사를 하며 커피를 내리는 카페에게
나는 컨디션이 좋다는 것을 어필이라도 하듯 어깨를 가볍게 붕붕 돌려댔다.
그 후 카페가 내려준 커피를 홀짝 홀짝 마시던 도중
가위에 대한 사실 하나가 떠올라 무심코 입 밖으로 내고 말았다.
"카페, 그거 아니? 가위 눌렸을 때 외부 자극을 받으면 풀려나지만
같이 오래 생활한 사람이 자극을 주면 풀리지 않는다는 것 같아. 신기하지?"
"그런가요...그럼...저는...언젠가...트레이너씨의...가위를 풀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입을 가리며 후후 웃는 카페의 얼굴을 보며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네."
"...방금 뭐라 하셨었나요?"
어이쿠, 눈치도 좋구나.
하지만 일부러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아니, 카페가 내려준 커피를 매일 마시고 싶다고."
아.
"..."
말이 끝나자마자 카페의 얼굴이 불덩이 같이 빨개짐과 동시에 몸이 굳어버렸기에
카페를 어떻게든 진정시키고 나니 등교 시간이 촉박해진 나머지 같이 뛰어가다
담당마와 함께 등교하는 걸 타즈나씨에게 걸린 나머지
적당히 해달라는 말을 들은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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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괴문서 하나 썼읍니다...
재활이 매우 필요한....
메에에여고생쟝下
2024/08/07 00:45
커피에 시럽가득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