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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20년 동안 혼자 차례상을 차리셨어요. 어렷을 적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어요. 그저 우리집도 놀러나 가지 이 힘들고(별로 돕지도 않은 주제에 ㅋㅋ) 귀찮은걸 왜 하는걸까 속으로 투덜투덜.
그러다 조금 머리가 크고 사춘기가 올 나이때쯤 좀 이상하다는걸 알았죠.
왜 어르신도 안오고, 친척들이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챙기지 않는 제사를 우리 엄마는 저리 혼자 묵묵히 하시는걸까. 성인이 되고 난 후 엄마가 제게 이야기해주시더라구요.
10년 넘은 세월 동안 본 적 없는 우리 아빠의 형들, 제 큰아버지들은 전부 아버지의 배다른 형제들이고 기독교인들이라 제사를 안지낸다고.
근데 저의 친할머니께서 살아생전에 그렇게 제사, 차례를 귀하게 생각하셨대요.
근데 할머니는 그렇게 제사 차례를 준비하면서 저희 엄마 손에 물 한번 못 묻히게 하셨답니다ㅎㅎ
저희 엄마가 젊었을 적 마르고 몸이 약했는데, 우리 며느리 몸 상한다고 아무것도 안하게 했대요.
명절에만 그러셨을까요, 평소에도 해주면 해주셨지 무엇 하나 받으려 하시지 않았고. 저 낳았을 때는 산후조리할 때 일하는 아주머니까지 붙여주셨대요..
엄마는 시집 와서 요리도 청소도 잘 하지 못해서 야단 맞을까봐 전전긍긍했는데 그저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엄마를 공주대접해줬던 시어머니께 너무 감사하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 저희 친할머니는 제가 학교 가는 것도 못 보시고 일찍 돌아가셨어요.. 사고로..
저희 엄마는 할머니께 받은만큼 돌려주지 못한 것 같다고  그렇게 20년 동안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차례와 제사를 지내고 계세요. 언제까지 지내실꺼냐 여쭈었더니 그냥 엄마 몸이 대서 못할 때 까지 하고싶다 하시네요.
오빠한테는 너는 안해도 된다. 엄마까지만 하자. 하시구요..
머리 커졌을 때 부터 엄마를 돕는다고 열심히 돕는데도, 저희 엄마가 매번 일당백하시니 저는 매 명절마다 죄송하고 그렇네요 ㅋㅋ
어렸을 때도 그리고 사실 지금도, 몸도 힘드신데 올해부턴 차례를 안지내도 되지 않나 생각해보지만 ,
엄마가 할머니를 생각하고 표현하는 방식이라 생각하니 감히 계속하자 그만하자 제가 말하기도 조심스럽네요 ㅋㅋ  
흐이 그냥 우리 엄마 참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 할머니도 보고싶어 글 남겨봤어요.
마지막으로는 요리게에 맞게 저희 엄마가 손수 준비하신 차례상 사진 올립니당;_;
어서 취직해서 추석때 엄마가 더 이상은 차례 안지내게 여행 보내버리는(!) 멋있는 딸이 되고싶네요.
그때 즘이면 차례 안지내도 할머니가 수고했다고 하늘에서 웃어주시겠죠 ㅎㅎ  

댓글
  • 산토리니7 2017/10/04 13:21

    차례상에 정성이 보여요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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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큼한쿠키a 2017/10/04 14:00

    역시 엄마라는 힘은 위대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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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eys6607 2017/10/04 14:59

    복있는집이 이런집입니다.
    이런집이 화목하고 행복한 집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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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불에눕자 2017/10/04 15:32

    타인에게 받은 사랑의 힘은 참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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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포쿠마 2017/10/04 16:47

    정말멋진집이네요. 저는 이런집분위기가 양반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강요하지않고 스스로 하고싶다라는 마음이 들어야 조상님도 좋아하시고..이런게 진짜 차례지요...
    괜히 하기싫은거 억지로 시키고 하고 싸우기만하고 이게무슨차례인가요...
    작성자님 어머님과 할머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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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차장 2017/10/04 17:05

    멋진 할머님과 어머님을 두셨네요
    차례상 맛있게 드셨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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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유에 2017/10/04 17:08

    아니 무슨 차례상을 광고에 나올법한 비주얼로 만드셨네..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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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권하는잡부 2017/10/04 17:09

    코끝 찡해서 갑니다.
    며느리 끔찍하게 아껴주신 할머님도 대단하시고, 그 사랑을 잊지 않고 힘겨운 몸에도 제사 모시는 어머님도 안쓰럽고 고맙고 합니다.
    명절에 올리는 제사의 의미를 이렇게 와 닿게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물론 저희는 제사를 모시지 않지만, 저 따듯함만큼은 꼭 배워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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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ephyr8 2017/10/04 17:14

    훈훈한 가정사네요.
    똑같이 회사같은곳에 적용해도 좋을듯합니다.
    윗사람이 열심히 하면서도 아럇사람에게 배려하고. 아랫사람은 그마음을 알아서 스스로 열심히 하는것.
    위에서 아무리 잘해줘도 이기적임 아랫사람도 있고 윗사람 자체가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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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신잡는해병 2017/10/04 17:23

    우워어어~ 파인애플 바나나닷
    차례상에서는 처음보네용
    담부터 우리집도 파인애플 놓자고 해야거따 ㅎㅎ
    꿀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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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기홍기 2017/10/04 17:24

    원래 제사는 이렇게 진심에서 나와야하는 건데. 형식만 남고 마음은 없으니  문제가 되는거죠. 어머니께서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자기 시대의 양식으로 표현하시는 거라 봅니다.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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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자 2017/10/04 17:38

    왈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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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유에감솨 2017/10/04 18:09

    장손으로 결혼하고 처음엔 차례나 제사 지내는게 번거롭고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한 삼십년하다보니 이젠 당연히 내일이라고 생각되요  친척들 도와주러오면 오히려 불편하고 더 신경쓰게하더라구요 혼자서 며칠전부터 찬찬히하는게 더 편해지고...  20대후반인 아들보면서  드는 생각이...  제사는 대부분 우리대에서 끝나겠지만  적어도 명절이나 기일되면 먼저가신 조부모님이나 부모님 생각은 해주길바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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