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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난 우리집 명절 사이다?썰

추석이 되니 명절 스트레스 관련한 기사들이 보이길래 우리집 사이다(라고 해야하나...다시 생각해보니 나만 만족스런 탄산수같기도....) 하나 풀어볼까함.
 
우리 아버지쪽 친척들은 정말 딸이 귀한집임. 할아버지도 4형제셨고 할아버지와 형제분들 자녀분들도 보면 딸이 딱 하나 있을 정도. 그러다보니 할아버지께선 언니가 태어났을때 정말 기뻐하시고 밥 먹을때나 잘때나 항상 옆에 두시고 병원에서 오늘 내일 하실때도 언니 졸업식 못 보는걸 아쉬워하셨다고 함.
그런 모습을 큰어머니께선 다소 서운해하신듯함. 실제로 우리가 어릴때 할아버지께 서운한 내색을 했다고 들었음. 언니에게도 대놓고 구박하진 않지만 묘하게 안 좋아하는게 느껴졌는데 가끔 빈정거리는 정도라 크게 괘념치 않음.
그런 큰어머니께서 언니와 제가 초등학생이 되었을쯤  엄마에게 딸들 이제 저만하면 부엌일 좀 도와야 하는거 아니냐며 눈치를 줬다함. 나보다 열살, 열두살 많은 사촌오빠들은 방에서 주는거 받아먹고 티비나 보며 놀때였음.
우리 엄마 성격 참 좋음. 무슨 이야길 하든 깔깔 웃으며 받아주시고 웬만한 일엔 화도 잘 안 내시는데다 보살같은 분이신데 특히 어르신들이 좋아하셔서 우리 엄마 오십이 넘도록 어딜 가나 새댁 소리 들으면서 예쁨받으심. 그런 엄마가 정말 싫어하는게 하나는 거짓말이요, 둘은 딸아들 차별임. 아빠랑 다르게 엄마는 워낙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집에서 자라서 그에 대한 설움이 있으심ㅜㅜ
큰엄마가 딸들 일 좀 시키자하며 살살 웃으면서 먼저 순진한 날 불렀음. 엄마 표정 굳은건 안 보이셨는지...내가 부엌에 가자 엄마가 표정 딱 굳히고 다시 방에 들어가라함. 큰엄마도 얼굴을 굳히시는데 엄마가 진짜 소리소리를 지르기 시작함. 어디 내 앞에서 내 딸 부려먹을 생각을 하냐고, 형님 아들들부터 당장 데려오라고 왁왁 소리치시는데...
진짜 엄마가 그렇게 화내는거 처음 봤음. 아빠랑 싸울때도 소리 지르기전에 눈물 터져서 제대로 말도 못하시는 여린 분인데 그 날 진짜 부엌을 뒤집어엎으심. 그 많은 사람들이 말릴 생각도 못할 정도로 다들 벙쪘음.
 그 이후로 어떻게 얘기가 진행됐는진 모르지만 크게 사이가 틀어지진 않았고 나랑 언니는 명절 첫날 음식하는 날은 건너뛰고 둘쨋날 인사만 드리러 다님. 
덤으러 말하자면 내가 이 일이 있고 한 두해쯤 지났을 때(그때도 명절이 가까워지는 시점이었음)아빠랑 같이 티비를 보고있는데 명절에 여자만 부엌일 하는 것에 대해 저녁프로그램에서 다루고 있었음. 내가 그걸 보며 한숨을 푹푹 쉬면서 아빠...나도 나중에 결혼하면 저렇게 해야겠지...나는 결혼 안 하고 싶다...그런식으로 이야길했던 기억이 남. 그 당시엔 아무 말도 안하셨지만 그해 명절부터 아빠가 같이 제사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함!!! 그거보고 오빠들도  일을 돕고 우리 큰엄마는  다음날 식사중인 저보고 어제 ㅇㅇ이 오빠가 같이 한 거라며 내가 집에서도 안 시켜본건데 엄마를 도와주더라면서 은근리 눈치를 주는데 난 또 거기다대고 아무 생각없이 오빠야 진짜가! 어쩐지 더 맛있다!! 그라면서 헤헤 웃음. 그때 큰엄마가 진짜 화나보였던터라 아직도 기억남 ㅋㅋㅋㅋㅋ 아마 큰엄마 복장 좀 터졌을거임 ㅋㅋㅋㅋㅋㅋ   
댓글
  • 테라야 2017/10/04 01:09

    와우 어머님 너무 멋찌심!
    일도우시는 아버님도 멋찌심!
    크으으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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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포터리포터 2017/10/04 01:26

    어머니 사이다 캬!
    근데 큰어머니는 좀 너무하시네요 어디 초등학생들을 명절 일 시키려고 참나ㅋㅋㅋ 읽을 때도 말이 안됐지만 댓글 쓰나보니 한층 엌ㅋㅋ이가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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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쌀모나 2017/10/04 02:48

    어머니 사이다도 사이다인데,
    아버님 딸이 그런 말 하는 거 들으시고 조용히 같이 하시는 거 너무나 감동임....정말 따님 깊이 사랑하시는 마음이 전해 집니다.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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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수적인변태 2017/10/04 03:25

    저희는 아직도 남자들은 앉아서 양파 달라 뭐 달라 하고 전혀 안 도와요... 흑흑 ㅜㅜ
    할머니도 당신 아들들보고 앉아 있으라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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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논비요링 2017/10/04 05:43

    크게 뭐 힘들지는 않고 자잘한게 여러가지니까 귀찮은수준아닌가요?
    예전에는 이거 엄청 힘들다던데... 이런생각많았는데
    제가 그냥 남동생하고 둘이앉아서하니 시간만 좀 걸리지 별로 안힘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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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다쟁이아짐 2017/10/04 06:03

    남자던 여자던 다 귀한 남의 자식. 며느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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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비향 2017/10/04 07:48

    명절날 남자가 왜 놀지? 라는 생각만 집안 뒤짚어 엎는거 같이 전날 청소해야하고 제사재료 장보고 당일에는 음식만든거 진설하고 집에서 제사 지낸뒤 성묘하러 나가고 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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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nnable 2017/10/04 09:33

    댓글 보다보니 베오베네요!! 첫 베오베에 우리엄마아빠 멋쟁이썰로 와서 기뻐요 감사합니당ㅎㅎㅎ
    결국 큰댁과는 2년전 틀어졌지만 이젠 언니만 보면 못마땅해하는 모습도 안 보고(할아버지 돌아가신지가 이제 이십년이 다되어가는데...) 엄마아빠 그 많은 음식준비에 누군지도 모를 친척들 시중 두는거 안 봐서 전 사실 너무 좋네요.
    다른 분들은 친지분들과 갈등없이 즐거운 한가위 되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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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뀨잇 2017/10/04 10:40

    다들 속 끓이지 말고 소리좀 질렀으면 좋겠다
    뒤로 속끓이고 남편과 싸우지말구..
    왜 아들들을 오냐오냐 곱게 키우는지도 몰겠고
    엄마부터 변화되야 자식들세대부터 변화되다는걸 왜 생각못하지
    나는 회사서 남자분들이 자기 아내가 부엌에서 일하는건 아무렇지 않은데 내 딸이 나중에 사위부엌떼기 할생각하면 가슴아프다한말듣고 진심 어이없었다 사랑해서 결혼하는게 맞나?? 아낸 피안섞였고 딸은 피섞였다 이건가??
    글쓴이분 부모님은 사고가 트이신 멋지신분이네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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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니수기여님 2017/10/04 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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