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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67)(68) - 바라나시에서 델리까지 국내선 & 인도의 독립 ^^^^^^^

사르나트 유적군인 녹야원과 고고학 박물관을 탐방한 후,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바라나시에서 델리까지는 국내선 항공기로 이동한다.
약 1시간 45분 정도 소요된다.


인도의 국내선 수하물 규정은 1인당 20Kg 이다.
초과시에는 1Kg 당 5달러의 추가비용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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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북인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첫 기착지인 델리로 돌아왔다.

TAJ VIVANTA DWARKA 호텔 체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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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화장실이 인상적이어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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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라나시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처음 기착지인 델리로 돌아왔다.
델리는 '심장'이라는 뜻이다.


우리에게도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낸다'는 속담이 있듯이
인도인들은 델리로 와야 교육도 제대로 받고 상층으로의 진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뉴델리 인구만 3500만명이니 인구 집중 현상은 서울 못지 않다.


델리는 구도시이고 뉴델리는 정부기관들이 모여 있는 인도의 수도이다.
모디 총리가 속해 있는 연꽃당은 주황색이 상징색이다.
화폐개혁 단행, 의무 교육 강화, 전통문화 보존, 도로 건설, 주거문화 개선.. 등
모디 총리는 반독재식으로 강력하게 정책을 밀어붙이며 국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인도인들은 현재 인도의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라고 보고 이를 지지하고 있다.
뉴델리에는 대통령 관저, 국회의사당, 정부청사 등 정부기관과 대사관이 모여 있다.
정치적인 중심가인 이곳은 거의 5m 간격으로 군인들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노변 주차는 물론 일시정차도 허용되지 않는 곳이 많다.


4월 중순에 선거가 치뤄지는 시기라 검문 검색도 많고 뉴델리에는 군인들이 쫘악 깔렸다.
우리의 시선으로 본다면 비상계엄령 발효가 아니고서는 도시 한복판에 군인들이 깔린다는 건 상상이 되지 않지만
인도에서 총을 들고 경계 근무를 하고 있는 군인을 보는 시선은 강화된 경찰 정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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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델리의 중앙로에 서 있는 인디아 게이트.
인도는 영국 식민 시절, 영국의 독립 약속을 믿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간디는 인도 청년들에게 참전을 독려했으나 영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 때 전사한 인도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위령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인 건축가의 설계로 세워졌다.


이 위령탑에는 9만여 명의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위령탑의 아치 아래에는 '불멸의 불'이 불 타고 있다.
인도인들에게 불은 신성함의 상징으로 널리 기리기 위한 공간에는 불이 있다.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끈 간디의 화장터이다.
간디는 비폭력 저항 운동인 사타아그라 정신을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삼았다.
그리고 카디산업을 주창하여 인도에서 생산된 것만 사용하자는 운동을 전개한다.
간디파들은 지금까지도 물레로 짠 인도산 면직물과 인도산 마직물 옷만 입는다.
다른 한편에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항해야 한다는 운동도 있었다.


영국은 무굴제국이 쇠락해 가는 틈을 이용해 200여년에 걸쳐 인도를 야금야금 먹어들어가 지배했다.
각 지방의 호족과 현지왕들은 무굴제국의 과한 세금보다 영국 지배가 더 낫다는 속셈으로 머리를 굴렸고
약해져 가는 무굴제국의 치하에서 빠져나와 점차적으로 영국 지배하에 들어갔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성공하게 된 주요인은 식민지 인도에서 착취한 자원이 지대했다고 본다.


인도는 한국보다 2년 늦게 독립했고 독립기념일은 우리와 같은 8월 15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다르게 (의아하게도) 영국은 의회에서 법을 바꾸어 식민지 국가의 독립을 실행한다.
영국파였던 네루는 힌두와 이슬람이 갈라져서 인도가 분열하지 않고 통합 독립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영국이 바로 철수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외에도 극단적인 혁명을 주장하는 사회주의자 그룹도 있었고 각 분파들의 다양한 분열 책동이 있었다.
이 시기에 정치적 계파들은 서로 적이 되었고 종교 교단들은 줄기차게 자기들만의 독립 국가 건립을 요구했다.
분쟁이 극에 달하던 1948년에 간디는 암살 당했다.





결국 인도는 종교때문에 분단국가가 되었다.
서파키스탄 (현재의 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 (현재의 방글라데시), 그리고 인도.
이렇게 세 개의 국가로 분열되었다.
이슬람교도들은 서파키스탄이나 동파키스탄으로 이주할 것을 공표했고
인도에서 가장 많은 힌두교도들과, 그리고 소수의 자이나교도와 이슬람교도.. 들이 남게 되었다.
(1)(2) 간디의 화장터에는 간디를 화장했던 불이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4) 만델라의 기념 식수
8델리시내.jpg
(3) 뉴델리의 대통령궁
(4) 뉴델리의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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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 뉴델리의 도로 상황.
빵빵대와 들이대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답게 끊임없이 빵빵대면서 들이민다.
이상한 점은, 차선 무시, 신호 무시, 순서 무시에
차종 불문하고 주먹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밀착해서 다니는데도 접촉 사고를 보지 못했다.
인도인들 운전 실력을 보면, 괜히 IT강국이 된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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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들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이 와중에 자동차 사이를 다니며 구걸하는 대단한 집시 여인이다.
우리의 전용버스에도 손을 내밀었지만 버스 창문에는 개폐장치가 없다.
댓글
  • dlwlrma 2024/07/08 17:36

    재밌겠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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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공주 2024/07/08 17:50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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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간의기록[不良文原] 2024/07/08 17:52

    바라나시 사진을 보다가 뉴델리 사진을 보니 천지차이입니다.
    잘 모르겠지만, 우리로 치면 간디는 김구선생이고 네루는 이승만박사에 해당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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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공주 2024/07/08 18:04

    비유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인도의 대도시는 서구유럽 못지 않게 현대적입니다.
    교육열도 무척 높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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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간의기록[不良文原] 2024/07/08 18:24

    지금 인도만 해도 넓은데,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도 예전엔 같은 인도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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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공주 2024/07/08 20:16

    통일 인도 안에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가 포함되어 있었지요.
    분리된 후 인도는 장족의 발전을 했고 상대적으로 두 나라는 경제 발전을 이루지 못했으니..
    역사는 참..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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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 2024/07/08 18:48

    SLR 캐논 동민분들은 2024년 12달에 세계사 특히 인도에 대한 시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
    ㅋ 시험에 대비해 열심히 공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 ㅋ
    ㅋ 저는 타동이라 시험에서 제외 ~
    ㅋ 학창시절 부터 공부하고는 담쌓았음 ~ ㅋ
    ㅋ 캐논동은 지식 수준이 너무 높음 ~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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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공주 2024/07/08 20:17

    앗~! 죄송~ ^^
    가방끈 놓은 지가 언젠데~~ 말야~ 말야~~~ ㅋㅋ
    재미로 흘려 들으시면 됩니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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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날갑자기 2024/07/08 20:22

    헛! 시험 언제인가유? ........(책과 담 쌓은지 무지 오랩니답,머 학창 시절은 당연히 포함)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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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 2024/07/08 20:27

    어느날갑자기선생님과 고래공주님은 학창시절 모범생이고 우등생 이었을 것 같습니다 ~
    저는 남들 공부할때 놀고 남들 놀때 놀았습니다 ~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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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날갑자기 2024/07/08 20:23

    사진+글=역사시간의 두시간 강의 잘 보고 읽었습니다! 작가님~~~~~~~~~~~~~~!(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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