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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화봉요원의 장각 =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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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봉요원은 삼국지 만화고


삼국지 스토리에서 장각, 황건적은 보통 프롤로그를 담당하지만


정작 화봉요원의 장각이 어떤 놈이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이 만화에서 황건적의 난 파트는 통째로 스킵됐고


동탁이 낙양을 장악하고 시작되기 때문.


즉 화봉요원 1권부터 장각은 이미 고인이다.


스핀오프 소설로 황건 파트를 다룬 책이 있진 하지만, 아무튼 최소한 본편 등장은 없는 설정.


그 흔한 회상 장면이나 실루엣 처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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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장각 본인은 죽었어도 의외로 장각의 영향력 자체는 작품 전체에 상당히 깊게 뿌려져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하늘은 이미 죽었다'는 황건의 캐치프레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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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적이 나오는 작품이면 꼭 등장하는 그 대사.


"창천이사 황천당립",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고 누런 하늘이 마땅히 일어서리란 그 문구.


장각이 빠르게 사망하고 황건적도 금방 진압되면서 유명무실해진 문구다.


화봉요원은 이 문구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변용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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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당립'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장각의 죽음과 함께 명백해졌지만


그 앞의 '창천이사', 하늘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은 꽤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 인용된다.


하늘은 이미 죽었다.


하늘이 이미 죽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화봉요원에서 '하늘'은 무엇을 상징하고 무엇을 대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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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대극 컨텐츠에서도 비슷하겠지만,


화봉요원의 하늘은 단순한 자연환경을 넘어 만물을 주재하고 영향을 미치는 절대자의 위치에 존재한다.


이미 최고 군주부터가 천자(天子)라고 불렸듯


국가, 정치, 법, 제도, 윤리, 도덕 등


수많은 영역에서 하늘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어떤 기준, 관념이었다.


그 하늘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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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국가와 정치)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정부는 기능과 동력을 잃어 무력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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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법과 제도)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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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윤리 도덕)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화봉요원의 몇몇 인물들은 이런 현상을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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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오늘, 아버지께선 간악한 자들의 손에 돌아가셨다.


천도(天道)는 어디에 있는가?


2년 전 오늘, 우리 가문은 무너져내렸다.


천리(天理)는 어디에 있는가?


작년 오늘, 우리 집안은 강한 세력들에 삼켜지고 말았다.


천의(天意)는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나는 일족의 부흥을 위해 원술의 깃발 아래 몸을 맡기고,


게다가 여동생의 행복까지 희생시키려 하고 있다.


이(利)와 의(義)의 경계에서 배회하는 나를,


하늘이여. 그대는 어찌 꾸짖지 않는가?


아니면... 너는 이미 죽은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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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책의 첫 등장 대사는 하늘이 상실한 기능들을 하나하나 꼬집으며


하늘이 이미 죽었는가=장각의 말이 옳았는가 라는 의문을 던진다.


사실 손책이 장각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의식하고 있다는 묘사는 조금도 없긴 한데


장각의 후신인 태평도를 상대로 싸워나간 스토리와 맞물려


하늘의 죽음을 의심하고, 다시 하늘을 찾아보려 애쓰고, 결국 하늘의 건재와 보우를 믿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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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찾아온 부당하고 억울한 죽음의 순간,


다시 하늘은 이미 죽었다는 결론으로 회귀하는 손책의 탄생과 몰락의 서사 자체가


'하늘은 이미 죽었다'는 메시지에 깊이 뿌리내린 메타포인 것이다.


손책을 죽인 게 장각의 영향을 받은 태평교단이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손책 또한 장각의 주장을 이어받고 숙고하고 반박을 시도하다 장각이 옳았음을 몸소 논증하고야 만


또다른 제자이자 아들이었던 것.


물론 손책 자신은 그런 걸 의식하진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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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옳고 정당하고 지고했던 모든 가치'가 죽었다.


화봉요원의 많은 인물들은 그것을 반박하려고 하지만


난세의 현실 앞에서 그들은 결국 장각이 맞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으로 롤백당하고 만다.


무슨 가시적인 활약도 없이 한 줄의 캐치프레이즈만으로 이 정도의 영향력을 흩뿌린 작중 사례는


최소한 아직까진 장각이 유일.


화봉요원의 수많은 주조연들이 '하늘'에 대해 각자의 심상과 해석이 따로 있고


그 대부분이 또 사망, 몰락하는 시점에 그걸 부정당하는 패턴이 자주 있고 보면


장각은 등장 한번 없이 화봉요원 최초의 선각자이자 최후의 승리자로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 너무 무섭다.

 

댓글

  • 총든버터
    2024/06/08 12:07

    8기도 팔괘인거같던데 진짜 기분묘하구만

    (CjB7ur)


  • 미사키@
    2024/06/08 12:13

    좀 복잡한 게 8기=8괴는 맞고 본문도 분량 관계상 태평도=장각의 뜻을 충실히 이어받은 존재처럼 서술해놓긴 했지만, 실제 작중 묘사를 보면 장각 3형제와 나머지 8괴들의 관계가 호의적이거나 상호존중하는 동지였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큼.

    (CjB7ur)

(CjB7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