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통일 이후 10년. 전 세계의 인류가 주민등록을 마쳤다. 오직 예외는 밀림 깊숙한 곳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살아가던 보그족 뿐이었다.
독자적인 문명을 가진 그들은 외부와의 접촉에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어떠한 대화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그들의 문명은 매우 미개했고, 이상한 종교를 모시고 있었으며, 호전적이었다.
그동안은 보그족에 대해서 두 가지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 그냥 둡시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
" 아니요! 예외는 있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들을 위해서라도 지구 문명의 혜택을 나누어야 합니다! "
"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로 그들을 위한 게 맞습니까? 솔직히 그곳의 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핑계를 대는 게 아니냔 말입니다. "
" 무슨 그런 음해를! 통일 정부의 모든 행동은 오직 인류애를 향하고 있습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우린 그들에게도 좋은 것을 나눠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 그들은 그 안에서 충분히 좋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냥 우리와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문명을 존중합시다. "
" 때로는 다름이 아니라 틀림일 때도 있는 겁니다! 이 지구통일 시대에, 굶어 죽고 치료받지 못해서 죽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
많은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10년 차에 들어선 통일 정부가 내린 결론은 보그족의 주민등록과 개방이었다.
아직 완벽하게 자리 잡지 못한 새로운 통일정부에는, '전 인류의 완벽한 통일'이라는 상징성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정부가 만든 공익 CF도 꽤 자극적이었다.
피골이 상접한 아이가 힘겹게 누워있는 모습과 나레이션,
감성적인 CF에 비해서, 정부의 행사는 꽤 강압적이었다.
보그족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첨단 기술력을 갖춘 인류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수많은 보그족이 제압되어 세상에 끌려 나왔다. 그 과정에서의 무력충돌은 언론에 비추어지지 않았다. 언론에 비추어지는 건 문명의 혜택을 받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당장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나아지는 모습.
위험한 밀림에서 벗어나, 새로 지은 깔끔한 건물에서 편하게 생활하는 모습.
어린 보그족이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습.
그리고 란 슬로건.
보그족을 그냥 두어야 한다던 반대의견은 점점 힘을 잃었고, 정부의 정책은 무난하게 이루어지는 듯했다.
한데, 보그족의 주술사가 마지막 순간 최후의 저항을 했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 까르카그 까르카-! "
주술사는 문양이 새겨진 커다란 '단지'의 뚜껑을 열어 버렸고, 그곳에서부터 오색찬란한 빛의 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 우왁! 뭐야?! "
" 저, 저게 무슨?! "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있었던 그 빛은 밤이 새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인류는 늘 그렇듯이 미지의 것에 공포를 느꼈다.
일을 저지른 보그족들은 죄다 빛의 기둥을 향해 엎드린 채였고, 정부에서는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대한 대처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전 인류가 불안한 마음으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정확히 하루를 빛나던 빛의 기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색색으로 빛나는 여섯 개의 화살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공격적인 이미지의 화살이라는 것에 더욱 불안해졌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아! 신께서 주셨던 저희의 보물을 되찾아주셨습니다! 인간에게 이 능력을 부여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겠습니다! ]
그 목소리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똑똑히 들려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얼른 하늘을 바라보자, 화살 주변에 '빛의 덩어리'가 하나 반짝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당황할 때, 목소리는 자신을 설명했다.
[ 저는 천사입니다. 그동안 저희 천사들은 보물을 잃어버려 여러분을 돕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 천사? "
" 천사라고? "
하룻밤을 불안에 떨었던 사람들은 천사라는 단어가 반가웠다. 게다가 이어지는 설명은 사람들의 표정을 더욱 밝아지게 했다.
[ 이 여섯 가지 화살은 각각의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붉은 화살은 맞으면 사랑에 빠지는 화살입니다. ]
" 어? 그거 완전 '큐피트의 화살'이잖아! "
" 그럼 진짜 천사인가 봐! "
사람들은 기뻐했다. 한데,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 푸른 화살은 미움에 빠지는 화살입니다. 주홍 화살은 아름다워지는 화살입니다. 회색 화살은 흉측해지는 화살입니다. 하얀 화살은 모든 것을 치유하는 화살입니다. 검은 화살은 반드시 목숨을 빼앗는 화살입니다. ]
" 앗 "
" 어 어? "
사람들은 목숨을 빼앗는 화살이란 대목에서 움찔했다. 그런 무서운 화살이 있다니!
[ 원래 이 보물들은 천사와 악마가 반씩 나눠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 진영의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서 저희는 인간에 대한 간섭을 금지당했고, 보물을 봉인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봉인이 풀린 지금, 저희 천사들은 다시 인간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목소리의 설명은 간단했지만, 인류가 단번에 알아먹기에는 너무 모르는 세상 이야기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의 다음 말이었다.
[ 오늘 저는 한가지 보물을 찾아가려 합니다. 저희 천사들에게 어떤 화살을 주시겠습니까? ]
" 어떤 화살? "
" 천사에게 화살을 쏠 수 있게 해준다는 건가? "
전 세계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후 목소리가 다시 한번 화살의 능력을 읽어준 뒤, 사람들은 떠들어댔다.
그중 가장 많은 이야기는 단연코 '하얀 화살'이었다.
" 당연히 하얀 화살 아니야? 모든 것을 치유하는 화살이잖아. "
" 천사들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거잖아! "
그런 말들이 많이 나올 때쯤, 목소리가 반응했다.
[ 하얀 화살! 저에게 하얀 화살을 주시려거든, 오른손을 하늘로 들어주십시오. ]
수많은 사람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들었든, 호기심에 들었든 간에 그랬다. 이윽고 과반이 손을 들자,
[ 아아 아-! ]
하늘을 맴돌던 하얀 화살이, 그 빛의 덩어리를 향해 쏘아졌다!
부르르 떨던 빛의 덩어리는 화살과 함께 사라졌다.
사람들은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기대했다. 이제 천사들의 치유력이 세상에 펼쳐질 것 같은 막연한 기대.
한편으로는 너무 쉽게 무언가를 결정했다며, 급히 휘둘렸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언론은 이 모든 일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사람들은 저마다 추리와 상상을 섞은 이야기들을 떠들어댔고, 정부에서는 남은 화살을 바라보며 대책을 세워나갔다.
인류는 하루의 시간 동안, 어느 정도는 이 신비한 사태를 이해하는 데 성공하는 듯했다.
그리고 다음 날, 또다시 '빛의 덩어리' 하나가 화살들 근처에 생겨났다.
한데, 어제와는 목소리가 달랐다!
" 뭐야?! "
" 아, 악마?? "
인류는 몹시 당황했다!
그리고 이 순간, 통일 정부는 전 세계에 긴급 방송을 보냈다.
무엇이든지 함부로 결정하지 말고, 정부가 회의를 끝낼 때까지는 손을 들거나 하는 행위를 절대 하지 말라는 방송이었다.
곧이어 수많은 토론이 이어졌는데, 거기서 나온 가장 중요한 결론은 하나였다.
" 절대로 '검은 화살'이 악마의 손에 들어가선 안 됩니다! "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목숨을 빼앗는 화살만큼은 절대 악마에게 들어가선 안 되었다.
그리고 악마와 천사가 번갈아 가면서 나타날거란 예상은, 아이러니한 결론을 내렸다.
" 해로운 화살은 천사에게, 이로운 화살은 악마에게 줘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인류가 삽니다. "
정부는 방송을 통해 전 국민에게 이것을 알리고 이해시켰다.
인류는 악마에게 붉은 화살을 쏘아 보냈다.
그리고 걱정을 시작했다.
" 천사가 가져갈 수 있는 화살이 2개 밖에 없어! 해로운 화살이 3개나 남았는데, 어떡해! "
" 처음에 하얀 화살을 생각 없이 준 게 실수였다고! "
다음날, 다시 천사가 나타났을 때 인류는 망설일 것 없이 검은 화살을 주었다.
그다음 날 악마가 나타났을 때는, 대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던 주홍 화살을 주었다.
이제 하늘에는 '미움에 빠지는 푸른 화살'과 '흉측해지는 회색 화살'이 남아 있었다.
인류는 둘 중 한 가지는 악마에게 주어야만 했다.
"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흉측해지는 게 낫습니다! "
" 이 세상은 외모지상주의입니다! 흉측해지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
" 만약 당신이 가족을 미워하게 된다면 그게 얼마나 큰 불행인지 상상해보셨습니까? "
" 어차피 지금도 세상에는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워하게 되면 관계를 끊으면 그만입니다! 외모가 어디까지 흉측해질지 상상은 해보셨습니까?! "
의견은 많았지만, 정부의 결정은 어차피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 천사에게 푸른 화살을, 악마에게 회색 화살을 줍시다. 어쩌면 천사의 '하얀 화살'이 흉측해진 모습을 치료해줄 수도 있습니다. "
정부의 결정은 전 세계에 방송되었고, 결국 남은 두 화살은 그렇게 나누어졌다.
여섯 개의 모든 화살이 분배된 뒤, 거대한 빛기둥이 한번 솟아올랐다!
이윽고, 전 세계의 하늘에 천사와 악마들이 '활'을 들고 출몰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서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당장 악마들이 쫓아와서 화살을 쏘아댈 것만 같았다.
한데?
" 어? "
" 뭐야? "
천사들이 인간들을 향해 '검은 화살'을 쏘아대는 게 아닌가??
" 이게 무슨...! "
" 처, 천사가 사람을 죽인다-! "
대혼란이 벌어졌다! 천사에게 보호받기 위해 접근하던 사람은, 검은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 어이없는 사태를 본 사람들은 천사들을 향해 절규했다!
" 왜 천사가 우리에게 검은 화살을 쏘아대는 겁니까-! "
인류의 질문에, 천사는 대답했다.
[ 여러분이 죽어야 천국에 데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 뭣?! 미쳤어?! 우린 죽기 싫다고-! "
그러자 천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 천국은 좋은 곳인데요? ]
" ... "
[ 물론 인류 여러분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합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이렇게 미개한-. . . ]
복날님의 글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는 것 같아서 흥미진진해요! 그 결말을 예측해보면서 읽는 재미도 있지만 맞춘 적은 몇번 없는게 함정이긴 하네요ㅋㅋㅋㅋㅋㅋ
마지막 부분에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너무 뜬금없나요 흐하;
그리고 사실 딱 [ 천국은 좋은 곳인데요? ] 에서 끝내려고 했는데...너무 또 불친절 할까봐; 어렵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꼭이요!
우와...
우와.... 진짜 뒷통수 치는 이 느낌 너무 좋아요♡♡♡
천국은 좋은곳인데요? 하고 끝내시고
꼬릿말에 뒷부분 넣으셔도 좋앗을것같아요! 작가님 마음에 드는 부분에서 끝날 수 있도록요ㅎㅎ
Vogue족
한조,대기중
저도 [천국은 좋은 곳인데요? ] 에서 끝내는게 훨씬 좋은거 같아요!
우와... 허를 찔렸...
♥
오늘도 역시..감각적인 반전에 감탄하고 갑니다..
혹시 출간 준비를 따로 하고 계신지...아니라면 제가 돕고 싶습니다..ㅜㅜ
연재나 전자책 출간 하시면 크게 인기있으실것 같아요...ㅜ
ㅋㅋㅋㅋㅋ이번 편은 뭔가 의미 심장해서 너무 통쾌하고 좋네요ㅋㅋㅋㅋ문명 문제로도 볼수 있겠고 종교적으로도 해석이 되고. 그렇지 그렇게 천국이 좋으면 남에게 악착같이 권하지 말고 본인이 먼저 가야지ㅋㅋㅋㅋ
천사가 사람들을 천국으로 보내기 위해서 검정화살을 쐈다면 그게 악마에게 들어가서 악마가 사용했을땐 그 화살을 쏴서 지옥으로 데려가지않았을까요? 악마에게 준것보다 나은듯(?)ㅋㅋㅋㅋ
제가 글을쓰는 능력은 비루하고 복날님의 유려한 글솜씨에 제가 생각한 소재를 말씀드리고픈데 이것또한 금지행동에 속할런지요
근데 저는 죽어서 천국으로 가게 되고 여기보다 낫다는 게 확인되면 죽어도 될 것 같아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