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근 고등학교의 교내 신문부가 강제로 해체당했다.
부원 넷은 억울한 처사라고 항의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왜냐면, 부원이었던 장진주가 교내에서 자살했기 때문이다.
장진주의 자살과 신문부 활동이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마는, 구실을 들어 부를 해체한 것에는 어른의 사정이란 게 있었다.
그동안 신문부에서 학교 급식의 비리를 파헤치고, 촌지를 받은 선생을 고발하는 등의 뉴스를 실었던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원들은 차마, '신문부의 존속과 장진주의 자살은 상관없는데요!'라고 따지고 들 수 없었다. 그런 칼같은 대응을 하기엔 아직 어렸다.
결국, 네 사람은 금요일 방과 후에 모여서 부실의 짐을 정리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종이로 만들었던 명패를 걷었다.
신문부 부장 3학년 김남우.
부장 대리 2학년 임여우.
부원 2학년 공치열.
부원 2학년 홍혜화.
부원 2학년 장진주.
그들 나름대로 프로의식을 가지자며 만들었던 명패였다. 그것을 만들 때 얼마나 즐거웠었는지,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었다.
" 하아~ "
" ... "
" 에휴~ "
넷 사이에 별다른 대화는 없었지만, 추억이 담긴 물건을 정리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나왔다.
그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는지, 부장 김남우가 애써 밝게 말했다.
" 끝나고 피자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
" 오 피자! 진짜 형? 나 많이 먹는데! "
덩치 큰 공치열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뒤이어 임여우와 홍혜화도 웃음을 보였다.
" 어떤 피자요? 메이커 피자요 아니면 동네 피자요? "
" 당연히 동네 피자지! 치열이 혼자서만 한판 먹는데, 선배 주머니 빵꾸나! "
그들은 의식적으로라도 일부러 밝게 말했다.
김남우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우리 신문부의 마지막 날인데, 피자 정도는 쏴야지! 내가 3판까지 쏜다! 물론 동네 피자. "
" 헤헤 요즘 동네 피자가 더 맛있어요 선배! "
" 난 하와이안 핏자! "
" 뭐? 파인애플 피자를 먹겠다고?! "
" 아 뭐어~! 맛있어! "
한번 입이 풀리자,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늘 이랬던 예전 신문부의 분위기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얼른 정리하고 피자 파티를 하자며 바쁘게 움직이는 부원들.
한데 갑자기,
" 아! 장진주...! "
" ! "
" ! "
" ! "
임여우의 입에서 나온 이름 석 자에 모두가 경직되고 말았다. 그녀는 스크랩북 하나를 들고 있었다. 겉에 장진주라는 이름이 적힌.
" 진주 부모님이 다 가져가신 줄 알았는데 이게 있었네... "
" ... "
임여우는 자기도 모르게 스크랩북을 열었다.
" 아! 진주가 그동안 교내 신문을 모아두었었구나. 진주답다. "
일주일에 하나씩 월요일마다 발매되는 A4 용지 교내 신문. 신문부의 모든 추억이 담긴 역사였다.
어느새 임여우의 근처로 부원들이 모여들고, 임여우가 스크랩북을 한 장씩 넘겼다.
" 아! 이 기사 기억나! 이거 취재한다고 닭장에서 난리 피운 걸 생각하면 진짜! "
" 하하 이거 봐. 이때 강 선생님 가발이란 거 폭로했다가, 우리 다 찍혀 가지고 완전~ "
" 어머 내가 이런 타이틀을 썼었어? '교내 삼각관계의 덫' 뭐야 이게~ 완전 유치해 흐하 "
이미 청소는 뒷전이 된 상황에서, 부원들은 신문의 내용을 하나하나 얘기하며 웃어댔다.
푹 빠져서 보다가 어느새, 마지막으로 발행했던 2주 전 신문까지 도달했다. 최무정 선생님의 친딸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단 걸 밝혀낸 기사가 메인으로 실린 신문이었다.
" 이게 우리 신문부의 마지막 기사가 될 줄이야. 그럴 줄 알았으면 작별 인사라도 넣었어야 하는데. "
" 그러게요 선배. "
분위기가 조금 씁쓸해진 그때, 임여우가 이상한 얼굴로 다음 페이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 어? 근데 이건 뭐야? 날짜가...다음 주 날짜잖아? 9월 첫째 주 교내 신문? "
임여우는 의문스럽게 물었지만, 다른 셋은 고개를 갸웃했다.
" 여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거 빈 페이지잖아. "
" 뭐가 보인다고? "
" 응...? "
임여우는 커진 눈으로 다른 셋을 둘러보았다. 이상하다는 얼굴.
" 이거 안 보여? 여기 있잖아 신문. 9월 첫째 주 신문. "
" 뭐야 여우야? 뭐가 보인다고? "
" 왜 그래~ 이상한 장난하지 마~ "
" 뭐, 뭐...? "
여우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 표정은 절대 장난이 아니었다.
" 이, 이거 안 보여?! 9월 첫째 주 신문! 다들 안 보여?! 어?! "
임여우는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찍어가며 언성을 높였지만, 다른 셋은 당황하며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덜컥 겁이 난 임여우는, 급하게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 여, 여기 봐봐! [ 닭장을 빠져나간 닭이 축구 골대의 그물에 걸려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매번 문제가 된 닭장의 보수를 이 기회에 요청해야 하지 않을까? ] 이거랑, [ 본관 건물의 마스코트나 다름없던 '처마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프라이팬'이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선생님들도 손대지 않았던 15년 역사의 프라이팬이 떨어지다니, 나쁜 징조인 걸까? ] 이거 있잖아! 이게 안 보여? "
임여우는 장난치지 말라는 듯이 셋을 하나하나 보았지만, 셋이 더 당황한 얼굴이었다.
" 뭐, 뭐야. 왜 그래 여우야. 그거 그냥 빈 종이잖아. 무섭게 왜 그래...? "
홍혜화가 울상으로 말할 때, 공치열이 중얼거렸다.
" 여우 네가 말한 뉴스 스타일이 꼭...진주가 쓴 뉴스 같다. "
그것은 순식간에 공포심을 더하는 말이었다.
얌전하고 소심했던 장진주는 평소에 잘 나서질 않았지만, 아주 가끔 자신의 이름을 건 기사를 쓸 때면 무척이나 좋아하곤 했었다. 항상 질문으로 끝나는 장진주 특유의 기사 마무리. 공치열은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덜덜 떨던 임여우가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찍어가며 말했다.
" 마,맞아! 진주야! 진주의 기사야! "
" ... "
모두의 눈이 흔들렸다. 셋은 임여우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인지 뭔지, 확인하려는 듯 뚫어지게 살폈다. 그러나 임여우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고, 더없이 겁에 질려 있었다.
" 아 왜들 그래! 이거 진짜 안 보이는 거야? 어? "
급기야 울먹거리려는 임여우.
홍혜화가 급히 달래려는 듯 나섰다.
" 울지마 여우야! 빛에 비추어 자세히 보자, "
임여우의 손에서 스크랩북을 가져가는 홍혜화. 한데?
" 응? 자, 잠깐만! 이 뒷장에 기사가 있어! "
" 뭐? "
홍혜화는 다시 스크랩북을 내려놓으며 페이지를 한 장 넘겼다.
" 여기! 여기 다음 장에 기사가 있었네! 어라? 그런데 이건...9월 둘째 주 뉴스네...? "
홍혜화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딱딱하게 굳은 공치열의 말이었다.
" 야, 야? 너까지 왜 그래? 장난하지 마, 거기도 빈 페이지잖아...? "
" 뭐...? "
놀란 토끼 눈이 된 홍혜화가 급히 김남우를 돌아보며 눈으로 묻자, 고개를 끄덕이는 김남우.
" 나도 안 보인다 혜화야... "
" 뭐, 뭐? 이 신문이 안 보인다고요...? 9월 둘째 주 교내 신문이 있잖아요 여기! "
" 혜, 혜화야! 너도 지금 그게 보이는 거지? 그치? 근데 난 지금, 네가 보고 있는 페이지가 안 보이거든...? "
임여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홍혜화가 멍하니 돌아보았다.
그때, 굳은 얼굴의 공치열이 스크랩북으로 손을 뻗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 헉! "
깜짝 놀라 물러나는 공치열!
" 시, 신문! 9월 셋째 주 교내 신문...! "
홍혜화는 공치열과 스크랩북을 번갈아 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 나, 난 안 보여 치열아! "
" 그치! 치열아 너도 지금 보이지?! 너만 보이지?! "
임여우의 질문에 덜덜 떨리는 고개를 끄덕이는 공치열!
임여우는 김남우를 돌아보면서 스크랩북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 서, 선배? 혹시 보여요? "
" ! "
눈을 부릅뜨는 김남우! 그것은 대답이나 마찬가지였다.
" 선배, 난 지금 여기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선배 보여요? "
" 나, 나도 안 보여 형! "
" 저도요 선배...! "
부들부들 떨면서 대답을 못 하던 김남우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 보, 보여! 9월 넷째 주 교내 신문이 보여...! "
" 세상에! "
'꺅' 놀라며 스크랩북을 놓아버리는 임여우!
넷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날짜가 적힌 교내 신문이, 각자의 눈에만 보인다고?
" 서, 설마 이게 진짜 미래 신문이란 말이야...? "
넷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 김남우가 덜덜 떨리는 손을 스크랩북으로 뻗었다. 그는 잠긴 목소리로 기사를 천천히 읊었다.
" 이번에 또다시 죽음을 맞이한 학생이 나왔다. 3학년 김남우... 두 사람이 모두 신문부인 것은 과연 우연일까...? "
" 뭐? "
" 서,선배? "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김남우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페이지의 한 부분을 짚었다.
그는 덜덜 떨리는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 아, 아니겠지...? 이거 아니지...? "
공포에 질린 그의 불안감 가득한 얼굴이, 다른 셋에게도 전염되었다.
그들은 오늘, 피자를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
.
.
홍혜화의 어머니는 무당이었다.
미스터리한 스크랩북의 공포에 빠졌던 넷은, 홍혜화의 어머니께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홍혜화가 스크랩북을 가져가고, 남은 부원들은 주말을 두려움으로 보냈다.
그리고 월요일에 등교하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지는 소식을 접해야 했다.
" 우와악-! '본관 프라이팬'이 떨어졌다-! 우리 학교 15년 전통이 깨져버렸어-! "
소식을 접한 다른 학생들은 단순히 안타까운 정도였지만, 신문부의 넷은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특히 김남우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 아, 아닐 거예요 선배. 우연이겠죠 그냥. 그, 그냥... "
" ... "
임여우의 위로에도 김남우의 얼굴은 펴지질 않았다. 홍혜화가 전해준 소식부터가 그랬다.
" 죄송해요. 저희 엄마 말로는 강력한 신이 들었다고...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겠다고 하는데, 어려울 것 같데요. "
" ... "
그날 이후, 김남우는 학교생활에서 완전히 말을 잃었다. 부원들의 위로에도 좀처럼 나아질 수 없었다.
그러다가 금요일,
" 저, 정말로 축구 골대에 닭이...! "
학교 골대의 그물에서 닭이 죽은 채로 발견됐다. 임여우가 스크랩북에서 보았던 기사 내용 그대로 말이다.
" 저, 정말로 미래가 적혀있는 신문...! "
부원들은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소름 끼쳐 했다.
특히 김남우는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자기 죽음이 적힌 기사도 사실이란 게 아닌가?
김남우는 홍혜화에게 물었다.
" 혜화야. 어머님은 혹시 어떻게...? "
" 미, 미안해요 선배. 그게 잘 안 된대요. "
" 아... "
김남우는 절망했고, 임여우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 선배! 바꾸자! 미래를 알 수 있으면, 바꿀 수도 있는 거야! 미래를 바꾸면 되잖아? "
" ... "
" 선배 그러지 말고, 우리 한번 확인해보자! 미래를 바꿀 수 있는지 없는지! 다음 주 교내 신문은, 혜화 네가 읽을 수 있지? 그럼 그 뉴스에서 일어난다고 한 일들을 우리가 막아보자고! 그러면 되잖아 선배! "
" 그래 형! 미래는 바꿀 수 있어! 힘내 형! "
" ... "
신문부 부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섰다.
다음 주 월요일. 새벽부터 등교한 넷은 부실에 모여앉아 스크랩북을 펼쳤다.
" 혜화야, 둘째 주에 정확히 무슨 일들이 생긴다고 했었지? 다시 한번 읽어 봐. "
임여우가 두 번째 빈 페이지를 보며 묻자, 홍혜화는 모두가 볼 수 있게 공책에 옮겨적기 시작했다.
[ 송서선 선생님의 음악 수업 중, 어디서 들어온 것인지 모를 쥐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쥐도 반할만한 노래를 부른 학생은 누구일까? ]
" 아? 이건 좀.. "
임여우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막기에는 애매한 기사였다.
홍혜화는 빠르게 다음 줄을 써 내려갔다.
[ 교감 선생님의 화초가 완전히 난도질당했다! 죄를 묻지 않을 테니 알아서 자수하라는 말은 과연, 죄를 묻겠단 말일까 묻지 않겠단 말일까? ]
" 아! 이거야! 이 미래를 바꾸자! "
홍혜화가 옮겨적은 기사 중에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그것이었다.
임여우는 김남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 선배, 우리가 미리 화초를 숨겨놓자! 이번 주 동안, 아무도 모르는 곳에 화초를 숨겨놓는 거야! 그러면 난도질당할 일도 없고, 결국 이 신문의 내용이 틀린 것이 되잖아? 그렇다면 선배의 죽음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얘기야! "
김남우의 얼굴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렇게 해보자! "
의기투합한 넷은 곧바로 이동했다. 다행히 아직 이른 시간이라, 교장실 복도에 나와 있던 화초를 빼돌리는 데까지는 어려움 없이 성공할 수 있었다.
" 근데 이걸 어디다 놔야 안전하지? "
" 음... "
" 아! 나 옥상 열쇠 어디 있는지 알아! 전에 양호실에서 봤어! 옥상에 숨겨두자! "
평소 문이 잠겨있는 옥상은 사람의 출입이 없었기에, 그곳에 숨겨놓는다면 무조건 안전했다.
열쇠의 위치를 아는 공치열이 곧장 양호실로 가 두통을 호소했다.
" 선생님 머리가 너무 아파요! "
" 그래? 어디 보자. 열이 있니? "
양호 선생님이 공치열에게 신경을 쓰는 사이, 함께 들어왔던 홍혜화가 열쇠를 빼돌렸다.
" 치열아 난 수업받으러 갈게. 아프면 조퇴해! "
" 으, 응! "
바쁜 걸음으로 이동한 홍혜화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주위를 살피다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미리 옥상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임여우와 김남우,
" 열쇠는?! "
" 여기! "
열쇠를 받은 임여우가 급히 자물쇠를 열기 시작하고, 홍혜화는 곧장 아래로 내려가 망을 보았다.
철문이 소리를 내며 열리자마자, 화초를 들고 들어가는 김남우와 임여우.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화초를 숨겨두고 나와서 옥상의 문을 단단히 잠갔다.
그리고 셋은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 선배 봤지? 미래를 바꿀 수 있잖아! 선배의 죽음도 분명히 바꿀 수 있어! "
" 그래. "
임여우의 확신에 찬 모습은 김남우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래도 긴장감을 버릴 순 없었고, 제발 바람대로 둘째 주가 지나가기만을 기도했다.
수요일에 음악실에서 한바탕 '쥐' 소동이 일어나면서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 휴우... "
" 선배 걱정하지 마. 옥상에 있는 화초를 누가 건들겠어? 열쇠도 없는데. "
" 그래. 그렇지. "
애써 고개를 끄덕이는 김남우를 다른 부원들이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째 주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
점심을 먹고 있던 김남우는 학교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만, 숟가락을 놓치고 말았다.
[ 교감 선생님의 화초를 난도질한 학생이 누굽니까? 짐작이 가는 범인이 있으니까 알아서 자수하세요. ]
사색이 된 김남우와 부원들!
임여우는 온몸을 덜덜 떨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열쇠도 없이 어, 어떻게?? "
신문부의 넷은 당장 옥상으로 달려갔다. 한데, 자물쇠가 달려있어야 할 문고리가 비어있는 게 아닌가?!
" 꺅! "
너무 놀라 비명마저 지르는 홍혜화!
임여우와 김남우가 황급히 옥상 문을 열고 확인했지만, 있어야 할 화초가 보이지 않았다.
" ... "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굳어버리는 김남우.
겁에 질린 홍혜화가 생각 없이 중얼거리고 말았다.
" 어떡해! 미,미래는 바꿀 수가 없나 봐! "
" 으..으... "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김남우의 표정.
그것을 본 임여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 웃기지 마! 미래는 바꿀 수 있어! 선배! 다음 주, 다음 주 기사를 바꾸자! 치열아! 어?! 혜화야! "
억지로 부원들을 다그친 임여우는 김남우를 연신 독려했다.
그날 방과 후, 네 사람은 다시 스크랩북 앞에 모였다.
" 치열아. 셋째 주 교내 신문에는 무슨 기사가 적혀있어? 어? "
" ... "
한데, 어쩐 일인지 공치열은 빈 페이지를 보며 망설였다.
다시 물어도 공치열이 어물쩍대자, 임여우는 답답해하며 닦달했다.
" 아 왜 그래? 무슨 기사가 있길래? "
" 있잖아 그게 실은, 남우 형 때문에 그동안 말을 안 했었는데... "
어렵게 입을 연 공치열이 굳은 얼굴로 기사를 읽었다.
" 9월 셋째 주 교내 신문... 신문부의 2학년 공치열이 계단에서 굴러 중상을 입었습니다. 소식에 의하면 전치 4주 이상의 상처를 입은 것으로 밝혀져... "
" 뭐, 뭐어-?! "
깜짝 놀라는 부원들!
" 너, 너 왜 그걸 이제 말해?! "
" 하지만, 남우 형은 목숨이 걸려있는데...내 이야기로 신경 쓰게 하기가 좀 그래서... "
" 너 정말! "
김남우는 씁쓸한 얼굴로 공치열을 바라보았다. 공치열의 성격에 그 사정이 알만했다.
인상을 찌푸리던 임여우는 고개를 빠르게 흔들며 말했다.
" 하여간, 네 미래도 바꿔야 해! 중상이 애들 장난이야?! 계단에서 굴렀다고 그랬지? "
임여우는 앞으로 일주일간 절대 계단으로 다니지 말라고 했지만, 2학년 교실 자체가 3층이었다.
그때, 홍혜화가 제안했다.
" 그럼, 일주일간 아예 결석하는 건 어때? "
" 뭐? 안돼! 우리 부모님한텐 뭐라고 하고! "
" 설명을 드리면.. "
" 절대 그런 거 믿을 분들이 아니라니까?! "
공치열은 거부했고, 또 어차피 자기 집 계단에서 구를 수도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답답한 마음에 표정이 안 좋아지는 네 사람. 이쯤 되니, 임여우는 아예 화까지 냈다.
" 진주는 진짜 왜...! 아, 진짜 진주는...! "
차마 죽은 아이에게 뒷말을 더하진 못했지만, 원망이 가득한 어투였다.
공치열은 펜을 집어 들며 말했다.
" 일단, 나도 절대 주의할 테니까...최선을 다 해보자. "
따로 공책에 자신의 사고 기사와 다른 기사들을 옮겨적는 공치열.
[ 교무실 복도에 걸려있던 교감 선생님의 붓글씨가 쓰레기장에서 발견되었다! 과연 학생의 짓일까, 선생님의 짓일까? ]
" 아! 이건 가능해! 우리가 미리 빼돌려서 아예 들고 다니면, 누구도 그걸 쓰레기장에 버릴 수 없잖아? "
모두가 생각하기에도, 아예 품고 다닌다면 절대 안전할 것 같았다.
" 그래, 그러자! 말 나온 김에 지금 바로 가자! "
넷은 곧장 교무실 복도로 향했다. 넷이나 되는 사람이 망을 보고 호흡을 맞추니, 벽에 걸려있던 액자를 빼돌리는 건 손쉬웠다.
임여우는 빼돌린 액자를 열어, 안에 들어있던 화선지를 돌돌 말았다.
" 이걸 치열이 네가 24시간 가방에 넣고 다녀! 그럼 절대로 그 기사가 맞을 일은 없어! 그렇지? "
" 어,어! 알았어. "
공치열은 자신의 가방에 붓글씨를 단단히 넣었다.
" 이번엔 정말로 완벽해! 다음 주 교내 신문이 맞을 일은 없어! "
임여우는 자신 있게 말했지만, 모두의 얼굴에선 작은 불안감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김남우가 그랬다.
" 이번엔 제발... "
.
.
.
새파랗게 질린 공치열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울상이 된 홍혜화가 그에게 물었다.
" 어, 어떻게 된 거야 치열아? 왜 교감 선생님 붓글씨가 쓰레기장에서 나와! "
지난주에 분명히 빼돌렸던 붓글씨가 교내 쓰레기장에서 나오고 말았다.
불안정한 얼굴의 공치열은 넋이 나간 듯 고개를 흔들었다.
"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분명 어제까지 있었는데...분명히 있었는데...내, 내가 꼭 쥐고 있었는데... "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신문부 부원들은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미래는 정말 바꿀 수 없단 말인가? 어떻게 해도 안 된단 말인가??
홍혜화가 울먹이며 말했다.
" 치열아. 제발 조심해! 너 계단...응? 제발 조심해! 응? "
" 으, 으응.. "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공치열은 자신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공치열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난간을 꽉 붙잡고 온 신경을 다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단에서 넘어지지 않을 자세였다.
하지만 계속 미래를 바꾸자던 임여우도 이젠,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모두가 말은 안 했지만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공치열은 계단에서 넘어질 거라고, 스크랩북에 적힌 미래는 절대 바뀔 수 없다고 말이다.
한데 목요일 아침, 공치열이 잔뜩 흥분한 상태로 나타났다!
" 바, 바뀌었어! 기사가 바뀌었다고! "
" 뭐?? "
흥분한 공치열은, 스크랩북의 빈 페이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 여기 기사의 내용이 바뀌었다고! [신문부의 공치열이 계단에서 굴렀지만,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이렇게! "
" 뭐, 뭐! 정말? 진짜로 그렇게 기사 내용이 바뀌었다고?! "
깜짝 놀라는 부원들! 그중에서도 김남우가 다급하게 물었다!
" 어떻게?! 어떻게 해서 바뀐 건데?! "
" 엉? 그, 글쎄? 잘 모르겠는데.. "
" 뭐야? 너, 너! 뭔가 있을 거 아니야?! 잘 좀 생각해봐! "
김남우가 다급하게 공치열을 몰아세웠다. 그는 정말로 간절했다.
임여우와 홍혜화마저 다그치고, 망설이던 공치열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어쩌면... 실은, 어제 방과 후에 말이야. 내가 진주한테 고백했었던 음악실에 가서 진주 생각을 좀 했었거든? "
" 뭐-어? 네가 진주한테 고백을 했었어?! "
깜짝 놀라는 홍혜화! 신문부의 부원 중 누구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 으, 응. 바로 차이긴 했지만...아무튼, 어제 음악실을 지나가다가 진주 생각이 나길래 들어가서 그랬는데..혹시 그것 때문일까? "
" 으음... "
부원들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희망이 그것뿐이라면, 김남우는 어떻게든 붙잡아야 했다.
임여우는 김남우를 보며 물었다.
" 선배! 선배도 혹시 진주한테 고백한 적 없어요? "
" 아, 아니? "
" 그럼 뭔가 진주를 추억할만한 건요? "
" 그,글쎄. 배드민턴? 아니면 피자...? "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는 김남우.
임여우는 진지하게 말했다.
" 선배, 뭐든지 좋으니까 진주랑 관련된 곳은 모두 가봐요! 이 교내 신문에 적힌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건, 진주의 도움뿐인 것 같으니까! "
" ... "
" 무슨 수를 써도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거, 선배도 알죠? 지금 선배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주밖에 없어요. 알겠어요? "
김남우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떨리는 얼굴로 스크랩북의 마지막 장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적혀있는 부분을.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
.
.
인기척이 사라진 늦은 밤의 고등학교.
' 끼이이익- '
김남우가 체육 창고의 문을 열었다.
긴장된 얼굴로 들어선 김남우는, 철봉 기둥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무릎을 꿇었다.
장진주의 스크랩북을 내려놓고서, 두 손을 모아 비는 김남우-
" 미안해 진주야! 제발 용서해줘! 정말로 널 죽일 생각은 없었어! 단지, 단지 네가 너무 무서운 말을 하니까! "
이곳이 바로, 장진주가 목을 매단 채 발견되었던 곳이었다. 김남우가 장진주를 강O하려다 실패하여 살해한 현장, 바로 그곳 말이다.
" 신고를 한다느니 뭐니, 그런 무서운 말을 하니까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어! 어? 제발 용서해줘 진주야! "
울며불며 빌던 김남우는, 바닥에 펼쳐진 스크랩북을 살폈다. 자신의 죽음이 예고된 신문이 변하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변함없는 내용.
" 아 제발! 진주야 제발! 용서해줘 제발! 이렇게 빌게! 제발 좀! 진주야! "
몇 번이고 빌면서 내용이 변하길 바라는 김남우.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의 기사는 전혀 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 정말로 선배가 죽였구나. "
" ?! "
창고에 숨어있던 임여우가 그늘 틈에서 나타났다.
" 용서?! 진주가 네놈을 용서할 것 같아?! "
분노로 가득한 공치열도 나섰다.
" 개쓰레기... "
홍혜화마저 나서고, 몹시 당황한 김남우가 그들을 향해 연신 고개를 돌렸다.
" 너, 너, 너희들..너희들...! "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온 임여우가, 바닥에 놓인 스크랩북을 들었다.
" 선배가 아무리 용서를 빈다 해도, 진주가 이 뉴스를 바꿔줄 것 같아요? "
" 아,아니, 아니 난... 아니...! "
사고가 정지된 듯, 변명마저도 제대로 내뱉지 못하는 김남우.
임여우는 스크랩북에 적힌 기사를 중얼거렸다.
" 이번에 또다시 죽음을 맞이한 학생이 나왔다. 3학년 김남우... "
" ?! "
두 눈을 부릅뜨는 김남우!
" 네, 네가 그 신문을 어떻게...? "
" 선배. 우리도 다 보여요. "
임여우는 페이지를 뒤로 넘겨, 첫째 주 교내 신문 페이지를 가리켰다.
" 선배는 이거 안 보여요? "
" 아, 안 보여. 그, 그건 너만- "
" 이거 백지잖아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백지예요 백지. 안 보여요? "
" ?! "
사정없이 흔들리는 김남우의 눈!
황급히 홍혜화와 공치열을 살피지만, 그들의 표정도 임여우와 같이 차가웠다.
" 서,설마 "
" 당연히 선배 것 빼고 다 백지죠. 세상에 자기 눈에만 보이는 미래 신문 같은 게 어딨어요? "
충격에 멍해지는 김남우의 얼굴.
임여우는 다시 스크랩북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 선배, 우리가 그래도 이 마지막 신문은 어렵게 만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이 기사는 이루어져도 되지 않을까요? "
새파랗게 질린 김남우는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 이 스토리는 조금 천천히, 많은 분량으로 쓰여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네요. 중반부 이후의 진행이 너무 급하게 나가는 듯 해서... 어떤가요? 궁금하네요.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잘 읽었습니다. ^^
재미있었어요.
그동안 눈팅만 하다 가입하고 처음으로 댓글 남겨보네요!!예전부터 글 정말 잘 보고 있었습니다!주변에 신문부에 몸담고 있던 지인이 몇명 있어서 들은 것도 여럿 있어서 왠지 몰입도도 높았고요!(물론 복날님 글은 언제나 몰입도가 높았지만...)저도 시간나면 짧게 글 쓰고 그러는데 복날님 글 처럼 몰입도 높은 글이 언제나 부럽습니다. 언제나 응원할게요!
스토리가 점점 더 탄탄해 지고 있네요. 심리적 묘사나 분위기 같은게 더 자세하게 나오면 더 무서울거 같아요
우와 김남우가 무릎꿇는데선 역시나..했는데 뒤에 더 큰 반전이....!!!
우와.... 소름...
오...재밌네요
아이들이 똑똑하군요 유도장치를 만들다니~ 탐정인가 ㅎ
아 복날님, 이상한 부분이 있어요
" 선배가 아무리 용서를 빈다 해도, 혜화가 이 뉴스를 바꿔줄 것 같아요? "
" 아,아니, 아니 난... 아니...! "
여기서 혜화가 바꾸는게 아니라 진주가 바꾸는 것? 뭐 사실은 다 거짓이지만....ㅎ
소설이어서..
신문에 실린 그대로 현실이 되는게 신기했어요.
근데 교장선생님 화분 건은 조금.. 음.. 예언과 현실이 너무 딱 맞아 떨어진게 살짝 아쉬운 부분?? ^^
어쩄든 신문의 미래기사는 초자연 현상이 아니라, 신문부원들의 계획이었던 만큼
진짜 그런 코맨트로 학교 방송이 나올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치만 뭐 소설이니까 ^^
아 ㅜㅜ 재밌었어요ㅜㅠㅜㅠㅜㅠ ㅠ 정신없이 읽었어요 ㅜㅠㅠㅜ 추천 천개드리고시퍼여 ㅜㅠㅜㅜㅠㅠㅜ
영화같아요!!!!!
본 중에 가장 신선한거 같아요~^^
와 당연히 판타지요소가 가미된 소설인줄 근데 애들 머리 진짜좋당...이런생각을 한 작가님도요!! 반전이 있다면 남우가 죽지않은것?ㅋㄱㄱㄱㄱㅋㄱ곧 죽을것 같긴 하지만요
이번 글은 단편 웹툰을 한 편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ㅋㅋ 잘 봤습니다!
와 이건 단편영화가 되도 참 좋겟네요! 잘보고 갑니다ㅎㅎ 아 그리고 방송건은 뭐 언론 동아리끼리 친한 사이 였어서. 가끔 방송 대본 짜는걸 도와줬어서 똑같이 방송할수 있었다... 뭐 이렇게 생각했어요ㅎㅎ
우와 너무너무 재밌어요 ㅋ!!굿굿굿 완전 몰입해서 봤어요
따흐흑 너무 무섭게 읽었어요ㅋㅋㅋ하필 읽는데 고양이가 아무것도 없는데(알고 보니 벌레가 있었지만) 자꾸 제 주변에서 두리번거려서ㅠㅠㅋㅋㅋㅋ
김남우는 개새뀌지만 치열 여우 혜화가 직접 죽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착한 아이들이 손에 피를 묻혀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서ㅠ다른 방법으로 경찰에 고발할 수는 없을까 잠시 고민했어요ㅎㅎ
대박이네요!!!!!!! 아 너무 재밌다ㅠㅠ
두번읽게 만드는 결말!!!!
영화나 장편소설로 나오면 너무 좋겠어요ㅜㅜㅜ표나 책 백번 살텐데ㅜㅜ
완전 집중해서 읽었어요
재밌었습니다.
와 진짜 웹툰 한 편 본 거 같아요. 너무 재밌어요 ㅠㅠㅠㅠㅠ
복날님 초기작부터 발상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는데, 회가 거듭하면서 흐름과 이야기성도 탄탄해지는 것 같아요. 흡입력도 더 좋아졌구요!
최고잼
우와! 굳입니다
몰입도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