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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세종대왕이 임기중 가장 화났던 순간

 

댓글
  • 오헤이보스 2017/09/06 09:50

    아들이 살인자 인데, 그때는 화 안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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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완 2017/09/06 09:50

    하아.. 진짜 킹갓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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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모바일 2017/09/06 09:50

    진짜 대단한 성품이긴 했네요
    다만,, 지난번 역사저널 그날에서도 나왔듯이
    후계문제만 잘 정비하고 가셨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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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건좀... 2017/09/06 09:50

    갓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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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짱슈 2017/09/06 09:51

    참된 군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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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타이글스 2017/09/06 09:51

    범죄나 각종 사건사고 나면 다들 정창손같이 얘기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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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지애  2017/09/06 09:52

    [리플수정]세종 당신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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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시딘 2017/09/06 09:53

    글쎄요...사람 안 바뀌는거 다들 보셨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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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인의왕 2017/09/06 09:53

    근데... 이거 출처가 되는 사료 알수 있을까요?
    어디에 나오는 내용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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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싸조쿠나 2017/09/06 09:54

    대왕 붙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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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untStars 2017/09/06 09:54

    후시딘// 그건 사람 성장할만큼 성장한 이후의 문제죠. 어렸을때부터 교육 제대로받으면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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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헤이보스 2017/09/06 09:54

    한국모바일// 후계야 제대로 정했죠 문종만한 천재가 또 어디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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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루왕이대호 2017/09/06 09:55

    후시딘// 글쎄요라니 글을 안본건가 아님 한글을 모르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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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모바일 2017/09/06 09:55

    수양대군 관련요
    수양대군을 정치에서 배제시키지 않고, 오히려 정치 적극 개입을 두둔하는 발언은 하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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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드볼 2017/09/06 09:56

    유교의 기본 교리가
    누구나 공부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인데
    정신 나간 소리를 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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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헤이보스 2017/09/06 09:57

    한국모바일// 수양대군이 워낙 처신을 잘했으니까요. 문종앞에선 끽소리도 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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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프옥수수 2017/09/06 09:58

    http://sillok.history.go.kr/id/kda_12602020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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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도르핀 2017/09/06 10:04

    사실 문종이 그닥 요절한 것도 아니에요. 단종이 어려 그런 이미지가 붙은 거죠. 세종 말년의 업적은 거의 문종 거고요. 세종의 단점은 아들들이 지나치게 똑똑했고 아들들을 정치에 편입 시켰던 거죠. 수양대군을 처음부터 내쳤어야함. 세종이 경계했다는 일화가 많던데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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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프옥수수 2017/09/06 10:10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801027_001

    (wNjYnM)

  • 거리점점 2017/09/06 10:15

    한국모바일// 문종이 그렇게 일찍 죽을 줄 몰라서 그랬던거죠. 세종의 아버지대와 자신의 대에서 형제간의 문제가 있었기에 세종은 형제간에 우애를 강조하며 문종에게 동생들을 정사에 참여시키기를 원했던것인데... 세종이 생각하기에 문종이 너무도 출중한 인물(세종의 자식들은 모두 출중했다고 봐야죠.)이라 아무리 수양이라 해도 뛰어난 형에게는 언제나 한수 접고 들어갔기에 더더욱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런겁니다. 그리고 문종이 세종 사후에 너무도 일찍 죽었지만... 문종이 원래부터 병약했던게 아니라 바로 어머니(소현왕후)와 아버지(세종)가 연달아 사망하면서 효성이 너무도 깊어 결국 건강까지 해치게 되어 일찍 사망한겁니다. 거기에 더 불행한것은 최소한 단종의 어머니(현덕왕후)가 단종을 나은 산후통으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단종의 수렴청정을 현덕왕후가 했을것이고 당연히 수양대군이 반정을 꿈꿀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수양을 제어하고 단종을 위해 목숨을 걸만한 종실의 어른이 그 누구도 없어 단종을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이다보니 그렇게 된거죠.
    아무튼...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그냥 필연이 되버린 거지요. 덕이 있고 금슬이 좋던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은 여파로 사망하고, 이로인해 문종에게 마음의 상처가 생긴 상황에서 소현왕후와 세종의 연달아 사망으로 문종이 돌이킬 수 없는 병을 얻어 사망한거고, 단종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었어야할 할머니와 어머니도 없으니 수양이 그런 짓거리를 할 수 있었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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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estro 2017/09/06 17:02

    천하의 명군이시네요. 세종대왕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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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untaction 2017/09/06 17:12

    이일화를 사극에서도 보여줬죠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창손이 저말하니
    세종역 한석규가 네놈이 그러고도 유자냐 하면서
    백성을 교화시키는게 유교에서 군주에게 요구하는
    최고의 덕목이요 의무인데 천품어쩌고 저쩌고 하느냐 함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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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대로공갈포 2017/09/06 17:12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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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은골족 2017/09/06 17:21

    요절한 건 맞습니다. 조선왕 평균 사망나이가 46,7세인데 38세에 사망하였고, 원래 건강, 건장하다고 기록에 줄곧 나오니 그렇게 갑작스렇게 승하할거란 예측은 아무도 못했겠죠. 평균연령대까지만 생존했어도 단종이 쿠데타를 당하진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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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untaction 2017/09/06 17:23

    세종이 후계문제를 잘못한게 아닙니다
    그냥 상황이 넘 수양에게 유리해진거예요
    아버지 세종이 아니라 형 문종이 살아있을시
    수양이 어디서 제패거리 모을생각을 합니까
    형한테 맞아죽을려고요
    문종이 죽을시 단종은 어리고 단종주위에
    보호해줄 아무런 사람이 없었던게 넘큰겁니다
    비슷한 상황이 조선왕조에 없었던게 아닙니다
    자을산군이었다 13살로 왕위에 오른 성종이 그예입니다
    성종시절 왕가에 수양만큼 명망있고 주변의 세를
    모을 사람이 없었던게 아니예요 귀성군 이준이있었죠
    조선왕실을 뿌리부터 흔든 이시애의 대반란을 평정하고
    최연소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이고 세종의 직계손자로서
    구도는 사실 단종-수양대군하고 딱이었죠
    차이라면 바로 이거 단종은 그를 지켜줄 왕실의 아무도 없다와
    성종은 당시 대비 왕대비등 든든한 후원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후원자들이 미래의 적이 될수있는 명망있던
    귀성군을 오히려 앞장서 죄를 뒤집어 씌워 유배보내고
    사실상 추방시켰죠
    이차이가 어마어마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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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은골족 2017/09/06 17:26

    문종이 아내 복이 없었던게 결국 이런 화를 불러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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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나 2017/09/06 17:43

    후계를 잘못하다니... 문종이 왕의 자질이 없었던 왕도 아니고...
    수양이 세종은 당연하고 문종이 살아있을 때만해도 야심을 드러내거나 그랬던 기미가 1도 없었구요.
    당시에는 아무 잘못도 없는 수양을 세종이나 문종이 숙청하는 것도 말이 안되는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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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obiest 2017/09/06 19:15

    수양대군은 세종 살아있을적에 찍소리도 못했고 문종때도 지잡이었다가 단종 이후에나 설친겁니다. 그냥 까기 위해서 전후사정도 모르면서 아무거나 주워섬기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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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AA 2017/09/06 19:41

    고기못먹게했을때 나올줄알았는데..
    예지력하락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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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말코비치 2017/09/06 19:50

    조선왕중 최고는 세종이고, 그 다음이 문종입니다.
    세종 치세의 많은 업적중 많은 수가 문종의 작품이죠.
    문종도 아버지 못지 않은 천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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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적LG! 2017/09/06 20:16

    문종 어마어마한 왕이었어요.. 다만 다음 후계 (단종) 이 너무 늦게 태어났고..
    문종이 그리 일찍 단명 할줄은 몰랐던 것이지
    실제로 세종 후기의 업적중 많은 부분은 왕자들이 담당 했고 문종도 많은 부분에 참여 했습니다
    호부밑에 견자 없다 라는 말처럼, 진짜 세종의 아들 다운 그런 왕이었어요.
    수양이 문종 살아 있을때는 근처도 못갔을 정도로 후계구도 탄탄 했습니다.
    수양 자체가 문종 재위 시절에는 형님 전하 하면서 엄청나게 따랐고..
    만약 문종이 10년만 더 살았다면 수양은 아무것도 못하고 단종이 완벽하게 후계로 컸을 겁니다.
    그 10년이 너무 아쉬운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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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gTeddy 2017/09/06 20:27

    단종도 사실은 굉장히 영특했다고 하던데 문종이 10년만 더 살았어도 우리나라 이름이 아직 조선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wNjYnM)

  • young026 2017/09/06 20:37

    문종은 세종이 아직 충녕대군이던 17살 때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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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근매니아 2017/09/06 21:52

    임금이 말하기를,
    "전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또 정창손(鄭昌孫)은 말하기를,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如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용속(庸俗)한 선비이다."
    하였다. 먼젓번에 임금이 정창손에게 하교하기를,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
    하였는데, 창손이 이 말로 계달*한 때문에 이제 이러한 하교가 있은 것이었다.
    *계달하다 : 계품하다. (조선 시대에, 신하가 글로 임금에게 아뢰다)
    (출처 : 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2월 20일 경자 1번째기사)
    그리고 정창손은 이후 계유정난과 세조 반정에 협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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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lbgoko 2017/09/06 21:55

    광고쟁이 이런 세탁글에도 친절한 불페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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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lixS 2017/09/06 21:57

    영화들이나 드라마에서 문종이 유약하게 나오는 탓이 큰데..실제로는 문종 살아있을 땐 수양대군은 티도 안 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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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ail 2017/09/06 22:26

    세종은 한반도 원탑 먼치킨입니다
    그리고 실제 문종은 유약하긴 커녕 완전 호걸이었습니다 수양은 문종이 살아있을 때 찍소리도 못하고 아부하기 바빴다고 기록됩니다
    세종대왕이 문종을 믿을만했고 수양을 신경도 안쓸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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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딩요-레로 2017/09/06 22:41

    이에 빡친 정창손은 수양을 돕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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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번타자 2017/09/06 22:43

    유인나// 역사 저널 그날에서도 누구도 문종의 능력을 낮게 보지 않았습니다.
    세종 말년은 사실상 문종의 치세이기도 하고...
    후계문제를 거론한 건 아들 문종의 부인을 잘못 선택했다는 내용입니다. 문종이 능력이 없다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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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번타자 2017/09/06 22:45

    그리고 또 한가지 거론한 것이 문종 외의 아들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줬다는 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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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지현 2017/09/06 23:00

    세종이 정창손을 잘 봤네요. 계유정난 이후 정창손의 처신만 봐도 양지만 쫒는 전형적인 권력지상주의자였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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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arCAT 2017/09/06 23:16

    좋은 글과 댓글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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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산봉 2017/09/07 00:48

    세종이 세조의 찬탈위험을 모른건 아닙니다.
    세종 후반은 세자신분이었던 문종의 치세라 봐도 무방합니다. 세종이 병으로 드러누웠으니까요. 격무에 시달린 문종도 세자시절에 이미 드러눕기 시작합니다. 세종도 문종이 장수못할꺼라 걱정했고, 그럴경우 왕세손 단종이 어린 나이에 등극할 꺼라 짐작도 했죠. 당연히 기세좋은 단종의 삼촌들, 특히 야심과 배포를 갖추고 대외활동이 활발한 둘째 세조가 걱정이 되었죠.
    세조, 즉 수양대군이 처음엔 수양이 아니었죠. 처음엔 뭐시기인진 잊었는데 나중에 세종이 세조불러서 수양이란 대군칭호?로 고쳐 내렸죠. 상나라의 제후국 왕자였던 백이, 숙제는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키자 망국에 충절을 지키며 수양산에 은거해서 생을 마치죠. 왕자 너도 딴마음 품지말고 그렇게 충절을 지키라는 뜻으로 내린 이름입니다.
    저는 만약 세종이 아니라 그 아버지 태종이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왕위를 위해 병중이었던 자신의 아버지이자 창업군주인 태조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켜 수족인 정도전 일파와 자신의 어린 이복동생 둘을 죽였으며(1차왕자의난), 왕권안정을 위해 자신의 장인과 처남들, 사돈(세종의 장인)을 역모로 죽이고 그 가문을 풍비박살 내버린 태종이라면, 찬탈의 위험이 있는 자신의 아들을 어떻게 처리했을지...
    한편, 세조 자신도 같은 걱정을 하게 되는데요.
    큰아들인 세자가 일찍 죽게 됩니다. 세자의 아들(세조에겐 손자) 둘(월산군,자산군)이 있었으나 어렸죠. 어린 손자가 등극하면 자신이 어린 단종을 찬탈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되니, 왕위계승 예법을 어기고 둘째아들(예종)을 세자로 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종도 몸이 허약했습니다. 예종의 아들(제안대군)이 어린 나이에 즉위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래서 궁리한 것이 큰아들 소생의 손자들에게 권력이 없는 가문과 혼사를 맺어주는 거였습니다. 어차피 모든 손자들이 다 어렸기에 처가의 힘이 결정적일테니까요. 그렇게 큰손자 월산군을 결혼시킵니다. 그런데 큰며느리 입장에선 서운합니다. 세자빈이었다 남편이 요절한 것도 짜증나는데, 왕이 되아야 할 큰아들(월산군)이 시아버지 반대로 계승순위에서 뒤집혀버리니까요. 그래서 자신의 둘째아들 자산군은 시아버지가 병중일때 당시 권력가 한명회 작은딸이랑 결혼시켜 일말의 희망을 이어갑니다.(족보가 꼬이는게 한명회의 큰딸은 세자시절의 예종과 혼인했죠. 자매가 삼촌과 조카에게 시집간 겁니다. 친정언니가 시댁에서는 시숙모가 되는... 그러나 언니가 동생 결혼 전에 먼저 죽어 실제로 시댁서 마주칠 일은 없었죠) 우려대로 예종은 2년을 못채우고 승하합니다. 당연히 후계문제가 대두됩니다. 그리고 실세 한명회를 장인으로 둔 자산군이 명분도 없이 등극합니다. 장손(월산군)도 아니고, 원자(제안대군)도 아닌데 말이죠. 월산군과 제안대군은 몸이 약하다, 어리석다, 어리다, 세조가 자산군을 이뻐하고 후계로 지목했다는 둥 핑계는 둘렀지만, 그래봐야 모두 미성년자에 나이차도 몇살 안납니다. 장인이 실권자니 대비(세조의 왕비)와 한명회가 정치적 야합을 한거죠. 그래서 즉위도 관례를 꺠고 예종이 승하한 당일에 벼락치기로 합니다. 그럼 연산군이 한명회 외손일까요? 아닙니다. 남편을 왕으로 만든 한명회 둘째딸은 성종 즉위 이듬해 죽습니다. 왕가에 시집보낸 한명회의 두 딸은 둘다 요절하죠.
    수양을 제어할 만한 종실 어른이란게 있긴 힘들죠. 종실어른이래봐야 별 힘도 없고, 차라리 외가댁이나 처가가 더 도움이 되는데, 단종은 어려서 처가도 없고, 외가는 힘없는 양반가문이었죠. 원래 단종의 친모는 세자빈도 아닌 그냥 후궁이었는데 세자빈이 연거푸 2명이나 쫓겨나면서(각 투기, 잦은 음주와 술주정 및 궁녀와 강제동성애) 세종이 일종의 대국민사과문 발표하고 당시 임신상태였던 세자문종의 후궁이 세번째 세자빈으로 내부승격한거죠. 태종에게 세자자리 박탈당한 세종의 형은 그 때까지 살아있었죠. 당시 종실 최고어른이었지만, 세조편에 서서 쿠데타 옹호,지지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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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킹날두 2017/09/07 01:09

    장산봉// 태종이라도 자기 자식은 죽이지 못했을 거 같네요. 2차 왕자의 난 때 방간이 자신을 제거하려고 난을 일으켰는데도 죽이지 않고 귀양만 보냈죠. 죽인 건 오직 이복 동생들뿐....외척들이나 이복동생들에겐 얄짤없지만 자기 핏줄들은 많이 신경썼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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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쑥쑥이 2017/09/07 07:57

    왕중의 왕이네요.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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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멘토스 2017/09/07 09:12

    실록에 없는 내용인거 같은데요? 야사도 아닌거 같고... 이런건 출처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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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yJade 2017/09/07 09:30

    멘토스/ 실록에 버젓이 나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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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멘토스 2017/09/07 09:31

    MyJade// 실록 어디 나오죠? 정확한 근거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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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야로비72 2017/09/07 09:56

    http://sillok.history.go.kr/id/kda_12602020_001
    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2월 20일 경자 1번째기사
    임금이 말하기를, "정창손(鄭昌孫)은 말하기를,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如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용속(庸俗)한 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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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야로비72 2017/09/07 09:58

    다만 군림, 권세 운운은 좀 자의적인 추가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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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멘토스 2017/09/07 11:12

    하야로비 // 아주 없는 얘기는 아니지만.. 살이 보태졌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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