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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에 살면 부지런해질 수 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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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가 작아서 국을 하면 곧바로 락앤락에 담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지 않으면 둘 데가 없거든요.
일요일 밤 마트에서 세일할 때 사 온 찌개용 생돼지고기와 갈비찜용 돼지고기, 우럭을 세일해서 사 와서 후다닥 만들었습니다.
어제 비 쏟아지는 와중에도 한 정거장을 내리 걸어서 장 봐 온 것을 들고 집에 와,
곧장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갈비찜 양념을 해서 재워두고, 쑥갓이 없어 우럭매운탕은 못 만들었었어요.
오늘 퇴근 후에 콩나물, 쑥갓, 버섯, 무 등을 사 와서 우럭매운탕을 만들어서 담아두었네요.
 
요리만 해도 벌써 하루가 다 갑니다...
일하면서 살림하는 거,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애까지 낳으면 얼마나 바쁠까요?
 
저 중에 역시, 갈비찜이 제일 맛있고 손이 저절로 가지만,
채소가 많이 들어 있는 우럭매운탕을 먼저 해치워야 합니다.
1인 가구는 먹는 데도 순서가 있지요. 빨리 상할 만한 것을 빨리 먹어줘야 합니다. 채소는 얼리면 물이 빠져서 맛도 없어져서 얼릴 수도 없고요.
(갈비찜은 익혀놓고 얼려도 됩니다. 생고기를 얼리면 맛없어지지만, 조리된 고기를 얼리는 건 육즙이 고기 안에 갇혀 있어 얼려도 되더라고요.)
 
이렇게 담아놓으니 프로페셔널해 보여서 찍어 올려봅니다.
 
천도복숭아는 10개 3,000원이길래 담아왔습니다.
사실 퇴근하고 나서 배 고파서 아무거나 시켜 먹고 싶은데, 배고픈 거 참고 불 앞에서 몇 시간 요리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재료만 넣으면 장땡인 게 아니라, 쑥갓 다듬고, 채소 다듬어서 씻고, 거기서 나온 부산물들 처리하고, 중간중간 쓰레기 버리고 중간중간 설거지 새로 해 가면서, 요리도 보고, 그렇게 두 가지 요리를 하니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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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하고 온 상태에서 이것까지 하려니 힘들지만
천도복숭아 하나를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견뎠습니다.
내 모습이 무척 억척스러워 보이더군요.
 
 
 
 
어제는 샤워하고 나와 속옷만 걸친 채로 머리도 안 말리고 요리를 했고요.
빨리 해놓아야 된다는 생각과, 머리는 아무렇게나 해도 어차피 마르면 그만이라는 생각.
 
오히려 전 혼자 있을 때 더 잘하나 봅니다.
남편이 있거나 남자친구와 교제중인 상태라면, 혼자 마트에 갔더라도, 지하철 한 정거장을 장 봐온 것들을 들고 우산을 쓰고 걸어왔을까요?
아마 지금보다 더 힘들어하면서 지하철을 탔을 겁니다.
 
혼자 산다는 건, 기댈 사람이 없다는 걸 인지하고 모든 걸 덤덤히 견뎌내며 억척스럽게 살면서도 한편으론 어느 정도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것.
기댈 사람이 없으니 힘들어해봤자 소용 없다는 걸 나도 모르게 인식했나 보지요.
어떻게보면 지금처럼 지내는 게, 내 인생에는 더 도움이 됩니다.
 
매번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하소연하고, 물론 그게 정신적으로는 편하지만,
육체적으로는 더욱 게을러지고, 나중에 가선 정신마저도 유약해지기 때문이지요.
 
유약하지만 행복한 커플일 때와,
모든 일을 잘 처리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한 체념 상태의 솔로
 
어느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될까요?
사실, 이런 걸 보면, 역시 모든 걸 다 이루어놓은 후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게 맞다- 고 여겨지지만,
어떤 사람들은, 함께 헤쳐나가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저 혼자서 터널을 빠져 나온 후에, 아직 터널 속을 걷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 상대방이 굉장히 미안해 할 거라고요. 저만 터널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래서 함께 터널을 걸어나갈 사람을 만나라 하는데,
글쎄요. 제가 이미 나이가 좀 먹은 지라, 제가 새로이 터널을 빠져나간 뒤에, 그때 누군가를 만나면 그때엔 아무리 여섯~여덟 살 어린 연하라도
이미 대리쯤은 돼 있을 듯 합니다.
 
홍홍홍...

댓글
  • 메에엑 2017/08/22 01:29

    마음에 너무 와닿는 글이예요. 제 현재의 상태를 빗대어 보게 되네요
    저는 한없이 유약하고 기대는 삶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즐겁지는 않아요. 이 상태가 어디까지 지속이 될지
    이 시간을 보내는 나는 이걸 언제까지 견뎌낼 지 어떻게 극복할지. 생각이 많고 복잡해요.
    먹는걸 저만큼 신경쓸 수 있으면 좋을텐데 위에 말씀하신것처럼 그 과정이 어느순간 지쳐버려서 놓아버린 생활을 하고 있네요
    다시 돌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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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소녀 2017/08/22 03:12

    메모. 결혼하면 목각 원앙 인형 말고 앵무새 한 쌍을 사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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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드큐핏 2017/08/22 03:39

    저도 혼자살고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는데
    님 보니 조족지혈이네요..^^
    대단하십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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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mari 2017/08/22 06:44

    크흐...  멋있으면 다 언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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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사선생님 2017/08/22 07:01

    작은 집에 산다고 생각하는 것만 같고 그 외에는 다른 것뿐이네요. 요리게에서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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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집순이 2017/08/22 07:05

    와 혼자 산다는 것.. ...
    많은 생각이 드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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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집에가 2017/08/22 08:13

    공감가는 글이네요.
    저도 혼자에 익숙하다보니 기대하지 않는 걸 배웠고 만족하며 살아가고있긴 합니다.
    근데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과 연애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연애하시면 좋은 연인/배우자 가 되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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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술안마셔 2017/08/22 08:50

    혼자사는여자사람1인이용
    공감합니다. 한번 더 깨우치고가요~
    멋있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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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sunny 2017/08/22 08:54

    공감되네요ㅠㅠ 글이 너무 좋아서 추천+스크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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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nyboy 2017/08/22 10:21

    세상에 공짜는 없는것 같아요. 아무리 사랑해도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만큼 나 역시 그 만큼 상대방이 나에게 의지 할수있어야 좋은 커플?이 되는것 같아요. 한쪽만 의지하다보면 한쪽은 힘들어지고요,. 서로 도와주면서 의지하는것이 결혼이기도 하지만, 결혼 생활 오래하다보니, 존중과 사랑이 제일 중요한것 같아요. 내가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도 나를 존중해주는 , ,,,, 서로 존중하고 받기 위해서는 서로가  노력해야하고요.
    내가 뭔 말을 하는지 ,,,, 님은 큰집을 구하시면 그 나름데로 부지런하실것 같아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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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트로입덕 2017/08/22 11:53

    혼자 안살아본 사람들은 혼자사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나요?
    암튼 와이프랑 저는 그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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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가고파순대 2017/08/22 12:04

    요즘 내가 많이 느끼는 것들...
    이상하게 반갑네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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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스코 2017/08/22 12:08

    대단하다고 느끼지만 별개로 공감이 안돼요.
    혼자살면서 요리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혼자서 매운탕에 갈비찜에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한꺼번에 작은데서 산다고 퇴근후 요리하시는 분이 흔할거같진 않은데...  보통의 직장인은 혼자살면 아침 챙겨먹긴 힘들고 사먹거나 대체식먹고 점심은 직장에서 저녁은 안먹거나 진짜 간단하게 먹게되지 않나요?
    그냥 혼자살고 좁은집에서 살면 이렇게돼라는 말에 혼자살고 좁은집에서 살아도 보통 그렇게 되는거같진 않은데?싶어서 쓴 댓이지 뭐라하는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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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배웠어요 2017/08/22 12:15

    어느날 저녁...
    퇴근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룰루랄라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드라마를 보며 나물을 다듬는 노총각이 있더군요.
    순간 자괴감이 팍!!! 들면서 들고 있던 칼을 내동댕이 쳤는데,
    담배 하나 뻑뻑 피우고 나서 다시 칼을 들었습니다.
    비싼 시금치가 아까워서...
    그날 이후로 어릴적 보던 엄마의 모습을 닮아 가는 걸
    그냥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들인데... 왜 엄마를 닮아 가는건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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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흔한관종 2017/08/22 12:17

    나:키워
    작성자:네?
    나:나 키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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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괜찮괜찮아 2017/08/22 12:31

    혼자 오롯이 설 수 있는 힘이 있고
    이렇게 지낼 마음의 힘이 있어야
    결혼해도 배우자에게 너무 의지하지 않고 매력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결혼을 하든 안하든 좋은 자세이십니다.
    결혼14년 지나며 처절히 느낀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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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mgoon 2017/08/22 12:32

    대단하시다...
    부지런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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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요 2017/08/22 13:07

    멋져요! 혹시 관심있으시다면 나무위키에 생활비 절약 노하우가 있으니 한번 읽어보세요 유익한 정보가 꽤 많아요.
    링크는 이거
    -> https://namu.wiki/w/%EC%83%9D%ED%99%9C%EB%B9%84%20%EC%A0%88%EC%95%BD%20%EB%85%B8%ED%95%98%EC%9A%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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