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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이 엄마에 대해 쓴 글

월간 샘터 2003년 2월호에 실린 글. 


엄마 - 김어준 (인터넷신문 딴지일보 총수) 

고등학생이 되서야 알았다. 다른 집에선 계란 프라이를 그렇게 해서 먹는다는 것을. 

어느날 친구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반찬으로 계란 프라이가 나왔다. 밥상머리에 앉은 사람 수만큼 계란도 딱 세 개만 프라이되어 나온 것이다. 순간 '장난하나?' 생각했다. 속으로 어이없어 하며 옆 친구에게 따지려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놀리는 친구의 옆모습을 보고 깨닫고 말았다. 남들은 그렇게 먹는다는 것을. 

그때까지도 난 다른 집들도 계란 프라이를 했다 하면, 4인가족 기준으로 한 판씩은 해서 먹는 줄 알았다. 우리 엄마는 그렇게 손이 컸다. 과자는 봉지가 아니라 박스째로 사왔고, 콜라는 병콜라가 아니라 PET병 박스였으며, 삼계탕을 했다 하면 노란 찜통 - 그렇다, 냄비가 아니라 찜통이다. - 에 한번에 닭을 열댓 마리는 삶아 식구들이 먹고, 친구들까지 불러 먹이고, 저녁에 동네 순찰도는 방범들까지 불러 먹이곤 했다. 

엄마는 또 힘이 장사였다. 하룻밤 자고 나면 온 집안의 가구들이 완전 재배치 되어 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구 배치가 지겹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그 즉시 결정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구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잦으니 작은 책상이나 액자 따위를 옮겼나보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사할 때나 옮기는 장롱이나 침대 같은 가구가 이방에서 저방으로 끌려 다녔으니까. 오줌이 마려워 부스스 일어났다가, 목에 수건을 두르고 목장갑을 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가구를 혼자 옮기고 있는 '잠옷바람의 아줌마가 연출하는 어스름한 새벽녘 퍼포먼스'의 기괴함은 목격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새벽 세 시 느닷없이 깨워진 후, 팬티만 입은 채 장롱 한 면을 보듬어 안고 한 달 전 떠나왔던 바로 그 자리로 장롱을 네번째 원상복귀 시킬 때 겪는 반수면 상태에서의 황당함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재수를 하고도 대학에 떨어진 후 난생 처음 화장실에 앉아 문을 걸어 잠그고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화장실 문짝을 아예 뜯어내고 들어온 것도 우리 엄마가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낼 파워풀한 액션이었다. 대학에 두 번씩이나 낙방하고 인생에 실패한 것처럼 좌절하여 화장실로 도피한 아들, 그 아들에게 할 말이 있자 엄마는 문짝을 부순 것이다. 문짝 부수는 아버지는 봤어도 엄마가 그랬다는 말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듣지 못했다. 

물리적 힘만이 아니었다. 한쪽 집안이 기운다며 결혼을 반대하는 친척어른들을 항해, 돈 때문에 사람 가슴에 못을 박으면 천벌 받는다며 가족회의를 박차고 일어나던 엄마, 그렇게 언제고 당차고 강철 같던 엄마가, 보육원에서 다섯 살짜리 소란이를 데려와 결혼까지 시킬 거라고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담당 의사는 깨어나도 식물인간이 될 거라 했지만 엄마는 그나마 반신마비에 언어장애자가 됐다. 

아들은 이제 삼십 중반을 넘어섰고 마주 앉아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할 만큼 철도 들었는데, 정작 엄마는 말을 못한다. 단 한 번도 성적표 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뭘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화장실 문짝 뜯고 들어와 다음 번에 잘 하면 된다는 위로 대신에, 그깟 대학이 뭔데 여기서 울고 있냐고, 내가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며 내 가슴을 후려치던 엄마, 사실은 바로 그런 엄마 덕분에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던 그 어떤 종류의 컴플렉스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오늘의 내가 있음을 문득 깨닫는 나이가 되었는데, 이제 엄마는 말을 못한다. 

우리 가족들 중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병원으로 찾아와, 엄마의 휠체어 앞에 엎드려 서럽게 울고 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사신거냐'고 물어보고 싶은게 너무나 많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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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수 힘내세요!!!
 


#우병우구속
#이명박구속


댓글
  • 죽떠리 2017/08/20 23:20

    총수의 "쫄지마 씨바"는 어머니께 받으신 거군요.
    총수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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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드코어인생 2017/08/20 23:23

    총수도 한 사람이고, 그를 그렇게 자라게 해준 가족이 있다는걸 새삼 깨닫게 되네요.
    비슷하다면 비슷한 상황이라 그런지 더 마음 아프고 그럼에도 본인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고맙고 그러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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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에대한감각 2017/08/20 23:24

    저런 어머님께서 저런 훌륭한 인물을 키워내셨던 거군요. 어머님의 건강을 간절히 바랍니다. 더불어 아버님도 쾌차하고 일어나시길... 김어준 총수도 건강 잘 챙기시고요. 사랑하는 가족 특히 부모님께서 편찮으시면 그 간병 기간엔 자기가 자기 정신이 아닌 게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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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톡쏘는인생 2017/08/20 23:28

    김총수 어머니,아버지 둘다 편찮으심.특히 아버지가
    더위독 하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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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말쉽게 2017/08/20 23:32

    아, 2003년 부터 지금까지..... 저는 저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잊고 있었네요.
    병수발 3년에 효부/효자 없다고 했는데..ㅠㅠㅠ  어머니, 자랑스런 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 할 수 있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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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e12 2017/08/20 23:43

    총수 부모님 총수곁에 오래 계셔 주세요..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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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만cat없어 2017/08/20 23:55

    총수가 어머님을 닮기도 하고
    어머님께 잘 배우고 컸나봅니다.
    부모님의 쾌유를 빕니다.
    김총수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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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곳에그분이 2017/08/21 00:03

    공감힌며 눈물이 납니다
    진주에서  사업하셨던 선친 뒷바라지와
    저희 5남매를 서울 유학시키며
    키워낸 제 어머니도 여장부셨습니다.
    10년전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반신을
    못쓰시고 말씀도 어눌하게 하십니다.
    그래도 계셔주셔서 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오십줄에 있는 넷째가 어머니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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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디하쟈 2017/08/21 00:03

    불꽃처럼.
    김총수처럼
    사셧을거예요.
    쫄지마.X발을 외치며
    사는아들에게
    역쒸~내새끼다.
    하실거예요.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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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갑山人 2017/08/21 00:14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찾아와 휠체어 앞에서 울고 간다.......
    아... 존경 받아 마땅한 삶을 사신 분임을 충분히 알겠습니다.
    어느 병원에 계신지... 생면부지인 저도 문병을 한 번 가서 얼굴을 뵙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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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리왕 2017/08/21 00:14

    진짜 존경스런 어머니네요.
    나라면 저렇게 할수있을까.
    생각해보면 더욱 대단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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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리꼬리한쪼꼬 2017/08/21 00:15

    자랑스러운 어머니에,
    자랑스러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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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빛깔 2017/08/21 00:19

    몇년 전 어떤 팟캐에서 도올선생이었나 어떤 분이 김총수한테, 이름에 어조사 어자를 넣다니 기가 막히다고 감탄하는 것을 듣고 김총수의 부모님이 궁금했었는데..
    역시 오늘날의 김총수 뒤엔 저런 어머니가 계셨네요.
    김총수 부모님 두분 모두 쾌유하시길 바랍니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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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란포스트잇 2017/08/21 00:45

    와ㅡ자식키우면서 이렇게 대찰수있다니,
    그 부모에 그자식이라는 말이 이래서 있군요..
    저도 통큰엄마 되고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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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카엘이여 2017/08/21 00:47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듯 사람심은데 사람이 자라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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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념탑재해라 2017/08/21 01:14

    아이고 저는 이게 건투를 빈다 책에 있는 내용인줄 알았는데 원글은 훨씬 이전에 기고된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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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뽀르뚜가 2017/08/21 01:18

    울컥하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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