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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연쇄살인마

조선 시대의 유명 연쇄 살인마라면 5명의 기녀와 부총리 유희서를 살해한
선조의 아들인 임해군(臨海君, 1574~1609)과
수십명의 상인과 부녀자를 죽인 해적 김수은
4명의 여인을 성고문해 죽인 권채(權採, 1399~1438)가 유명 합니다.
이중 임해군이나 김수은은 일종의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으나
권채는 당시 최고 문장가로 뽑힐 정도로 학문도 깊고 매사에 반듯한 사람 이었죠.
즉 정신은 멀쩡하나 감정이 저하된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다고 보입니다.
조선조 세종 9년 5월 22일,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해 장안에 떠들썩 했습니다.
여인이 죽은 채로 물에 내려왔는데 시체는 온몸에 상처자국이 있었고 성기에서 항문까지의 부위가 칼로 도려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얼굴 마저 도려내져 신원을 알수도 없었습니다..
이후 몇주를 간격으로 실종된 여인들의 시신이 발견 됐는데 온몸이 불로 지져 있다던지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분노한 세종은 범인을 잡으라고 명했고 수많은 의금부사와 어사들이
사건을 조사하고 거리를 순찰 했습니다..
그리고 '무원록(無寃錄-중국 원나라 왕여(王與)가 송나라의 형사사건 지침서들을 바탕으로 편찬한 법의학서로
세종 22년에 이를 바탕으로 을 편찬함, 시체를 검시 하는법등이 상당히 자세 하게 나옵니다)'
을 바탕으로 시신을 과학적으로 조사합니다
그리고 그나마 얼굴이 손상되지 않은 한 여인의 골격 등을 살펴
얼굴을 그려냈는데 이를 바탕으로 신원을 조회한 결과 덕금이라는 여인으로
당시 최고 문장가이자 집현적 학자인 권채의 몸종이란걸 알게 됩니다..
당시 사건을 맡은 의금부 신상은 권채가 세종의 글 스승이기도 했고 당시 문장가라 함부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자 아예 잠복을 했는데 잠복 한지 4일정도 되자 한 여인이 갑자기
대문을 열고 도망나오고 몇몇의 남자들이 그녀를 쫓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상이 수하들과 함께 여자를 구출 했는데 온몸이 상처 투성이에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앙상 했습니다.
그녀의 진술로 인해 끔찍한 사건의 전말이 밝혀 졌는데
권채가 수하들을 시켜 여자들을 납치해서 일주일간 잔인하게 성고문해 죽인 거였죠.
권채는 3년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편찬할 정도로 의학에도 상당히 지식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잡힌 여인들은 거의 일주일을 고통을 당하다 죽었는데 몸의 힘줄과 핏줄을 도려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여자의 입을 솜으로 막은 다음 불에 달군 쇠로 음부를 지지고
개의 변을 먹게 하는등 성고문 방법은 잔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권채는 의금부에 소환됬지만 자신은 잘못한게 없다고 주장 했습니다.
그는 단지 학문 연구를 했을 뿐이라고 일축 했죠.
게다가 수많은 집현적 학자들과 세종이 권채의 편을 들어
결국 무혐의로 풀려 나고 좌천 되지만 곧 복귀 합니다.
대신 애꿎은 권채의 처 정씨가 질투로 노비를 살해 했다는 누명을 받아 곤장 아흔대를 맞다가 죽었죠.
권채는 이후에도 ,를 편찬 하는등 왕성한 학자활동을 하다가 40살이 되자 갑자기 급사 했다고 합니다..

댓글
  • iceapple 2017/08/17 20:33

    하여간 옛날이나 지금이나 빽있고 돈있는놈은 처벌 별로 안받는구먼
    윤그랩도 그랬고 ...

    (nYrPVS)

  • 배부른철학자 2017/08/17 20:37

    어째 별로 믿음이 안 가는데 확실한 출처를 알 수 있나요? 실록이라든지...

    (nYrPVS)

  • 기승전결경 2017/08/17 20:42

    찾아보니 비첩을 학대하였다는 기록은 있으나, 부녀자를 납치하고 성고문했다는 내용부터는 모두 사실이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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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실마리아 2017/08/17 21:30

    어..... 사실과 거짓의 적절한 조합이란 것이 이런게 아닌가 싶네요.
    조선왕조실록에 때르면 권채가 연쇄살인을 한 기록은 없습니다. 단지 여종 덕금을 죽기직전까지 학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혹시 제가 몰라서 세종 9년 5월 22일 ~ 30일까지의 기록을 봤지만 '여인이 죽은 채로 물에 내려왔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권채가 여종 덕금은 학대한 것이 드러난 것은 세종 9년 8월 20일에
    형조 판서 노한(盧閈)이 계하기를,
    "신(臣)이 길에서 한 노복이 무슨 물건을 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사람의 형용과 비슷은 하나 가죽과 뼈가 서로 붙어 파리하기가 비할 데 없으므로 놀라서 물으니,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권채(權採)의 가비(家婢)인데, 권채가 그의 도망한 것을 미워하여 가두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본조(本曹)에서 이를 조사했으나 마치지 못하여 즉시 계달(啓達)하지 못했사오니, 그의 잔인(殘忍)이 심한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겠습니다."
    라고 실록에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조사 끝에 세종 9년 9월 3일에 결론이 나오는데,
    의금부에서 계하기를,
    "권채(權採)가 비첩(婢妾) 덕금(德金)을 고랑으로 채워서 집안에 가두었는데, 그 아내 정씨(鄭氏)가 덕금을 질투하여, 머리털을 자르고 똥을 먹이고 항문(肛門)을 침으로 찌르며 하루 걸러서 밥을 주는 등, 여러 달을 가두어 두고 학대하여 굶주리고 곤고(困苦)하여 거의 죽게 되었으니, 형률에 의거하면 권채는 장 80, 정씨(鄭氏)는 장 90에 해당합니다."
    하니, 권채는 직첩을 회수하고 외방에 부처(付處)시키고, 정씨는 속장에 처하게 하였다.
    라고 하여 덕금을 직접적으로 학대한 것은 권채의 아내이고, 권채는 덕금을 직접 감금한 죄 및 아내의 학대를 방종한 죄로 파직당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저 글은 학대사건을 연쇄살인사건으로 과장시킨 소설일 뿐입니다. 야사에 저런 기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진지하게 사실로 받아들일만한 내용은 아니지요. 적어도 세종대왕이 본문처럼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계속 중용할리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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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실마리아 2017/08/17 22:44

    생각난 김에 권채 여종학대사건에 대해 정리하여 올려봤습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28715&s_no=28715&page=1
    관심 있으신 분은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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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ㅎㅅㅎ11 2017/08/18 02:31

    살인 방법으로 보아하니 성종시절 창원군(세조의 서자라고
    함) 의 여종 살해사건과 비슷하네요. 두개골이 으깨지고 얼굴은 형태를 알아볼수 없으며 살이 발라져 뼈가 드러나있었다고 하는데 끝까지 지 아니라고 바락바락 우겨댔다고 ....  끔찍한 싸이코패스들은 과거에도 존재했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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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영초선 2017/08/18 02:48

    사이코패스 사도세자
    http://blog.naver.com/sohoja/50152687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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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빼꼼 2017/08/18 06:26

    임해군보다 사도세자가 살해한 궁인만 해도 백명이 넘으니 그수가 비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연산군도 그러했구요.
    이 부문의 오명은 위에 거명된 인물들보단 다른 사람들이 더 알려져 있죠.게다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네요..
    사실관계 확인된 내용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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