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화평 전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이 15일 "(80년 광주의)
계엄군은 착검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복
진 사진부 기자가 80년 5월 19일 촬영한 사진
에는 M16 자동소총에 대검을 꽂은 채 시민들을 쫓고 있는
공수부대원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붉은 색 원) 5.18
기념재단이 펴낸 에서 발췌. ⓒ2005 신복진
▲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계엄군이 착검하지 않았다
는 허화평씨 주장과 달리 신복진 사진부 기자
가 80년 5월 19일 당시 촬영한 사진에는 M16 자동소총에
대검을 꽂은 채 시민들을 구타하는 공수부대원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5.18기념재단이 펴낸 에서 발췌. ⓒ2005 신복진
오월에서 푸른 시월까지
[화려한 휴가의 기록]
5월 17일
밤 11시 40분, 문공장관 이규현은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계엄 확대가 발표되고 두 시간이 지난 후, 전남대와 조선대 캠퍼스에 특전사가 투입되었다.
- 강준만 (인물과 사상, 2003)
좌측 머리부분이 함몰된 광주항쟁 사망자
.
5월 18일
오전 10시, 휴교령이 내린 상태에서 전남대 정문 앞에 모여든 학생 100여명과 무장 공수대원이 대치하였다. 200-300명 정도로 수가 불어나자 학생들은 "계엄해제" "계엄군 물러가라" "휴교령 철회하라" 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곧 대치 중이던 공수부대 책임자가 "돌격 앞으로" 라는 명령을 내렸고, 공수대원들은 학생들에게 파고들면서 곤봉을 휘둘렀다. 곤봉은 쇠심이 박힌 살상용 곤봉으로, 이를 맞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 강준만 (인물과 사상, 2003)
좌측 가슴에 총상과 자상이 난 채 사망한 광주항쟁 사망자
"공수부대 병사들은 마음껏 모든 가능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첫날부터 대검을 사용하였고, 지나친 폭력에 항의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대며 무지막지하게 구타하고, 여성들에게 폭행하고 옷을 찢고 심지어 젖가슴을 대검으로 난자하였다."
- 최정운 (풀빛, 1999)
뒤쪽에서 본 위 사진 사망자의 총상 자국
"공수 놈들이 여고생을 붙잡고 대검으로 교복 상의를 찢으면서 희롱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60살이 넘어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아이고! 내 아를 왜들 이러요?" 하면서 만류하자 공수놈들은 "이 씨X년은 뭐냐, 너도 죽고 싶어?" 하면서 군화발로 할머니의 배와 다리를 걷어차 할머니가 쓰러지자 다리와 얼굴을 군화발로 뭉게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여학생의 교복 상의를 대검으로 찢고 여학생의 유방을 칼로 그어버렸다. 여학생의 가슴에서는 선혈이 가슴아래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박남선 (샘물, 1988)
아...하늘이여....
"어느 할아버지는 "저럴 수가 있느냐, 나는 일제 때에도 무서운 순사들도 많이 보고, 6.25 때 공산당도 겪었지만 저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놈들은 처음 보았다.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길래 저러는가. 죄가 있다고 해도 저럴 수는 없다. 저놈들은 국군이 아니라 사람의 탈을 쓴 악귀들이야." 하면서 통곡했다. 어느 중년의 사내는 "나는 월남전에는 참전해서 베트콩도 죽여봤지만 저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다. 저런 식으로 죽일바엔 그냥 총으로 쏴 죽이지. 저 놈들은 죽여버려야 해" 하면서 오열을 터뜨렸다. 온 거리는 피의 강, 울음의 바다가 되었다."
무참하게 구타당한 채 사망당한 광주 영령
5월 19일
"5월 19일에 저질러진 공수부대의 만행은 어찌나 잔인했던지 진압하러 나온 경찰조차 시민들에게 울먹이면서 "제발 집으로 돌아가라, 공수부대에게 걸리면 다 죽는다"고 애원할 정도였다."
사살되거나 타살후 리어카에 실려 어디론가 이동을 기다리는 시신
"주위의 노인들이 공수대원의 폭력을 만류하자 그들은 노인들의 머리를 곤봉으로 후려쳤다. 노인들도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런 모습을 도망치며 바라본 시위 군중들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일시에 돌아섰다. 그리고는 "좋다, 다 죽여라!" 하면서 공수부대에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풀빛, 1985)
"로타리 부근 전투에서 머리가 으깨지고 팔이 부러져 온통 피범벅이 된 부상자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중이던 택시기사에게 공수대원이 부상자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다. 기사는 안타깝게 "당신이 보다시피 지금 곧 죽어가는 사람을 병원으로 운반해야 되지 않겠느냐" 라고 호소하자 그 공수대원은 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운전기사를 끌어내려 대검으로 무참하게 배를 찔러 살해했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 3명의 운전기사가 살해당했는데, 이는 다음날인 20일, 또 하나의 기폭제였던 차량시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풀빛, 1985)
어떻게 눈을 감았을꼬..
아.....아.....그저 눈물만....
MBC 이외에도 KBS와 세무서도 불에 탔다. 신군부는 이 방화들을 '폭도론'의 증거로 TV 등을 통해 계속 보여주었다.
- 강준만 (인물과 사상, 2003)
얼마나 얼마나....
"전남대에서 신역까지 도보로 이동하면서 아스팔트와 건물을 향해 사격을 실시한다. 트럭 위에서는 M60이 엄호사격을 하면서 한 발 한 발 신역을 향해 다가간다. 사병들을 향해 고함치기 시작했다. 후퇴는 없다. 후퇴하면 모두 쏴죽인다."
- 광주매일 정사 5.18 특별 취재반 (사회평론, 1995)
피멍이 들어 사망한 광주영령을 방치한 공수부대
5월 21일
오전 10시경 금남로에는 1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시민들은 일단 정오까지 공수부대를 시외곽으로 철수시키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약속한 정오가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후 1시 정각, 건물 외부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애국가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건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를 알리는 신호였다. 광주시민들을 몰살시키려는 것이었을까.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를 정면으로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 강준만 (인물과 사상, 2003) 광주매일 정사 5.18 특별 취재반 (사회평론, 1995)
거의 미이라가 된 상태로 방치된 시신
"공수놈들은 같은 동족을 살상하고도 쓰러진 사람들을 옮기지 못하도록 연발로 위협사격을 해대었다. 아직도 공수부대놈들의 사격선 부근에서 부상한 채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애원소리는 처절했고, 이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피를 끓게했다. 공수놈들은 아직 죽지 않고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시민들을 구하려고 뛰어나가는 시민들에게조차 사격을 가해 사살해버렸다. 부근 건물의 벽에 바짝 붙어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
-박남선 (샘물, 1988)
얼마나 아팠을까 아
"순식간에 금남로는 피와 통곡의 바다가 되었다. 공수부대는 도청과 주변의 건물에 숨어 보이는 사람들마다 져격하였다. 1시 30분경에는 한 청년이 장갑차 위에서 윗통을 벗고 태극기를 높이 휘날리며 도청을 향해 '광주만세!' 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모든 시민들이 긴장되어 그를 응시하는 가운데 한 발의 총소리와 함께 피가 튀며 청년의 목이 꺽어졌다. 이 광경을 본 모든 시민들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에 온몸을 떨었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전쟁' 이었다. 시민들은 곧 총을 얻기 위해 시내, 외의 무기고로 향했다."
- 최정운 (풀빛, 1999)
사살되거나 타살되거나 대검에 찔려 방치된 시신들
21일 저녁, 드디어 시민군은 계엄군을 도청에서 몰아내고 점거하는데 성공한다.
- 강준만 (인물과 사상, 2003)
5월 22일
22일 비공식적인 정전이 성사되고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시민 수습위원회와 신군부 사이에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날 계엄당국은 김대중을 광주폭동의 배후라고 발표했으며, 일부 특전사 지휘관들은 무력을 동원해 광주 '폭도들'을 '소탕'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윌리엄 글라이스틴, 황정일 역. (중앙 M&B, 1999), 강준만 (인물과 사상, 2003)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아..........
전두환은 정석환에게 "최장군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을 터이니 용기를 잃지말고 분발하라고 전해달라"며 전두환 자신의 명의로 금일봉 1백만원을 최웅에게 전해달라고 지시했다.
- 정석환, (신동아, 1996 1월)
5월 24일
공수부대는 지원동 주남마을을 출발하여 학동과 진월동을 거쳐 시민들의 눈에 띄지 않는 야산으로 철수하던 중 진월동에 이르러 인근지역에 장난삼아 총질을 가했다. 저수지에서 멱을 감고 있던 아이들에게 집중 사격을 가하자 아이들은 둑 너머로 피신했지만, 전남중학교 1학년이었던 박광범이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또한 진월동 동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도 무차별 집중사격을 가했다. 모두 피신했지만 신발이 벗겨져 뒤돌아섰던 효덕국민학교 4학년 전재수는 총에 맞고 즉사했다.
- 강준만 (인물과 사상, 2003)
님이여...
전남대학교 교수들은 을 발표했다. "모든 사람들은 6.25때에도 이런 참혹한 살육전은 없었다고 울부짖으며 '모두 죽자' '죽여달라' 를 외치며 짐승 같은 계엄군과 맨몸으로 싸웠습니다..... (중략) 고립된 우리 광주 시민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한시가 절박합니다. 민주시민이여! 민주화를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일어섭시다."
- 김정남 (생활성서, 2002년 12월)
조국은 그대들에게 총칼로 잔학했는데..그래도 태극기를 덮고...
5월 25일
아침 8시, 황금동 부근에서 술집을 경영하는 21세의 장계범이라는 사람이 도청 농림국장실에 쓰러지듯이 허겁지겁 들어닥치면서 어깨를 움켜쥐고는 "독침을 맞았다!"고 소리쳤다.... (중략) 독침 사건이 발생하자 도청 안의 분위기가 갑작스레 살벌해졌다. 여기저기서 간첩이 침투했다는 소문이 돌고 모두들 수군거리며 도청 안에는 불안해서 못 있겠다며 상당수가 빠져나갔다...(중략) 이 사건은 사전에 계획된 것으로서 침투정보요원들의 도청지도부 교란작전이었다.
- 강준만 (인물과 사상, 2003)
길거리에 방치된 광주의 영령들
5월 26일
전남 도청에서 최초이자 마지막 내외신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국의 일간지 지의 기자 블레들리 마틴은 이 기자회견에서 만난 광주항쟁 지도부의 청년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이었던 윤상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그가 죽을 것임을 예감했다. 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표정에는 부드러움과 친절함이 배어 있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었다. 지적인 눈매와 강한 광대뼈가 인상적인 그는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 임창용 (서울신문 1998 9월 10일)
다 피지도 못하고...여인이여...
5월 27일 0시를 기점으로 광주의 시외 통화가 끊기자 도청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계엄군이 진입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고등학생들은 먼저 총을 버리고 투항해라. 우리야 사살되거나 다행히 살아남아도 잡혀 죽겠지만 여기 있는 고등학생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산 사람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항쟁의 마지막을 자폭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자, 고등학생들은 먼저 나가라."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풀빛, 1985)
다 피지도 못하고...여인이여...
5월 27일 0시를 기점으로 광주의 시외 통화가 끊기자 도청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계엄군이 진입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고등학생들은 먼저 총을 버리고 투항해라. 우리야 사살되거나 다행히 살아남아도 잡혀 죽겠지만 여기 있는 고등학생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산 사람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항쟁의 마지막을 자폭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자, 고등학생들은 먼저 나가라."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풀빛, 1985)
아.......그저........
"시민군들이 모두 정면으로 응사하는 동안 뒷담을 넘어 들어온 3공수 특공대는 도청 건물로 잠입하여 보이는 대로 총을 난사하고 여기저기 수류탄을 까넣었다. 그리고는 확인사살까지 했다. 많은 시민군들은 특공대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 최정운 (풀빛, 1999)
그 날 이후
광주학살의 참상을 목격한 후 서울로 올라왔던 서강대생 김의기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5월 30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이라는 글을 뿌리면서 투신 자살했다.
후일,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어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사망자 수까지 합하면 전체 사망자 수는 2천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공수부대원들이 처음부터 사상자수를 은폐하기 위해 사상자가 발생하는대로 트럭에 싣고 아무도 모를 곳에 파묻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 강준만 (인물과 사상, 2003)
는 5월 25일자 사설에서 항쟁세력들을 '분별력을 상실한 군중'으로 몰아붙이고는, "......57년 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의 역사가 반교사적으로 우리에게 쓰라린 교훈을 주고 있다..." 며 마치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한 일본인 폭도들에 비유하기도 했다.
- 정운현 (대한매일 2001년 5월 19일)
-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광주 시민을 학살했다고, 투입된 군인들도 제2의 피해자라는 주장이 개소리인 이유
전 이사진들전국민들에게 보여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두환과 그 하수인들이 봤으면 합니다
저당시 광주시민들을 무참히 살해했던 공수부대원들도 지금 한가정의 가장으로서 잘 지내고 있을까요? 자기자식들 애지중지하면서 사회속에서 남들과 다름없이 잘지내고 있을까요...하긴 그 학살의 수장도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잘 살고있는 나라이니...진짜 궁금한게...아무리 공수부대이고 명령에 복종한다지만...저럴수있을까...살인 폭행으로 깜방에 있는 범죄자들 한테 군복입혀서 군인이라 한거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드네요...희생당하신 모든 분들 하늘에서 편히 쉬셨으면....하...근데 아직도 편치 못하실듯....
아..진짜...ㅠㅜ
가슴이 콱 막히는게...뭐라 표현할 말이 생각조차 나지않아요 그저 눈물만...ㅠㅜ
아 진짜...사진이 말로 다 할 수 없을만큼...무섭고 슬프고 화나요...아 밥 못먹을거같...눈도 못감고 저렇게들 계시는데...이게 인간이 할짓이냐 이놈들아..진짜 천벌에 천벌을 받아라..제발..
장난삼아 총질....
진짜 화나네요
미친 쓰레기새끼들 저딴짓거리를 해놓고 지금까지 밥 잘쳐먹고 결혼하고 애까지 있다면 정말 말이 안되는건데
그러고 있겠죠...
세상 온갖 욕을 다 쳐먹여도 시원찮을 놈들
세상에나..ㅠㅠㅠㅠㅠㅠㅠㅠ할말을 잃음....이 만행을 저지른 전대갈과 관련사람들 모조리 처벌해야함..
진짜 마음아프네요...
왜...
아니 근데 진짜 궁금한 게 이거 왜 전두환 탓만 하고 있는 거죠?
전두환이야 권력이 있어서 그렇다치고 저기서 곤봉질한 새끼들 찾아다 하나하나 목 메달아버려야 겠구만 왜 저새끼들 처벌하자는 소리는 한 마디도 안 나오는지 궁금하네.
사진이 너무 잔혹해서 차마 다 보지 못하고 스크롤 내렸네요.
어찌 인간이 인간한테 저런짓을 할 수 있습니까...
아이고.....아이고..........
군대는 무사유(생각)의 집단입니다. 전쟁시 수월하게 작전수행하려면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군인이 좋은 수족이 됩니다. 군인은 상관 명령에 절대복종 하도록 양성되는거죠. 근데 X발 무사유는 죕니다. 나치의 만행도 결국은 사유없이 시키는대로 자행된 거죠. 그 놈들도 애미 애비가 있을것인데 인간도 아닌것들 개 호로 잡놈 새끼들 턱주가리를 뽑아서 간장에 쳐 박아 똥물에 담가 젓갈로 만들어도 시원찮은 놈들.. ㅡㅠ
518 공원에 있던 사진들도 보이네요 초등학교 3학년때 들어가서 봤는데 그때 충격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총이라는 어마어마한 힘 앞에 굴종하는 모습을 보며 흥분했겠죠...
때려도, 죽여도 뭐라 한마디 하는이가 없으니 더 날뛰었겠죠.
명령에 따랐을 뿐이니까 탓해서는 안된다구요?
아니오.
그들은 분명히 즐겼습니다.
설령, 그렇지않은 일부가 있다해도 그들 손으로 저지른 일들입니다.
살인자가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고 용서해서는 안되죠.
저때 공수부대원들도 전두환이랑 같은 나쁜 놈들입니다
진짜 양심도 없어..
민주주의의 끛은 붉은 색이다. 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가해자가 지옥보다도 더 끔찍한 고통을 영원히 겪기를..
아.. 너무 끔찍해요.. 몇몇 사진 얼굴이...차라리 피떡이 된 게 나아 보일 정도네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파요...
이정도로 잔인한 사진까지는 처음봤어요. 전남출신이고, 제가 관심있어서 찾아보거나 교육용으로 본 사진들은 그나마 멀쩡한 시신들이었군요...너무 참담하고 화가 나네요. 정말 전두환과 그 말도 안되는 말을 명령이랍시고 수행한 공수부대원 살아있는 평생 정신이 편치 못하고 잠을 자도 꿈에서 시달리고, 죽는 날까지 평안한 날 없이 아프고 괴롭기를 바랍니다.
이게 사람이 할짓이냐.... 이런짓을 하고도 잘사는 놈들이 있다니...
.. 진짜 너무 가슴아프다..ㅠ
눈물이 나고 화가 치미네요ㅜㅜ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지ㅜㅜ 전두개 씨부 랄 눔
전두환 이 X발새끼 발끝부터 1미리씩 갈아죽일새끼
본문 내용처럼 차라리 차라리 총이 나았겠다 싶도록 어찌 저리 잔인할수 있을까요. 명령이 우선이라지만 이건 그냥 학살을 즐긴걸로 밖에 중세시대에서 있을법할 이런 무자비함이라니요. 사진 보는 마음이 먹먹합니다.
저런 일을 벌이고도 잠을 자고 먹었을 그 모두가 현실에서도 하늘이 있다면 죽어서도 재판받고 처벌 받기를 기원합니다. 저런일 하고도 잊고 당당히 살고있는 지금 시점에 끌려나와 엄중히 처벌받기를
하 .. 진짜 미쳤다 제2의 피해자라니 .. 나쁜놈들이네요
선량한 시민들을 저렇게나 처참하게 살해하다니 충격입니다
그들은 그게 어쩔수없는 정당한 살인이라고 믿고있겠죠
군대에서 정신개조 비슷하게 훈련을 받는다지만 아무리그래도 명령 한번에 저런 잔인한 짓까지 서슴없이 한다니요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군인들은 저 당시에 본인이 군대를 왜 갔는지 제대로 생각이나 해봤을까요? 나라와 국민을 지키위한 목적으로 있는것이지 파렴치한 독재자와 뇌물받아먹은 인간들 지키기위해 비무장한 선량한 국민들 해치라고 군인이된줄아나
잔인한 장면이나 사진을 보면 으례 눈살을 찌푸리게 되잖아요...? 근데 5.18 당시 증언들이나 증거사진들을 보면 눈물 밖에 안나와요.....
저 사람들이 저렇게 잔인하게 죽을 이유가 뭐냐고. 묻고싶고....너무 마음 아프고....
환각제 이야기도 있었어요 공수들에게 수통에 소주를 담아 줬는데 거기 탓다고
11공수 출신입니다.
아는 선임이 특전복 입고 광주 나갔다가 어떤 어르신한테 쌍욕먹고 폭행당하실뻔 한적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 때 선임은 내 잘못은 없지만 그 상황에서 그저 죄송하단 말 밖에 못하다가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아마 저한테 이런 일이 있었어도 죄송하단 말 밖에 못했을것 같아요.
현역 때 어쩌다가 5.18 얘기가 나오면 직접적인 잘못은 안했어도 다들 그 때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0년이 훨씬 지난 일이지만 그 때 가족을 잃으신 분들은 아직도 공수부대원들이 원망스러우실겁니다.
얼마 전에 영화 택시운전사 보면서 왜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전두환을 포함한 그 당시 모든 책임자들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전두환 개X발새끼 사지를 찢어죽여도 모자를 새끼
흠 저는 다 한번쯤은 봤던 사진들인데 처음 보는 분들이 많다는 반응이 의외네요..
하긴 전 학교에서 518 묘소도 찾아가고 선생님들이 비디오도 보여주시고 하긴 했는데..
정말 아무리 봐도 이 참혹함과 분노는 가실 길이 없네요
일1베 개개끼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것 같습니다
지금도 광주 영령들 조롱하고 홍어 지랄하는 개 X발새끼들 죽여버리고 싶습니다
징그럽거나 그런건 아닌데 마음이 이파서 못보겠어요.... 진짜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저분들도 귀한자식이였을테고 ..한집안의 가장이고나.... 가족분들 마음을 헤아릴수 없네요....근데 그시절 광주분들은 한집걸러 한집이 다들 저랬다는거 듣곤 ㅠㅠㅠㅠ진짜 유시민의원님 말씀처럼 광주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진짜 ㅠㅠㅠㅠㅠㅠ말이 안나와요 ㅠㅠ
일제 순사, 6.25 공산당도 이정도로 잔혹하지는 않았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눈물이 나네요.. 어떻게 같은 나라 사람들.. 그것도 평범한 시민들을 상대로 저렇게 잔인한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정말 대체 왜...................... 왜............. 왜 !!!!!!!!!!!!!!!!!!!!!!!!!!!!!!!!!!!!!!!!!!!!!!!!!!!!!!!!!!!!!!!!!!!!!!!!!!!!!!!!!!!!!
저때 죽은 공수부대원들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건 아세요?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5.18 광주에서 감동연설할때
그 시각에 친박단체들 빨갱이?들 욕하며 국립묘지에서 저 공수부대원들에게 참배했답니다.
당연한 일은 당연히 해야 한다.
518도 곧 그렇게 될 수 있을거라 믿어본다.
지난 일이지만 아직까지 계속되는 상처를 꼭 어루만질 수 있도록, 그런 당연함
아... ㅠㅠㅠㅠ 아......... ㅠㅠㅠㅠ 슬프다 괴롭다 속상하다 ㅠㅠㅠㅠ 아아 ㅠㅠㅠㅠ
아......
더이상 글을 읽을 수도 스크롤을 내릴 수도 ㅠㅠ
저도 12살 언저리에 저같은 사진과 영상을 봤었는데(그때의 충격이란) 과거의 기억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보고 있는 사진보다 더한 사진과 영상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 사진도 일부 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성당갔다가 독일 기자가 찍었다는 설명과 함께 저 사진들을 봤었습니다...배달의 기수에 나오던 국군아저씨들이 도데체 왜? 라는 생각과 잔인한 사진에 메슥거림과 몇일간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했던....나중에 크면 알게된다고 얼부무리던 어른들...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해가 안되네요... 왜 저분들이 저렇게 참혹한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그리고 저렇게 만든게 자국 군인이라는게..
허미 씨펄;;
전두환도 미췬넘이지만 그 공수부대원 새끼들도 인간이아니네요. 군인명령이라지만.
아마 어딘가로 이민들가서 박사모늙은이들짓들 하고 있을런지도...미국에서 태극기머리에두르고 지랄대는 노인네들이 그런부류 아닐까 싶네요..
내 나이 스무살.. 광주 영상과 사진을 보고 그 울분을 참을 수 없어 전두환이 개1새끼를 수도없이 외치며 화염병과 짱돌을 들 수 밖에 없었죠. 아~ 광주여, 민주주여~
명령권자및 공수부대원 처벌해야 합니다.
아...으ㅡ.....전대갈...
c8새끼들...
전두환만이라도 좀 그 집에서 나오게해 경호없이 광주 그 광장에 딱 1시간만 세워두고 싶다..
학살을 저지른 계엄군들도 같이 목매달아야 마땅하다 생각함
기억할 것입니다.
모두가 기억해야합니다.
공수부대원으로 투입되어 손에 피묻힌 새끼들
당연히 뒈지고나면 지옥으로 가겠지
거기서 니들이 가한 고통 그대로 돌려받아라 퉽!!
절대로 잊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꼭 쥐새끼랑 둘다 뒤지는날
파티를 할겁니다
개.새끼들 잘죽었다고 말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리신
숭고한 시민 여러분의 희생에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오로지 명령에 의한 행위라고 보기엔 너무 열심히 최선을 다 해서 악을 자행했는데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역사의 피해자는 개뿔 진짜 피해자들 앞에서 그 주둥아리가 떨어집니까
그당시 공수ㄱㅐ새끼들 한놈씩잡아다가 광주에서 개처럼 끌고다녀야 한다
씨새발끼들ㅠㅠ
저런 악마를 데려가지 못하는데 죽은 뒤 지옥이 무슨 소용이고 천국이 왜 필요 합니까
작성자님 그냥 감사합니다. 눈을 감지 못했다는 말이 사진 하나하나마다 되씹어지네요.
혹시 사진들이 누군가의 신고로 인해 지워지게되더라도 그정도의 잔혹한 사진들이라 그러니 혹여 지워져도 너무 화내지 마시길...
덕분에 진짜 택시 그거 확대하고 다쑈라고 지꺼린 카톡 올린 새끼가 얼마나 골병든 새끼인지 더욱더 잘 알게되었습니다.
어째서 전두환이 아직 살아있는지....
당시 숨진 희생자들을 모실 때 태극기를 덮어드렸는데 한 장 한 장 덮었더니 광주 시내의 태극기가 동이 났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희생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 사진들을 또 보게 되는군요.
30년전 초등학교때 봤던 사진들인데 ㅠㅜ
정말 충격이었죠... 두개골이 함몰되서 형체도 못알아볼 정도로 밟아놨던 시체사진들에
거리 이곳 저곳에 내버려진 시체들...ㄷㄷㄷ
아무런 잘못도 없는 심지어 대항할 무기도 없는 민간인을 상대로 광기 어린 눈으로 살육을 하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피가 거꾸로 솟는다.
전두환 이시발새끼 진짜 광주올생각마라 뒤진다!
지금에야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해주지만
또다시 폭동이라 불릴까 두렵다
피해자가 가해자인 거지같은 세상..
78년생 광주사람인데
어릴적 집에있던 책에서 보았던 사진들입니다.
부모님들은 어린 자녀가 이렇게 잔인한 사진을 봐도 말리기는 커녕 집집마다 한권씩은 갖고계셨습니다.
그때문에 당연히 서울사람 다른 지방 사람들도 다 알고있는거라 생각했는데
인천 외숙모가 책보고 놀래시며 동네 사람들 보여준다고 챙겨가시길래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책 앞머리에 5월 노래 가사가 적혀있어서 어린 아이였던 시절부터 부르고 다녔었죠..
왜 찔렀니 왜 쏘았니...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에후
진짜 눈물과 욕이 동시에 나오는..,
개재식들
제 2의 피해자는 무슨ㅋㅋㅋㅋㅋㄱㅋㄱㄱㄱㄱㄱ
진짜 똑같이 혹은 그 이상으로 당해야함 개새기들
짐승보다 못한 새기들
미1친 제2의 피해자? 참나 금수만도 못한 새끼들에게 피해자라니 ㅋㅋㅋㅋ 아 정말 어이가 없다....
저들이 반성할것 같나요? 절대 안해요 그 짐승들은 어디선가 정신승리하며 살고 있을 거거든요
조선일보...개쓰레기 새끼들..
현재도 집은 광주이며 일때문에 타지에 나와있는 사람입니다.
어릴때 5월전부터 5월동안은 저런 사진들이 도로 양옆으로 300여미터 쭉 서있어서
어느 도시나 5월엔 저 처참한 사진전을 하는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5.18이 폭도들이 일으킨게 아닌줄 아는 사람들이라도 아는줄은 알았죠
이렇게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걸 새삼 느끼니
이번에 택시운전사에 감사할따름이며 송강호씨의 파워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영화의 아쉬움은 있지만 이러한 알림이 지역감정이 씻어지는 또다른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