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군함도를 보고 왔습니다.
끝나고 씁쓸+슬픈 생각에 잠기며 여자친구랑 나오면서 얘기를 하다가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기억이 나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제의 잔재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분야 장례라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얘기하니 여자친구도 들어본거 같다고 얘기를 하더라구요.
지금 고인에게 입히는 삼베옷? 은 일본에서 하찮은,큰 죄를 저지른 죄인에게나 입히는 옷이고,
국화를 헌화하는것도,상주가 완장 하는것도, 종이꽃핀? 다는것도 없는 장례문화 였다고 하더라구요.
국화는 또 일본의 국화이기도 하죠.
그래서 일제시대에 일본이 조선인을 하찮게, 또는 문화말살? 뭐 그런목적으로 일본의 장례문화를
퍼트렸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얘기를 했는데.
진짜인가요?
이 얘기를 하면서, 몇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너무 죄송스럽더라구요..
말씀하신게 대체로 맞는 맥락입니다. 다만 죄인이라는 건 원래 살아있는 자식들이 죄인이라는 의미로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었긴 했습니다
상장과 완장, 꽃장식, 삼베 수의와 유가족들이 입는 검은 상복은 일본 식민통치의 산물이다.
1934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에 따라 눈에 띄게 변한 건 상복이다. 전통 상복인 굴건제복(屈巾祭服거친 삼베로 만든 옷)을 생략하고 두루마기와 두건을 입도록 만들었다. 유족이 한복이나 일본 전통복장을 입었을 때 왼쪽 가슴에 나비 매듭으로 맨 검은 리본을 달도록 했다. 또 양복을 입은 사람은 왼쪽 팔에 검은 완장을 달게 했다. 이것이 상장(喪章)과 완장의 시작이다.[9] 상장과 완장은 항일인사들이 장례식에 모여 집회를 열지 못하도록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69년 ‘가정의례준칙’은 삼베로 만든 상장을 가슴에 달도록 규정했다. 2009년 ‘건전가정의례준칙’에도 상장 조항이 있다. 완장은 가정의례준칙에선 빠졌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장례식장의 꽃도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 26년 순종 국장 장례식 사진첩에 따르면 영좌 주변에 화환이 놓인 장면을 볼 수 있다[11] 국내전통장례에 사용된 꽃은 수파련(水波蓮)이라고 상여에 다는 종이꽃이 전부였다. 헌화나 화환 문화가 서양에서 비롯된 것이라 치더라도 요즘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는 꽃 장식은 100% 일본식이다. 우리 전통은 영좌 뒤에 병풍을 치는 것이었다.
삼베 수의가 전통 수의(壽衣)의 대표가 돼버린 배경에도 일제가 있다. 우리 전통은 수의는 생전 입던 옷 가운데 가장 좋은 걸로 마련하는 거였다.[12] 그래서 묘 이장(移葬) 과정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수의를 보면 화려하다. 대개 비단이나 명주로 만들어졌다. 부모를 여읜 자식이 ‘나는 죄인’이라는 뜻으로 삼베 상복을 입었다.
현대 유가족들이 검은 상복을 입는 것 역시 일본의 영향.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사람이 죽었을 때 흰 옷을 입었다. 사극에서 국상이 나면 모든 백성들이 흰 옷을 입고 남성은 백립이나 삿갓을 쓰는 것도 이 때문. 그러나 일제시기 검은 옷을 상복으로 입는 서양 문화가 정착해 있던 일본 상복문화가 들어왔고, 가정의례준칙에서 양복을 상복으로 입을 때는 검정으로 하는 규정이 생기면서(참조) 지금은 검은 상복이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합니다
허.. 놀랍고 쪽팔린 얘기로군요.
지난 70년 동안 아직도 식민지 출신 티를 못 벗어났단 얘기잖아요...;;;
언어생활도 그렇고, 일상생활도....
저는 법을 전공했고 지금도 법과 관련된 일을하는데
일제잔재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이 법전입니다.
일본식 한자에 일본식 어투, 일본식 해석, 일본식 사고
심지어 일본식 법복까지
뭐 물론 우리 근대 법체계, 행정체계가 일본에서 온 것이라 하지만
불필요한 것 까지 일본식 잔재가 남아 있는 듯 싶습니다.
석명명령 뭐 이런 단어 보다 사실관계확인서를 제출하라
** 아니한다.라는 표현보다 아니다.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뭐 이런 표현으로 쓰도록 하면 좋을 듯 싶습니다.
옛날보다 많이 순화된 표현이 사용되지만 그래도 사고방식에서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듯 합니다.
뭐 어쩌겠습니까...문화라는게 그런 것을. 그 이전이라고 온전히 우리만의 문화였던 것도 아니고 그마저도 중국에 큰 영향을 받았으니깐요. 가령 근대적 제도나 용어들도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동양 최초로 '근대화' 한게 일본이므로 여러 개념들이 일본식 한자로 번역되고 도입되었죠. 현 장례문화는 우리의 한 문화로 정착했고 이마저도 지속적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어렸을 때, 꽃상여랑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상여소리 들어봤는데...
최악의 허례허식 장례와 결혼.
이건 하는 사람들은 체면치례로 하고 이상한 사람들만 돈 바가지고 벌어가는 구조.
진짜 이런거 부터 개혁해야됩니다...
문제의식에는 동의하나 걷어내야 하는 적폐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미 우리네 문화가 되어버린 것을...
종합해보면 일본에 의해 변형된 전통+일본+서구식 잡탕 장례문화를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거군요
근데 저는 솔직히 전통문화라고 하는게 어디까지 범위인지 모르겠습니다
문화는 시대에 따라 바뀌는데 전통이라하면 17 18세기 갑오개혁이전 문화로 해야되는걸까요?
17세기 문화는 16세기문화와 완전동일한걸까요?
그러면 그 시기의 문화는 중국과 연관이 없는걸까요?
결국 문화는 흡수하면서 변화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변화속에 우리의 것으로 적용시키지 못 하고 발전시키지 못 함을 더 슬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일제의 영향을 받은 모든것이 없애야 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우리의 것을 더 쇠퇴시키는것인지 모르겠네요
일제의 말살정책이 얼마나 가혹했으면 30년만에 전통문화가 변질되 버렸을까
국화꽃을 유행시킨건 육영수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전에는 영전에 국화꽃을 바치는 경우가 드물었고, 당시 최고의 밴드던 산울림의 육영수 추모곡에서도 국화꽃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는데 사실 그시기 대부분의 장례는 집에서 치뤘기에 일반에서는 국화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아마도 일제 군관출신이 대부분이던 당시 군부의 영향이지 않았을까요.
문화와 문화가 만나서 가장 빨리 바뀌는게 결혼. 가장 늦게 바뀌는게 장례 문화. 저희부모님 70년대 결혼해도 (웨딩드레스 스타일의) 흰색 한복. 면사포. 신랑은 양복을 입었지만, 장례식에는 아직도 삼베를 입네요. 그나마 좀 (서양식으로) 검은색 한복도 입긴 하네요
이미 우리나라 장례문화가 바뀌었는데 일본의 잔재다 적폐다하고 고쳐야한다니요;; 만약 고친다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나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게 내려온 장례문화라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온 삼년상인데 삼년상까지 거슬러올라가야하나요? 가장 순수한 우리나라 장례전통이니까요? 이미 바뀐문화는 바뀐채로 두고 조금씩 변해가야지요;;
이미 우리의 문화가 되어버려서 그런가, 전혀 몰랐네요ㅜㅜ 쇼크....
솔직히 말해서 삼국시대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 그리고 근현대사까지 무수히 많은 외세의 침약을 받았고
길게는 외세에 지배도 받기도 했기에 ... 진짜 전통적인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의문이 들어요.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단어 중에서 임금님의 밥상을 수라상이라고 불렀는데
수라상의 '수라'도 몽골에서 들어온 단어입니다...
100년도 지났는데.... ㅜㅜ
바꾸는거 쉽습니다 언론에서 널리 알리고 아이들을 잘 가르치면 됩니다
이제라도 복원하고 현대생활에 맞춰서 받아들이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치면 그렇게 계속 이어져 나가게 하면됩니다
장례식에 흰옷을 입고 돌아가신분에게 좋은옷 입히고.......등등 그렇게 하는거 어려운일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 하던것을 현대의 생활과 문화에 맞춰서 간소화 하면 됩니다
무조건 옛것을 그대로 배끼는게 전통을 계승하는게 아니라 그것을 우리의 생활의 한 부분으로서 살아가며 가꾸는겁니다
그런데 웃기지도 않는 3년상 드립으로 시니컬한말이나 하는가 하면...우리조상들이 받아들인 문화와 강제로 사람 패고 죽여서 주입해놓은 문화의 차이도 구분 못하고 우리의 한 문화니 어쩌니라니....ㅉㅉ
옆집 개아들넘들이 우리집에 똥을 뿌려놨는데 그전부터 우리집이 그렇게 깨끗한건 아니었다며 그대로 그냥 살자는건 말이 안되죠
자동차 같은 비싸고 값나가는 물건은 누가 작은 흠집만 내도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게 우리나라 사람들인데......
우리나라 사람에게 문화라는건 값싼 싸구려인건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사살
1910년 3월 26일 순국
국민학교, 조선총독부 건물등 사례처럼 외견상 보이는 거야 쉽게 바꾸고 철거가능하지만
사고방식은 답이 안보이네요.
1944 루스 베네딕스, 국화와 칼을 읽어보면 현재와 시기적 간격은 있지만 일본인 사고방식과
비교해서 한국인들이 교육(사회화)을 통해서 요구받은 사회상과 같다고 보여지더군요.
수십년간 유지해온 문화를 한번에 바꾸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적어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함
우리가 알고있던 당연한것들이 사실은 당연한것이 아니라 이런 아픔이 있었구나..하고 아는것과 아무것도 모르는채로 이것이 우리의 문화라고 착각하는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
아마 많은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다면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지지 않을까요? 그랬음 좋겠는데
우리 스스로가 받아들인게 아닌 강압적으로 받아들여진거를
너무 무기력하게 어차피 쭉 그래왔어 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이는게 위험하다는 의미였습니다. 말씀하시는것처럼 문화란 바뀌는거지만 적어도 일제강점기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알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원래부터 바뀌어왔다고 어쩌면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건 그때 당시 다른나라 다 그랬다고 일제의 강제통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덕분에 일본 문화가 우리나라에 퍼졌다고 받아들이는걸 욕할 수는 없겠죠 적어도
생각지 않고 당연하듯 인식하고 살아온
시간이 참 부끄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