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항공 351편 납치 사건
때는 1970년 3월 31일
129명의 승객을 태운 하네다 발 후쿠오카 이타즈케 행 일본항공 351편
이 문제의 항공기가 후지 산 상공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9명의 괴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각종 흉기로 승객을 위협하고
이내 조종실을 장악하였다
하이재킹이었다
이들 9명은 일본내 극렬 공산주의자 테러단체 적군파의 일원
이들은 북한에 망명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
테러범들은 기장에게 평양으로 향할것을 명했으나
기장은 시간을 끌기 위해 연료부족이라 거짓말하여 당초 목적지인
이타즈케 공항에 착륙했다
항공ja위대는 연료보급과 협상을 통해 인질 23명을 석방시켰으나
길어지는 체류시간에 테러범들이 신경질적으로 변하자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못하고 비행기를 이륙시켰다
다만 항자대는 이륙 직전 기장에게 특정 무전주파수를 감청하라는 쪽지만을 겨우 넘겼다
기장은 쪽지에 적힌 주파수를 감청하며 이내 38선을 넘었다
38선을 넘자 기장은 북한영공에 진입했다고 판단 했으며
예의 주파수에서 무전이 흘러나왔다
"여기는 평양 관제소다. 우리 지시에 따르라."
기장은 무전이 시키는대로 비행하여 이내
김포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사실 항공기는 38선은 넘었지만 휴전선은 넘지 않았었고
항자대가 알려준 주파수로 한국 공군이 무전을 넣은것
기장이나 테러범들이나 한국말과 북한말을 구별할 수 있을정도의 언어지식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항공기 안에서 밖을 바라본 테러범들은
자신들이 도착한 그곳이 완벽하게 평양이라고 믿고 있었다
비행기 밖에는 인민군 복장을 입은 여성들이 꽃다발을 들고 있었고
공항청사에는 [환 평양 도착 영]이라는 붉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비행기에서 내리려 하였다
물론 테러범들은 공항 내외로 한국 군경들이 물샐틈 없이 배치되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으며
작전은 성공하는 듯 싶었다
그들이 주기장 한켠에 얌전히 있던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여객기를 보기 전까진
(이 부분은 여러가지 설이 존재함을 밝힘)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테러범은 비행기 아래의 인민군(복장을 입은 한국군)에게
천리마 운동에 대해 설명해봐라
커다란 김일성 사진을 가져와라
등의 요구를 하였고 요구를 받은 인민군(인척 하는 한국군)은
그 어떤 요구에도 응하지 못했다
테러범들은 비행기의 문을 닫고 안에 틀어박혔으며
한국군은 병력투입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엔 전세계적으로,
그 미국마저 대테러작전이란 개념이 없었으며
대테러부대란것 역시 세계적으로 존재 하지 않았다
그건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한국은 그나마 최정예인 공수부대 병력을 투입하려 하였으나
깜짝 놀란 일본의 만류로 인해 구출작전은 취소되었다
후에 테러범들과 한국정부, 일본정부의 협상은 지리하게 이어졌다
결국 일본 야마무라 신지로 운수정무차관이
인질로 잡히는 조건으로 민간인 인질들을 석방했으며
351편은 결국 평양으로 향했다
야마무라 차관과 남은 승무원들은
4월 5일 351편을 타고 일본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결과: 시도는 좋았으며 아무도 안다쳤지만 실패했다
그 븅신들은 결국 북한에 간건가.
아이디어는 진짜 좋았다 ㅋㅋㅋ
준비만 더 잘되었음 테러범들 완벽히 병'신 만들 수 있었을텐데 ㅋㅋㅋ
야마우라 차관이란 사람이 대단하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고 일본어만 하는데 북한에서 꽤나 환대해주겠다.
70년이면 북한이 한국보다 휠씬 잘살때다.
그 븅신들은 결국 북한에 간건가.
아직도 잘 먹고 잘 살더라
트위터하면서 북한 옹호하더라. 그런데 일본에서 욕먹으니까 차단신공으로 차단하고 얼마 안있어 운영도 잘 안했다고 하던데.
..뭐, 북한에서 얼마나 잘살던지 헬이겠지만.
그냥 씹새끼들이지 뭐......
야마우라 차관이란 사람이 대단하다
저 사건 말고도 공산운동권 애들이 설쳐서 좌파하면 치를떨었다는 얘기 있더라
저 당시 일본 공산주의자들에게 북한은 낙원이라고 생각했음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ㅋ
70년이면 북한이 한국보다 휠씬 잘살때다.
그당시 북한 gdp가 남한보다 앞서긴했지만 큰차이도 아니고 훨씬 잘살지도 않았음
심지어 70년대 초반까지만 앞서고 중반부터는 뒤치락대다가 후반부터는 역전당함
비슷한 지디피를 가진 국가인데 하나는 사회주의 국가 하나는 자유주의 국가 복지는 어디가 더 좋았을까?
훨씬은 전혀 아니지 않음 ??
밥차가 동네다니면서 전국민 무상급식하던시절이야
북한에 비데있는거 보고 엄청 놀라했음. 심지어 같은 동유럽 국가에 놀러갈 정도는 되었지.
하지만 김일성이 다른 파벌을 저거하고 나서는-
이야 밥만주면 훨씬 잘사는거냐ㅋㅋ 직업선택의 자유도 거주지나 이동의 자유조차도 제한되는 나라가 ㅋㅋ 철창 속 개돼지들에게 사료만 꼬박꼬박주면 잘사는거냐
그때는 아니야 그리고 그때는.한국도 북한 싸다구 때릴정도엿어 폭압과 폭정이 그럼 밥이라도 잘먹어야지.
아니긴 뭐가 아냐 70년대 이미 거주랑 이전 제한 됐고 여행증 없으면 다른 지역 이동도 못하게 됐던게 70년대초임
뽕맛에 취하고 싶어도 제대로 알고 취하자
그 여행증이라는거 그냥 신청하면 나오는거다. 국내용 비자야
보통 북한의 1인당 gdp를 한국이 추월한건 1972년, 소수의견이지만 60년대 후반에 이미 추월했다는 의견도 있음.
국내돌아댕기는데 여행증 요구하고 없으면 처벌한다는거 자체가 미친거라는 생각은 안듬? 여행증도 갈수록 발급 어려워지고 이제는 여행증있어도 뇌물없이는 통과가 힘들게 변질까지 됐는데
한국어를 전혀 못하고 일본어만 하는데 북한에서 꽤나 환대해주겠다.
ㅇㅇ 환대 받아서 아직도 잘먹고 잘 삼
꺼라위키 보니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네
북한에서는 저런식으로
"수령님의 품에 안긴 제국주의자들의 양심"같이 포장해서 좋은 선전거리니 엄청 대접 잘해주는데
뭐 대신 틈보이면 바로..
트루 빨갱이는 뚝배기 깨도 됌 북풍몰이 빨갱이 말고
일단 비행기 한대는 선물로 줫네요
비행기는 일본으로 돌아갔어요.
351편 타고 돌아왔으니 비행기도 안줌
아이디어는 진짜 좋았다 ㅋㅋㅋ
준비만 더 잘되었음 테러범들 완벽히 병'신 만들 수 있었을텐데 ㅋㅋㅋ
저거하고 이러저러한 공산당, 사회주의 운동세력들이 잔뜩 병1신짓을 저질러서 일본 사회에서 공산계열 운동권 사회주의 정당은 절멸한건가...
어이 고 앞은 아오지라우.
대테러작전 개념이 1970년대에 없었다는 건 좀 에러. 현대 특수부대의 아버지 쯤 되는 SAS가 IRA를 상대하면서 대테러작전 연구를 시작한 게 1960년대 얘기고 70년대에는 유럽의 대테러부대와 경험/전술을 공유할 정도였는데 말이야.
1972년 뮌헨 테러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대테러에 대한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고
그 이전에는 대테러란 개념이 미확립된 시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70년에 일어난 사건이고요
또 다른이유로는 환대에 감격하면서 김일성에 대해 물어봤는데 대답을 못해서 한국인걸 깨달았다는 말도 있음.
자기들 딴에는 북한으로 건너간 다음에 북한을 내부에서부터 변화시켜 세계동시혁명을 달성하자란 식으로 간건데 얼토당토 안되는 얘기였지.
적군파가 초기에는 국제 연대를 통한 활동에 중점을 두었는데 저사건이랑 총리납치하려는 계획 세우다가 지도부들이 대부분 체포되고
지도부가 바뀌면서 국내 투쟁중심으로 노선이 바뀌고, 산악베이스사건(동료들끼리 서로 린치해서 12명을 죽임) 아사마 산장사건(산장에 들어가서 인질 잡고 농성)하면서 좌파와 학생운동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줌. 하이재킹 해서 북한 넘어간 사람들은 아직 잘살고 있는지 현상수배 붙어있더라. 몇달전에 일본가서 신기해서 사진 찍음
뭔가 아깝네
공략도 완벽하고 보스도 거의 다 잡아가는데 바닥을 밟은 동방제과처럼
바닥이 아니라 브레스구나
말도못하는주제에 남의나라에 꼬라박는 븅신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