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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쌍욕을 한다.

 
 
1.
 
결혼하고 나서 내가 제일 충격을 먹은 것은,
 
머리만 닿으면 바로 잠이 드는 남편의 우렁찬 코고는 소리도 아니요,
남편의 말도 안되는 집안일 센스도 아니었다.
 
냉장고의 각종 야채류가 자연의 부름을 받아 無로 돌아가는 속도였다.
이런 $@^^#$$$ 할 곰팡이..
...
 
어째서!
저번 주말에 본 장인데, 야근 5일하고 주말 맞아 각잡고 요리좀 해보려했는데 이미 다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니 ㅠㅠ
 
 
 
덧)
..
결혼을 준비하시는 많은 예비 신혼부부님들. 냉동실의 크기가 생각 외로 중요합니다.
 
 
 
 
2.
 
..
신혼.
 
집에 돌아와 문을 열면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게와 각종 정갈한 나물류와 막 해논 고소한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런장면.
 
분명 내가 그렸던 장면은 이러한 것이었다.
 
 
내가 힘겹게 퇴근 하고 돌아와 서투른 칼질로 몇시간씩 불앞에서 고생하고 투쟁해서 끓인 된장찌게에서 뻘맛이 날때,
어떻게든 내놓으려 했지만, 도저히 나조차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을때..
나는 입에 쌍욕을 담는다.
 
어째서 분명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조합해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데 먹을 수 없는 것이 생성되는 것인가.
 
호박아 미안해. 양파야 미안해. 두부야 미안해. 된장아 미안해. 지구야 미안해.
무엇보다 오늘 하루종일 고생한 나야, 힘들게 일하고 집에와서 고생시켰는데 이런 #$!%#!한것을 만들게 해서 미안해 ㅠㅠ
 
 
그날 저녁 내내의 사투 후, 먹을 수 있는 것들로 음식물 쓰레기만 생성한 나는 치킨 시켜 먹었다.
 
 
덧)
..
요리에 서투르신 분들, 네이X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내가 좀 서툴다, 한다면 절대로 창의력을 펼쳐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msg으로 커버되지 않는 맛도 있습니다.
 
 
 
3.
 
나는 결혼하고 최소 2년간은 남편이 입맛이 짧은 줄 알았다.
입맛이 짧아서 밥도 조금 먹고, 반찬도 조금 먹고 그러는 줄 알았다.
친정에만 가면 밥을 두그릇씩 먹는게 장인장모에게 사랑받으려 무리하고 그런줄 알았다.
친정아빠가 "남편 굶겼냐" 라고 할때 농담만 하는 줄 알았다.
 
요리가 늘은 이후, 밥을 두공기씩 먹는 남편을 보면서 과거의 남편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덧)
내가 요리를 못한다 할때 포기하지 마세요.
많이 하면 요리도 늡니다..
 
그 과정에는 많은 쌍욕과, 좀더 많은 지구와 개인의 희생이 따를뿐.
 
 
 
 
4.
 
생명이란 정말 위대한 것이다.
절벽의 돌틈에서도 나무가 자라고 아스팔트의 틈의 작은 흙에서도 꽃은 핀다.
 
그래서 생명의 위대함을 간과해선 안된다.
절대로 방심하면 안된다.
 
절대로 여행 전 남편에게 밥솥안의 밥을 버려라 라고 했을때 알아서 잘 버리겠지, 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쓰레기통에서 생명이, 그것도 무더기가 탄생해서,
날고 기어서 쓰레기통에서 기어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그런 생명의 위대함을 체험하고 싶지 않다면.
 
결코 다시 결코, 방심하지 말지어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집에와서 쌍욕을 뱉으며 그걸 다 치울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덧)
음식물 쓰레기는 그때그때 버립시다.
요즘같이 생명이 번생하는 시기에는 특히요.
 
 
 
 
 
5.
 
다시 말하지만, 생명이란 정말 위대한 것이다.
 
많은 밤을 선물로 받았다면.
그것도 산에서 직접 딴 유기농 밤을 선물로 받았다면.
 
그 강한 생명력따위는 당장 죽여버리지 않는다면 살아나 복수할 것이다.
 
 
덧)
받은 음식/재료를 먹을 자신이 없다면, 처리하기도 힘들다면 그저 냉장고에 두지 마세요.
냉장고는 받은파일 폴더가 아니더라고요.
 
힘들게 추석을 보내고 차마 손질할 힘도 없어서 잠시 둬야지 하고 냉장고에 둘수도 있어요.
그리고 추석 연휴 내내 쌓인 일에 야근 하느라 잊을 수는 있어요.
그리고 야근 시즌이 끝나고 난 이후엔 생각날수도 있어요.
...
 
 
쌍욕하며 냉장고 치운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6.
시간이 지나고,
집안일도 늘면서 쌍욕의 빈도수도 점점 줄었다.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먹을 수 없는 것을 만드는 빈도수도 줄었고
완벽한 부침개나 계란 지단을 만들려는 욕심도 버렸으며,
칼질하다 손을 베는 일도 적어졌다. (라고 하기엔 저번주에도 부상을...)
 
그래도 여전히 하수구가 막혔을때나,
각종 기구들이 어이없이 부셔지거나 튀거나 떨어지거나 해서 날 때리거나
인간과 내가 허락한 애완 생물 이외의 생명이 집에서 서식하거나 등장할때에는 아직도 가끔 쌍욕을 하긴 한다.
 
그래도,
 
이 많은 순간들이 자립해서 어른이 되고, 내 가정을 운영하는 과정일 뿐이고
내가 좀더 나은 어른, 그리고 아내가 되는 순간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
나중에..
애가 생기면.. 분명 더 많은 쌍욕 할 순간들이 생길것 같지만...
 
음..
 
....으흠..
 
뭐, 어쨋든 지금까지 잘 해왔듯, 잘 할수 있겠지요?  
 
하하;;
 
댓글
  • l3ra 2017/07/14 17:04

    받은파일 폴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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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속토끼 2017/07/14 17:08

    저도 쌍욕잘한다고 자랑할려고 들어왔는데...되게 의미있는 쌍욕이셨네여 ㄷㄷ
    어..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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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뭥ㅇㅇㅇㅇ 2017/07/14 18:19

    내가쓴글인가 싶을정도로 공감가네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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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쫄지마C바 2017/07/14 20:00

    와 씨 4번 5번 진짜 너무 공감... 하필 지금 제가 딱 그 상황... 오래 묵혀둔 김치,, 통 까보니 온갖 벌레와 악취가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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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기번데기 2017/07/14 20:30

    너무나 공감됩니다
    시댁에서 받은 통마늘 ㅠ 한묶음..어제 통채로 쓰레기통행..냉동실은 이미 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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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비어스 2017/07/14 20:34

    작성자님 집 냉장고가 외장하드인줄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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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tterbox 2017/07/14 20:47

    제가 닭도리탕 먹고 남은 뼈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가 집이 초파리 둥지가 된 사람입니다.
    에프킬라 한 통 다 써가면서 퇴치를 끝내고, 바닥의 초파리, 초파리 알껍질 치우다가.. 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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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STLIFE 2017/07/14 20:54

    썅욕할때 옆에서 남편분 뀨?하면서 다소곳이 있을거같다 ㅋㅋㅋ 아니,, 그렇게 있어야만 할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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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넴이음슴 2017/07/14 21:23

    요리가 늘면 다행이지만 결혼 10년차 임에도 절대 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학원도 다녀보고 문화센터도 다녀보고.. 포기하면 편해요. 남편이 포기하라고 할때 포기할걸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p.s. 울집 아들녀석 어릴때 내가 만든 이유식 딱 한입 먹고 울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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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추야 2017/07/14 21:29

    필력 대박!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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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꾸꾸네 2017/07/14 21:41

    음식물쓰레기는 냉동실에 얼려서보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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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역미역미역 2017/07/14 21:4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이야긴줄 알았어요 ㅋㅋㅋㅋ 기껏 시간나서 된장이나 김치찌개 했는데 진짜 어쩌다 이런 맛이 나게 된 건가 싶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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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이2 2017/07/14 22:00

    다이어트식을 만들 줄 아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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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라야 2017/07/14 22:03

    극공감입니다 받은파일폴더요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냉장고에 왠 죽이 한봉다리 있길래 풀어봤더니
    상추와 오이와 당근이 풀죽이 되어 있더라구요
    그 어마어마한 냄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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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수성왕 2017/07/14 22:04

    좋은글 감사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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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똘끼쟁이 2017/07/14 22:09

    아가가 생기면요...
    딱 100배 멘붕이 온답니다
    남들 다하는 듯한 이유식을 시작하면요...
    아~~~~~ㅜㅠ
    주방일 보다가 종아리가 붓는답니다
    근데요 아가가 안먹어요 꺼이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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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맹맹이 2017/07/14 22:12

    음식물쓰레기..ㅠ 전 냉동실에 보관하는데...그래서 더 버리러 가기귀찮아지더라고요... 냉동실에 음식보다 쓰레기가 더 많을때도..있었어요... 근데 이래도 되는건지..? 세균번식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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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장원숭이 2017/07/14 22:12

    전 신혼때 아무리 맛엇는 요리도 뼈빼곤 다 먹어줬어요..
    나중에 애들 맛나게 해주려면 하고싶은대로 다해서 실력 쌓으라구요..
    비록 비빔국수 8인분과 닭볶음탕의 모습인거 같은데 폐타이어맛 이라던지 다 먹었더니 요즘은 쉐프 부럽지 않아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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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로스 2017/07/14 22:18

    msg로도 커버할수 없는 맛이라니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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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씨 2017/07/14 22:21

    남편 굶겼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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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의누리 2017/07/14 22:42

    냉장보관을 신뢰하는 것으로보아
    요리실력이 정말..... 였나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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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리스텔라 2017/07/14 23:05

    장본게 일주일만에 냉장고안에서 곰팡이가 슬었다면.........
    냉장고 안에 곰팡이균이 이미 서식해서 금방 상하는겁니당....
    냉장고 싹 비운다음 락스로 한번 닦아주시는게 좋습니다
    냉장고 온도도 더 내려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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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냥 2017/07/14 23:17

    어... 음.... 제작년 김장철에. 시댁에서 받은 김치통 안에.
    김치는 우리집 김치통에 옮겨 김냉으로. 시댁김치통은 나중에 갖다드려야지. 하고 뒷베란다 세탁기 옆에 두었다.
    어제 건조기를 새로 들이면서 대청소를 했고
    그 김치통 안에... 검은봉다리가 있는걸 발견했다. 무수한 생명체+검은액체와 함께.
    무엇이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이미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었고. 신기하게도 냄새또한 전혀 나질 않았다.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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