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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미리 쓰는 실연에 대처하는 방식 - 서영아

딸에게 미리 쓰는 실연에 대처하는 방식
                                                        서영아
 
 
아무것도 아니란다 얘야
그냥 사랑이란다
 
사랑은 원래 달고 쓰라리고 떨리고 화끈거리는
봄밤의 꿈 같은 것
그냥 인정해 버려라
그 사랑이 피었다가 지금 지고 있다고
 
그 사람의 눈빛,
그 사람의 목소리,
그 사람의 몸짓
 
거기에 걸어 두었던 너의 붉고 상기된 얼굴
이제 문득 그 손을 놓아야 할 때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
 
봄밤의 꽃잎이 흩날리듯 사랑이 아직도 눈앞에 있는데
니 마음은 길을 잃겠지
그냥 떨어지는 꽃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삼일쯤 밥을 삼킬수도 없겠지
웃어도 눈물이 나오겠지
세상의 모든 거리, 세상의 모든 음식, 세상의 모든 단어가
그 사람과 이어지겠지
 
하지만 얘야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야 비로소 풍경이 된단다
그곳에서 니가 걸어 나올 수가 있단다
 
시간의 힘을 빌리고 나면
사랑한 날의, 이별한 날의 풍경만 떠오르겠지
사람은 그립지 않고
그 날의 하늘과 그 날의 공기, 그 날의 꽃 향기만
니 가슴에 남을 거야
 
그러니 사랑한 만큼 남김 없이 아파해라
그게 사랑에 대한 예의란다
비겁하게 피하지 마라
사랑했음에 변명을 만들지 마라
그냥 한 시절이 가고, 너는 또 한 시절을 맞을 뿐
 
사랑했음에 순수했으니
너는 아름답고 너는 자랑스럽다
댓글
  • 마트성애자 2017/07/09 07:02

    딸바보이신 피천득 선생님의 글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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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암 2017/07/09 21:23

    사랑은 떡볶이 같은 것이요.
    달고 맛있고 입 속으로 계속 들어가지만
    아프고 저리고 뜨겁고 그렇죠.
    그럼에도 나는 맛보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리.
    중독된 나는 구제불능 욕심쟁이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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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월요일 2017/07/10 00:26

    최근에 헤어지구 이 글이 너무 좋고ㅠ
    위로가 참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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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은고양이 2017/07/10 00:27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야 비로소 풍경이 된단다
    그곳에서 니가 걸어 나올 수가 있단다
    시간의 힘을 빌리고 나면
    사랑한 날의, 이별한 날의 풍경만 떠오르겠지
    사람은 그립지 않고
    그 날의 하늘과 그 날의 공기, 그 날의 꽃 향기만
    니 가슴에 남을 거야
    그러니 사랑한 만큼 남김 없이 아파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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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라더소다 2017/07/10 00:35

    모든 것을 다 이해 했을 때는,
    모든 기대를 버렸다는 뜻이다.
    그대의 짜증과 불안함 섞인 투정에도
    내가 이리도 초연히 당신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그대에게 걸었던 모든 기대를 버렸다는 뜻이다.
    그대가 그리도 화내며 신경질 내어도,
    내가 다 그럴수도 있다는 듯 담담히 받아드리는 이유는
    그대에게 바랐던 모든 욕심들을 다 내려놓았다는 뜻이다.
    초연한 표정으로,
    달관한 태도로 그대의 모든걸 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건,
    그대를 마주한 내가 아제는 지쳐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대의 손 끝에 있어야 할 일들이,
    내 손 끝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대의 일이 나의 일로 마무리 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끝끝내 그대의 할 일들을
    마무리 해주는 이유는
    그대를 홀가분하게 떠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대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욕심도,
    기대도,
    그리고 마지막 자존심까지도 다 버려야했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시간인가 보다.
    ------------------------------
    몇년전에 오유 고민게에 익명으로 올라온 글인데
    이 게시글하고 댓글하고 메모해뒀어요.
    아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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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으흐하햐 2017/07/10 00:44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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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진좋은남자 2017/07/10 00:47

    생각지도 못한 베오베 감사합니다. 술한잔 하고 확인하는데 알람메세지가 2개나 와서 깜짝놀랐네요.
    이 글은 저도 예전부터 좋아했던 글이였습니다.
    작년 겨울,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미소가 순수했고, 목소리는 아름다웠고 눈빛은 선했으며 단아한 그녀였습니다.
    많이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제가 조금 어딘가 부족해 보였었나 봅니다.
    용기내어 "좋아해"라고 고백한 것은 그녀가 처음이였습니다.
    그것도 두번씩이나.
    우연히 일기장을 훑던 중,
    그녀에게 거절당하고 내 마음의 한켠이 너무나 슬프고 아파 메모해뒀던 이 시를 발견했습니다.
    그 마음, 아파서 그때 당시에는 빨리 잊고싶었는데 지금은 그 기억마저 소중하고 그립네요.
    사실 지금도 많이 좋아합니다. 그녀가 보고싶고 꿈에도 나오고 무슨 생각 하고 있을까 궁금해 하기도하고.
    사랑을 해본적은 없지만, 이렇게 오래동안 가슴 아파해본적은 처음이라
    이런게 사랑이라는 걸까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도 해봅니다.
    그 아픔, 너무 아팠지만 아팠기 때문에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녀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정말 제게 있어 고맙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외쳐봅니다.
    "음.. 바보같은거 알지만, 나 그냥 바보할래, 아직도 너 많이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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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이티v 2017/07/10 00:59

    잘 봤습니다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야 비로소 풍경이 된단다
    그곳에서 니가 걸어 나올 수가 있단다
    멋있는 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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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잎x 2017/07/10 01:01

    뇌리에 박힌 너의 기억과
    몸짓 향기는 내게 고통의 시간으로
    다가왔고
    그 기억의 파편을 쓸어버리고자
    무던히도 애써왔다
    너는 여전히 그자리에
    서로 다른시간 속의
    숨소리 만이 기억에 남아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며
    기억도 향기도 몸짓도
    잊혀지게될 것이란걸 안다
    괜찮은 하루를 보냈다가도
    홀로 집에 누워있는
    시간엔 다시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너는 그렇게
    변덕스런 날씨처럼
    괜찮다가 아팟다가
    쏟아지는 비처럼
    내 마음을 습기로 가득 차게도 한다
    장마가 지나면
    다시 태양이 뜨고
    여름이 시작 될것이다
    먹구름에 가리어져
    천둥번개가 치고
    온통 어둠으로 가득찻던
    내 마음이 여름을 만나
    잔잔한 푸른빛 바다 위에서
    따뜻하게 내려쬐는 태양빛에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너를만나
    봄을  알게 되었고
    난 장마를 이겨내고
    다시
    푸르게 빛나는 여름이고 싶다
    비는 곧 그렇게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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