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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가리지 않는 살인 청부업자 (19금. 역겨움..)

" 이 증오스러운 년을 죽여주시면 됩니다. "

나는 살인 청부업자에게 사진과 파일을 건넸다. 

내 맞은편에 앉아 자료를 받아드는 사내. 그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평범한 얼굴에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날렵해 보이지도 않는 운동부족형의 체격.
간단히 본다면 얕잡아볼 만한 사내였지만, 이 상황에서는 다르다. 
만약 나타난 사내가 몸 관리가 잘 된 사람이거나 무게를 잡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사내의 덥수룩한 머리칼과 구김 많은 티셔츠에서 공포를 느꼈다.
강한 사람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다르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든 인생이 망가져도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눈앞의 사내처럼.

대충 파일을 훑어본 사내는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 보수는 알지요? "
" 예 5천. "

고개를 끄덕인 사내의 입이 다른 말을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
" 조건? "

사내의 미간이 좁아졌지만, 나는 아랑곳없이 준비한 말을 꺼냈다.

" 선생님이 살인하기 직전에 돈을 드리겠습니다. "
" 음? "
" 저도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살인 청부업자를 가장해서 접근했다가, 선수금만 챙겨서 도망가는 사기꾼들 이야기요. 당사자가 신고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용한다고 말입니다. "
" 그 말은? 지금 저를 의심하는 건가요? "
" 꼭 그렇다기보다는, 조심해서 나쁠 게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렇게 했으면 합니다. 선생님이 실제 그년을 죽이시기 전에, 저를 불러주십시오. 그럼 그때 제가 그 자리에서 제가 선생님께 5천을 드리겠습니다. "
" 거참, 번거롭게.. "
" 부탁드립니다. 사실, 그 빌어먹을 년이 죽은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봐두고 싶기도 합니다. "

나는 이를 악물었다.

" 그년이 누군지 아십니까? 제 여동생을 죽인 년입니다! 간호사인 제 여동생은 정말로 정직한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이를 못마땅하다고 1년 내내 왕따를 시키더니, 회식날에 일부러 계획해서, 제 여동생이 강O까지 당하게 했습니다! 그 일로 제 여동생은 자살했습니다. 이게 살인이 아니고 뭡니까?! "
" 음.. "
" 제가 반드시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그년을 죽일땐 꼭 강O살인 해주십시오! 여동생이 겪었던 그 고통을 똑같이 겪게 해달란 말입니다! "

사내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조금 기울이더니, 사진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 흠..강O살인이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귀찮긴 하지만. "
" 제발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제 여동생의 억울한 원한을 갚아주십시오! "
 
사내는 잠깐 고민하는 듯 사진을 팔랑이더니,

" 선수금도 없고, 강O까지 해달라? 옵션이 너무 많은데.. "
" 오백을 더 드리겠습니다! "

사내는 기다리던 대답이 나왔다는 듯,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하지요. 5천 5백에 해드리지요. "
"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나는 깊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내 표정 속에서 다른 감정이 읽힐까 봐 더욱 깊이.

방금 막, 내 계획의 첫 단추가 꿰어졌다.

사진 속의 그녀 홍혜화. 그녀는 나의 원수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 인생 유일한 사랑이었다.

나는 형의 병원에서 처음 그녀를 보게 되었고, 한 달 만에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한데, 나는 고백하기도 전에 차이고 말았다. 내 마음을 어렴풋이 눈치챈 형이 그녀에게 흘러가는 말로 떠보았다가, 싫다는 대답을 얻어온 것이다.
난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정식으로 고백한 것도 아니었고, 그녀도 깊게 고민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나는 그녀의 인생에 아주 극적인 등장을 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생명의 은인 같은 것 말이다.
거기에는 역할이 필요했다. 시트콤에나 나오는 가짜 불량배 같은 허접스러운 것은 안 된다. 하려면 완벽해야 했다. 그래서 살인 청부업자를 수소문했다. 

나는 그를 죽일 생각이다.

그가 그녀를 강O하려는 순간의 정당방위 살인.
그렇게 되면 그녀는 어떻게 할까? 나를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변호해줄 것이다. 절대 모른척 할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살인범이 된 남자와 그를 변호해야 하는 여자. 이보다 더 극적인 관계는 없다.
그녀는 내게 곧장 반할 수도 있고, 큰 빚을 졌다며 평생을 안고 갈 수도 있고, 혹은 소설의 여주인공이 된 기분 속에 빠질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는 무조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신 있었다.
그녀 앞에서 눈물을 보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의젓하게 그녀의 탓이 아니라며 위로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 
끝내, 우리가 한팀으로써 정당방위 무죄라는 결과를 성취하게 되는 그 날! 그 희열과 기쁨을 공유한 우리는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한 정당방위에는, 사내가 가진 살인용 흉기가 큰 몫을 할 것이다. 단순 강O범이 아닌 강O 살인범이어야 한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아무나 죽일 수는 없다. 하지만 살인청부업자는 다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겠는가? 그런 살인범을 죽이는 것은 결코 죄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을 들을 정의로운 일이다.

정의로운 일도 하고, 돈도 회수할 테고, 그녀의 마음도 얻는다. 정말 완벽한 계획이었다. 
있지도 않은 여동생을 만들어가며 완벽한 판을 짜는 내 능력은, 스스로도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완벽한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었다. 이 계획의 유일한 단점이 그녀가 몹쓸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 부분은 타협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를 구하는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야.

이렇듯 만반의 계획을 갖춘 나는 사내의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녀의 이동 경로와 생활 패턴을 자세히 알려주어서일까?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 오늘 밤에 처리하지요. 오천오백 준비하시지요. ]

나는 현금 가방을 준비해서 사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차 안의 그는 나를 보자마자 돈부터 찾았다. 나는 가방 속 지폐 뭉치를 보여준 뒤, 바로 건네진 않았다.

" 이 가방을 들고 일을 치르실 건 아니겠죠? 일단 작업하시는 동안은 제가 이 차에서 돈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걱정하진 마시길. 전 살인청부업자의 돈을 들고 나를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아닙니다. "
" 음.. "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마음대로 하라며 담배를 꺼내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
" 일을 늦게 마치던데.. 여기 공사장이 인적도 없고 좋으니, 거길 지나갈 때 그대로 끌고 가서 처리하지요. "

약간은 예상했던 대답에, 나는 흡족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뿌옇게 차오르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며, 나는 내가 할 일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머릿속으로 몇 번을 시뮬레이션해도 부족했다. 
돈가방 아래에 숨겨온 아령을 가지고 가서, 한참 일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을 그의 뒷머리를 강타한다. 되도록 쓸데없는 말을 꺼내지 못하도록 빠르게 몇 번이나. 죽을 때까지.

한참 뒤.

" 왔네. "

사내는 낮게 말한 뒤, 칼을 꺼내 들고 차 밖으로 나갔다.
나는 사내가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가방의 지퍼를 열고 아령을 꺼냈다. 미리 한쪽 조립을 빼놓은 5kg 아령. 이 동네 마트에서 산 영수증도 있는 아령이었다. 

가만히 공사장 쪽을 바라보니, 두 실루엣에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발걸음을 죽였다. 너무 빨리 가면 그에게 들킬 수도 있다. 한창 일을 시작할 때가 좋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가다가, 혹시 몰라서 걸음을 빨리했다. 그리고 입구에서 빼꼼 시야를 내밀어보니, 그의 등이 보였다. 벌써 그녀의 위에 올라타서 흔들고 있는 등이.
순간적으로 혈압이 솟구쳤지만, 이를 악물어 꾹 참았다. 절대 들키지 말고 다가가야 했다. 

" 헥! 헥! 헥헥! 헥헥헥! "

그놈은 정말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다. 이 개새'끼! 그래! 지금 즐겨둬라! 네 인생의 마지막이다!
나는 발끝을 땅에 스치듯, 조금씩 조금씩 다가갔다. 10미터. 8미터... 조금만 더..달려들 수 있는 거리로 조금만 더... 조금만...!

드디어 사정거리!!

나는 이를 악물고 아령을 높이 치켜들었다! 죽어라 이 쓰레기야-!!

" ... "

하지만 나는 아령을 내려칠 수 없었다. 나는 내 계획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시체를 강O할 줄이야...?


그녀의 반쯤 잘린 머리가 그의 흔들림에 따라 덜렁거리고 있었다.
내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볼 때,

" 뭐야? "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소리가 거칠지 않은, 벌써 정돈된 그 목소리가.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7/04 10:49

    이런 이야기는 조금 우려가 되네요. 너무 역겨운가 싶어서요 흐아아아;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행복하세요! 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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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도는세상아 2017/07/04 11:37

    글 너무 재밌게 잘봤슴니다~~ 항상 흥미로운 글로 즐겁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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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든되.에이브이i 2017/07/04 13:01

    살인범은 네크로필리아 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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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이내린미모 2017/07/04 13:29

    재밌어요!! 날도 꿉꿉한데 등줄기 오싹해지는 좋은? 이야기였습니다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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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등불 2017/07/04 14:21

    우우.....
    이 기막힌 반전 앞에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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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gdha 2017/07/04 17:20

    어? 분명히 죽이기 전에 불러달라고 했는데? 계약 위반 아닙니까? 빼애애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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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코중인오덕 2017/07/04 17:41

    오늘도 재미나게 읽고갑니다.
    날도 더운데 고생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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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zukinana 2017/07/04 22:10

    일부러 함정판거 아닌가요?
    미지막 줄에 숨서리가 거칠어지지도 않았다는 게 꽤나 밈에 걸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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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벚꽃향기 2017/07/05 01:06

    으. . . 진짜 역겹고,  기분나쁘고, 무섭고, 슬프네요.
    개같은 의뢰인이나,
    시체를 강O하는 청부업자나. . .
    홍혀화만 불쌍. . .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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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yess 2017/07/05 05:56

    오늘도 짜릿한 글 감서히 읽었습니다.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단편이 떠오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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