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전투사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 고대의 전투에서도 여러 포진과 움직임에 대한 기록으로 인해 풍부하게 당시 상황을 고증하고 설명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반면에 고대 중국 전투의 경우는 추상적으로 몇만이 몇만과 싸워서 이겼다는 식으로 뭔가 아쉽고 미비하게 설명되는 경우가 많구요.
보통 '고대 중국 전쟁' 이라고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릴 장면은 어린 시절 소설 삼국지에서 본 온갖 현란한 싸움이지만, 실제 정사 삼국지 역시 그런 점은 피해갈 수 없으니만큼 정사로 알 수 있는 전투의 전개 과정은 추상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당장 그 유명한 적벽대전 마저도 "뭔가 한바탕 크게 한 것 같기는 한데" 사서의 설명으로만 보면 모호하게 되었이는등...
그런데 이런 삼국시대의 전쟁, 전투 중에서도 흐름이 한눈에 보이는데다 그 공방이 '우아하다' 라고 개인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 전쟁, 전투가 있습니다.
이 분야가 워낙에 파고드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뭐가 어쩐다고 감히 말하기도 무섭고 그냥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상입니다만..
말하고자 하는 전투는 바로 263년 위나라의 촉 정벌전, 즉 위촉 최후의 전투 입니다. 여러모로 과정이라던지 그 와중에 펼쳐진 공방의 수준이라던지 서로 맞물리는게 굉장히 수준 있지 않았나 싶네요. 물론 동서고금 모든 전투가 그렇듯이 그 와중에 삽질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실책으로 결국 무너지는 것도 그렇구요.
앞서 말했다시피 삼국지라는 이 분야가 워낙에 전문가들이 많다보니, 무슨 번데기 주름 잡으려고 쓰는 글이라기보다 관련 글이 여기에 올라온적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가볍게 대략적으로 쓰는 글이니까, 혹시 오류가 있어도 감안해주시기 바립니다. (가끔 삼국지 관련 글 쓸때마다 워낙에 아는 사람이 많아서 오히려 만화로 그리기 두려웠다는 이말년의 심정이 이해가 잘 되더군요.)
사마소의 전쟁 준비와 첫번째 기만책
천하 삼분의 세 나라 중 가장 강력한 위나라는 촉과 오를 상대해야 했는데, 당장 실제적으로 위를 괴롭히는 것은 촉이었습니다. 256년 등애에게 내린 조서를 보면,
'역적 강유가 해마다 교활한 행동을 하여 백성들과 만족을 동요시켜 서쪽 땅은 편안할 수 없었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이후에도 강유는 두 번이나 변경에서 등애와 교전을 펼칩니다. 물론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고 특히 두 번째였던 262년의 후화 전투에서는 제법 큰 피해를 받기까지 한듯 하지만, 피해를 입고 안입고 간에 변경에서 계속 적이 준동하는 것 자체가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사마소는 내심 촉나라를 오나라보다 먼저 쳐서 없앨 계획을 가진채, 자신의 뜻을 따라줄 종회를 서장군, 가절도독관중제군사에 임명하고 청주, 서주, 연주, 예주, 형주, 양주 등 모든 주에 배를 만드라는 명령을 특별히 큰 전함을 따로 만들라는 주문까지 했습니다. 위나라가 배를 타고 칠 만한 나라는 물론 오나라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사마소가 곧 오나라를 치는 큰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나라를 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던 게, 승상이었던 손침의 사망과 거기에 얽힌 혼란, 복양흥(?陽興)에 의한 포리당 건설 사업과 그 복양흥이 승상이 된 일 등으로 인해 굉장히 분위기가 불온했던 상황이라 "아, 오나라가 혼란하니 한번 큰 공격을 하려나 보다." 라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장대한 훼이크로, 오를 치는 척 하며 촉으로 진군하기 위한 계책이었습니다. 보통 정사 삼국지에서는 삼국지연의에서나 볼 법한 계략 같은건 찾아보기 힘든데, 이 작전은 굉장히 삼국지연의 같은 느낌이 물씬 납니다. 개인적으론 원소가 봉기의 계책으로 한복의 거점을 탈취한 건과 더불어 가장 삼국지연의스러운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장장 일년간 오나라를 친다는 시늉을 하던 사마소는 꼬박 1년이 지난 263년 여름, 문무중신들을 모아놓고 갑자기 폭탄선언을 합니다. "우리는 오나라가 아닌 촉나라를 친다!"
사마소가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며 중신들에게 말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수춘 평정 이후 6년간 전쟁이 없었다. 이제 다시 군사를 일으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2. "그런데 오나라를 친다고 하면, 배를 만들어 강을 건너야 하는데 이러면 10만 군사를 동원해 백여일이 넘게 전투를 치뤄야 하고 또 그 군사를 지원하기 위해 천만명이 고생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막상 현지에 도착하면 북방인 출신 병사들은 역병에 고생할 것이다."
3. "촉을 먼저 치고 3년 정도 잘 준비한 뒤 파촉을 통해 수륙 양용으로 오나라를 치면 전투는 훨씬 쉬울 것이다."
4. "촉을 먼저 쳐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이유고, 그러면 이제 촉나라의 상황을 보자. 촉의 군사는 대략 9만명 정도 된다. 이 중에 일부는 성도를 지켜야 하고, 다른 일부는 오나라와의 국경선 등 다른 곳에 배치되어야 하며, 막상 전투에 내놓을 수 있는 실제 전력은 딱 5만 정도다!"
5. "강유가 문제인데 강유는 답중에 있다. 대군을 분산시켜 그 강유를 답중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묶어놓은 상태로 검각을 후두려패면 쉽게 함락 가능하다"
6. "유선이 멍청하기 때문에, 일단 변경이 공략되면 성도에서는 놀라서 제대로 대응도 못할 것이다. 쉽게 항복 받을 수 있다."
참고로 문제본기만을 보면, 262년부터 함선을 건조하는 등 사마소가 전쟁 준비를 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습니다. 262년부터 '오나라를 노리는 척' 하며 분주하게 전쟁 준비를 했다는 점은 종회 열전을 봐야 알 수 있는데, 나중에 종회에 대한 사마소의 평을 보면 "오직 종회만이 나와 뜻이 비슷했다." 고 하는 말로 봐서 종회 정도 외에는 그 비밀 계획을 잘 몰랐던 모양입니다.
일단 1년간의 훼이크 끝에 사마소가 실상을 밝힌 후에는, 다른 중신들은 적극 찬성까진 아니어도 사마소의 뜻을 함부러 거스르기도 그렇고 그냥저냥 동의하는 쪽으로 갔습니다. 다만 대촉 전선 전문가였던 등애만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며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왠만한 사람이라면야 그냥 죽이고 말면 그뿐이나, 명성 깊은 장군인데다 무엇보다 촉나라와의 전쟁을 가장 잘 아는 등애를 배제하고서는 이 큰 작전을 진행하기 어려웠습니다. 사마소는 크게 우려하며 주부(主簿) 사찬(師纂) 등을 파견하여 등애를 거듭 설득했고, 계속된 설득에 등애도 결국 마음을 굳여 계획에 찬동하게 됩니다.
이렇게 내부적으로 동의를 얻은 사마소는 전국에 군사 동원령을 내립니다. 그렇게 해서 모인 병력의 숫자는 무려 18만명. 정말로 한 나라를 멸망시키는 전쟁이라는 느낌이 확 들 정도로 엄청난 병력을 모은 사마소는 그 해 9월 낙양에서 대규모 진열식을 가지며 필승을 다짐합니다. 이때 등돈(鄧敦)이라는 장수가 촉 정벌은 불가하다고 하자, 출정식을 한 상황에서 군대의 사기를 해친다고 생각해 열이 뻗치는데다 상대가 등애 정도도 아닌지라 사마소는 등돈을 처형하고 시신을 사람들 앞에 조리돌림 하면서 되려 전쟁의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때, 위나라군의 대략적인 형세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서장군 등애
위나라의 대 촉 전쟁 최고 전문가. 3만 군대를 이끌고 적도 - 답중으로 침공하여 그 곳에 있는 강유를 붙들어놓는 임무를 맡음. 금성 태수 양흔, 농서 태수 견홍, 천수 태수 왕기 등이 이 군대에 포함됨.
2. 옹주자사 제갈서
당장 전쟁이 펼쳐지는 장소와 가까운 옹주 지역의 자사. 3만 대군을 이끌고 기산 방면으로 진군해서, 등애와 맞붙는 강유가 퇴각하여 다른 전장으로 구원을 가려고 하면 퇴로를 막아 저지하고 시간을 끄는 임무를 맡음. 즉, 등애와 협공 작전을 펼침.
3. 진서장군 종회
현장의 지휘관 중 이 계획에 가장 이른 시기부터 가장 깊숙히 개입되어 있던 인물. 18만 대군 중 본대인 10만(혹은 12만) 대군을 이끌고 포야-당락-자오 세 갈래 잔도로 한중을 침공하는 계획.
등애와 제갈서가 강유의 군대를 묶어놓고 있으면, 그 사이에 종회가 촉의 중심을 후려치는 것이 핵심.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냥 마냥 대군을 이끌고 공격을 가는게 아니라, 전략 - 작전술적 차원에서 핵심적인 테마가 잘 잡혀있는 행보였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우월한 숫자를 이용해 일부 군대로 강유를 저지한 뒤, 남은 병력으로 빈집을 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변경 지대에서 위협이 압력이 거세지자 강유는 첩보를 통해 곧 위나라군이 움직임을 취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어냅니다. 강유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성도에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듣기로 종회가 관중에서 군사를 일으켜 진취(進取)할 틈을 엿본다고 하니 의당 장익과 요화를 아울러 보내 제군을 감독하며 양안관구(陽安關口)와 음평교두(陰平橋頭)를 나뉘어 지키게 하여 미연에 방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강유의 이런 제안은 묵살 당합니다. 이는 바로 황호 때문이었는데, 일단 강유와 황호의 사이 자체가 좋지 못했습니다. 이때가 되기 얼마전 강유는 유선에게 "황호를 처단해야 한다." 는 제안을 했지만 유선은 "황호 걔 별것도 아닌 소인배인데 뭘 그리 위험하다고 잡으려고 하냐." 이렇게 넘겨버렸고, 일이 이렇게 되자 강유는 성도에 있다간 자기가 다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밖으로 나와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골이 깊었던데다, 황호가 무당을 불러 위나라가 쳐들어오는지 점쳐보게 했고, 이 무당이 "위나라 쳐들어올 일 없음." 이라고 점을 치자 그 말을 신뢰한 황호가 유선에게 말해 논의 자체를 없애버렸습니다. 무당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순간...
(일단 강유의 생각대로라면) 강유는 답중에서 적을 막고, 음평으로 오는 적도 그쪽의 지원군과 같이 막아내며, 한중 방면에서도 양안관구에 충원된 병력으로 버티는게 (이론적으로는)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뭐 이젠 의미 없어졌고...
결국 이 상태로 전쟁이 시작됩니다.
3군으로 진군하는 위나라군의 장수들
마침내 도합 18만 대군이 3군으로 나뉘어 가히 장대한 스케일로 진군해오기 시작했습니다. 동쪽 방면에서 종회가 이끄는 주력군이 왕함이 지키는 낙성, 장빈이 지키는 한성, 장서와 부첨이 지키는 관성, 즉 양안관구를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서쪽 방면에서도 숙명의 맞수, 등애와 강유의 교전이 펼쳐집니다. 한편 이 무렵이 되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성도에서는 지원군을 파견합니다. 요화는 음평을 향해 나아가고, 장익과 동궐은 동쪽 한중 방면으로 나아가 종회의 부대와 싸우는 쪽을 지원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큰 기술이 한번 발생하니...
"나 무가가 아니라 건위(建威) 쪽으로 갈 건데?"
"헐, 레알임?
제갈서 군이 이동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장익과 동궐은 본래 가려던 동쪽 양안관구가 아니라, 음평 방면에서 엉덩이를 깔고 혹시 모르는 변수를 막기 위해 한달이나 죽치고 앉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희대의 삽질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동쪽 방위라인을 신뢰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는데...확실히 방위 라인은 강력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문제가 터지고 맙니다.
몰려드는 위나라의 대군을 막고 있는 3곳의 요충지, 낙성과 한성 그리고 관성(양안관구) 중 낙성과 한성은 종회가 직접 공격을 퍼부어도 요지부동으로 버틸 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우주방어가 지속되고 있었는데, 장서와 부첨이 지키던 관성에서 결국 일이 터지고 맙니다. 그런데 그것도 위나라군이 잘 싸워서가 아니라, 내부에서 사건이 발생한 탓이었습니다.
장서 : "내가 생각해보니까 말이야. 적이 멀리서 왔는데 성만 지키고 있는건 안될것 같애."
부첨 : "저기;; 우리가 명령 받은건 성 지키라는거였는데 나대면 안됨."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나가서 싸워서 공을 세울테니 너님은 성을 지키면서 공을 세우는 거임. 오케바리?"
"괜찮을듯."
....그리고 그렇게 성을 박차고 나간 장서는 싸우기는 개뿔, 적장 호열에게 항복했고, 이 난데없는 사건으로 관성의 수비가 약화된 틈을 타 호열은 부첨을 죽이고 성을 함락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곳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던 종회는 대군을 이끌고 프리패스로 관성을 통과해 꾸역꾸역 진군하게 됩니다.
"안되겠다. 이렇게 답중에서 죽치고 있다가 한중 쪽이 무너지면 큰 일 난다."
그 무렵, 서쪽 전선의 강유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강유는 관성의 함락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일단 중요한 전장인 동쪽 전선을 지키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그러면 비어있는 서쪽은 어찌하려고 했을까 싶은데, 아마도 요화 등의 지원군으로 어떻게 시간을 버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당연히 강유를 붙잡는 임무를 맡고 있던 등애가 호락호락하게 보내줄리는 없었습니다. 등애는 천수태수 왕기, 농서태수 견홍, 금성태수 양흔 등을 파견해 물러나는 강유군의 뒤통수를 끊임없이 위협했습니다. 강유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진군하고 있었지만...
"야, 어디가?"
답중을 지나쳐 퇴각하려면 무조건 지나가야 하는 음평은 이 무렵 위나라군의 작계대로 제갈서군에게 장악된 이후였습니다. 한달이나 이 곳에서 죽치고 있었던 동궐, 장익은 하필 제일 중요한 순간에는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아마도 관성 쪽에서 난리가 나자 결국 동쪽으로 이동한게 아닌가 싶음.)
이렇게 되자 강유는 큰일 나게 되버렸습니다. 서쪽에서는 등애군 3만이 눈에 불을 키고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고, 앞에는 제갈서군 3만이 있습니다. 도합 6만 대군을 상대로 싸움을 걸수도 없고, 설사 직접적인 교전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강유의 발이 묶이는 순간 종회의 10만 대군이 무주공산으로 휩쓸고 다닐 상태입니다. 도무지 각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한참 종회군이 쳐들어오고 있는 동쪽 한중 방면이나, 하다못해 남쪽 검각 쪽으로 이동해야 마땅한 강유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북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북쪽이라면 위나라의 영토. 이게 내 본진 내주고 적 본진 터는 스타크래프트도 아닌데...
그런데 북쪽은 옹주 지역이고, 옹주 자사였던 제갈서는 이 일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강유가 30리를 이동하자 제갈서 역시 밀착 마크 하기 위해 따라붙었습니다. 그런데 30리 정도 북쪽으로 갔던 강유는 대뜸 군사를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려갔습니다.
본래 축구, 농구 같은 스포츠에서도 움직이며 적을 끌어들이고 공간을 만드는 스페이싱은 전술의 기본 개념.
강유군이 방향을 전환해 움직이자 당황한 제갈서군 역시 따라 붙으려 했지만, 조금의 지체도 없이 움직였던 강유군이 좀 더 빨랐습니다. 그렇게 전혀 공간이 없었던 상황에서 공간을 창조한 강유의 기동전에 의해서 촉나라 군은 단 하루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제갈서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포위망을 탈출하게 됩니다.
숨통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6만 대군을 뿌리치고 빠져나온 기적의 기동전을 펼친 강유였지만, 그런 성과도 무색하게 도우러가려고 했던 양안관구 쪽은 이미 함락된 직후였습니다. 그러자 강유는 요화, 동궐, 장익 등과 함께 검각으로 향했습니다. 본래도 천혜의 요새였던데다, 강유의 군대가 살아남아 지키고 있자 종회는 10만 대군을 가지고도 검각에서 발이 묶여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맙니다. 떄문에 회유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지만 당연히 묵살.
일이 이렇게 되자 위나라군의 막대한 대군은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적국의 깊숙한 곳 까지 들어서 있는데, 본국에서 보급하기는 어렵고, 현지에서 먹을것을 구하려 해도 워낙에 대군인지라 한계가 있습니다. 오래 죽치고 있는것도 불가능한데, 만약 여기서 물러난다면 18만 대군을 이끌었던 종회는 물론이거니와 모르긴 몰라도 작전을 강행했던 사마소도 조금은 타격이 불가피할 테고, 위나라 군도 한동안은 큰 군사를 동원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이 난국의 순간에, 일발역전의 패가 아직 남아 있었으니...
"길이 없어? 그러면 길을 만들면 되지!"
등애는 검각 쪽에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음평에서부터 시작해서 무려 700리나 되는 험지를 지나가기로 결심합니다. 사서의 표현을 빌리면 이때의 등애군은 "산을 뚫어서 길을 통과하고, 계곡에 다리를 만들고, 장수고 병사고 할 것 없이 나무를 붙잡고 낭떠러지를 기어올라" 이동했습니다. 길이 너무 험하고 계곡도 깊은데다, 당연한 말이지만 보급도 거의 불가능한 곳이라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했지만 결국 근성으로 등애는 이 길을 돌파하는데 성공합니다.
그야말로 사지를 정면돌파해서 나타난 등애군을 본 후방 수비대장 마막은 놀라서 싸우지도 않고 항복 했습니다. 이때 촉나라군은 모든 전력을 검각의 수비라인에 집중시켰고, 만약 여기서 군사를 뺸다면 종회가 뚫고 올테니 그럴수도 없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서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은 모을 수 있는 모든 전력을 긁어모아 등애군을 한번 격퇴하는 최후의 기염을 토했지만, 다시 전열을 수습한 등애군이 재차 역공을 가하자 급조 전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퇴하고 맙니다.
싸우려고 해도 정말 이제 조금의 여력이 없던 촉나라는 결국 등애에게 항복을 했고, 마침내 촉나라가 멸망하게 됩니다.
염우
그런데 이 무렵, 더 이상 쥐어짜낼 전력이 없는 촉의 최후 전력으로 '대 오나라 수비전선' 의 군단이 있었습니다. 이 곳을 지키는 수비대장이자 촉나라의 우대장군이었던 염우는 부장 나헌을 불렀습니다.
"내가 병력을 이끌고 구원하러 갈테니, 그대는 남아서 이곳을 지키라!"
염우는 2천여 병력을 현지에 남겨두고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떠났습니다. 기록으로만 보면 염우가 군사를 이끌고 갔는지, 얼마를 이끌고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국경 수비대장을 소환했는데, 그 사람이 원펀맨이 아닌 이상에야 병력을 이끌고 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5천명의 병력이 배치된 기록이 있습니다. 즉, 염우는 대략 3천여명 정도의 병력을 이끌고 귀환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3천명... 위나라의 전체 규모를 생각하면 언발에 오줌누기지만, 등애의 군단이 상대라고 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촉나라 최후의 희망이었습니다. 늦지만 않으면 충분히 요긴한 전력이 될 만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촉나라는 이때 망했습니다. 촉이 망하고 나서 오나라는 "이 틈에 땅이나 넒히자"는 심산으로 공격을 했고, 현지에 남아있던 나헌이 "비열한 놈들, 도와주러 온다더니 공격 하냐?" 며 나라가 망했음에도 분전하여 수개월간 적을 막아낸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이런 공적으로 나헌을 촉나라 최후의 명장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런데....정작.... 나헌을 그곳에 두고 갔던 염우는 어디갔나?
수천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무너져가는 촉을 구원하기 위해 달려가던 염우는 이후 그대로 모든 사서에서 기록이 완전히 증발합니다. 싸웠는지, 항복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이후 진나라의 기록에서 염우라는 이름이 한번이라도 언급되면 항복해서 관직 생활을 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텐데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만약 항복하지 않고 싸웠다면, 수천여명의 병력과 교전은 꽤 큰 일일텐데 기록에 분명히 남을텐데 그런 기록도 없습니다.
그냥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염우는 성도로 귀환을 시작한 바로 이 직후부터 사실상 '역사에서 없는 사람' 이 되어버려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변하고 맙니다. 염우 본인에 대해서라던지, 간접적으로라도 언급하는 모든 기록이 이후부터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사라진 겁니다.
그렇다면 염우가 핫바지에 가까운 인물이라 기록에 남길 필요도 없었을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촉의 군사 실력자인 강유는 황호라던지, 제갈첨이라던지 개인적, 정책적으로 대립하는 상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강유의 반대파들이 강유 대신 그 자리에 앉히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염우였습니다. 즉 능력은 둘째치고 상당한 군부 내의 명망가라는 이야기인데, 진수가 그런 염우를 모를리가 없습니다.
그런 군부의 실력자인 동시에 수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있던 사람은, 대체 어디로 갔던 것인가...
가능성 1. 항복은 했다. 항복 했는데, 종회와 강유의 반란에 휘말려 죽었다. (가장 그럴듯한 상황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진수는 왜 그런 기록을 안남겼을까?)
가능성 2. 군사 이끌고 가다가 이미 늦어서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 틀렸다고 생각하고 군대 해산 시켰다. 염우는 위나라군이 장악한 성도에 가봐야 포로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잠적.
가능성 3. 두번째 설과 마찬가지로 이미 늦어버린 염우.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는데 동요한 부대 내에서 염우는 죽여버리고 시체는 들판이나 강에 던져버리고 자신들은 뿔뿔이 흩어짐.
가능성 4. 덜렁이라서 길을 잃어버린 염우. 목적지였던 성도로 가지도 못하고 엄한 첩첩산중으로 향하고 염우와 그 부대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소년들처럼 이후 사람들의 세간에서 사라진다.
가능성 5. 성도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던 염우. 그런 염우를 대기권 너머에서 원시문명 관찰을 위해 머물고 있던 외계 문명 생명체가 포착한다. 염우와 그 부하들을 지구문명 연구의 마루타로 점찍은 외계문명 생물체. 그대로 외계인 납치를 당해 끌려가 제 5 항성계로 사라지고 만다.
가능성 6. 성도를 구하러 가던 중 갑자기 벼락같은 계시를 받고 해적왕으로서의 소질을 각성한 염우. 그는 부하들을 설득해서 더 없이 먼 길을 나가 먼 바다로 나아간다. 배를 만들고 드넒은 남중국해로 몸을 던진 염우와 그 일행. 그들의 모험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가능성 7. 먼 바다로 나아가 대항해를 거쳐 중남미에 도착한 염우와 그 부하들. 그들은 각각 멕시코의 조상 및 아즈텍과 잉카 문명을 건설하는 시조가 되었다. 아메리카로 가던 중 한국에 잠깐 들린 그들이 한국인, 한류에 물들고 그 한류가 아메리카에 전파되면서 한민족의 참 역사가 멕시코에서 이어지게 되었다.
가능성 8. 성도로 가던 중 이세계로 진입하는 문을 발견한 염우와 그 부하들. 차원을 넘어온 그들 앞에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찬란한 수천년 중화문명의 국.뽕을 미개한 이세계 주민들에게 베풀어주는 염우와 그 부하들. 그들은 이윽고 신성 촉 제국을 건설한다.
"선주이시여, 승상이시여! 우리들의 촉한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촉한은 이 세계에서 이어집니다!"
"아니 그러니까 결국 염우는 어디로 갔다는 거야?"
염우.... 그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수많은 떡밥이나 의견 교환이 넘쳐나는 삼국지 후반부의 사건이라 세세하게 파고들면 이야깃거리는 훨씬 많겠지만, 간략하게 살펴본 대략적인 양상은 이와 같습니다.
여러모로 볼떄, 삼국시대의 여러 전투들 중에서도 규모, 그리고 드라마틱함에 있어서도 꽤 흥미로운 전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자나 방어자나 명확한 대전략이 있었고, 둘 다 실전에서는 그게 조금씩 엇나가며 꼬여갔으며, 그 상황을 타개하는 기책에 기책,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 싸움이었으니까요.
꼭 삼국지가 아니라도, 대체로 전투에 대한 기록 양상이 간결하고 담백한 중국 고대 사서에 기록된 전역들 중에서도 이 정도면 꽤 다채로운 양상의 싸움 아닌가 싶네요.
요약 :
산으로간 마속은 xx왕이 되고
산으로간 등애는 등산왕이ㆍㆍㆍㆍ
[리플수정]왕 이렇게 다시 보니까 흥미진진하네요 등애가 단순히 험지를 뚫어서 점령한걸로만 읽었는데 강유랑 종회 등등 전략적인 모습이 많이 보이네요
정성글 감사합니다
아 진중한 역사물 장르가 갑자기 SF 환단고기로 .. ㄲㄲㄲ
아... 염우ㅋㅋㅋ 진지하게 읽고있는데 갑자기 코메디가ㅋㅋㅋ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이시기 공방전볼때마다 강유라는 인물이 미스테리네요. 위나라출신인데 죽기전까지 촉에 충성하는...
촉에게는 안좋은 if가 다 몰려서 터진 느낌...
물론 거기에는 요직에 앉아 있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무능한 넘들이었다는게 문제였죠
조금만 버텼으면 멸망까지는 안갔을텐데...
코박죽,어그로가 넘치는 불펜에도 이런글이 ㅋ
yawny// 너무 역사다큐처럼 진지할 필욘 없죠
신불해님은 선추천
염우는 진짜;;;호제만큼이나 미스테리
그나저나 그루시는 어디있냐 ㅋㅋㅋㅋㅋㅋ 아 뿜었어요
염우의 임팩트가 글을 지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불해님은 닥추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강유를 두려워할만한 이유는 있었던듯...
이런 좋은 글에 말머리 뻘글로 달아야하다니...하루 빨리 [역사] 말머리가 생겨야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확실히 촉 멸망은 ..... 나라가 얼마나 썩으면 그래 중요한 길목마다 저런 막장인재들만 배치해놨는지 씁쓸하네요.
혹자는 저 마막, 염우같은 인물들만 욕하는데
뒤집어놓고 보면 그렇게 중요한 길목에 배치한 인사가 그모양 그꼴이었단거니..
인재가 얼마나 없었으면... 유비가 오 정벌에서 신진무장들을 날려버리지만 않았어도 ㅜㅜ
ㅋㅋㅋㅋㅋ 재밌네요 ㅎㅎ
추천했습니다. 역시 망하려면 모든 우주의 기운이 모여야 하는 거네요. 저기서 등애가 그렇게 오는 게 가능할 줄이야...
역시 나라가 망하는데에는 이유가있습니다........왕부터 멍청하니 밑에 관료까지 ........
정성이 대단하십니다
신불해님 글은 가끔 검색해서 쭉 읽어보긴 하는데 이번 역사 역시 재밌습니다
굿입니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와 추천이요 ㅋㅋ
우리도 이번에 홍가 뽑았으면 3연타석으로 망해서 진짜로 망했을? 망할? 지도....
정말 즐겁게 읽었습니다!! 염우는 과연....
결국 이모든문제의원인은 관우가 잘못한거.
사천지방 정권의 한계죠.
유선 재위기간의 40년이나 되는데, 유비가 날려버린 인재타령하기에는 40년 동안 뭐하고 있었냐는 말이 나오죠.
애초에 지방정권이라 인재풀 자체가 좁았기 때문에 결국 멸망으로....
어차피 등애나 종회가 실패한다고 해도 위나라는 같은 전력을 몇번씩 동원가능하지만,
촉나라는 그게 안되죠. 수세에 몰린 이상 끝장인 셈.
과누가 잘몬핸네 !!
은거 가능성이 젤 높다고 봐야겠죠?
항복했으면 아무래도 기록이 있겠고...
와 정말 재미있네요 ㅋㅋ
[리플수정]촉 말기의 인재풀을 보면 두산의 계투진같다는 생각이...
노장들만 제 몫을 하고 새로운 얼굴들은 키워내지 못하고...
역시 비선실세가 ㄷㄷ
로그인도 안하고 보다가 이글 보고 추천박으려고 로그인 했네요. 재밌게 보고 갑니다
재밌게 잘 읽다가 ㅋㅋㅋ 기승전염우 ㅎㅎㅎ
근데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는건 결국 싸우다 죽거나 투항했거나의 테크가 아니라 그냥 가다가 촉 멸망 소식 접해듣고 군 해산후 본인도 은거 혹은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자!! 라고 하고 진격하다가 너 혼자 죽어라!! 라고 외치는 부장이나 다른 군사들에게 죽었을 가능성이...
근데 보통 지휘하는 장수를 배반하고 목을 베는 경우 적국에 가져다 바치면 포상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기록조차 없는걸 보면 그냥 부대 해산 시키고 본인도 고향이나 이런데로 도망쳐서 은거했다고 보는게 제일 가능성이 높아보이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신불해님 글은 일단 추천부터 ~
궁금한게 있는데 왜 서양에 비해 동양은 전투기록이 상세하지 않을까요?
퇴근길에 증말 흥미있게 잘 봤습니다. 책으로 내셔 될듯..
확실히 강유도 인재
잘 읽었습니다 추천 ㄱㄱ
모든일의 원흉은 역시 관우
염우이야기 정말 재밌었네요! 추천 ㅋ
가능성 9. 염우는 시공조아~
가능성 10. 옥천으로 간 염우
와... 역시 신불해님의 글은 믿고 봅니다. +_+
아놔꼰다 // 저도 첫머리에서 그게 의문스럽더군요. 세계 여러민족중 중국인들만큼이나 기록덕후가 없는데... 수많은 전쟁때문에 다 사라져버린걸까요?
제가 요즘 전문세듣는데.. 들으면서 허석사가 신불해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독했습니다 추천. .혹시 97년도쯤 하이텔삼국지클럽하신분들있나요? 그때 모임도나가고ㅋ 그랬었는데
아 진짜 잘봤습니다. 예전에 봤을땐 그냥 강유 vs 등애 대결 구도에 종회는 그냥 검각에 막혀서 이도저도 못하는 것만 알았는데 새로운 걸 좀 알아가네요.
강유가 저렇게까지 했는데 날아온게 항복 명령
강유나 등애나 진짜 개쩌네요 당대 최고의 명장들 답습니다
정성들인 글 잘 읽었습니다.
염우군의 기록이 더 이상 없는 것은, 그냥 위나라 군대와 교전이 없었다는 것이죠. 항복했는데 염우는 나이가 많아서 더이상 위나라에서 활약이 없거나, 스스로 군대해산하고 도망갔거나, 염우가 통제력을 잃고 군대가 해산되었을 거라고 봅니다.
당시에 촉나라도 전문적인 사관이 없었다고 보고들 있습니다. 사관 조직이 있었던 것은 위나라 정도. 그러니, 위나라와 싸웠거나 강유나 유선처럼 상당히 중요한 인물의 동향만 (촉에 싸우러 간 부대들에 의해) 보고되었고, 나머지 인물과 영역은 그런 보고가 없었을 뿐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촉한은 망할 때가 되어서 망한 겁니다.
촉한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유비의 '유훈통치'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북한과 그런 면에서 상당히 비슷하죠.
'유훈통치'를 대표하는 명문장이 바로 '출사표'죠. 그 출사표가 당시 촉한을 장악한 유비 신하들의 대표이념이었고, 그들이 나이가 먹고 시간이 지나도 '강유'를 대표로하여 계속 북벌을 실시할 수 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자기들이 정권과 군권에 참여하는 존재이유니까요.
하지만, 점차 익주에서 태어나 익주에서 어른이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들은 왜 절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위나라와 싸워야 되는 지 이해 못하게 되었으며, 그런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촉나라가 위나라의 대군으로 위태한 상홍이 되자, 앞장 서서 편한길을 선택한 겁니다. 삼국지팬으로서는 안타깝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었죠.
유비를 따라서 방랑하다가 형주에서 기반을 닦고, 형주에서 익주로 들어올 때쯤에 젊은 초급장교였던 사람들이, 나중에 늙어서 죽거나 군에서 숫자가 적어졌을 때, 바로 그 때가 자연스럽게 촉한(유비정권)의 마지막이 되었던 거라고 봅니다.
좋지 않다는 것은 아니구요, 항상 진중한 문체로 훌륭한 글을 써주셨던 신불해님이 개그 코드를 가미하셔서 좀 놀랐습니다. ^^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미미한 역사덕후 드림-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나관중은 대체 어떤 사람이였을지...
등애도 자기가 촉을 멸망시킬 수 있다고 생각 안 했죠. 등애의 전략적 목적은 어디까지는 자신의 군대가 갑자기 검각 후방에 나타나면 검각의 수비군중 상당수를 성도방어를 위해 돌릴 수 밖에 없고, 그러면 종회가 방어력이 약해진 검각을 뚫고 성도로 맹진격할 수 있다는 것이 었죠.
등애는 이렇게 종회에게 진언을 했으나, 종회는 "멋진(뷰웅신같은) 생각이네. 잘 해보소.ㄲㄲㄲ" 라며 등애의 진언을 상콤히 씹었고, 등애는 이를 빠득빠득 갈며 산을 넘었죠. 사실 마천령을 넘더라도 보급도 안 되고, 지칠대로 지친 등애의 군사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는데, 마천령을 넘고 처음 마주친 성인 강유성의 성주 마막이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는 바람에 등애는 아무 고생도 없이 촉내에 버젓한 거점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촉은 망국의 길로 가게 되죠.
사실 마막이 결사 항전하고 성도의 제갈첨이 증원군을 끌고 왔더라면 등애군은 그대로 무너졌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죠. 그 당시 검각의 종회군은 공세 한계에 부딪혀 퇴각을 고려하고 있었고, 강유는 종회가 물러다면 바로 반격에 나서 한중을 탈환하려고 계획중이어서 마막의 항복은 촉입장에서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죠.
아... 숨도 안쉬고 읽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저 만화는 무슨 책인지요...?
재밌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검각이 건재했고, 성도에서 농성전을 벌이면 충분히 버틸 수 있었는데 그냥 항복하고 말았던 것을 보면서 유장이 유비에게 성도를 넘기던 모습이 오버랩이 되죠. 역시 역사는 돌고 도는 것. ㅎ
재밌게 잘 읽었어요.
등애가 1등공신이죠
와 정성이..... 짤방에서 터지네요 잘봤습니다
역시 노스페이스 등애
아침부터 일 재껴두고 정독했네요 너무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