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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조선시대 여자 기생들의 명단, 관비안.jpg

 


조선시대 여자 노비의 이름을 기록한 관비안(官婢案)입니다.


조선 시대의 기녀란 원칙적으로 관비만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므로 


소위 말하는 기적(妓籍)에 오른다고 할때, 


기적은 관비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관비는 한번 기적에 오르면 관비 신세로 전락해 


면역(免役:늙어서 역을 면제받음)할 때까지 국가에 봉사해야 합니다.


태생이 관비의 딸이라서 관비안에 오르기도 하고, 


부모가 관가에 팔아서 관비가 되기도 하며,


음란한 여성을 관비로 묶어 두기도 했고,


역모로 몰린 사대부가의 여자들이 관비가 되기도 했습니다. 



건륭 58년 6월이라는 기록으로 볼때


이 관비안은 정조 임금 연간인 


1793년 6월에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겠습니다. 


관비들 세계에도 계급이 있었나 봅니다.  


수비(首婢:우두머리 관비) '계화(桂花)'의 이름이 보입니다. 


다른 관비들 보다 한뼘을 높여 적은 것을 통해


우두머리 기생인 '계화'의 권위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뒤로 '귀단', '초선', '도화' , '계주선', '영산월'이란 이름이 보입니다.


죄다, 기생들의 이름입니다. 




관비의 업은 그리 즐겁지 않았나 봅니다. 
'진례', '옥대', '초대'라는 종들은 도망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노비들이 천역에서 빠져나오는 수단으로 
가장 많이 선택한 방법은 다름아닌 '도망(逃亡)'이었습니다.
비록 불법이긴 했으나, 가장 쉬운 길이기도 했지요. 
게다가 이때는 정조 임금 시기라 노비 추쇄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추노꾼이 사라졌으므로 도망가도 잡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죠. 
정조 임금은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나라에 예속된 관노비 수 만명를 해방시킬 계획을 세웠고
 
아들인 순조 임금이 1801년(순조 1년) 그 계획을 실현했지요. 
하지만, 합법도 있었습니다.
관비안을 보면, '영단'이라는 관비는 
승정원 서리 '김지주'라는 사람이 상으로 받아 
면천시켜주었다는 기록이 적혀 있습니다. 
'취임'이는 한원군에게 구사(丘史: 공신들에게 딸린 노비)로 상급하며
면천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구사'라는 직책도 관노비의 일종인데 
구사가 되었다고 노비의 역을 면천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게다가 한원군이라는 사람은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양무 2등 공신 '이만유'로
정조 임금때엔 이미 죽고 사라진 인물입니다.  
죽은 공신에게 구사를 상으로 줄 이유가 없습니다. 
간교한 서울의 서리들이 공문을 위조해 관비를 면천시켜 
빼돌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일들이 간혹 발행했다는 사실은 승정원 일기에도 실려 있습니다. 

'상화'라는 관비는 상방(尙房:상의원)의 공비로 차출되어 
탈급(적을 옮김)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옷을 만드는 상방의 침선비로 뽑혀, 서울로 올라 간 겁니다. 
이런 관비를 '상방기생'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육애'라는 관비는 장악원의 악공으로 서울로 올라가는 관계로 
원납(願納:돈을 받침)하여 면천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값을 지불한 육애는 합법적으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서울로 올라가는 관비들은 
비교적 자색이 뛰어난 편이었다고 합니다. 

'운섬'이라는 기생은 기해년 군기(軍器)를 보수하는데 


돈을 냈기에 면천시켜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관비 '춘화(or 도화?)'는 임인년 6월에 원납(願納:돈을 받침)하여 면천되었습니다.   


'인섬'이는 경자년에 도망쳤고, 


'종섬'이는 혜민서 의녀로 차출되어 서울로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섬이 역시 자색이 훌륭했나봅니다. 


그런데 '종섬'이는 승정원 일기에도 그 이름이 보입니다. 


동년 5월에 의녀에서 탈급되어 


고향으로 내려가길 원한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종섬'이는 서울을 떠나 정든 고향으로 돌아왔으리라 짐작 됩니다. 


아마도 서울생활이 고달팠나 봅니다.


서울로 올라간 지방의 관비들 가운데 


많은 수가 화려한 서울생활에 익숙해져 


그대로 눌러 앉기도 했다고 하니 


종섬이는 서울에서 고생한 게 분명합니다. 


이런 관비안은 희귀한 지방 공문서로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문서는 일정기간 보관하고 


폐기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배접지로 쓰이기도 했으며, 이면지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조선후기에 빈번했던 도망노비의 실태와 


돈을 주고 자유를 사던 관비의 생생한 모습. 


그리고 서울과 지방을 바쁘게 오가던 관비들의 


공무수행 사실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어서 


이 관비안은 역사적 사료 가치가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댓글
  • 커숑 2017/06/12 01:39

    너무 재밌네요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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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빨맨 2017/06/12 01:41

    조선은 기록덕후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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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tang5.0 2017/06/12 01:48

    와 글 재미나게 쓰시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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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채길 2017/06/12 01:49

    [리플수정]조상들의 생생한 삶을 기록한 정보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많이 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인터넷에 정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왕조실록도 중요한 기록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정보들도 역사의 중요한 기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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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둥이처럼 2017/06/12 01:49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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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6/12 01:51

    커숑//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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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6/12 01:53

    운빨맨// 기록의 나라라 역사의 빛과 그림자가 확연히 구분되죠. 많은 칭찬과 비난이 자자한 시대가 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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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6/12 01:54

    mustang5.0// 감사해요. 이번엔 신경 좀 썼습니다. 이전엔 시간이 없어서 너무 오탈자도 많고 간략했지만 일요일이라 시간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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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6/12 01:54

    유채길// 네, 저도 이런 미시사를 좋아합니다. 거시사도 좋지만 서민들의 생생한 이야기인 미시사도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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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6/12 01:54

    쌍둥이처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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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추바사삭 2017/06/12 01:57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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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추바사삭 2017/06/12 01:58

    관비들은 돈을 어떻게 벌어서 면천했을까요? 노비에게 돈을 지급했을것 같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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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채길 2017/06/12 02:26

    추천은 했습니다만, 이글 보다는 줄간격을 줄이고, 한줄을 더 길게 써서
    마우스 스크롤을 줄일 수 있는 글이었다면 더 좋았을거 같네요. 그거 빼고는
    정말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좋은 글입니다. 이런 글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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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6/12 03:14

    [리플수정]조선후기 들어서 노역엔 무급개념이 사라집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역을 지면 급여를 주지 않았다고 여기는 데요. 고문서를 살펴보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노비들도 노역의 댓가를 받았습니다. 관비들은 수청, 의복제작, 심부름 등등에 따른 역의 댓가를 금전이나 면포 또는 현물을 받았습니다. 남자노비들도 마찬가지구요. 조선후기엔 팁(팁이라쓰고 뇌물이라 읽어도 무방합니다.) 개념도 있어서 잡역을 시킬때 팁을 안주면 절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돈이 최고인 세상이었습니다. 돈을 안주면 원망이 가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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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6/12 03:17

    유채길// 아. 그런가요? 전 줄간격을 띄우는 게 가독성에 좋은 줄 알아서요. 앞으로는 줄간격을 줄이고 한줄로 길게 쓰도록 할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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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파이팅 2017/06/12 14:45

    닥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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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으른카페 2017/06/12 15:37

    아니, 여보세요.....
    도데체 뭐 하는 분이세요?
    이 디테일은 도데체 뭐죠??? ㄷ ㄷ ㄷ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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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hnexen 2017/06/12 15:41

    진짜 각종 기록에 참 충실한 조선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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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슬두유 2017/06/12 16:32

    와 이런거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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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ajra 2017/06/12 16:55

    추천하고 스크랩 했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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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댄정원 2017/06/12 17:20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역모에 걸린 죄인의 아내나 딸이 관비가 되었다고 할 때 관청에서 고된 노역을 했겠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기생을 만들어 버린 것이었군요. 강제로 성 접대를 하도록.. 대부분 고관의 가족들이었을텐데 당사자들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겠네요. 죽이는 것보다 더 심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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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말코비치 2017/06/12 17:56

    관비 즉, 관기는 그래도 돈벌기가 쉬웠을 것 같네요.
    열심히 모아서 면천할 각오로 악착같이 모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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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달장효조 2017/06/12 18:25

    음탕한 여자를 관비로 ㅋㅋ 기준이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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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경기장 2017/06/12 18:34

    전 이런 띄어쓰기 참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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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蓬川 2017/06/12 18:44

    군곡(軍哭)이 아니라 군기(軍器)입니다. 병장기 수리 비용을 원납전(자진 의연)으로 내고 면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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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蓬川 2017/06/12 18:47

    [리플수정]마지막 부분에 '춘화'도 '도화(桃花)'로 수정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도화는 보역청에도 원납전을 내고 인신(관용 도장)을 만들 때도 원납전을 냈는데 면천되었다는 기록이 안보이네요. 아래 부분이 짤린 건지, 원납전은 원납전대로 내고 면천을 받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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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6/12 19:11

    [리플수정]蓬川// 군기가 맞네요.. 감사합니다! 착오를 봐줄 분이 계시면 환영합니다. 저도 역사 공부중이라 배워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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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6/12 19:19

    [리플수정]蓬川//복숭아 '도'자의 이체와 참죽나무 '춘' 이체 자로 모두 볼 수 있을거 같습니다 실물을 봐야 확연히 알듯하네요. 감사합니다. 보역청에 원납전을 내었다가 임인년 6월 관가에서 인신을 만드는 작업할 때 다시 원납하여 면천한 거 같습니다. 아랫부분은 잘린 부분이라 저도 확인이 불가능하네요. 죄송합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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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6/12 19:32

    [리플수정]본래 평양이나 전주와 같이 큰고을의 경우, 관기안과 관비안을 따로 만드는 데 이 관비안은 작은 군현의 관비안이라 주탕비(酒湯婢:수청을 드는 관비)와 수급비(水汲婢: 물을 긷는 등의 잡일 하는 관비)를 모두 기재한 형식인거 같습니다. 관기의 이름과 수급비의 이름이 같이 들어 있어 그리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관비라고 해서 관청에서 1년 365일 지내는 게 아니라, 관비들이 번을 서가며 관청에 들어와 일을 했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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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6/12 19:42

    [리플수정]물댄정원// 정약용 조카인 정명련(정난주)의 경우,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남편인 황사영에 의해 연좌되었습니다. 제주 대정현 관비로 예속되었지만 반가의 여자라 관에서 일을 하지 않고 김석구라는 제주 토호의 집에서 김석구 아들을 양육하는 유모로 지냈다고 해요. 가끔 술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하니, 사대부가 출신으로 관비로 전락한 경우엔 편의를 봐준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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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6/12 19:45

    [리플수정]타달장효조// 사적으로 매음하거나, 정욕때문에 남성을 찾아다니는 여성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풍기를 단속하기 위해, 조정에서 이런 여성을 찾아내 관비로 묶어놓은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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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블킹 2017/06/12 19:47

    줄 간격 지금이 좋은 대요 너무 빼곡하면 읽기 싫어 집니다 적당히 뛰어 쓰기와 건너 쓰기 줄넘김 지금이 읽기 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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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동구유지 2017/06/12 20:01

    [리플수정]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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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rco 2017/06/12 20:26

    왠지 저 당시의 삶이 생생히 와닿는듯 합니다 ㅠ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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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시엘니 2017/06/12 21:06

    개꿀잼이네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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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Woods 2017/06/12 21:53

    이런 글 너무 좋네요.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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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llsOn 2017/06/12 21:56

    불펜에서 이런 글이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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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efable 2017/06/12 22:18

    컴퓨터로 보면 지금 줄간격이 좋고 전화기로 보면 좀 넓을 듯 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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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arCAT 2017/06/12 22:37

    모처럼 생생한 역사 컨텐츠를 접하네요. 뿌듯하게 잘 읽었습니다. 진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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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블리긍정 2017/06/12 23:26

    와 감사합니다. 너무도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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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포드 2017/06/12 23:57

    모바일로 보는데 줄간격 줄길이가 적당해서 가독성이 좋네요
    내용이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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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atime 2017/06/13 00:58

    글의 내용이 머릿 속에 아주 생생하게 그려지게끔 글을 잘 쓰셨네요 정말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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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atime 2017/06/13 00:59

    종섬이에게 연민이 느껴지고 정이 가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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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드리트 2017/06/13 08:39

    리얼 미개 그 자체. 오랑캐타령하던 중국에서도 사라진지 수백년이던 천민계급 대물림을 1700년대에도 하고 있던 자칭 문명국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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