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부터 카푸어, 빌라 사는 고급차 소유자가 화제길래 저도 떡밥 물어 봅니다.
2021년 5월에 끄적여 놨던 글이네요
다소 긴 글 미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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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비싼 차를 사는 가난한 이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며칠 전, 가족과 함께 전기 래이를 타고 동네 마실을 나갔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5월의 토요일 아침의 동네 마실은 참 상쾌했다.
이 동네에 이사온지도 5년 언저리인데 아직 못가본 곳이 많다.
오눌 간 곳도 집과 가깝지만 아직 못가본 곳 중 한 곳이다.
추계 예술대학교와 천연동 뜨란채 사이에 낀 동네.
동네가 꽤 높은 곳에 있는지 진입로가 상당한 언덕이다.
동네에 들어서자 마자 눈 앞에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넘어간다는 동요가 생각나는 장면이 펼쳐졌다.
잘 차려입으신 할머니가 구부러진 허리를 숙이고 가파른 동네 언덕을 올라가시는 모습을 보며 내 안에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울 엄마도 무릎이랑 허리가 아프신데'
아내와 나는 차에서 내려 아이의 손을 잡고 할머니가 올라가신 언덕길을 따라 올라 그 위에 앉은 동네를 걸었다.
70년대에서 멈춘듯한 낡은 주택들 너머로 도심의 빌딩들이 대비되며 우리 눈에 들어왔다.
'참 아름답다'
멋진 뷰가 인상적인 짧은 산책을 마치고 차로 돌아와 언덕을 따라 주차된 차들을 조심스레 피해가며 내려갔다.
이제 동네의 가운데쯤이려나,
어깨 정도 내려온 삼각김밥 모양의, 머리에 끝단이 다 바스라질 것 처럼 손상된 검은 파마 머리를 한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한쪽 무릎이 바깥쪽으로 심하게 휜 그녀는 골목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최초 공황발작 이후로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그 후유증에서 못벗어나 힘들어하는 내게 그녀의 모습이 유독 진하게 다가왔다.
그녀의 운동을 방해하지 않으려 우린 다른 골목으로 차를 돌렸다.
'부디 건강하시길'
가난의 냄새가 진득하니 묻어나는 동네.
그 와중에 골목에 세워진 차들에는 가난이 없었다.
최신 대형 suv도 있었고 중형 suv는 즐비했으며
종종 외제차도 보였다.
어릴적 나는 가난한 이들이 재산이나 소득에 비해 과하게 비싼 차를 구매하는데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40대 무렵부터인가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지 궁금해졌다.
그들의 선택을 이해고 싶어진 거랄까.
나와 다른 선택을 하는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재정상태를 불안정하게 하는 선택에 대해 여러 가설들을 세워 보았으나
만족할 만큼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 마실에서 그 답을 얻은 거 같다.
오늘, 그들의 삶이 내게 더 가까이 느껴지며 이런 생각이 스쳤다.
'가난을 굳이 밖에 까지 가져가서 나 고통스러워요 하고 남에게 알릴 이유가 없겠구나. 자식과 가족들이 밖에서라도 가난하지 않게 보이게 하는게 사랑일 수 있겠구나.'
사실, 가난은 참 고통스럽고 부끄럽기끼지 하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고 내가 접한 많은 이들에게 그랬다.
매일 돈 걱정 하는 어머니에게 참고서 사게 돈딜라고 말하는 건 너무 죄송한 일이었고
옷이 없어 친구들이 버린 추리닝을 주워다 평상복으로 입고 다니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가난이 부끄럽지 않은 것이라는 말은 일부 고매한 인격에 도달하신 현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좋은 차는 가난의 고통과 부끄러움을 잠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어둘 수 있게 해준다.
적어도 차를 몰고 나온 이곳에는 내 가난을 알리지 않을 뿐 아니라
가난해 보인다는 이유로 타인을 무시하는 이들(이런 사람은 실제로 상당히 자주 접할 수 있다)의 시선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이 느낌이 가난한 이들에겐 참 소중하겠다 싶다.
미래의 헹복과 현재의 행복.
둘 다 가질 수 없다면 누군가는 현재의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인데
자연스런 행복 추구를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봐 온 것이다.
이 나이 먹도록 참 속이 얕았다 싶다.
이번 동네 마실 덕에 그들의 과한 차 소비를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래 사진은 글에 적은 동네에서 조금 빗겨난 옆 동네 언덕 뷰.
https://cohabe.com/sisa/2528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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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건 대부분 세입자인 걸로 알아요.
노후된 재개발 예상 지역들이 그러듯요.
세입자들의 삶을 보고 왔습니다.
그렇군요.
최신 대형 suv를 살 수 있는 가난함. 이제 가난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조금 달라졌나봅니다.
가난에 대해 이해할 때는
절대적 개념도 상대적 개념도 다 중요한 거 같아요.
중고 외제차 가격은 국산 신차보다 훨씬 싼 경우도 많아서..
자기 맘이죠 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