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군대의 무서움을 깨달은 나라.history

로마 공화정은 우리가 일견 보기에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는 나라다.

 

정부수반들이 거의 모두 다 군대를 이끄는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공화정부가 붕괴되지 않고 수백년 동안 공화정의 원칙이 지켜지며 현대 시민사회와 시민적 자유의 정신적 선조이자 역사적 사례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보기에 "강력하고 무자비한 전쟁기계, 군사국가"라는 이미지를 가진 다른 고대 국가인 스파르타가 시민적 자유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완벽한 병영국가 뿅뿅 집단이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할수 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것들이 기여했을수 있지만, 그 중에 크게 한몫을 하는 것은 "포메리움"이라는 사법체계이다.

 

(늑대 젓 빠는것좀 봐라. 분발해라 상상력이 빈곤한 유게이들아.)

 

고대 로마의 건국신화에 따르면 두 형제가, 로물루스와 레무스, 도시를 세우기로 하였다.

 

다만 이때 후대의 로마를 구성하는 7개 언덕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세우기로는 합의되었지만, 어느 언덕에 세울지는 합의되지가 않았다.

 

이는 추종자들까지 딱 반반 무마니로 나누는 논쟁으로 격화되었고, 결국 두 그룹이 각자 자기가 도시를 세우고자 하던 언덕에 도시를 세우기로 한다.

 

("형 참호는 멍청해!!!")

 

그러다가 로물루스가 자기 언덕 주변에 참호를 파기 시작하자, 레무스가 추종자들을 이끌고 로물루스의 언덕으로 쳐들어갔다.

 

(으앙 죽음) 

 

싸움이 벌어졌고, 전설에 따르면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직접 죽였다고 한다. 그 이후 로물루스가 도시를 세운 언덕이 로마의 기원이 된다.

 

(참고로 저 언덕은 팔레타인 언덕으로 불리며 로마의 여의도라고 불릴만한 곳이 된다.)

 

 

 

이게 실제로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신화인 만큼 아예 일어나지 않았거나, 크나큰 왜곡이 가해졌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후대의 로마인들이 이 신화의 이야기를 정당화하는 제도를 자신들의 사법 체계에 공식화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법적인) 로마 시의 경계를 정하는 "포메리움"이다.

 

 

일단 포메리움은 "로마시의 경계"인 만큼 처음에는 도시를 모두 감싸는 성벽과 같은 모양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의 성장속도가 포메리움을 다시 재설정하는 속도 보다 훨씬 더 빨라졌고, 나중에 가면서는 로마의 특정 지역을 둘러싸는 가상의 성벽으로 대체된다.

 

 

나중에 가면 포메리움은 성벽과 참호가 아니라 멀쩡한 건물들 사이에 임의로 비워진 공터에 표지로서 종교적 상징물들이 세워지고, 그 다음 사람들이 통행하기 위해 종교적 예식을 거쳐서 세워진 관문들이 중간중간 세워진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렇게 생긴것이다 보니까, 로마처럼 기록문명이 잘 발달된 문명의 "사법적 경계"는 지금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것은, 이 "포메리움"이 로마 공화정 정부의 경계로서 기능했다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인것은 "태초의 포메리움을 넘은것은 로마에 대한 침략행위이다, 따라서 레무스를 죽인것은 정당한 행위였다"라고 정당화하였고, 

다르게 말하면 "현재의 포메리움"을 침범하는 행위 역시 로마에 대한 침략행위로 즉각적인 사형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한 민간정부의 경계로서 포메리움의 존재는 법적, 정치적 의미에서 "로마시"는 포메리움 안에서만 기능할수 있었고, 

실제로 거의 모든 사법, 입법, 행정활동들이 포메리움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포메리움에서 선출직 정부수반들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

 

호민관 같은 직위는 즉각적으로 법을 위반하게 된다. 포메리움을 반영하여 법적으로 로마시를 떠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

 

반면에 집정관과 법무관들은 즉각적으로 민간정부의 수반에서 "선전포고를 할 권한과 군사지휘권을 가진 장군"으로 전환되게 된다.

 

 

다르게 말하면 집정관과 법무관이 포메리움 바깓에서 벌이는 모든 행위는 "합법적인 군사행위"로 인정된다는 뜻이다.

 

즉, 집정관과 법무관은 포메리움 바깓에서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얼마든지 사람들을 죽이고 살리는 결정을 내릴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권한의 일환으로서, 집정관과 법무관 등은 사법적 면책특권을 가지고 있다.)

 

 

"아니 잠깐. 그러면 집정관이 아무나 처죽이면 어떻게 되는겨?"라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앞서 말했듯이 로마 정부는 포메리움 안에만 존재한다. 원로원과 사회지도층 대부분, 대부분의 행정청사들이 전부 포메리움 안에만 존재하며, 어떤 군대가 정부의 요인들과 건물들을 공격하려면 포메리움을 넘어서 "로마를 침공"해야 된다.

 

거기에다가, 일단 임기가 끝나면 집정관과 법무관의 모든 행위는 사법적 기소대상이 된다.

 

즉, 집정관이 합법적인 군사 지휘권은 포메리움 안에서 발휘될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로마 정부를 위협/공격하고 시민들의 반발을 제압할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특성은 멀리 원정군을 지휘하던 (다르게 말하면 가장 잘 정비되고 잘 훈련된 대량의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과 총독들에게 더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이들의 합법적 군사 지휘권 역시 포메리움 안에서는 발휘 될수가 없었다.

 

 

단지 발휘되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포메리움을 건너는 순간! 총독 직위와 모든 군사 지휘권과 관련된 공식권한이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4성 장군들이 서울 특별시의 경계를 건너는 순간 강제전역 처리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거기에다가 각 장군들을 구성하는 총독, 집정관, 법무관은 임기가 있고, 정치생명을 이어가려면 꼬박꼬박 선거에 출마하여야 된다.

 

근데 로마의 민간정부는 어디있는가? 포메리움 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군들은 정치생명을 이어가려면 꼬박꼬박 군사지휘권을 반납하고 포메리움 안에 들어와서 입후보 의지를 천명해야만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이 포메리움이 구분하는 군대와 민간의 경계는 단지 공직자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로마 군대의 가장 말단 군단병 조차도, 포메리움을 넘는 순간 즉각적으로 모든 군적이 증발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포메리움 안에서는 어떠한 군사적 활동도, 그를 위한 무기도 허가되지 않았다.

 

 

그러면 "예외 규정"은 무엇일까. 일단 가장 유명한 "독재관"이 있다. 

 

독재관은 공화국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임명되는 임시직으로서, 공화국을 방위하기 위해 "포메리움" 안에서도 군사적 권한을 행사할수 있으며,

 

이를 보여주듯이 독재관의 보좌관들은 의례용 도끼를 휴대(파스케스. 파시즘의 어원)하는 것이 허가되었으며 포메리움 안의 "로마시"에서도 군사작전의 일환으로서 생사여탈을 포함한 모든 초법적 행위를 벌일수 있었다.

 

 

다른 "예외"는 역설적이게도, 로마의 민간정치 행위 중 일부는 포메리움 안에서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핵심 정부수반들을 선출하는 "백인대 회의"가 그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통령 선거는 서울 특별시에서는 절대로 이루어질수 없다는 규정이 있는셈.

 

 

왜냐하면, 백인대 회의라는 말에서 볼수 있듯이, 이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가상의 군사 부대단위"로 나뉘어서 선거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즉, 가상의 군사부대 조차도 포메리움 안에서는 존재할수 없기 때문에, 백인대 회의를 통해 집정관과 법무관이 선출 될때 유권자들이 포메리움 안에 있다면 그것 조차도 로마에 대한 침략행위로 간주될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보통 집정관과 법무관을 선출할때는 포메리움 바깥의 군부대 부지인 "마르스의 벌판"에 모든 유권자들이 집결하여 선거에 참여하였다.

 

이 포메리움은 수백년 동안 "로마 공화국의 군대"가 시민적 자유와 공화정부를 "합법적"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데 크나큰 역할을 하였다.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것과 다르게, 로마 공화국의 시민들은 군대라는 괴물이 민간정부를 침범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잘알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포메리움으로 대표되는 문민통제를 철저히 지켜왔다.

포메리움이 존재하고 공화국의 군대가 포메리움을 신성시하는 자유시민으로 구성된 이상, 그 어떠한 군대도 법적으로 정당하게 로마정부에 어떠한 물리적 위해를 가하기는 커녕 접근할수 조차 없었던 것이다.

 

포메리움은 로마시민들의 문민통제와 법치주의에 대한 뚜렸한 의지이자, 로마의 주권을 표현하는 정치적, 종교적, 법적 상징물로 자리잡았으며, 공화정의 법률과 제도 안에서는 절대로 로마 정부와 그 민간인들을 공격할수 없게하는 강력한 역할을 한것이다.

 

 

포메리움은 형태조차 없는 가상의 성벽에 불과했지만 수백년 동안 수많은 장군들의 정치적 야심이 합법적인 경로로만 표현되도록 제압해냈으며,

결국 로마시민들이 로마의 주권이 아닌 군벌지도자의 카리스마를 추종하는 신민으로 전락하고나서야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