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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복자의 반열에 오른 엘살바도르 민중의 벗들.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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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인공들은 엘살바도르 출신인

예수회 신부 루틸리오 그란데(Rutilio Grande),

72세 노인 마누엘 솔로르사노(Manuel Solorzano)와

16세 소년 넬슨 레무스(Nelson Lemus) 두 평신도 및

 

이탈리아 출신으로 엘살바도르에서 사목한

작은형제회 수사 코스마 스페소토(Cosma Spessott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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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7월 5일,

엘살바도르 엘파이스날에서

빈농 가정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위 짤 가운데)는

 

17세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스페인, 벨기에 등지에서 공부하며 해방신학을 접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새로운 사목방법을 받아들이면서

 

군사정권 치하에 있었던 엘살바도르로

1965년 귀국해 신학교 교수로 일하며

신학생들이 농촌과 도시의 빈민 공동체를 체험하도록 교육했다.

 

 

 

사제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 다른 신학교 교수들과 갈등했던 그란데 신부는

 

1973년 농촌으로 가서 사목활동을 하며

소작농들이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 시달리고

굶주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게 해

농민들이 사제 없이도 자립하도록 했다.

 

 

 

또한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사제들을 탄압하는

엘살바도르 군사정권에 대해서도

"이들은 카인의 씨족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다"며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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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그란데 신부의 활동을

곱게 지켜볼 리 없었던 엘살바도르 군사정권은

1977년 3월 12일,

 

그란데 신부, 마누엘 솔로르사노, 넬슨 레무스가 탄 차량을

군인들이 추격한 뒤 무차별 총격을 가해

그란데 신부는 턱, 목, 허리, 골반 등에 12발의 총알을 맞아 사망했고

솔로르사노는 그란데 신부를 보호하려 몸으로 막았지만 그도 사망했으며

레무스는 총알이 이마를 관통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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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를 접하고 수도에서 달려온 산살바도르 대주교는

그란데 신부(위 짤 오른쪽)가 신학교 시절부터 친구로 지냈던

 오스카 로메로(위 짤 왼쪽에서 오른손을 들어 강복하는 사람)였다.

 

 

당시 대주교로 착좌한 지 3주 밖에 지나지 않았던 로메로 대주교는

오랜 친구가 무참하게 암살당한 것을 보고

군부독재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군사정권에 맞서 대립하다가 3년 뒤 암살당했으며

 

2015년 복자품에 오르고

2018년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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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월 28일,

이탈리아 트레비소에서 태어난

코스마 스페소토 수사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중 작은형제회에 들어가

중국이나 아프리카로 파견되길 희망했지만

1950년 엘살바도르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스페인어를 전혀 하지 못했지만

현지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며

신자들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해

지역 교구 사회에 녹아들려고 노력한 스페소토 수사는

 

자신이 파견되기 20년 전

지진으로 무너진 성당을 재건하고

수백 쌍의 부부가 결혼식을 하지 못한 채 지낸다는 걸 알자

한꺼번에 합동 결혼식을 올리는가 하면

학교와 보건소 건립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등

가난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애썼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을 억압하는 군사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스페소토 수사는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가 암살된 뒤로 더욱 강하게 비난했고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신자들을 위해 봉사하던 중

 

1980년 6월 14일,

성당에서 저녁 미사를 준비하다가

조준 사격으로 암살당했다.

 

 

스페소토 수사는 죽기 전 암살범들을 용서했는데,

병자성사를 준 필리베르토 델 보스코 신부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용서... 용서..." 였다.

 

 

 

 

그란데 신부와 동료 순교자 2위는

2014년 3월 시성성에 시성 청원서가 접수되면서

시성 절차 중 첫 번째 단계인 '하느님의 종'이 되었고

 

2021년 2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들의 죽음을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순교로 인정해

시성 절차 중 두 번째 단계인 '가경자'가 되었다.

 

 

 

 스페소토 수사 역시

2003년 4월 4일 시성성에 시성 청원서가 접수되면서

시성 절차 중 첫 번째 단계인 '하느님의 종'이 되었고

 

2020년 5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스페소토 수사의 죽음을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순교로 인정해

시성 절차 중 두 번째 단계인 '가경자'가 되었다.

 

 

 

세 번째 단계인 '복자'와 네 번째 단계인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대상자에 의한 기적이 일어났음을 각각 공인받아야 하는데

순교자의 경우 순교를 기적으로 간주하여

두 차례의 기적 심사 중 한 번이 면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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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2020년 8월로 예정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일정이 연기된 끝에

2022년 1월 22일,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

살바도르 델 문도 광장에서

위 4명에 대한 시복식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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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을 대리해 시복식을 집전한 사람은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

(위 짤에서 향로를 들고 분향하는 사람)으로,

 

 

성 오스카 로메로 추기경 생전에

오랜 친구이자 동료였으며

 

산살바도르 보좌주교로 35년 간 봉직하다가

산살바도르 대주교를 제치고

2017년 추기경에 서품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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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루틸리오 그란데,

복자 마누엘 솔로르사노,

복자 넬슨 레무스의 축일은

이들이 순교한 3월 12일이며

 

 

복자 코스마 스페소토의 축일 역시

그가 순교한 6월 1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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