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게 좀 웃기는 게...
'가수'인데 노래 없이 춤만 춘다는 것도 좀 어이없거든요...
저 시기가 바로, 가수들을 혹사시키는 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과로에서 가장 먼저 티가 나는 부분 중 하나가 목소리잖습니까.
그런 걸 커버하는 수단 중의 하나로도 립싱크가 악용되기도 했다는 게 저런 시절부터 슬슬 드러나기 시작하죠.
게다가 립싱크 실컷 해놓고는 '라이브도 쩌는 가수' 라고 소속사에서 허위 홍보를 깔아대기 시작하다가 들통나서 벌어진 논란이 '라이브 논란' 이고요.
Lucia♥2021/11/06 18:50
자질없는 가수들 걸러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 쯤이죠.
이미 알려진 그룹 가수들은 댄스담당이니 보컬담당이니 하면서 전문분야를 나누면서 논란을 회피한 것도 이쯤부터 입니다.
미라클맨02021/11/06 19:15
가수가 라이브하는게 무슨 문제인지 오히려 립싱크가 허위과장 광고이지
저건 잘했다고봄
티이거2021/11/06 19:27
저건 잘한 건데요?? 그래서 질이 높아지기 시작함
☆단감☆2021/11/06 19:27
저거 저때 다 찬성하는 분위기였음 그래서 난 라이브하는 hot의 위아더퓨처를 들을 수 있었지
드로이드2021/11/06 19:36
쿨 김성수 ㅋㅋㅋㅋㅋ
항상 라이브하는 사람의 자신감있는 표정 ㅋㅋㅋㅋ
"와우! 여름이다~!" ㅋㅋㅋㅋㅋㅋ
maharaja822021/11/06 19:36
저때는 라이브든 립싱크든 무슨 상관이냐 했는데
저때 호되게 홍역을 치른 덕분에 요즘 한국 가수들 실력도 좋아지고 음악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고 생각함
일단 비쥬얼만 내세우며 붕어처럼 입만 뻥끗거리는 가수들이 사라짐
요즘 아이돌들 그 퍼포먼스를 소화하면서도 라이브 잘함 애들 기본기부터가 예전 댄스가수들이랑 차원이 다름
그리고 비쥬얼보다 음악성으로 승부하는 가수들이 늘었음
예전같으면 김범수같은 가수가 데뷔 했을거같음?? 잘 풀려봐야 얼굴 없는 가수 내지는 아담 보컬로이드였겠지
그런데 요즘은 노래만 잘 부르면 인기를 얻을 수 있음
그리고 댄스 트롯 발라드 이 세가지 장르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이 쏟아져나온것도
퍼포먼스보다 음악성을 중시하기 시작한 저 시절의 유산임
내가예수다2021/11/06 19:41
저때 누구 그랫죠..
립싱크하면서 춤추는 사람은 뭐라고불러야하냐 물어보니 댄서 라는 명칭이있다고.
딱100일만2021/11/06 20:01
저렇게 춤추며 노래 하는게 가능하겠냐 했는데..
보아가 해내는 거 보고 대단하다 생각함
아니..?!?! 립씽크가 아니였어?!?!
참맛우유2021/11/06 20:09
요즘도 립싱크 하나요??
그때그때2021/11/06 21:08
저 때 립싱크가 심하긴 했지
라이브로 노래를 한 번도 안 한 가수도 있었을거고 다른 사람이 녹음하고 춤만 춘 사람도 있었죠
예대시2021/11/06 21:14
피디님 말씀이 맞구만
차케라2021/11/06 21:21
??? : 립싱크도 실력이에요!!
REDRRR2021/11/06 21:36
무슨 의미가 있냐고 쓰신 분이 있어서, 좀 울컥하는 마음에 장문의 댓글을 작성합니다.
위에 혹사 문제를 쓰긴 했는데, 이 논란이 있었기에 보아가 탄생할 수 있었고, 지금의 한국형 K-아이돌이 탄생했다고 보면 됩니다.
일본의 경우, SMAP, 아라시, EXILE 로 이어지는 자니스 등의 남자아이돌과 비교해봐도 차이가 명확하며, 일본 여자아이돌인 오냥코부터 모닝구, AKB 등을 비교하면 그냥 넘사벽이 되어버리죠.
아이돌이 처음 등장한 시점이 어디냐 라고 하는 건 의미없는 논쟁이니 넘어가고.
지금 와서 '아이돌이 아니라 전설이다' 라고 하는 DEUX 조차도 사실 데뷔는 아이돌이라고 봐도 됩니다.
댄스 아이돌의 시작을 본격화 한 사람은 박남정 정도를 언급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브레이킨 댄스의 난이도 자체가 파워 무브와 상반신 중심의 댄스 위주였습니다. 88년도의 널 그리며 안무를 떠올려보세요. 인트로와 아웃트로의 댄스 이외에는 사실상 전반적으로 슬라이드 무브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90년대 초반으로 넘어오면서 서태지와 아이돌 등의 시대가 되면서 아예 본격적인 브레이크 댄스의 시기로 진입합니다. 립싱크, AR의 시대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됩니다.
난 알아요, 애초에 랩과 댄스를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이게 바로 유행을 확 타버립니다.
이때까지는 한국과 일본의 예술문화 관련에서 일본이 앞서가던 시대입니다. 이때 일본은 아이돌 분류 하나만으로도 오냥코 , 오마츠리 닌자 같은 다양한 컨셉의 아이돌부터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등의 다양한 층을 형성하고 있었죠.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과 일본의 아이돌 댄스 수준 또한 일본이 오히려 앞서가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이 되면서 기류가 점점 이상해집니다. 이때부터 한국계 댄서들이 세계 진출을 하기 시작했죠.
그 당시 사회적 인식은 댄서 하면 그냥 동네 양아치 취급하던 시절이었는데, 뜬금없이 뉴스에서 배틀오브 이어 같은 세계 대회 우승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브레이킨 댄스의 수준 또한 세계구급으로 상향됩니다.
헌데, 이리 되니까 90년대 중반에는 아이돌 가수 보다는 '댄스 아이돌' 이라는 개념이 강화되고, 노래는 그냥 AR 틀어놓고 때워버리는 수준까지 가버립니다.
여기서 '얼굴없는 가수'들이 노래만 대신 불러주고, 얼굴 좀 괜찮고 춤 좀 추는 쪽이 조명 밑에 데뷔하는 상황까지 가버린 거죠.
이 정도에서 멈췄으면, 립싱크 라이브 논란이라는 사건까지 안 갔을 수도 있지만.
명백한 AR 가수를 두고, 연예인 소속사에서 어필을 한답시고 '탄탄한 라이브' 운운하면서 광고까지 때리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당시 '빠순이들끼리의 배틀'에서 서로를 비판하던 꺼리 중 하나가 '니들 라이브 아니잖아!' 였거든요.
이러니까 빠순이들끼리의 병림픽 정도로 항상 투닥투닥 하던 주제였던 것이, 어느 순간 사회문제로까지 번집니다.
위에 '투투' 문제만 해도 이런 문제의 연장선에 있는 거죠. 이외에도 그런 식으로 가짜 가수가 종종 있었습니다.
김아중 주연의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가 저런 주제를 사용한 사례이고요.
본격적으로 립싱크 - 라이브 논란이 격화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냥 립싱크만 한다면 몰라도, 아예 자기가 부른 노래가 아닌 노래를 립싱크랍시고 쓴다면 이건 사기거든요.
남의 노래로 데뷔해서 자기 노래인 양 홍보까지 하고 있으면, 진짜로 노래를 불러준 사람 입장은 어떨까요?
가수는 자신의 노래(歌)로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근데, 그 노래가 남이 불러준 것이라고 생각해보시길.
이러면서 아이돌 쪽에는 '노래와 댄스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라는 지상과제가 주어집니다.
당장 데뷔해서 활동중인 아이돌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이후 데뷔하는 아이돌에게은 저걸 언젠가 소화 가능해져야 하는 거죠.
이러한 시기를 거치면서 아이돌이 데뷔하는 과정 자체가 대변혁을 겪게 됩니다.
이전에는 정말 농담 안 하고, 춤 좀 춘다 하는 클럽이나 모이는 장소에 가서 얼굴 좀 괜찮은 애들 끌어오는 식으로 데뷔시키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쵸티, 젝키 운운하던 90년대 아이돌은 거의 대부분 저런 식으로 픽업되었다고 봐도 되는 수준입니다.
DEUX 의 이현도 또한 김성재와 클럽에서 춤추다가 픽업된 것이라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지요.
하지만, 저 논란이 있고 난 이후는 '연습생' 제도를 본격 도입하고 전문적으로 훈련 시키는 시대로 진입하게 됩니다.
댄스쪽은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 혹은 '1군' 쪽 사람들을 본격 도입하고, 랩의 경우는 미국에서, 보컬 트레이너는 일본에서 데려온다 이런 식으로 일종의 학교를 만든 겁니다.
그렇게 전문적으로 어릴 적부터 훈련시켜서 만들어낸 , 일종의 'Mk.2' 아이돌 1호가 보아인 셈입니다.
하지만 'Peace.B'는 솔직히 말해 한국에는 너무 일렀습니다. 너무 난해해서, 그 당시의 우리나라 시장에는 좀 무리가...
하지만 그 당시 일본에는 그런 식의 아이돌이 먹힐 시장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당장 일본 아이돌 중에서 그렇게까지 격한 댄스를 소화해가면서 노래가 가능한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았거든요.
그 당시 일본 아이돌은 한창 아무로 나미에 에서 히로스에 료코로 슬슬 넘어오던 시기였는데.
(보아의 특성은 아무로 나미에와 비교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단적으로 말해, 보아의 시대가 되면서 한국과 일본의 '가수 수준'은 사실상 역전이 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구체적인 연도를 말하자면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 사이으로 넘어오면서 이미 역전이 시작되었음에도 '자국문화 비하' 때문에 본질을 못 본 것이라고 봅니다.
보아가 일본으로 넘어갈 시대쯤의 아무로 나미에는 사실상 아무라 시대를 끝내고 결혼 , 출산으로 넘어가 있었죠.
그리고 그 공백을 모닝구가 메워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로 나미에가 있었다면 보아가 못 떴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무로 나미에가 현역이었다 한들, 보아하고 좋은 경쟁상대가 되어주는 정도였을 겁니다.
젊을때 나름 격렬하게 춤추던 시절인 슈퍼 몽키즈와 같이 했던 Try me 만 하더라도, 그 댄스를 보아의 브레이킨과 비교하라 그러면...
아무라 현상을 주도하기 시작한 시대의 곡에 해당하는 Body feels Exit 또한 분명히 격렬하긴 한데, 하나하나의 동작 난이도는... 뭐...
오히려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모리카와 미호가 더 대박이었습니다. 누구냐고요?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라는 애니메이션의 오프닝곡 'Blue Water' 를 부른 아이돌 가수입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로 나미에가 부른 거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죠.
즉석 브레이킨 까지 가능한 아이돌이었는데, 단독콘서트 투어를 진행할 정도의 인기가 있었음에도 활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 했...
2000년대 진입하면서 1인 아이돌 쪽에서는 히로스에 료코는 '사랑에 빠지기 5초전' 이라는 노래로 대박을 터뜨리고, 다이스키 등으로 열풍을 끌어갑니다.
하지만, 특유의 보컬 음색과 외모로 승부를 보는 쪽이지, 댄스와 가창력만으로 끝장을 보는 건 아니었거든요.
사실 보아가 일본으로 건너간 타이밍은 정말 기가 찼습니다.
한때 저 자신도 보아가 일본에 진출한 계기가 SM 의 짬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2000년대 초반이야말로 진출 타이밍 그 자체였습니다.
그 이전에 날리던 아이돌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결혼 혹은 하향세를 걷던 시기거든요.
나카모리 아키나와 나카야마 미호는 하향세, 쿠도 시즈카는 키무라 타쿠야와 결혼, 아무로 나미에도 결혼...
이런 식으로 톱 아이돌들이 하나같이 죄다 활동을 일제히 접어버린 상황이었고, 사실상의 무주공산을 히로스에 료코 같은 '신성 아이돌'이 접수하는 상황이었던 거죠.
그리고 그룹 아이돌쪽에서는 모닝구무스메가 러브 머신등으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활동을 하는 와중에...!
이때 보아가 일본에서 Every Heart 로 컴백하고, 그 뒤를 이어 바로 Number 1 으로 대못을 박습니다.
대못을 박았다고 하는 이유가 Number 1 뮤직비디오에서 빌딩 옥상이 나옵니다.
이게 바로 롯폰기 힐즈에서 헬기 촬영까지 단행한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일전에 일본에서 영화 찍기 어려운 이유가 각종 지역단위 신고사항이 많아서라고 하는데, 그 자체입니다.
그걸 죄다 뚫고 촬영할만큼 이미 Every heart 만으로 돈을 벌어서 '투자가치'를 확인했다 이거거든요.
거기다가 일본 뮤직비디오의 특성상, 정말 괴랄한 세트촬영만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괴랄한 센스가 아니라, 일종의 성공담 스토리텔링까지 담은 노래를 '비싼 땅' 위에서 불러버린 거죠.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립싱크 - 라이브 논란 때문에 '높아진 허들'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격렬한 춤을 추면서 보컬링을 생짜로 다 해버리는데.
다른 일본 아이돌, 심지어 남자들 조차도 그때는 다들 당당하게 립싱크 돌리던 시절이었거든요.
SMAP, 아라시, EXILE 이고 뭐고 조금만 댄스 격렬해지면 대놓고 립싱크 돌리던 시절입니다.
일본은 립싱크를 해도 그냥 '그래 하던가' 정도니까 딱히 허들을 높일 이유가 없었던 거죠.
여자 아이돌과 비교해도 차이가 명확했던게... 기본적으로 8~10인 체제인 모닝구 무스메의 '섹시빔!' 부분조차 삑사리가 나는게 현실이었습니다.
즉, 피지컬이 동일한 '여자 vs 여자' 경쟁이 아니라, 보아는 사실상 'vs 남자아이돌'과 경쟁이 가능한 슈퍼 아이돌이 나와버리니까 뒤집어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당연히 문화 충격이 상당했었고, 이때 마침 후유소나, '겨울 소나타' 까지 겹치면서 일본 문화와 한국 문화는 사실상 동급의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며, 이 시점부터 한류가 본격화 된 거라고 볼 수 있다는 거죠.
그 이후 부당계약 문제 같은게 또 터지면서 한국 연예계는 또다른 변혁점을 맞이합니다만.
일본은 계속 갈라파고스화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저런 변화의 시점,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적이 거의 없어서 라는 것도 있다는 겁니다.
오카다 유키코 투신 자살 사건부터, 아무로 나미에와 히로스에 료코를 반 생매장 직전까지도 몰고간 '버닝 갑질' 등등.
이외에도 수많은 사건이 있었음에도, 공권력이 개입하는 수준의 개혁점은 사실상 일본 연예계에는 없었다고 봐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 그래도 정 안 되면 공권력이 개입해서라도 '바로잡는 시도'는 해왔습니다.
의미없는 게 아닙니다.
저런 누적을 통해서 지금의 K-POP 이 있을 수 있었던 겁니다.
파고배2021/11/07 00:15
KBSN 역대사장
박정미 (2018~2020)
1996년~1997년 당시 가요톱10의 담당 PD를 맡았고, 이후 상상플러스 , 가족오락관, 김승우의 승승장구의 CP를, 스펀지, 비타민의 담당 PD를 맡았다. 이래서인지 자체제작 예능프로그램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반면 이로 인해 스포츠 쪽에 대한 투자(중계권 구매 등)는 전무한 수준이라 스포츠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Hoya2021/11/08 02:34
제가 알기론 마로니에의 칵테일사랑이 시발점이 되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다른사람들이 부른 노래를 비주얼 좋은사람들로 팀을꾸려서 인기를 얻었다가 발각 되어서... 그 이후에 라이브와 립싱크의 무대가 나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마로니에가 바꿔놓은 음방이라해도 무방한.....
무슨 의미인가 싶어요
근데 이게 좀 웃기는 게...
'가수'인데 노래 없이 춤만 춘다는 것도 좀 어이없거든요...
저 시기가 바로, 가수들을 혹사시키는 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과로에서 가장 먼저 티가 나는 부분 중 하나가 목소리잖습니까.
그런 걸 커버하는 수단 중의 하나로도 립싱크가 악용되기도 했다는 게 저런 시절부터 슬슬 드러나기 시작하죠.
게다가 립싱크 실컷 해놓고는 '라이브도 쩌는 가수' 라고 소속사에서 허위 홍보를 깔아대기 시작하다가 들통나서 벌어진 논란이 '라이브 논란' 이고요.
자질없는 가수들 걸러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 쯤이죠.
이미 알려진 그룹 가수들은 댄스담당이니 보컬담당이니 하면서 전문분야를 나누면서 논란을 회피한 것도 이쯤부터 입니다.
가수가 라이브하는게 무슨 문제인지 오히려 립싱크가 허위과장 광고이지
저건 잘했다고봄
저건 잘한 건데요?? 그래서 질이 높아지기 시작함
저거 저때 다 찬성하는 분위기였음 그래서 난 라이브하는 hot의 위아더퓨처를 들을 수 있었지
쿨 김성수 ㅋㅋㅋㅋㅋ
항상 라이브하는 사람의 자신감있는 표정 ㅋㅋㅋㅋ
"와우! 여름이다~!" ㅋㅋㅋㅋㅋㅋ
저때는 라이브든 립싱크든 무슨 상관이냐 했는데
저때 호되게 홍역을 치른 덕분에 요즘 한국 가수들 실력도 좋아지고 음악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고 생각함
일단 비쥬얼만 내세우며 붕어처럼 입만 뻥끗거리는 가수들이 사라짐
요즘 아이돌들 그 퍼포먼스를 소화하면서도 라이브 잘함 애들 기본기부터가 예전 댄스가수들이랑 차원이 다름
그리고 비쥬얼보다 음악성으로 승부하는 가수들이 늘었음
예전같으면 김범수같은 가수가 데뷔 했을거같음?? 잘 풀려봐야 얼굴 없는 가수 내지는 아담 보컬로이드였겠지
그런데 요즘은 노래만 잘 부르면 인기를 얻을 수 있음
그리고 댄스 트롯 발라드 이 세가지 장르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이 쏟아져나온것도
퍼포먼스보다 음악성을 중시하기 시작한 저 시절의 유산임
저때 누구 그랫죠..
립싱크하면서 춤추는 사람은 뭐라고불러야하냐 물어보니 댄서 라는 명칭이있다고.
저렇게 춤추며 노래 하는게 가능하겠냐 했는데..
보아가 해내는 거 보고 대단하다 생각함
아니..?!?! 립씽크가 아니였어?!?!
요즘도 립싱크 하나요??
저 때 립싱크가 심하긴 했지
라이브로 노래를 한 번도 안 한 가수도 있었을거고 다른 사람이 녹음하고 춤만 춘 사람도 있었죠
피디님 말씀이 맞구만
??? : 립싱크도 실력이에요!!
무슨 의미가 있냐고 쓰신 분이 있어서, 좀 울컥하는 마음에 장문의 댓글을 작성합니다.
위에 혹사 문제를 쓰긴 했는데, 이 논란이 있었기에 보아가 탄생할 수 있었고, 지금의 한국형 K-아이돌이 탄생했다고 보면 됩니다.
일본의 경우, SMAP, 아라시, EXILE 로 이어지는 자니스 등의 남자아이돌과 비교해봐도 차이가 명확하며, 일본 여자아이돌인 오냥코부터 모닝구, AKB 등을 비교하면 그냥 넘사벽이 되어버리죠.
아이돌이 처음 등장한 시점이 어디냐 라고 하는 건 의미없는 논쟁이니 넘어가고.
지금 와서 '아이돌이 아니라 전설이다' 라고 하는 DEUX 조차도 사실 데뷔는 아이돌이라고 봐도 됩니다.
댄스 아이돌의 시작을 본격화 한 사람은 박남정 정도를 언급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브레이킨 댄스의 난이도 자체가 파워 무브와 상반신 중심의 댄스 위주였습니다. 88년도의 널 그리며 안무를 떠올려보세요. 인트로와 아웃트로의 댄스 이외에는 사실상 전반적으로 슬라이드 무브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90년대 초반으로 넘어오면서 서태지와 아이돌 등의 시대가 되면서 아예 본격적인 브레이크 댄스의 시기로 진입합니다. 립싱크, AR의 시대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됩니다.
난 알아요, 애초에 랩과 댄스를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이게 바로 유행을 확 타버립니다.
이때까지는 한국과 일본의 예술문화 관련에서 일본이 앞서가던 시대입니다. 이때 일본은 아이돌 분류 하나만으로도 오냥코 , 오마츠리 닌자 같은 다양한 컨셉의 아이돌부터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등의 다양한 층을 형성하고 있었죠.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과 일본의 아이돌 댄스 수준 또한 일본이 오히려 앞서가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이 되면서 기류가 점점 이상해집니다. 이때부터 한국계 댄서들이 세계 진출을 하기 시작했죠.
그 당시 사회적 인식은 댄서 하면 그냥 동네 양아치 취급하던 시절이었는데, 뜬금없이 뉴스에서 배틀오브 이어 같은 세계 대회 우승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브레이킨 댄스의 수준 또한 세계구급으로 상향됩니다.
헌데, 이리 되니까 90년대 중반에는 아이돌 가수 보다는 '댄스 아이돌' 이라는 개념이 강화되고, 노래는 그냥 AR 틀어놓고 때워버리는 수준까지 가버립니다.
여기서 '얼굴없는 가수'들이 노래만 대신 불러주고, 얼굴 좀 괜찮고 춤 좀 추는 쪽이 조명 밑에 데뷔하는 상황까지 가버린 거죠.
이 정도에서 멈췄으면, 립싱크 라이브 논란이라는 사건까지 안 갔을 수도 있지만.
명백한 AR 가수를 두고, 연예인 소속사에서 어필을 한답시고 '탄탄한 라이브' 운운하면서 광고까지 때리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당시 '빠순이들끼리의 배틀'에서 서로를 비판하던 꺼리 중 하나가 '니들 라이브 아니잖아!' 였거든요.
이러니까 빠순이들끼리의 병림픽 정도로 항상 투닥투닥 하던 주제였던 것이, 어느 순간 사회문제로까지 번집니다.
위에 '투투' 문제만 해도 이런 문제의 연장선에 있는 거죠. 이외에도 그런 식으로 가짜 가수가 종종 있었습니다.
김아중 주연의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가 저런 주제를 사용한 사례이고요.
본격적으로 립싱크 - 라이브 논란이 격화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냥 립싱크만 한다면 몰라도, 아예 자기가 부른 노래가 아닌 노래를 립싱크랍시고 쓴다면 이건 사기거든요.
남의 노래로 데뷔해서 자기 노래인 양 홍보까지 하고 있으면, 진짜로 노래를 불러준 사람 입장은 어떨까요?
가수는 자신의 노래(歌)로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근데, 그 노래가 남이 불러준 것이라고 생각해보시길.
이러면서 아이돌 쪽에는 '노래와 댄스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라는 지상과제가 주어집니다.
당장 데뷔해서 활동중인 아이돌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이후 데뷔하는 아이돌에게은 저걸 언젠가 소화 가능해져야 하는 거죠.
이러한 시기를 거치면서 아이돌이 데뷔하는 과정 자체가 대변혁을 겪게 됩니다.
이전에는 정말 농담 안 하고, 춤 좀 춘다 하는 클럽이나 모이는 장소에 가서 얼굴 좀 괜찮은 애들 끌어오는 식으로 데뷔시키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쵸티, 젝키 운운하던 90년대 아이돌은 거의 대부분 저런 식으로 픽업되었다고 봐도 되는 수준입니다.
DEUX 의 이현도 또한 김성재와 클럽에서 춤추다가 픽업된 것이라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지요.
하지만, 저 논란이 있고 난 이후는 '연습생' 제도를 본격 도입하고 전문적으로 훈련 시키는 시대로 진입하게 됩니다.
댄스쪽은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 혹은 '1군' 쪽 사람들을 본격 도입하고, 랩의 경우는 미국에서, 보컬 트레이너는 일본에서 데려온다 이런 식으로 일종의 학교를 만든 겁니다.
그렇게 전문적으로 어릴 적부터 훈련시켜서 만들어낸 , 일종의 'Mk.2' 아이돌 1호가 보아인 셈입니다.
하지만 'Peace.B'는 솔직히 말해 한국에는 너무 일렀습니다. 너무 난해해서, 그 당시의 우리나라 시장에는 좀 무리가...
하지만 그 당시 일본에는 그런 식의 아이돌이 먹힐 시장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당장 일본 아이돌 중에서 그렇게까지 격한 댄스를 소화해가면서 노래가 가능한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았거든요.
그 당시 일본 아이돌은 한창 아무로 나미에 에서 히로스에 료코로 슬슬 넘어오던 시기였는데.
(보아의 특성은 아무로 나미에와 비교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단적으로 말해, 보아의 시대가 되면서 한국과 일본의 '가수 수준'은 사실상 역전이 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구체적인 연도를 말하자면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 사이으로 넘어오면서 이미 역전이 시작되었음에도 '자국문화 비하' 때문에 본질을 못 본 것이라고 봅니다.
보아가 일본으로 넘어갈 시대쯤의 아무로 나미에는 사실상 아무라 시대를 끝내고 결혼 , 출산으로 넘어가 있었죠.
그리고 그 공백을 모닝구가 메워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로 나미에가 있었다면 보아가 못 떴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무로 나미에가 현역이었다 한들, 보아하고 좋은 경쟁상대가 되어주는 정도였을 겁니다.
젊을때 나름 격렬하게 춤추던 시절인 슈퍼 몽키즈와 같이 했던 Try me 만 하더라도, 그 댄스를 보아의 브레이킨과 비교하라 그러면...
아무라 현상을 주도하기 시작한 시대의 곡에 해당하는 Body feels Exit 또한 분명히 격렬하긴 한데, 하나하나의 동작 난이도는... 뭐...
오히려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모리카와 미호가 더 대박이었습니다. 누구냐고요?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라는 애니메이션의 오프닝곡 'Blue Water' 를 부른 아이돌 가수입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로 나미에가 부른 거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죠.
즉석 브레이킨 까지 가능한 아이돌이었는데, 단독콘서트 투어를 진행할 정도의 인기가 있었음에도 활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 했...
2000년대 진입하면서 1인 아이돌 쪽에서는 히로스에 료코는 '사랑에 빠지기 5초전' 이라는 노래로 대박을 터뜨리고, 다이스키 등으로 열풍을 끌어갑니다.
하지만, 특유의 보컬 음색과 외모로 승부를 보는 쪽이지, 댄스와 가창력만으로 끝장을 보는 건 아니었거든요.
사실 보아가 일본으로 건너간 타이밍은 정말 기가 찼습니다.
한때 저 자신도 보아가 일본에 진출한 계기가 SM 의 짬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2000년대 초반이야말로 진출 타이밍 그 자체였습니다.
그 이전에 날리던 아이돌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결혼 혹은 하향세를 걷던 시기거든요.
나카모리 아키나와 나카야마 미호는 하향세, 쿠도 시즈카는 키무라 타쿠야와 결혼, 아무로 나미에도 결혼...
이런 식으로 톱 아이돌들이 하나같이 죄다 활동을 일제히 접어버린 상황이었고, 사실상의 무주공산을 히로스에 료코 같은 '신성 아이돌'이 접수하는 상황이었던 거죠.
그리고 그룹 아이돌쪽에서는 모닝구무스메가 러브 머신등으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활동을 하는 와중에...!
이때 보아가 일본에서 Every Heart 로 컴백하고, 그 뒤를 이어 바로 Number 1 으로 대못을 박습니다.
대못을 박았다고 하는 이유가 Number 1 뮤직비디오에서 빌딩 옥상이 나옵니다.
이게 바로 롯폰기 힐즈에서 헬기 촬영까지 단행한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일전에 일본에서 영화 찍기 어려운 이유가 각종 지역단위 신고사항이 많아서라고 하는데, 그 자체입니다.
그걸 죄다 뚫고 촬영할만큼 이미 Every heart 만으로 돈을 벌어서 '투자가치'를 확인했다 이거거든요.
거기다가 일본 뮤직비디오의 특성상, 정말 괴랄한 세트촬영만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괴랄한 센스가 아니라, 일종의 성공담 스토리텔링까지 담은 노래를 '비싼 땅' 위에서 불러버린 거죠.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립싱크 - 라이브 논란 때문에 '높아진 허들'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격렬한 춤을 추면서 보컬링을 생짜로 다 해버리는데.
다른 일본 아이돌, 심지어 남자들 조차도 그때는 다들 당당하게 립싱크 돌리던 시절이었거든요.
SMAP, 아라시, EXILE 이고 뭐고 조금만 댄스 격렬해지면 대놓고 립싱크 돌리던 시절입니다.
일본은 립싱크를 해도 그냥 '그래 하던가' 정도니까 딱히 허들을 높일 이유가 없었던 거죠.
여자 아이돌과 비교해도 차이가 명확했던게... 기본적으로 8~10인 체제인 모닝구 무스메의 '섹시빔!' 부분조차 삑사리가 나는게 현실이었습니다.
즉, 피지컬이 동일한 '여자 vs 여자' 경쟁이 아니라, 보아는 사실상 'vs 남자아이돌'과 경쟁이 가능한 슈퍼 아이돌이 나와버리니까 뒤집어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당연히 문화 충격이 상당했었고, 이때 마침 후유소나, '겨울 소나타' 까지 겹치면서 일본 문화와 한국 문화는 사실상 동급의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며, 이 시점부터 한류가 본격화 된 거라고 볼 수 있다는 거죠.
그 이후 부당계약 문제 같은게 또 터지면서 한국 연예계는 또다른 변혁점을 맞이합니다만.
일본은 계속 갈라파고스화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저런 변화의 시점,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적이 거의 없어서 라는 것도 있다는 겁니다.
오카다 유키코 투신 자살 사건부터, 아무로 나미에와 히로스에 료코를 반 생매장 직전까지도 몰고간 '버닝 갑질' 등등.
이외에도 수많은 사건이 있었음에도, 공권력이 개입하는 수준의 개혁점은 사실상 일본 연예계에는 없었다고 봐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 그래도 정 안 되면 공권력이 개입해서라도 '바로잡는 시도'는 해왔습니다.
의미없는 게 아닙니다.
저런 누적을 통해서 지금의 K-POP 이 있을 수 있었던 겁니다.
KBSN 역대사장
박정미 (2018~2020)
1996년~1997년 당시 가요톱10의 담당 PD를 맡았고, 이후 상상플러스 , 가족오락관, 김승우의 승승장구의 CP를, 스펀지, 비타민의 담당 PD를 맡았다. 이래서인지 자체제작 예능프로그램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반면 이로 인해 스포츠 쪽에 대한 투자(중계권 구매 등)는 전무한 수준이라 스포츠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제가 알기론 마로니에의 칵테일사랑이 시발점이 되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다른사람들이 부른 노래를 비주얼 좋은사람들로 팀을꾸려서 인기를 얻었다가 발각 되어서... 그 이후에 라이브와 립싱크의 무대가 나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마로니에가 바꿔놓은 음방이라해도 무방한.....
라이브가 되야 가수지 그게 ... 댄서가 가수의 영역을 다 먹어버리면 그게 옳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