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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갤 아빠가 너무 똑똑해서 울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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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아빠랑 통화하고서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써본다.



우리 아빠는 고등학교를 중퇴하셨다. 집안형편이 도저히 안돼서 자퇴하시고 돈을 벌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학력이랑 별개로 성품은 좋으셔서 집은 가난했지만 나도 삐뚤어지지 않고 자랐다.



어릴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가 학교에 큐브를 가져왔다. 정육면체 색깔 맞추는 그 큐브 다들 알지?



그런 장난감을 처음 본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빌려달라하고 호기심에 맞춰보는데, 그 친구가 자기는 못맞추겠다면서



나보고 그냥 가지라고 줬다. 그 친구 생각엔 또래들 중에서 조금 똑똑했던 내가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나도 잘 못맞추겠더라. 한면 정도 맞춘 다음 잘 모르겠다하고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학교 끝나고 집에 갔는데 우리집엔 아직 컴퓨터가 없어서 집에 있으면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난 나가서 노는 것도 별로 안좋아해서 집에 몇권 있는 책이나 읽으면서 만화 할 때까지 시간을 떼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지고 온 큐브가 생각나서 다시 만지작거렸다.



근데 그 때 집에 아빠도 있었거든? 낮이었지만 그 날은 일이 없어서 집에서 쉬고 계셨는데 내가 큐브를 가지고 노는걸 보더니 나한테 오셨다.



그러더니 "이거 어디서 난거니?"하고 물어보셨지. 아빠 생각엔 사준 적도 없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으니까 내가 혹시 훔치기라도 했나 걱정되셨었나본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니까 "그렇구나"하셨다. 그러면서 아빠도 호기심이 동하셨는지 어떻게 하는거냐고 물어보셨다. 난 설명해줬지



이리저리 돌릴 수 있는데 모든 면이 각각 같은 색깔로 맞춰지면 된다...



설명하면서 나는 계속 맞춰보는데 역시 잘 안됐고, 아빠는 그걸 계속 옆에서 구경하고 계셨어.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더라 "아빠가 해봐도 될까?"라고



큐브가 닳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해봤자 못맞출 것 같아서 그러세요하고 드렸다. 그리고 아빠가 이리저리 슥슥 돌리는데



그게 신기하게도 맞춰지더라. 너무 신기해서 다 맞춘 큐브를 다시 섞은 다음 또 드렸는데 계속 잘맞추시는거야.



근데 그때는 그냥 너무 어려서 그냥 감탄만 하고 끝났다. 내가 운 일은 한참 뒤였다.



난 보드게임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 체스를 잘했다.



본격적으로 파고들면서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똑똑한 애들만 온다는 고등학교랑 대학교를 거치면서 나보다 체스를 잘하는 사람은 없었어.



전역 후엔 흥미가 떨어져서 안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실력엔 자신이 있었다.



내가 27살 때, 집에서 독립을 하려고 내 방을 정리하는 날이었다. 구석에 있던 물건들 꺼내면서 버릴 것과 가져갈 것을 분류하는데



마지막으로 체스판이 하나 나오더라. 어차피 잘 두지도 않는데 버릴까하다가 아까워서 가져가기로 했다.



정리를 다하고 내 방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는데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아빠가 오시더니 정리 다했냐고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응 방금 다했어"하고 대답했다. 그 날은 아빠가 좋아하는 야구 경기도 없어서 심심하신 눈치셨다.



아빠는 내가 정리한 물건들을 살펴보시다가 체스판을 보고 꺼내시면서 "이거 체스 아빠 알려주면 안돼?" 하셨다.



난 별로 심심한건 아니었지만 아빠가 심심해보이셔서 알겠다고 했다.



장기를 알고계셔서 룩은 차랑 같다. 나이트는 마랑 비슷한데 약간 다르다 이런 식으로...



그렇게 체스를 몇판 뒀는데 당연히 내가 이겼다. 아빠는 지셨지만 재밌었는지 더 연습할테니 또 두자고 하셨다.



대충 두 달 정도 뒤에 부모님이 내가 혼자 사는게 궁금하셔서 자취방에 오셨다.



그날은 야구장 가서 같이 야구를 보고, 저녁도 사드렸는데 부모님이 하루 자고가면 안되냐고 하셔서 집에 같이 왔다.



자기 전에 내 방에 있는 작은 tv로 드라마를 보는데 아빠는 재미가 없으셨는지 갑자기 체스를 두자고 하시더라.



그래서 체스판을 가져와서 뒀는데 정말 쪽도 못쓰고 졌다. 이젠 나보다 압도적으로 잘하시더라.



어디서 그렇게 연습했냐고 물어보니까 스마트폰 어플로 연습했다고 말씀하셨다.



계속 둘수록 실력차가 너무 현격해서 도저히 못두겠더라고. 그래서 세판 두고 "아 못이겨~"하고 기권했다.



그걸 보고 아빠가 "아빠 잘두니?"하고 물어보는데, 그 때 진짜 뜬금없이 눈물이 나더라.



어릴 때 큐브 맞추시던 일도 생각나면서, 진짜 똑똑하신 분이고, 누구보다 학교를 계속 다니고 싶으셨을텐데...



집안이 어려워서 어릴 때부터 막노동하시고, 나 낳은 뒤엔 내 뒷바라지도 해주시고...



그런거 하나하나 다 생각나니까 아빠가 불쌍하기도 하고 고맙기도하고.. 도저히 눈물이 안멈추더라.



엄마랑 아빠 두 분 다 내가 우는 이유를 아셨는 지 엄마는 "이제부터 너가 효도하면 돼~"하시고 아빠는 그냥 허허 웃으셨지..



그냥 뭐.. 그런 일이 있었다고. 갑자기 생각나서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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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진지중독자 2021/10/27 10:54

    웃대 멀쩡한 댓글 적응 안되네..
    눈물이 나오려다 쏙들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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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본을써라 2021/10/27 10:59

    웃대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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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골백년☆ 2021/10/27 11:15

    사실 친자식 아니다 드립정도는 있을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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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샷쓰리킬 2021/10/27 11:38

    근데 머리 좋은거랑 공부머리는 또 따로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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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마리오 2021/10/27 11:47

    오 내가 울었으면 뭐 그거 좀 졌다고 울고 그러니 이러셨을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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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눈동태눈깔 2021/10/27 11:47

    아들도 똑똑하니까 아빠의 처지를 공감하고
    슬퍼하는거 같아요.
    바보면 상대방 입장으로 공감 같은거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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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얼음 2021/10/27 11:57

    루빅스 큐브는 원래 배워야 다 맞출 수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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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day 2021/10/27 11:58

    좀 다를 수도 있지만..
    저는 영화 맘마미아에서 댄싱퀸 노래가 나왔을 태 울었어요.
    거기서 노래하는 아름다운 열일곱, 그시기 엄마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이 가니까요.
    예쁜 나이, 청춘을 누릴 새도 없이 사느라 힘들게 지나갔을 엄마의 과거가 떠오르면서 너무 마음 아프더라구요.
    지금도 저는 댄싱퀸을 들으면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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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경전코란 2021/10/27 12:08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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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_Century 2021/10/27 12:15


    이제는 어느덧 20년이 훌쩍 지난 영화가 되어서 못보신분들이 계실거같아
    비슷한 내용의 영화를 가져왔습니다. 괜찮은 영화이니 시간나실때 한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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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똥의흐름 2021/10/27 15:03

    울아빠도 어렸을때 아빠도 없고 엄청 가난해서 대학을 못갔는데 중고등학교때 배운 수학으로 야학에서 없는 애들 가르치고
    기타를 잘치시는데 악보를 못보셔서 가수를 못하고
    그림도 잘그리시는데 뭐 그림으로 돈벌거란 생각도 못해보셨고
    유도도 잘하셨는데 운동부야말로 돈없으면 선생한테 쫓겨나는 곳이었고
    옆에서 조언 해줄 어른 한명만 있었으면 좀 유명해지시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안타까움
    나 준다고 클래식기타를 어디서 사오셨는데 앉은 자리에서 몇번 튕기더니 알함브라의궁전인가를 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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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깔쌈한젊은이 2021/10/27 17:20

    큐브 처음사면 맞추는 공식이 같이 달린 종이가 같이 오는데 그거보면서도 도대체 왜 이렇게 하는데 맞춰지는거지? 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도 없이 맞추는게 가능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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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좋아 2021/10/27 18:00

    막노동을 해도 잘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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