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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우주시대의 환율

우주선에서 내린 외계인의 외형은 인간을 닮아 있었다. 피부색이나 머리카락 같은 부분이야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그랬다.

벌써 잔뜩 경계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머리 앞에 작은 기계장치 하나를 띄웠다.

[ 아. 아. 번역기 테스트. 번역기 테스트. 들리십니까 지구인 여러분? 그렇게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나쁜 목적으로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

5시간 전에 UFO가 도시 상공에 등장했을 때부터 주목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다행히 대화의 여지가 있음에 안심했다.
여러 가능성을 대비해서 준비해놓았던 외교 대표가 대화에 나섰다.

" 지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첫 번째로 지구에 방문한 외계인이십니다. "

[ 아 그렇습니까? 보람이 있군요! ]

" 예. 그런데, 지구에는 어쩐 일로...? "

[ 휘우~ 근데 이거 참, 날씨가 무척 덥군요! 여름입니까? ]

외계인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기계장치 하나를 더 꺼내어 머리 위로 띄웠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로 구름이 생겨나며 주변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오오오... "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 모습에 무척 신기해했다. 
외계인이 다시 기계장치 하나를 바닥으로 떨어뜨리자, 레일이 깔리며 외계인을 인간 대표의 앞까지 빠르게 이동시켰다. 물론 머리 위의 구름도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대표의 앞에서 태블릿 같은 기계장치를 꺼내 들며 그제야 질문에 대답했다.

[ 예, 제가 지구에 방문한 목적은 다름이 아니라~ 지구인들과...응? 어라? ]
 
갑자기 말을 중단한 외계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태블릿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외계인.

[ 뭐야? 화폐 통일이 안 됐잖아? ]

" 예?? "

외계인의 얼굴이 어이없어졌다. 

[ 아니, 지구는 화폐 통일이 안 되어 있습니까? 그러면 환율을 적용하지 못하는데? 거참, 요즘 시대에도 화폐가 통일되지 않은 별이 있다니? 허~ ]

" 화폐 통일이라 하심은...? "

[ 화폐가 통일되어있어야 우주 환율을 적용할 것 아닙니까? 지금 지구의 화폐는 우주에서 무용지물입니다! 이래서는 지구로 관광은 물론이고, 무역 업자들도 찾아오질 않을 텐데 쯧... ]

고개를 흔든 외계인은 태블릿을 집어넣었다.

[ 어렵게 찾아왔는데 이거 참...아쉽게 됐습니다. 쩝. 저는 그럼 이만! ]

너무 쉽게 돌아서는 외계인! 
사람들은 웅성거리고, 대표도 다급해졌다! 순간, 빠르게 머리를 회전한 대표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 자, 잠깐만요! 3년! 3년 뒤에 다시 방문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3년 뒤에 다시 방문해주십시오!! "

[ 음... 지구 시간으로 3년입니까? 알겠습니다. 스케줄에 넣어놓겠습니다. ]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우주선으로 돌아가는 외계인.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UFO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외계인의 방문은 인류에게 충격이었다. 그와의 대화 마디마디가 정밀하게 분석되었는데, 환율, 화폐 통일, 지구 관광, 무역... 그런 단어들이 인류의 마음을 급하게 했다. 우주적으로 본다면 지구는 정말 개발도상국이었다.
당연한 순서로 화폐 통일을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만약 우주와 무역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룰 수 있겠는가? 과학기술은 물론이고, 온갖 불치병들을 치료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또 모르지? 다시 젊어지는 것조차 가능할지도!
처음 사람들은 외교 대표의 독단적인 판단을 욕했지만, 나중에 가서는 인류역사에 남을만한 한 수를 던진 위인으로 기록하려 했다.

" 3년! 겨우 얻어낸 이 3년 안에 무조건 화폐를 통일해야 합니다! "
" 경제 관계 따지지 말고 무조건 통일합시다! 지금은 국가 간에 눈치나 보고 있을 시간이 없단 말입니다! "

이미 화폐 통일론은 전 지구적인 흐름이었고, 어느 국가도 반대할 수 없었다. 행여 반대한다면, 기존 화폐의 가치가 사장될 테니까.
시간이 없는 만큼, 헛된 힘겨루기나 눈치싸움은 최대한 간소화 되었다. 물론 조금이라도 본인들 국가의 이익을 위해 필사적인 협상을 했지만, 질질 끌거나 공작을 하는 일은 없었다. 
그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류가 전체적으로 하나가 되어 간다는 점이 있었다. 우주 외세의 발견은 인류에게 지구인이라는 소속감을 눈 뜨게 해주었다. 전세계 빅데이터에서 '지구인'이라는 단어의 사용빈도가 매우 높아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떤 나라는 조금 손해를 보고, 어떤 나라는 조금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지구의 화폐는 통일되었다. 급한 만큼 진통이 컸지만, 의외의 효과도 많았다. 국가 간의 관계가 눈에 띄게 완화되며, 유통 촉진으로 인한 부흥도 기대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약속의 3년. 전 세계의 눈이 주시하는 가운데 외계인의 우주선이 재방문했다.

" 왔다! 정말 다시 왔어! "
" 오오오! 어서 꽃을 펼치고 환영 연주를 준비해! "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던 환영행사가 그 외계인을 맞이했다. 
철저하게 구성된 지구 대표단은 예의를 갖춰 그가 내리길 기다렸고, 그 선두엔 3년 발언의 대표가 서서 우주선을 향해 밝은 미소를 띄워놓고 있었다.

[ 오오~ ]

외계인은 환영행사에 감탄하며 우주선에서 내렸다. 저번과 같이, 얼굴 앞에 기계장치를 띄운 외계인은 흥분된 톤으로 인사했다.

[ 이렇게나 환영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

그때 얼른 대표가 나서서 정중히 인사를 하였고, 기억해낸 외계인도 인사를 받았다.

" 지구에 다시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 아! 반갑습니다. 또 뵙는군요. ]

만면이 미소가 가득한 양측의 분위기는 훈훈했다. 
곧, 태블릿 같은 장치를 꺼낸 외계인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 놀랍습니다. 정말로 3년 만에 화폐를 통일하셨군요! 화폐 단위의 이름이..'복'입니까? ]

" 예 그렇습니다. "

자긍심이 가득한 대표의 얼굴. 고개를 끄덕인 외계인은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계산했다.

[ 보자~ 대충 환율을 적용해보면... '1133 복' 당 '1 나르'정도 되는군요. 축하드립니다! 이제 지구의 화폐도 우주에서 통용가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

" 으음... 1 나르? "

단위를 몰라 애매하게 미간을 찌푸리는 대표단이었지만, 얼핏 들어도 지구 화폐의 가치가 매우 낮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현재 지구에서 '1133 복'이면 빅맥 세트를 20개는 살 수 있을 만한 금액이었다.
그때, 빠르게 머리를 회전한 대표가 눈치 좋게 물었다.

" 지금 쓰고 계신 그 번역기는 얼마 정도 합니까? "

[ 아 이거 말씀이십니까? 하하 싸구렵니다~. 대충 10 나르 정도? ]

" 오오오! "

보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저런 최첨단 기기의 가격이 그 정도라면야!

[ 자~ 그럼, 이제 화폐도 통일하셨으니~ ]

외계인은 손에 든 태블릿을 허공으로 거대하게 확장시켰다. 펼쳐지는 입체 영상을 본 사람들은 기대로 눈을 반짝거렸다.
어떤 진귀한 물건들을 보여줄까? 저번의 구름 생성기 같은 신기한 물건이 가득할까? 거래 즉시 우주선에서 재고품을 가져다주는 걸까?
한데, 

" ?? "

펼쳐진 영상은 회색빛의 거인이었다. 

" 음... 저게 무엇입니까? 로봇입니까? "

[ 로봇이라니요! ]

대표의 말에 펄쩍 뛰는 외계인이, 자세를 달리하며 정색하고 말했다.

[ 저희 종교의 신, '간다'님이십니다! ]

" 시,신...? "

순간, 양팔을 넓게 펼치고 목소리를 높이는 외계인!

[ 이젠, 지구인 여러분도 간다님과 함께하실 때가 됐습니다! 저희 간다교는 전 우주적으로 뿌리 깊은-. . . ]

" ...... "

인류는 멍청해진 얼굴로 할 말을 잃었다. 
외계인은 열성적으로 자신의 종교를 전파했다. 목이 터져라 간다교의 믿음을 설파했다.

[ 간다님을 믿으면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고! 간다님을 믿으면 죽어서도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젠, 지구인 여러분도-. . . ]

그는 참 일 잘하는 종교인이었다. 지금도, 3년 전에도.
대표는 묻고 싶었다. 왜 이젠인지, 왜 3년 전에는 그냥 갔었는지. 대답이야 뻔하겠지만.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5/06 21:36

    아이고 벌써 덥습니다. 여름이 늦게 오면 좋겠는데..
    행복한 주말이 되시길 바랍니다!

    (DLsjSm)

  • 앙개 2017/05/06 22:50

    !!!
    그러니까 십일조같은 헌금을 바쳐라!?

    (DLsjSm)

  • 벚꽃향기 2017/05/07 01:05

    처음 원주민들에게 다가선 선교사들도
    외계인같았겠죠?
    아. . . 그래도 외계인은 신의 모습이라도 보여주네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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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별사람 2017/05/07 01:37

    '복' '나르' '간다' 군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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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코중인오덕 2017/05/07 19:10

    믿습니다 간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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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루핀 2017/05/08 02:47

    복! 냐르! 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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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lf 2017/05/08 02:47

    간다간다뿅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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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nceux 2017/05/08 03:04

    역시 악은 부지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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