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가지않고 한국사람으로 그냥 눌러앉은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그들이 지금의 카르텔 뿌리의 한축
토왜의 시초
카더라 수준의 썰이지만..왠지..
스멀스멀2021/08/12 03:44
토착왜구들 많은 이유가...
아프리카의별2021/08/12 08:43
이땅에 남을 자격이 있으신분~~항왜장수 김충선
육식주의2021/08/12 08:45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머물러 살던 일본인들이 꾀 많았어요
친구 할아버님도 일본인 이엇다고
조선에서 태어났고 부모가 자전거 가게를 하면서 살아왔는데 해방이후 일본으로 넘어가지 않고 조선에서 그냥 계속 살았음
그런데 전쟁이 터지자 일본으로 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피난도 안가고 그냥 살았다고 함
인민군이 일본인 출신이라고 해꼬지 할 줄 알았다는데 그런일도 없었다고
이후 한국인 여자 만나 결혼하고 자전거 가게 계속하면서 그냥 살았다고 합니다.
일회용용용2021/08/12 09:38
36년이면 진짜 한 세대가 바뀌는 시간인데, 경술국치 이후 태어나신 분들도 일본에 동화되지 않고 끝까지 독립운동 하셨던걸 생각하면 너무 대단함
지구별여행자12021/08/12 11:02
본국에서 배척될정도면 어떤 삶을 살았길래?
매크로시티2021/08/12 11:17
위의 이야기는 '조선을 떠나며'라는 책에 수록된 이야기입니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2, 3세들이 자신이 태어난 조선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들끼리 고립된 환경에서 살아왔오다가 패전이 되자
조선인들이 그렇게 많이 있는지도 몰랐으며
왜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역사에 무지했던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면이지요.
이들은 패전후 본국인 일본에서 돌아가서도 식민조선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다가 거지꼴로 되돌아 왔다고
'히키아게샤'라고 불리며 온갖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반도를 빠져 나오면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현금액(천엔상당)과 화물(개인이 휴대할 수있을 만큼만)도
제한받아서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사람들이라서 일본의 친척집에서 군식구 취급을 받으며 눈치보면서 살면 그나마 다행이었고,
친척들로부터도 절연당한 사람들은 '임시' 수용소에서 거처하게 되지만 '임시'라는 말이 무색하게 점점 수용소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절도, 강도, 강O등 각종 범죄와 위생문제등 '히키아게샤'는 그 자체로 전후 일본의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그나마 당시 그들이 간신히 가지고 나왔던 현금과 화물조차도 당시 한국 정부는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이
조선으로부터 착취한 것이니까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다라는 입장이어서 양자간의 입장차이도 상당히 컸던 상황이었구요.
아무튼 식민지 청산과 관련하여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한반도 거주 일본인들의 '고충'이 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역사의 이면인 것 같습니다.
일본으로 가지않고 한국사람으로 그냥 눌러앉은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그들이 지금의 카르텔 뿌리의 한축
토왜의 시초
카더라 수준의 썰이지만..왠지..
토착왜구들 많은 이유가...
이땅에 남을 자격이 있으신분~~항왜장수 김충선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머물러 살던 일본인들이 꾀 많았어요
친구 할아버님도 일본인 이엇다고
조선에서 태어났고 부모가 자전거 가게를 하면서 살아왔는데 해방이후 일본으로 넘어가지 않고 조선에서 그냥 계속 살았음
그런데 전쟁이 터지자 일본으로 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피난도 안가고 그냥 살았다고 함
인민군이 일본인 출신이라고 해꼬지 할 줄 알았다는데 그런일도 없었다고
이후 한국인 여자 만나 결혼하고 자전거 가게 계속하면서 그냥 살았다고 합니다.
36년이면 진짜 한 세대가 바뀌는 시간인데, 경술국치 이후 태어나신 분들도 일본에 동화되지 않고 끝까지 독립운동 하셨던걸 생각하면 너무 대단함
본국에서 배척될정도면 어떤 삶을 살았길래?
위의 이야기는 '조선을 떠나며'라는 책에 수록된 이야기입니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2, 3세들이 자신이 태어난 조선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들끼리 고립된 환경에서 살아왔오다가 패전이 되자
조선인들이 그렇게 많이 있는지도 몰랐으며
왜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역사에 무지했던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면이지요.
이들은 패전후 본국인 일본에서 돌아가서도 식민조선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다가 거지꼴로 되돌아 왔다고
'히키아게샤'라고 불리며 온갖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반도를 빠져 나오면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현금액(천엔상당)과 화물(개인이 휴대할 수있을 만큼만)도
제한받아서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사람들이라서 일본의 친척집에서 군식구 취급을 받으며 눈치보면서 살면 그나마 다행이었고,
친척들로부터도 절연당한 사람들은 '임시' 수용소에서 거처하게 되지만 '임시'라는 말이 무색하게 점점 수용소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절도, 강도, 강O등 각종 범죄와 위생문제등 '히키아게샤'는 그 자체로 전후 일본의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그나마 당시 그들이 간신히 가지고 나왔던 현금과 화물조차도 당시 한국 정부는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이
조선으로부터 착취한 것이니까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다라는 입장이어서 양자간의 입장차이도 상당히 컸던 상황이었구요.
아무튼 식민지 청산과 관련하여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한반도 거주 일본인들의 '고충'이 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역사의 이면인 것 같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관계처럼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