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우리집은 항상 돈의 노예였다..
친가쪽은 너무 찢어지게 가난해서
아버지 10대때부터 큰아버지 부산 신혼방에 더부살이를 했었다.
본가가 대구인데 부산까지 오신 건 식비조차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아버지 중학교 졸업하자 마자의 일이다.
아버지는 부산에서 리어카 끌면서 생필품 장사하는 일이라도 하셨다.
그 어린 나이에 무슨 일이든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하신 일이지만 생각보다 벌이는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시절이 얼마나 가난했고, 또 비참했냐면 동백섬에서 해운대 걸어오는 길 언덕에서 뛰어내려서 죽을까 라고 생각한적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20대때 카센터 수리공으로 들어가 한푼두푼 모으다가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만이 살길이라는것을 느끼시고
4전5기 끝에 대기업 생산직으로 들어가셨다.
아직도 그때 합격의 기쁨을 말하실 정도로 아버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도전이자 성취였다.
그럼에도 가난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아버지 결혼 하시기 직전에 할아버지가 암에 걸리셔서
한푼두푼 겨우 모은 돈을 병원비로 다 날리셨다.
어머니 이야기에 따르면 대기업 직원이라해서 결혼했더니
마굿간을 개조한 셋방에서 사글세로 신혼을 시작해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난 어릴적에 외식이나 쇼핑이란걸 해본적이 거의 없었다.
부모님이 잘살고 싶은 그 마음 하나로 안먹고 안입고 살았었기 때문이다.
때론 반항심에 화도 내고 불평도 했었지만 부모님을 보면 계속 그럴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나 어릴적에 집에서 부업으로 밤까는 아르바이트, 낚시줄에 추 매다는 아르바이트
손이 부르터져라 일하셨고 아버지는 불법이지만 퇴근후에 일당 용접공으로 부업까지 하셨다.
이런 부모님앞에 난 공부하는 아들이 되는 것이 최선이었다.
지금 내 나이쯤 되셨던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까지 노력하셨던 건
잘살고 싶은 마음 그거 하나였다. 불행히도 적당히 살만해질 때마다 문제가 생겼다.
시장통 한 구석에 있는 상가를 그때 돈 8천만원에 계약하셨다가 완벽하게 사기를 맞으시고
거의 10년간을 부모님은 일에 매달려서 그 돈을 갚으셔야 했다.
어머님은 그때부터 아르바이트가 아닌 식당보조를 시작하셨고
내가 군 전역할 무렵에 어지러움증으로 쓰러지실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셨다.
어쩌면 기적과 같겠지만 몇십년에 걸쳐 차차 재산이 모여
지금은 퇴직하고 전원주택에서 노년을 맞이하고 계신다.
아버지는 장미꽃이 피는 담벼락과 마당을 가진 집에서 사는게 20대때의 꿈이었다고 하셨다.
아주 좋은 집은 아니지만, 아직도 넉넉하진 않지만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그 꿈을 이루셨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그 방향성과 성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잘살고자 하는 마음과 잘살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하나씩 성취해 나가는 행복.
우리 가족은 그 과정에서 행복을 성취하면서 성장해나갔다.
한순간에 큰 복이 온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불행은 꾸준히 찾아왔다.
부모님의 인생을 보며 자란 내 마음가짐도 그때의 부모님과 다르지 않다.
비트코인으로 큰 돈을 번 사람들, 부동산이 대박이 난 사람들.
그들은 주변에 존재하는 인생역전의 사례겠지만 나는 그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난 부모님의 유전자로 세대를 거쳐서 윤회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난 오늘도 조금씩 공부하고 아는만큼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한걸음씩..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나는 부모님을 통해서 그걸 배웠고 그 방향성이 나의 행복이라는 것을 잘 안다.
쓰러질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좋아하는 책의 제목만으로
감히 응원을 대신 보태봅니다)
천천히 떼며 가는 한걸음.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너무 잘 압니다.
재주가 좋으시네 담담하게 내용전달이되네요 구수 시원한된장국 같네요 호박들어간거 그걸먹고싶네요 ㅎ
작년에 35도가 넘는 뙤약볕이었는데 집 근처 담벼락의 덩굴장미는 더 이글거렸습니다
호랑거미가 거미집을 쳤는데도 염치는 있는지 기특하게 꽃 부위를 비껴갔더군요
안 그랬으면 빗자루로 철거됐겠지요
아무튼 꽃이 어울리니 거미집이 근사해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호랑거미는 내열성이라 40도가 넘는 야외에 수 시간 노출돼도 인내한다는 얘길 들은 적 있습니다
무더위에 오락가락 살아지는 당시의 제겐 그야말로 끈질긴 생명력 한 쌍을 본 거 같았습니다
작성자님의 노대인께서 흡족하신 성취에서 저는 제 여름의 감상이 생각나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잠 못드는 밤에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흘러가듯 살던 제게 큰 자극이 되네요
조용히 추천 하나 누르고 갑니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그 방향성과 성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멋진 생각이십니다.
나의 삶에서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에서 하나씩 배우고 깨달아 갑니다.
전 글 읽으면서 김창완아저씨 목소리가 떠올라요
그 아저씨가 방송 하면서 담담 하게 담백하게 읽어주시는거 같은 느낌이네요
아주 많이 공감합니다 저 어렸을때와 많이 겹치네요
제일친한 친구가 묻더라고요
넌 왜이렇게 집에 집착하냐고
날때부터 자기집인 사람이
이사를 20번? 정도하며 자란 사람을 이해한다는게
근데 지금시대는 그때보다 격차가 더 벌어진거 같아
안타까운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