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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아버지, 저의 조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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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3월 15일 오스트리아 빈, 헬덴 광장에서 독일계 주민들의 '해방'을 알리는 연설을 하는 아돌프 히틀러 총통

 

 

1938년 3월 13일, 나치독일은 범게르만주의 사상에 따라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였고, 오스트리아 또한 환영했다

히틀러의 리더십에 열광하였고, 나치당의 카리스마에 매료되었으며, 민족 숙원이었던 '통일'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기뻐했다

 

그러나 모든 오스트리아인들이 이러한 광기에 물든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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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예거슈테터(Franz Jaegerstatter) 또한 그러했다

 

그는 1907년 5월 7일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잘츠부르크와 브라우나우(히틀러의 고향)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 장크트 라데군트에서

가난한 농부 프란츠 바흐마이어(Franz Bachmeier)와 로잘리아 후버(Rosalia Huber)의 아이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 바흐마이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말았으며

그의 어머니는 1917년 하인리히 예거슈테터 (Heinrich Jaegerstatter)와 재혼하였고, 어린 그는 예거슈테터 가에 입양되었다고

이후 양부의 가업을 이어 광부이자 작은 농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로서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던 그는 자신의 일생을 뒤바꿀 사랑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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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프란치스카 슈바닌거와 함께

 

농부에 불과했던 그는 신앙심이 깊었던 처녀 프란치스카를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졌고, 1936년 결혼식을 울렸고

이들 부부는 로마로 떠나 교황 비오 11세 로부터 교황의 축복을 받게 되었고 그 후로 프란츠는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도덕적이고 신앙심이 깊었던 아내에게 배움을 받으며 신학공부에 열성을 다 하였고

그 누구보다 신을 믿고 따르는 생활을 하면서 세 아이도 낳아 평화롭고 행복한 날만이 있을 것 같았으나

히틀러와 나치스는 유럽의 평화를 깨뜨리고 주변국을 집어삼키며 그 이빨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언제나 신의 입장에 서서 도덕적인 삶을 추구했던 그에게 있어서 나치스는 적그리스도에 불과하였고

실제로 프란츠는 라데군트에서 열린 독일-오스트리아 병합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인물이었으나

결국 나치스의 병합을 막을 수 없었고, 자신이 믿고 따랐던 신부들과 신자들이 나치스의 독재를 '애국'으로 포장하며

자신을 배반자로 몰아세우는 모습에 크게 절망하였지만 당장 바뀌는 것은 없었고, 그 에게는 부도덕한 현실을 바꿀 힘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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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독일인'으로서 1940년 10월 국방군에게 징집되어 훈련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그는 신념까지 버린 것이 아니었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반나치 운동을 전개하는 천주교도들이 박해받고 천주교가 탄압받으며

부도덕한 지도자를 강제로 충성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나치스의 장애인 학살 정책인 T-4 프로그램의 민낯을 목격하게 되었고

결국 그는 부도덕한 나라에게 충성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나치스의 침략전쟁에 대해 조사하며 그들의 악행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1943년 2월 23일, 나치스로부터 강제징집 명령이 떨어지자 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하였고, 의무병으로 대체복무를 하겠다고 요청을 하였으나

나치스는 그의 제안마저 거부하고 그를 체포하여 린츠레만트 교도소에 강제구금하였다

 

올바르지 않은 나라에서는 인권도, 법도 없었다

비슷한 시기 자신처럼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인권을 요구했었던 프란츠 라이니쉬(Franz Reinisch) 신부가 처형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그와 같은 길을 가기로 하느님께 맹세하였고, 교도소 내에서 자행되는 고문과 폭언,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였다

 

결국 프란츠 예거슈테터는 하느님의 뜻을 간직한 채 1943년 8월 9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괴르덴 교도소에 설치된 단두대 앞에 당당히 두 발로 섰고

그는 하느님을 만나기 전 '나는 주님과 마음으로 완전히 묶여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36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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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프란츠 예거슈테터의 아이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에는 그의 업적이 알려지지 못했다. 아니 알려질 수가 없었다

나치의 잔재가 남아있던 오스트리아 보수층들은 '군 복무도 회피한 배반자'를 인정할 수 없었고

그의 동반자였던 프란치스카에 대한 미망인 연금도 1950년까지 지급을 막아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4년 미국의 사회학자 고든 잔이 프란츠 예거슈테터의 삶을 조명한 Solitary Withness를 편찬함으로서

세상에 그의 업적이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유럽에서는 신좌파들이 이끈 68혁명 이후 나치의 잔재가 소멸함에 따라

그의 진정한 도덕심이 제대로 평가되어 뒤늦게나마 그의 진심을 사람이 알게 되었다

 

이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하여 순교자로 선포되었고 2007년 10월 성인으로 시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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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테런스 맬릭 감독의 작품 '히든 라이프'가 나치스의 악행에 대항하여 양심적 병역 거부를 주장한 프란츠 예거슈테터의 삶을 다루고 있다

 

 


 

 

댓글
  • 물랭면 2021/05/10 08:37

    한편 루터교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을 모의했다가 발각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물랭면
    2021/05/10 08:37

    한편 루터교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을 모의했다가 발각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1eZIN)


  • 루리웹-3486595353
    2021/05/10 08:37

    왜 아내가 남자같이생겼냐

    (21eZIN)


  • 소비에트 프롤레타리아
    2021/05/10 08:40

    ㅋㅋ

    (21eZIN)

(21eZ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