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정치(2) - 금지곡들
정치적인 배경이 있는 곡을 쓰면 한쪽 편에서 우주명작이라는 극찬을 받지만 다른 쪽에서는 희대의 졸작이라는 악평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게 국가 단위로 가면 한쪽 국가에서는 주야장천 연주되는 곡이 되지만 상대 국가에서는 연주회장에서 연주되는 모습조차 보기 힘들게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상황에 처한 몇 가지 곡들을 소개하겠습니다.
1. 요한 슈트라우스 1세 - 라데츠키 행진곡
그 유명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관객들이 같이 박수를 치면서 즐기는 전통이 유명하죠) 이 곡은 사실 지난 글에 있던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와 같은 사건을 공유하는 곡입니다.
요제프 라데츠키는 19세기 당시 오스트리아의 장군입니다.
이 곡은 라데츠키 장군이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을 이루려는 사르데나 왕국의 군대를 이탈리아 노바라에서 박살내 버리고 오스트리아로 개선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곡입니다.
지금은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보다 훨씬 작은 나라지만 당시에는 지금의 몇 배는 되는 땅을 가진 유럽 최강국들 중에 하나였고 이탈리아는 여러 국가들로 분열된 체 대부분의 나라들이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 있었죠. (이탈리아의 통일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이전 글 참고...)
〈나부코〉와 〈라데츠키 행진곡〉은 사실상 이탈리아의 통일전쟁이라는 같은 사건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곡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라데츠키 행진곡은 이런 정치적 색채가 싹 빠진 채 그저 신나는 행진곡으로 소비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오스트리아의 입장일 뿐이고 이탈리아에서는 여전히 이 곡을 연주하지 않습니다. (가해자는 잊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건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사실)
만일 일본에서 〈이등박문 행진곡〉이라는 곡을 작곡했다고 하면 만약 이 곡이 아무리 일본에서 정치적 의미 없이 연주된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연주되는 걸 용납하기는 감정적으로 어렵겠죠...
정명훈이 지휘하는 2018 베네치아 라 페니체 신년음악회 앵콜곡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입니다. 라데츠키 행진곡이 빈 필 신년음악회 단골 앵콜곡인 것처럼 이 곡은 라 페니체 신년음악회 단골 앵콜곡입니다.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2018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앵콜곡 라데츠키 행진곡입니다. 참고로 리카르도 무티는 이탈리아인입니다.(앵?)
2.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 1812년 서곡
이 곡은 1880년에 차이코프스키가 알렉산드르 2세 황제로부터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건립 기념곡을 위촉받아 작곡한 곡입니다. 1880년에 작곡된 곡에 1812년이라는 제목이 왜 붙었냐 하면 이 곡은 1812년 러시아에서 있었던 매우 큰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작곡된 곡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건은 바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입니다. 당시 영국을 뺀 유럽을 싹 쓸어버린 전쟁의 신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교역하던 러시아를 조져버리기 위해 60만 대군을 이끌고 공격했다가 역으로 러시아가 천하의 나폴레옹을 탈탈 털어버린 사건입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살수대첩 급의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죠. 저 성당도 사실은 이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성당입니다.
1812년 서곡은 음악으로 프랑스와의 전투와 승리를 묘사하였습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선율(러시아 정교회 성가 선율)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선율(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가 들어가 있고 한창 곡이 전개될 때는 곡에 대포소리를 재현한 소리가 나오고 마지막에는 종소리까지 들어가며 러시아의 승리를 엄청나게 화려하게 축하하며 끝을 맺습니다.
워낙 스토리가 명확한 곡이고 음악이 극적이여서 여러 행사에서 자주 연주되기는 하지만 정작 차이코프스키 본인은 이 곡을 단지 행사용으로 위촉받아 작곡했을 뿐 음악적으로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별 애정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확실히 작곡가의 심오한 정신세계 같은 것은 안보이지만 청중들을 신나게 하는 걸로는 이만한 곡이 없습니다.
이 곡은 승리의 영광을 노래한 곡이기 때문에 큰 행사를 기념하는 연주회에서는 원래 구성에는 없는 진짜 대포를 쏘며 연주를 할 때도 있습니다.
(안틸 도라티 지휘. 이 녹음은 실제 대포소리를 레코딩했습니다. 그 강력한 음향으로 음악 마니아와 오디오 마니아들 모두에게 유명한 연주)
이 멋진 곡. 프랑스에서는 거의 연주되는 일이 없습니다;; 프랑스 지휘자들이나 오케스트라가 이 곡의 음반을 취입한 경우도 찾아볼 수가 없죠. 자기나라 군대를 개박살 내버린 걸 기념하는 곡이니... (연주사례는 드물게 있기는 합니다. 러시아 원정은 엄연히 프랑스가 남의 땅에 침략했다가 참교육 받은 사건이고 나폴레옹에 대해 부정적인 프랑스인도 많습니다.)
3.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들
바그너는 19세기 후반 이후로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진 작곡가입니다.
바그너 등장 이후 오랜 세월동안 클래식 음악계는 그를 추종하는 세력과 그를 반대하는 세력과의 다툼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무한선율, 라이트모티프, 반음계, 금관악기 중심의 관현악법 등 온갖 혁신적인 기법들을 도입했고 바그너 이전과 이후의 클래식 음악은 매우 달라졌습니다.
바그너 음악의 또 다른 특징은 게르만 신화나 전설에 바탕을 둔 스토리로 독일을 포함한 게르만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많습니다. 음악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지만 자국의 민족주의 흐름에 편승해서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는 베르디와도 유사한 점이 있죠.
바그너 음악의 마니아들은 통칭 ‘바그네리안’ 이라고 불립니다.
바그너 이후 현대까지 수많은 바그네리안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분은 바로 이 사람일 겁니다.
미대 입학에 실패한 젊은 무명 화가 아돌프 히틀러는 무명시절 가난하게 살 때도 돈만 있으면 바그너의 오페라 관람을 위해 티켓을 사고는 했습니다.(지금도 그렇지만 오페라 연주회 티켓은 무명 화가가 사기에는 비쌉니다...)
나중에 히틀러의 나치당이 정권을 차지한 이후에 나치는 바그너의 음악을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 본인의 취향도 있을 뿐 아니라 게르만 우월주의를 내세우던 나치 입장에서 바그너의 음악은 매우 입맛에 맞는 대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나치의 전당대회는 뉘른베르크에서 시행했는데 그 전당대회에서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공연은 필수코스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바그너 본인이 생전에 반유대주의 사상을 주장하고 다녔다는 사실도 나치의 반유대주의 정책과 매우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사실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는 바그너가 진지하게 그런 사상을 가졌다기보다는 유대인 출신 금수저 작곡가 멘델스존에 대한 열폭 때문에 트집거리로 써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치 집권기 동안에 끔찍하게 당했던 유대인들에게 바그너의 음악은 저주의 대상이 되었고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그의 음악은 연주되지 않습니다.
이후 주빈 메타나 다니엘 바렌보임 같은 몇몇 유명 지휘자들이 바그너의 음악을 이스라엘에서 연주하는 용감한 짓을 했는데 그때마다 뉴스토픽을 장식할 만큼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바렌보임은 심지어 유대인인데도!)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 중 발퀴레의 기행. 그 유명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나오는 명장면입니다. 이 장면과 곡이 굉장히 어울리기도 하지만 반유대주의 작곡가 바그너의 곡을 삽입해 베트남 전쟁에 대한 우의적인 비판의도도 담겨져 있습니다.)
4. 윤이상 -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는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이 1981년 작곡한 곡입니다.
제목을 보면 짐작이 가시겠지만 이 곡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곡입니다. 윤이상은 80년대 이후로 사회적인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는 곡들을 여럿 작곡했는데 이 곡은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입니다.
이 곡은 대략 20분 정도 길이로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부는 항쟁을, 2부는 진압 후의 폐허와 슬픔, 3부는 꺾이지 않는 민주주의 투쟁의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한국인들은 모두가 아는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음악이여서 윤이상 곡들 중에서는 그나마 듣기 쉬운 곡입니다.(사실 그래도 난해합니다;;)
81년 5월 8일 서독에서 처음 연주된 이 곡은 당연히 전두환 시절에는 절대 국내에서 연주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동백림 사건이 있은 후로 윤이상의 곡은 금지곡이 되었지만 다른 곡들은 80년대에 해금되어 (정권 눈치는 보여도) 연주하는 데는 문제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민주화가 되고 나서도 오랫동안 연주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94년 9월 8일에 서울에서, 9월 13일 광주에서 한국 초연이 성사되었습니다. 윤이상이 죽기 겨우 1년 전이었습니다. 물론 현재는 연주에 어떠한 제약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윤이상 곡들 중에서도 자주 연주되는 곡입니다.
(광주여 영원히. 김홍재 지휘, 도쿄 관현악단 연주.)
[리플수정]http://mlbpark.donga.com/mp/b.php?p=1&b=bullpen&id=202102150051974912&select=&query=&user=&site=&reply=&source=&sig=hgjBGf-gjh6RKfX2h6j9Gg-Ahhlq
이전글 링크. 읽지 않아도 이 글을 읽는데 문제는 없습니다.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
좋은글 감사해요
선댄스// 댓글 감사합니다ㅎ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용감한 짓 ㅋㅋ
감사합니다. 글의 건조한 분위기가 음악의 서늘함을 더욱 증폭시켜주네요.
FatMan,이언커티스// 댓글 감사합니다ㅎㅎ
바렌보임의 저 용자 짓 덕분에 이스라엘서는 바그너 음악을 연주해야 하느냐 마느냐로 논란이 일어났죠. 그냥 음악으로 보고 대범하게 가자 vs 피해자들이 있는 데 무슨 소리냐로... 바렌보임은 이 외에도 이스라엘의 제국주의적 행위를 규탄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서 음악회를 여는 등 용자짓을 해서 이스라엘 극우파에는 씹히는 대상이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명예시민권까지 받았죠
피해자는 이탈리아, 프랑스, 이스라엘이네요.ㅋㅋ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고 갑니다.
바렌보임은 참 나쁜 사람이군요.
영국의 자클린 듀프레와 그지경을 해놓고 유대인이면서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연주를 하다니...ㄷㄷㄷ
뭐... 바렌보임이 아르헨티나 국적이긴 하지만 제가 볼때 바렌보임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선 물불을 안가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리카르도 무티는 일부러 오스트리아인들을 멕이려고 그랬을까요? 이런 것 따윈 두러워하지 않는다 뭐 그런 거.
그나저나 원곡에는 없는 편곡이었지만, 1956년에 차이코프스키의 1812에 대포 소리를 녹음한 것은 정말 실험적인 시도였네요.
지적대화, 배리본즈// 바렌보임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도 양면적입니다. 오래전에는 뒤프레 관련으로 엄청 싫어했는데 바그너 연주 용자짓이나 팔레스타인 관련해서는 제 생각과 일치해서...
음악과 정치 하면 대중음악도 빠질 수 없는데,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공헌했다고 평가받는 곡이 있습니다.
바로, 데이비드 보위의 '히어로스'입니다.
https://youtu.be/lXgkuM2NhYI
이 사연은 이 기사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기사에도 언급되었다시피, 2016년에 보위가 별세하자, 독일 외교부에서 트위터로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다'라고 추모 메시지를 남겼죠. 자국의 가수가 아닌 영국 가수임에도 말이죠.
http://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3975&Newsnumb=2018043975
그리고, 여담으로 이 곡은 영국의 작은 도시의 한 소년에게 음악 할 기회를 준 곡이기도 합니다.
디페시 모드의 보컬, 데이브 가안은 만 14세 때 자동차를 훔쳐 타고 폭주를 뛰다 경찰에 붙잡힌 적도 있었던 문제아였으나, 데이비드 보위에 입덕하고 나서, 음악이 스릴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 왔는데, 친구의 공연을 위해 리허설장에서 음향 장비를 나르다가 저 곡을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서 리허설을 하던 다른 밴드 형아들이 그 노래를 듣고 자기네 밴드에 들어오라고 제의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디페시 모드가 결성이 되었죠. (제 지난 글에도 나오지만,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 소감을 말하는 영상에서, 당시 이 소년을 뽑은 형아 중 한 명이, '넌 음악 안 했으면 차도둑 했을 거야'라고 짓궂게 디스하죠)
그리고, 2017년에, 디페시 모드는 자신들을 이어 준 인연이 된 그 곡을 리메이크합니다. 특히 보컬, 데이브 가안에게 있어 보위는 인생의 참 스승이나 다름없었던 거지요(본문에 참교육 언급하시니 문득 떠올랐습니다. ㅋㅋ)
https://youtu.be/q6yzrZfgQvI
음악과 정치의 경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보위의 경우는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여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심지어 방황하던 청소년까지 교화한 바람직한 케이스가 아닐까 합니다.
님이 쓰신 글에 언급된 케이스 중 상당수도 그러한 케이스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결국은 동시대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느냐, 특정 정치 세력에 봉사하느냐가 명곡과 어용 음악을 가르는 기준이 아닐까 합니다.
놀러왔어용// 무티도 그렇고 바렌보임도 그렇고 음악가들은 대체로 음악은 음악일 뿐 정치와 별개로 생각하는 듯 싶습니다.
도라티의 저 음반은 레코딩 역사에서 레전드 연주죠ㅋ 저 이후에 1812 서곡에서 대포소리를 녹음하거나 실연에서 대포를 동원하는 사례들이 생겼으니...
[리플수정]양자론// 도라티가 선례를 만들었군요. 그 시절에 대포 소리를 녹음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듯합니다.
클래식은 가사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음악으로 받아들여도 자연스러울 것 같긴 합니다. 해석은 각자에 마음에 있는 것이니까요.
놀러왔어용// 클래식 말고 대중음악에는 약해서 저 곡은 몰랐는데 이것도 흥미로운 이야기네요ㅎㅎ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