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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된 고양이

2017.04.15  AM 4:46
착한 나의 고양이
끝까지 너무나 착하고
나를 너무나 사랑해준 네가
나의 품안에서 먼 여행을 떠났다
가쁜숨을 몰아쉬며
내품에서 떠나고싶다고 말하는것처럼
잠시 잠든 나를 깨워안아달라고 하기에
나는 작은몸을 안아들고 평소처럼 토닥토닥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숨이 멎는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며
내 심장도 멎을것 같았지만
내가 힘들까봐
내가 울까봐
힘든 고통을 삼키며
참는것같은 너를보며
나도 아무렇지 않은듯
마른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지난번 거부하는 너를 붙들고 강제로 약을 먹이다
속이 상해서 울어버린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다음 약은 잠잠히 먹어주던 고양이
가죽밖에 남지않은 피부에
매일 찔러대는 주사바늘도
너보다 더 긴장하며 덜덜 떠는 미숙한 나를 생각해
'앵' 소리한번 내지않고 참아주던
나보다 더 속이 깊은 고양이
그런 고양이였기에
너를 안고 울수가없더라
그렇게
나의 자장가를 한참동안이나 들어주다가
힘없고 작은몸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의 품안에서 잠이 들었다
이제 싫어하는 약 억지로 먹지않아도
아픈주사 맞지않아도 괜찮아
어제 낮부터
"언니 나 오늘 떠나"라고 말하는것 같아서
"언니 올때까지 기다려"라고 했는데
정말 너는 내가 올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곧 먼 여행을 떠날거라고 가느다란 눈빛으로
네가 말해주었기에
나도 오늘은 주사도 약도 먹이지않고
마지막으로 좋아했던 간식을 먹여줄수있었다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힘들게해서 미안했을텐데..
혼자서 외롭게 먼 여행을준비하며
남아있을 나를 더 생각해준
착한 나의 고양이
넌 항상 사랑스럽고 착한 고양이였다
언제나 나를 기다려준 고양이
내가 세상의 전부였던 나의 고양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 고양이 룬이야
나에게 와주어서,
부족한 나를 너무 사랑해주어서
정말 고마워
아픔없는곳에서 조금만 놀고있어
언니가 꼭 데리러 갈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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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룬이는 따듯한 봄날 예쁜 나무가 되었어요
룬이를 화장해서 집으로 가는길에
꽃시장에 들려 사정을 말씀드리니
친절하신 직원분께서
분갈이 해보신적 없으면 직접 해주시겠다며
화분안에 룬이를 예쁘게 담아서 분갈이 해주셨어요
특수흙이라 물빠짐 없는 화분이라고하더라구요
유실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어요
12년전 나에게 행운처럼 다가와준 나의 고양이가
13살에 행운목이 되었네요
세상에 나밖에 모르던 고양이였는데
살다보니 외롭게 기다리게한 시간이 많았던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는 외롭지 않게 볕잘드는 곳에서 볕도 쬐어주고
털빗어주듯 잎도 잘 닦아주고
무럭무럭 자라도록 잘 돌봐주려구요
행운목의 꽃말이
'약속을실행하다' 라고 합니다
이게 제가 룬이에게 해줄수있는 마지막 약속이네요
많이 아팠는데 이제 편히 쉴수있길..
괜찮은줄 알았는데
텅빈 방안이
텅빈 침대가
가슴을 찢어 놓는 밤이네요
보고싶어요
계속 누워만있어도
그 모습이라도 오늘 하룻밤만 더 보고싶어요
댓글
  • 수다쟁이아짐 2017/04/16 03:22

    ㅠㅠ 좋은곳 가거라..ㅠㅠ

    (JxMc3G)

  • 정군e 2017/04/16 15:47

    명복을빕니다.

    (JxMc3G)

  • Liar* 2017/04/16 16:12

    좋은 곳으로 갔을거에요 ㅠ ㅠ

    (JxMc3G)

  • veluga 2017/04/16 16:39

    이젠 무지개 다리 너머에서 안 아프고 행복하게 잘 지낼겁니다
    내 새끼 보내고서 제대로 받아들이는데 한달 반 조금 넘게 걸렸어요
    나중에 무지개 다리로 예뻤던 고양이들 만나러 갈 때까지 우리 함께 마음아프고 허전한 시간을 견뎌요 ㅠㅠ

    (JxMc3G)

  • JudgementdaY 2017/04/16 16:49

    잘가고 혹시 우리 아롱이 만나면 인사 좀 전해줘.
    난 잘 지내니 걱정 말고 잠시 후에 보자고.

    (JxMc3G)

(JxMc3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