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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왜 그렇게 해?

오래오래 생각해 보다가 질문합니다. 


제 남편은,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입니다. 외유내강의 전형적인 사람이구요.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저도 느껴질만큼 저를 좋아하고(물론 저도 남편을 좋아합니다.) 저에게 잘해주고 더 많이 잘해주고 싶어서 애를 쓰는 사람입니다. 
그걸 저도 알아요. 
결혼 15년 가까이 되어가는 동안, 제가 사소하게라도 뭔가를 하고 싶다고 말을 했을 때 들어주지 않은 적이 기억하는 한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저는 기억도 못할, 지나가는 말로 한 소리조차 섬세하고 예민하게 기억하고 있다가 반드시 그 바람을 이루어 주지요.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게,
혓바닥이 삐뚤어 진 건지, 입술이 삐뚤어 진 건지, (심성이 삐뚤지 않은 사람인 건 연애 포함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확인했으니...) 말을 참 삐딱하게 합니다. 
미리 말씀드릴게, 연애 시절이나 결혼초기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예제 1. 명품 지갑 사건.
결혼 10주년이었어요. 저나 남편이나 소비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서로 10주년이 되었으니 뭔가 큰 선물을 하자, 그러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뭘 사냐... 하던 참이었어요. 사기는 사야겠는데(10주년이니) 거참 살 거 없네. 뭐 그런 상황?
그러다 제가 명품 지갑을 살까 했습니다. 마침 지갑을 바꿀 때가 되기도 했고, 프라다 지갑이 참 예쁘더라... 하는 게 있었거든요. 
인터넷으로 구경을 하면서 가격을 봅니다. 면세가가 70만원 넘습니다. 옆에서 남편이 난리가 납니다. 
"미쳤네 미쳤어. 이게 머라고 이걸 사냐고" 온갖 지청구가 다 쏟아집니다. 저도 뭐 굳이 사야겠다, 꼭 사고 싶다 하는마음이 아니었으므로, 응응 하고 넘어갑니다. 

어느날 제가 아무 생각 없이 있는데, 갑자기 백화점에 가서 지갑 구경이나 할까? 합니다. 
명품관 가서 봅니다, 예쁩니다. 그런데 80만원이 넘습니다. 저도 딱 이걸 사야 하나, 망설여집니다. 그런데 옆에서 
"으이구 어이구 생각없는 인간아, 이 걸 사겠다고? 허 참 어이없네." 
이럽니다. 저도 뭐 딱히 사야겠다 하는 마음은 아니므로 그런가보다 합니다. 

10주년이 대충 지나갑니다. 얼마 뒤 남편이 해외 출장을 가게 되어 10주년 선물을 안 사준 것을 상기시키며, 면세점에서 뭔가를 사다달라 하면
별의 별 소리를 다합니다. 생각이 있니 없니, 정신이 있니 없니, 돈이 있니 없니.... 시간이 되니 마니... 출장이 놀러가는 거니 마니...

출장을 다녀옵니다. 그 손에는 제가 찍었던 그 프라다 지갑이 딱 들려 있습니다. 
싱글벙글, 남편은 그걸 사주게 되어서 너무 기쁜데, 저는 이미 마음이 상할대로 상해서 그 지갑을 받아도 하나도 기쁘지가 않습니다. 하나도 고맙지도 않습니다. 


예제 2. 아이폰 7 사건
얼마전의 일입니다. 일단 저는 앱등입니다. 아이폰 4를 시작으로 5를 거쳐 6를 쓰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잘 쓰고 있었지만 단 하나, 용량이 좀 부족(16기가)해서 새로운 앱을 깔려면 기존 앱을 지워야 하는 상황. 뭐 그래도 잘 쓰고 있었는데
남편이 올해 초 신형 폰이 하나 생긴답니다. (갤럭시든 아이폰이든 남편이 선택해서 회사에 신청만하면 되는 상황)

여기서 설명이 좀 필요한 게, 저희 부부가 스마트 폰의 시작을 아이폰 4로 했어요. 검정 흰색 커플 폰을 사서 잘 쓰다가 남편이 먼저 4를 물에 빠뜨려서 고장을 냈습니다. 그러자 제가 쓰던 화이트 4를 남편이 받아서 쓰고 저는 새로 아이폰 5를 사 줬어요. 그리고 또 아이폰 6가 나왔을 때 제가 쓰던 아이폰 5를 남편이 받아 쓰고 저한테 또 6를 사 줍니다. 그걸 쓰다가 남편은 6플러스 64기가로 갈아탔어요. 뭐든지 좋은거, 새거 저한테 먼저 주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물욕이 별로 없고, 얼리어답터적인 성향도 전혀 없어요.

저한테 "넌 갤럭시는 별로지?" 합니다. 제가 "ㅇㅇ 난 아이폰이 좋음." 했더니 느닷없이 "인생이 그리 만만하냐, 누가 새 폰을 너를 준다더냐. 그게 네 것이 될 것 같냐?" 이럽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단련이 된 저는, 아 이 인간 또 이 지랄이야. 속으로 욕하면서 그냥 싸하게 그 자리를 피해버립니다. 

2-3일이 흐르면 뜬금없이 또 "플러스는 싫어? 하긴 네 손엔 좀 크긴 하다." 이럽니다. 그래서 제가 "ㅇㅇ 난 작은게 좋아서 아이폰 쓰는 거니께로." 하면 또 무슨 미친 개 또라이도 아닌데 느닷없이 "새 폰이 네 것이 될 거 같냐, 내가 언제 널 준다더냐, 인생이 그리 만만하냐..." 블라블라. 전 또다시 속으로 아 또 지랄이야... 하고 그 자리를 슥 피합니다. 

2-3일이 또 흐르고 같이 마트를 갔는데 마침 아이폰 매장이 옆에 있습니다. 남편이 먼저 구경을 하자고 끌고 갑니다. 제트블랙이며 뭐며 아이폰 열심히 구경하면서 이게 이쁘네 저게 이쁘네 하고 있으면 느닷없이 또 그럽니다. "내가 언제 너한테 아이폰을 준댔냐, 내가 아이폰을 신청한댔냐, 네것이 될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열심히 고르고 있냐...." 와 나..... 진짜.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면 옆에 와서 또 "아이폰 7 색깔은 은색이 제일 예쁜거 같지?" 이럽니다. 그래서 제가 "ㅇㅇ 6는 금색이 이쁜데 7은 은색이 이쁘더라." 하면 역시 똑같은 타령의 시작입니다. 무슨 미친 ....도 아니고 진짜....

그리고 며칠이 지납니다. 폰 나올 때가 다 되어가는 것 같은데, 폰 언제 나오냐(그 폰 관련해서 제가 처음으로 물은 날입니다.) 했더니 "니가 그걸 왜 신경을 쓰냐는 둥, 봐야 알지, 그걸 내가 어찌 아냐는 둥... 블라블라블라..." 네네네... 물어본 제가 미친뇬이죠. 그리고 다음날 저녁 뜬금없이 폰을 가지고 와서 똭 내밉니다. 그야말로 "오다 줏었다, 옛다 가져라." 라는 표정있잖아요. 그러면서 제가 좋아서 방방 뛰기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알아요. 알아요. 남편은 지금 저한테 아이폰 7을 주게 되어서 너무너무 신이 난 겁니다. 자기가 가지는 것 보다 저한테 주는 게 더 신나요. 왜냐면 제가 좋아할 걸 저한테 주는 거니까요. 위에서 말했잖아요. 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마누라가 좋아서 죽는 사람이에요. 만약 회사에서 폰을 지급하지 않았더라면 자기가 사서라도 제 폰 바꿔줬을 사람입니다.(물론 바꿔주는 과정에서도 저 지랄을 3-4번 반복했겠지만요.)
최신의 최신 폰에 제가 원한 아이폰에 제가 원한 색깔에 용량도 어마무시 무려 256기가랍니다. 결제가 끝나서 저는 그냥 쓰기만 하면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도 고맙지 않은 저는 이상한 사람인 걸까요?

예제 3. 각종 여행 건.
제가 예를 들어 "이번 주말에 날이 좋으면 애들 데리고 용문사를 가 볼까?" 합니다. (용문사는 남편과 저의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곳으로 용문사 가는 길을 참 좋아합니다 저희 부부 둘다.) 그럼 남편 바로 나오는 말 "용문사 거기 뭐라고. 거기 뭐 볼게 있다고, 거기가 뭐 좋다고, 난 하나도 좋은 줄 모르겠더라. 난 못간다, 길도 막히고. 피곤하고 주말엔 쉬어야지." 합니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이 되면 남편이 먼저 주섬주섬 챙기면서 "너 용문사 가자며?" 이럽니다. 
가기 싫어진 저는 변덕스러운 사람입니까?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지요. 좋은 펜션 가고 하려면 미리미리 좀 알아보고 코스도 짜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먼저, "올 여름에 제주도 갈까?" 답 아시겠지요? "제주도 거기 뭐~라고. 뭐 볼게 있다고. 멀다, 피곤하다 힘들다 블라블라블라."
그렇게 해 놓고, 회사에 제주도 펜션을 신청해 둡니다. 비행기 티켓을 싸게 구매할 방법도 알아보나 봅니다. 
"올 여름에 푸켓을 가 볼까?" "올 겨울에 일본 온천여행 어때?" 모든 대답은 동일합니다. 그리고는 막상 그때가 되면 누구보다 멋지게 화려한 여행코스를 똭 준비해 옵니다만, 저는 하나도 기쁘지도 않습니다. 제가 배가 불러 그럴까요?





글이 길어지니 최대한 짧게 써 보려 합니다만, 이런 말투를 설명하자니 말이 길어지네요. 

큰건 몇개만 골라서 써 봤습니다만, 일상의 모~~~~~~~~~~~~~~든 대화가 이러합니다. 

최근 사소하게는 요 몇주째 다큐 3일에서 지방의 봄 이야기를 했었죠. 남편과 저 둘다 좋아하는 프로가 다큐3일인데 한 2-3주 전에는 남도 섬의 봄 이야기가 주제였어요. 남편하고 그걸 보면서 문득 남편에게 "여보 회사 그만두게 되면 우리도 섬에 들어가서 살아볼까? 아니다, 난 그래도 섬보다는 산이 좋더라구. 난 이상하게 강원도가 땡긴다. 근데 강원도는 너무 춥다고들 해서 좀 그렇기도 해." 뭐 이런 이야기 를 했어요. 그랬더니 남편 왈 "쯧쯧쯧쯧(하도 연습해서 그런지 혀도 참 찰지게도 찹니다. 아주 무슨 교본이에요.) 끝까지 돈 벌 생각은 없구만?" 이럽니다. -_-
남편이 제가 돈을 벌지 않는다고(실제로 안버는 것도 아니구요) 불만이 있느냐하면 전혀요. 오히려 애들 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평소에도 아주 강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냥 제가 동녘 동!을 외쳤기 때문에 남편은 서녘 서!를 외치는 거지요. 자기도 실제로 동쪽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분 있을까요?

같이 마트에 장을 보러 갑니다. 저는 전업주부이고, 남편은 주 5일 근무자이지만, 주말에 꼬박꼬박 코스트코를 함께 가요. 무거우니까요.
제가 두부를 집으면 옆에서 "니는 올때마다 두부를 사더라, 그런데 매주 두부를 내버리잖아."(두부 썩혀 내버린적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팩트가 아니에요. 제가 동녘 동! 했으니 이 사람은 서녘 서! 해야하는 일종의 강박인거죠.)
금요일 저녁 제가 "내일 코스트코 가서 블라블라블라를 사야 해." 하면 남편은 바로 그럽니다. "우리집 돈은 다 코스트코가 먹는다는 둥, 너 돈 있냐는 둥, 항상 썩혀서 내버린다는 둥.... 블라블라블라..."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면 주섬주섬 코스트코 가자며? 하고 먼저 나서요. 

이러니 대화가 안됩니다. 
정말 대화를 할 수가 없어요. 
입이 삐뚤어졌나 봐요. 혀가 꺾였나 봐요.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남편에게 이야기를 해 봤나, 해 봤지요. 
알아요. 남편은 기본적으로 저를 무!척! 좋아하고!!!!! 제가 아무리 쓸데없는 걸 갖고 싶어 해도, 제가 갖고 싶어한다는 이유만으로 사주고 싶어하는 사람이고, 자기 옷 사는 것 보다 제 옷 사주는 게 더 즐거운 사람이고!!! 제가 지나가다 흘린 말도 기억했다가 그걸 이뤄주는 사람이고!!!!!! 
다 알지요. 그러니 남편은 그러는 거예요. 

네가 해 달라는 것 중에 안해준 게 뭐가 있냐. (없어요!!!!!!!!!!!!!!!!!!!!!!!!!!!!!!!!!!!!!!!!!! 진짜 없어요!!!!!!!!!!!!!!!!!!)
그냥 말 버릇이 그런 걸 어쩌란 말이냐. 

자기는 악의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런 말을 하면서도 항상 제가 원하는 건 무조건 다 해줄 생각이기 때문에. 
제가 너무 너무 싫어하니까, (요즘은 남편이 저딴식으로 말을 하면 그냥 썩은 표정으로 고개 슥 돌려버리거든요.) 항상 말을 저렇게 해 놓고 아차! 하는 표정으로, 

여기서 포인트는 남편도 진심으로!!! 저러고 싶어하지 않는다!!! 는 거예요. 

본인도 정말 고치려고 애를 쓰는 게 보여요. 제가 너무너무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니까요. 
그런데 순간순간 긴장을 놓으면, 아니 기분이 좋으면 좋을 수록!!! 기분이 좋아져서 긴장이 늦춰지면 저런 말버릇이 그대로 튀어나오는 거죠. 



아니 대체 왜 그럴까요? 
옳다 그르다... 이런 걸 떠나서요. 저는 진짜, 진심으로 궁금해져서요. 도대체 왜! 말을 저렇게 하는 걸까요?
(참, 중요한 거. 긴장하고 대해야 하는 상대들에게는 절대로 저런 말투 안씁니다. 아주 나이스하기로 소문난 사람이고, 저랑 연애할 때도, 결혼초기에도 전혀 저러지 않았어요.)


제가 이걸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하니 주변 사람들은 다 그래요. 말만 그러는 거는 그냥 무시하면 되지 않냐. 중요한 건 명품 지갑을 사 주는 거고 중요한 건 아이폰 7을 가져다 주는 거고, 여행을 간다는 거고....

아니오!!!! 아니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어린왕자에 그런 말이 나오죠. 네가 4시에 온다고 하면 나는 3시부터 즐거워 질거라고요. 
여행의 즐거움은 여행 그 자체보다 그 준비과정에 절반 이상이 있죠. 여행 그 자체보다 준비과정의 설레임이 더 좋은거일 수도 있는 게 여행 아닌가요?

그런데 제 남편은 저의 즐거움을 싸그리 없애버려요. 그리고는 4시에 왔으니 됐잖아, 여행 왔으니 됐잖아? 뭐가 문제야? 하는 거죠. 



정말 문제가 없는데 저 혼자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걸까요?

사실 주부 많은 사이트에서 한번 물어봤었는데, 오유에 다시 글을 쓰는 이유는, 여자분이 아닌 남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예요.
저 정말 너무너무너무 궁금하거든요. 
(주부 사이트에 물어봤을 땐, 우리 남편(또는 아빠)도 그래!!! 라는 답이 주류였고, 왜 그러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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