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김재규장군의 재판이 시작된 날입니다.
1979년 12월 4일 재판시작
1980년 5월 20일 대법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집행은 나흘 뒤 이뤄졌습니다.
김재규장군의 군법회의 최후의 진술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계획적인 혁명 거사였다"
1979년 10월 26일 다까끼마사오를 살해 후
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사형당하신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셋째 여동생 김정숙(81)님이 AFP와의 인터뷰에서
"오빠는 반역자가 아니었다"
"사람을 죽였다면 벌을 받는 게 마땅하다"며
그러나 오빠는 스스로 대통령이 되고자 대통령을 죽이지 않았으며 국가에 반역을 하지도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유족들도 "김재규에게 내란혐의를 씌운 재판과 가족에게 통보없이 단행된 형 집행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재심청구하였고
"유일한 면회가 형 집행 전날 이뤄졌다. 그러나 누구도 다음날 형이 집행될 줄 누구도 몰랐다"며
오빠는 자신이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처형됐다"고 말하셨습니다.
AFP는
김재규장군의 무덤은 한국 현대사의 분쟁을 상징한다고 설명하며
장군의 무덤옆에 세워진 추모비에는
'의사'(義士) '장군'(將軍)이란 단어가 정으로 쪼아낸 듯 훼손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 의한 소행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곳은 매년 김 전 부장의 생일 및 10월 26일마다 시민들이 양주 '시바스 리갈'을 들고 참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고 AFP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