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물론 최근 불펜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혜민이라는 분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별적인 사례를 두고 글을 쓰자니 제가 그 사람의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부적절하다고 생각되어
조금 다른 방향으로, 그러니까 일반 교양의 관점에서 불교를 얕게만 살펴보고자 이 글을 써 봅니다.
가장 큰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1. 스님을 비롯한 불자(佛子)는 왜 탐욕을 버려야 할까?
이 부분은 불교의 교리를 조금만 살펴보면 자연히 답을 얻게 됩니다.
2. 사람들은 왜 혜민이라는 사람에게 화가 났을까? 그리고 그런 분노는 정당한가?
이 부분은 그냥 제 생각인데 아마 분배 정의 (엄밀히는 보상에 대한 자격)와 관련된 것 같습니다.
우선 첫번째 질문, '스님을 비롯한 불자(佛子)는 왜 탐욕을 버려야 할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의 핵심원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사성제(四聖諦)'와 '삼학(三學)'입니다.
여기에 '연기설(緣起說)' 정도만 더 하면 초기불교의 핵심적인 내용은 다 알게 된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연기설'은 빼고 위의 2개만 매우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 사성제(四聖諦) - 네 가지 가장 성스러운 진리
불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인 '사성제(四聖諦)'는 '고(苦)·집(集)·멸(滅)·도(道)'로 정리됩니다.
아마 거의 모든 분들이 들어보신 말일 듯 합니다.
- 이 세상의 현상은 '고(苦)', 즉 생로병사 등 고통 속에 있으며 (현실의 결과)
- 그 고통의 원인은 '집(集)', 즉 세상이 '무상(無常)'함에도 무언가 영원불멸하는 것이 있다고 착각하는 집착에 있고 (현실의 원인)
- 그와 같은 고통을 끊은 이상적 상황이 '멸(滅)', 즉 열반이며 (이상의 결과)
- 열반을 위한 방법이 '도(道)', 즉 바른 길을 가는 것 (이상의 원인)
이라는 것입니다.
□ 삼학 (三學)
'삼학'은 '계(戒, 계율), 정(定, 선정), 혜(慧, 지혜)'를 말합니다.
불교의 최종목적은 앞서 '사성제'에서 말씀 드렸듯이
'열반', 즉 해탈을 통해 모든 고통과 고통의 가능성까지도 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방법은 부처님께서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아주 후려쳐서 요약하면
'계', 즉 계율을 잘 지켜 몸과 마음을 잘 단속하고
'정', 즉 선정(명상)을 통해 삼매에 들어
'혜', 즉 '열반의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후려쳐서 설명했는데 이 부분은 불교 교리의 핵심 중 핵심이니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의 '사문과경'을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https://blog.naver.com/karspark/221816427795
셋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물그릇에 달이 비추고 있는데
그릇이 이리 저리 흔들려서 물이 막 흔들리게 되면
달의 모양이 제대로 비추어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릇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 단속하는 것이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 '계율'을 잘 지키지도 않아 몸과 마음을 제 멋대로 하면서
하루 종일 '명상'만 하고 있다고 해도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계'는 깨달음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인 셈입니다.
'계' 부분에 대한 이해가 결국 첫번째 질문, 즉 '스님을 비롯한 불자(佛子)는 왜 탐욕을 버려야 할까?' 에 대한 답이 됩니다.
부처께서 경계하신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먹기, 자기 등)'가 아니라 지나친 욕구인 '탐욕'입니다.
'욕(欲)구'와 '탐욕(慾)'의 한자 자체도 다름에도 유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탐욕을 가지게 되면 결국 무언가에 집착을 하게 되어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없기 때문이죠.
참고로 붓다께서는 '탐욕'에 더하여 '분노', '어리석음' 이 세가지가 가장 위험한 것이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이를 '삼독(三毒)'이라고 합니다.
셋 모두 결국 무언가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섯가지 장애 ('오개 五蓋' 라고 합니다)
즉 '탐욕, 악의, 해태(게으름)와 혼침(정신혼미), 들뜸과 후회, 의심'를 없앨 수 있다고도 설명하는데
여기에도 탐욕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사문과경' 중에서 계율 중에 탐욕을 경계하는 부분을 조금만 발췌해보겠습니다.
"대왕이여,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율을 지키며 머무릅니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잘못됨을 보며, 학습계목들을 받아지녀 게으르지 않고 익히며 닦습니다. 선한 몸의 업과 말의 업을 잘 갖추고, 생계를 청정히 하고, 계를 구족하고, 감각의 근들의 문을 보호하고 마음새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고,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합니다.
(중략)
그는 높고 큰 침상을 멀리 여읩니다.
그는 금과 은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중략)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축적해 두고 즐기는데 물두하면서 머뭅니다. 즉 음식을 축적하고, 마실 것을 축적히고, 옷을 축적히고, 탈 것을 축적하고, 침구와 좌구를 축적하고, 향을 축적하고, 재산을 축적하는 등 축적하는 것을 즐기는데 몰두하면서 머뭅니다. 그러나 그는 축적해두고 즐기는 이런 것을 멀리 떠납니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입니다.
(중략)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큰 (호사스런) 침구와 좌구를 사용하면서 지냅니다. 즉 긴 의자, 소파, 긴 털이 달린 깔개, 여러 가지 색의 모직 덮개, 흰색 모직 덮개, 꽃무늬의 모직 덮개, 솜을 채운 침대요, 사자나 호랑이 모습을 수놓은 침대보, 양쪽에 술 장식이 달린 덮개, 한쪽에만 술 장식이 달린 덮개, 보석이 박힌 덮개, 비단 덮개, 춤추는 소녀들이 사용하던 모직 양탄자, 코끼리 등덮개, 마차의 깔게, 말의 깔개, 사슴가죽 깔게, 영양가죽 깔게, 붉은 베게와 붉은 발 한 받침이 있는 긴 의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큰 침구와 좌구를 멀리 떠납니다. 이것이 이 이 비구의 계입니다.
(이하 생략)"
전체 내용 중에 '계율' 부분만 아래에 따로 발췌하여 옮겨 두었으니 흥미가 생기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집착의 소멸을 통한 '열반'에 있고
이에 이르기 위해서는 '계율' -> '선정' -> '지혜' 의 순서가 필요하며
'계율'에서는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탐욕을 억제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혜민이라는 사람의 행태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가능하겠으나 적어도 스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존경을 받으려한다면
언론 등에서 비쳐진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참고로 불교에서는 세가지 보물이라는 뜻의 '삼보(三寶)'를 '부처(佛), 부처의 가르침(法), 승려(僧)'로 말하며 극히 존귀하게 대하고 있기도 하지요.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그냥 제 생각이어서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
간단하게만 말하자면 '보상에 대한 자격'에 대해 사람들은 매우 민감하고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이 저는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로 여러 의견 나눌 수 있다면 더 없이 기쁘겠습니다. ^^
[리플수정]세상이 고집멸도인데
반야심경에는 무고집멸도라고
하는 이유가 뭔가요?
쉽게 말하면 탐욕을 가지면 괴로움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불자라면 스님에 대한 '상'도 없을 것이므로 타인의 인생을 어떤 잣대로 평가하지 않지요..
불교수행의 목표는 열반, 열반Nirvana은 꺼진상태 라는 의미인데 무엇이 꺼졌느냐 탐진치(탐욕, 성냄, 어리석음)가 꺼진 것. 그러므로 열반에 이르려면 탐욕은 당연히 멀리해야 할 것 이죠
칼로만든산// 후기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의 요체가 반야심경이기 때문일텐데 저도 사실 아는 것이 많지 않아서 자세한 답변을 드릴 능력이 못 되네요. 죄송 ^^;
다만 '무고집멸도'라는 말이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부정하거나 틀렸다고 하는 말은 당연히 아니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버림으로써 얻는다는 진리
Pppppp// 탁견이십니다 ^^
사실 그래서 저는 아직 '불자'라고 할 수 없지요 ㅎ
몇 가지 정정하자면 '고'는 고통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만족, 불완전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라고 하는 게 그런 뜻이고 생명을 갖고 태어난 인간은 그 자체로 불만족스럽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그 안에 정신적, 육체적 고통도 포함되어 있겠죠.
그리고 삼보의 '승'은 승려가 아닙니다. 깨달음을 성취한 성자들의 모임을 뜻합니다. 원칙적으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승려는 재가자들의 보배가 아닙니다. 그래서 성취를 얻지 못한 승려들에게 보시받은 음식을 먹을 때 끓는 쇳물을 삼키듯 먹으라는 경책도 있다고 들었네요
Pppppp// 불자라면 당연히 스님에 대해 평가를 합니다. 단 탐진치가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평가하라고 가르칩니다. 평가가 없다면 부정, 불의에 대해 눈감는 비겁자가 되라는 말밖에 안됩니다. 불교는 언제나 자애의 마음으로 판단하고, 자애의 마음으로 올바르게 행동하라고 가르칩니다.
내용 적어주시고 요약한 부분에서 생각할 부분이 많아서 바로 답글을 적긴 어려울꺼 같습니다.
그래도 요약해 주셔서 잘 읽을 수 있었던거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성제와 더불어 불교의 핵심원리 팔정도(=중도)에 대한 설명도 함께 하시면 더 좋을듯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사성제 팔정도 여기에 다 들어있으니까요
무욕 또한 탐욕을 낳게 됩니다
그러니 취하지도 버리지도 말라는 말이 사실 맞습니다
그리고 탐진치 삼독을 인지하는 것이 수행이라는 것도요
촛대바위//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
'고'의 의미는 좀 더 곱씹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승'의 의미에 대해서는 당연히 동의하고 그래서 일부 무늬만 종교인입네 하는 분들을 '목사'나 '승려'로 생각하지 않고 있지요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
촛대바위// 불자에 대한 '촛대바위'님의 생각에 저도 좀 더 마음이 끌리네요~ ^^
송아지// 긴 글인데 읽어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른 때 또 의견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요~
오늘도 행복한 밤 되시구요~ ^^
알리// 말씀 너무 감사드립니다.
글이 너무 길어질까봐 팔정도 부분은 뺐습니다. (사실 잘 알지도 못 하지만.. ^^;)
스즈메미노// 간결하게 정리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
정성글 추천!!!!!
저도 찬찬히 읽어볼께요~~
본문도 댓글도 배울만한 내용이 많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악기 쉽게, 그리고 겸손하게 잘 정리해 주셨네요(이런 글 정말 좋아요 ^^)
불교 글 많이 알려주세요. 배우는게 많네요.
좋은 글과 댓글 감사합니다
이런 글과 댓글이 엠팍 불펜 큰 매력중 하나죠
혜민이라는 놈은 종교학 박사까지 했다면서
싯다르타가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는지도 모르는듯
법륜이나 조수미 디스할때는 혹독하게 비판하고
정작 본인한테는 한없이 관대하죠
제가 어느 스님께 들었던 탐진치 삼독에 관한 해석중 제일 쉽고 와닿았던 것
탐 = 좋아하는 거
진 = 싫어하는 거
치 = 놓치는 거
였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거, 너무 싫어하는 거, 인지를 놓치는 거,
이렇게 해석하시더군요.
집착과 괴로움의 원인을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니
색즉시공 공즉시색
군대에서 제일 친하게 지냈던 고참이 불교 군종병이었는데 ㅋㅋ 그 때도 이런 얘기 들었던 기억나네요.
불교의 핵심은 연기론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힌두 전통에서 태어난게 붇다의 불교인데
힌두에 없었던게 연기론.
대중적인 힌두 전통의 양태야 다르지만
힌두 전통의 큰 줄기인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관계라는
(절대 존재인 신과 개별 인간의 관계로 치환 가능)
관점에서 완전히 새롭게 제시된게 연기론이라서
연기론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은 닭살이 돋는 느낌을 주더군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대를 떠나 청빈의 삶이 스님하면 떠오르는이미지죠.
혜민은 청빈은 커녕 욕심과 탐욕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진정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들을 모욕하는 주준으로 말입니다.
lemov2 // 동의합니다. 선정(명상) 단계중에 비상비비상처정까지는 브라만교에도 있던 것(당시에는 힌두교는 아니었음) 싯다르타가 거기까지 갔음에도 뭔가 미진했죠. 결국 사유를 통해 깨달은 지혜가 연기법
............탐욕을 버리라고 했지만.
사람들이 쉽게 얻기 힘든 억대차와 전망좋은 집을 누리는게 탐욕이라고 하진 않으셨죠.
탐욕의 기준은 외부에서 그들이 누리는 것의 가격으로 쉽게 판단하긴 힘들어요.
탐욕은 사실 개개인이 스스로 형성하는것이거든요.
기부행위가 마냥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외부에서 쉽게 판단하지 못하는것처럼요
아이쿠 가볍디 가벼운 불펜에 웬 고품격 글 인가요.
펌도 아니고 직접 쓰셨네요.
👏👏👏👏
이 글이 한동안 뜸했던 여러 분야 불펜의 고수들에게 마중물이 되기를.
SENSUAL// 글쎄요. 억대차와 전망좋은 집을 누리면서 그것을 탐욕으로 생각하지 않는 건 자기합리화, 자기 기만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그것을 정말로 탐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것들을 소유할 이유 자체가 없지 않을까요?
[리플수정]견리사의// 탐욕이 아니고서도 무언가를 소유할 이유는 많죠. 탐욕에 빠진 자들이 주로 값비싼 물건을 누린다고해서
값비싼 물건을 누리는자들이 모두 탐욕에 빠져서 집착으로 그것을 누린다고는 볼순없죠.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불교도가 아니라 평소 궁금하긴했었는데 좋은 기회에 배우고 갑니다
칼로만든산//반야심경을 찬찬히 보면 시제법공상 불생불멸ㅡ로 쭉나가면서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이란 말이 나오죠. 즉 공상 공의 모습이 무고집멸도란 얘기입니다. 색은 현상계고 공은 본래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상계는 고집멸도가 있지만 본질의 모습은 고집멸도라 할게 없죠. 이 것을 진실로 이해할려면 견성은 해야 되는데 일단 불법에서 실체적진리는 공이란 묘한거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럼 색즉시공은 뭔가하면 색 즉 현상계는 미혹된 꿈과 같은 거라 반야 로 미혹을 깨면 색즉시공에 이릅니다. 그래서 출가수행자는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죠.
그리고 색즉시공만 하면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그 뒤의 공즉시색도 중요한 말이죠. 시를 전공하는 사람한테 공즉시색이 중요하다 얘기해 줬더니 좋아하더군요.
얼마나 그 삶의 에움과 얽히는 괴로움을 끊어내기 싫으면 이 모든 것을 훑어내는 비상 최고의 주문을 세 번이나 외우게 했겠습니까. 저도 가끔 반야심경을 듣는데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독송부분은 뭔가 울컥하다 세 번째 주문을 들을 땐 솟던게 저며듭니다. 물론 위엣분들처람 불가의 심오함은 잘 모릅니다. 그저 공은 비움이고 또 비우지 않았을 때의 허무를 일깨우는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과 댓글들이네요.
불자인데 잘 읽고 갑니다
탐진치,변 모두 무아에서 비롯되는 개념들이고, 여기에 따르면 탐욕을 멀리해야 하는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나, 나의것,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게 무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