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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18세기 최대 역병을 조기 종식시킨 정조 임금.jpg




1786년(정조 10년) 4월 한양에 홍역이 유행할 조짐이 


보였을 때 정조 임금의 대응이다. 


얼굴에 붉은 발진이 나타나는 홍역은 


17세기 중반 이후 10~20년을 주기로 


계속 조선에서 발생한 공포의 전염병이었다. 


1668년(현종 9년) 첫 대유행이 보고됐고, 


1707년(숙종 33년)에는 무려 수십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1730년(영조 6년)에는 서울에서만 사망자가 1만 명이었다.


신동원 전북대 교수(과학기술사 전공)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정조 10년 한양에 다시 홍역이 유행할 조짐이 보이자 


정조는 특단의 조처를 했다. 


우선 왕실용 약제인 안신원(安神元) 2만7천 환을 


대궐 내외 각처에 하사하여 두루 공급하게 했다. 




산약·백봉령·백출 등 비싼 약재가 들어가는 이 안신원의 대량 공급을 위해 


정조는 왕실의 금고인 내탕금에서 비용을 내기도 했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국가 재정 지출 범위를 뛰어넘어서 ‘선제 대응’을 한 것이다.


정조는 또한 양반이나 상민·천민을 막론하고 매우 가난하여


약을 스스로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청원이 들어오면 전의감과 혜민서에서 


의원을 파견하고 약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전의감·혜민서는 당시 홍역 치료를 맡은 의료기관이었다.


정조는 또 전의감·혜민서에 홍역 대응책을 상세히 서술한 운영절목, 


즉 운영세칙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 또한 전대 임금들에게서는 보이지 않았던 지시였다. 


이에 따라 두 의료기관은 10개 조항으로 된 ‘진역구료절목’을 마련해 올렸다.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약은 반드시 가난한 사람에게만 지급하도록 했고


왕진과 약의 지급은 반드시 문서에 기록하도록 했다. 





또한, 만일 가난한 사람이 아닌 자가 


허투루 꾸며 약을 받았을 경우에는 중한 죄로 처벌하도록 했고 


의관이 왕진할 경우에는


병조로 하여금 역마를 준비하게 하는 등 


지원 체계도 강화했다. 


더 나아가, 이런 정부 정책을 


한글로 작성하여 한성부 곳곳에 붙이도록 했으며, 


백성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이를 인지하지 못한 사례가 적발되면 


담당 관리를 논죄하는 조항도 두었다. 


마지막으로 병을 진찰하여 


증세를 논한 건수, 지급한 약의 환·첩 수량 등을 


5일 간격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이런 조처들을 오늘날 식으로 평가하면, 


‘응급의료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한 것’이 될 것이다.


정조 임금의 이런 체계적 노력이 성과를 낸 덕인지, 


그해의 홍역은 첫 보고가 있은 직후인 


4월 27일에서 5월2일 사이에 피크를 이루었고, 


6월19일까지 크게 감소한 뒤 차차 줄다가 6월 29일 무렵 종식됐다고 한다. 





퍼온 글입니다. 


출처는 서울역사편찬원 편 ‘서울 사람들의 생로병사’



댓글
  • 놀러왔어용 2020/10/02 00:33

    실질적인 방역 효과는 없었겠지만, 면역력 증진 효과는 있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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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10/02 02:22

    놀러왔어용// 18세기엔 어느 정도 역병에 대한 방역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사적으로 운영되는 병막이라는 게 있었는데요. 돈을 받고 역병에 걸린 환자들을 격리시키던 장소입니다.
    당시 사대부의 일기를 보면 주인이 병에 걸린 노비들이 있으면 사재를 털어서 병막으로 보내 격리치료를 하도록 했다는 구절도 보이더라고요.
    역병에는 격리가 최상의 대책이었다는 걸 당시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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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35w53w532262aq24642a6 2020/10/02 02:39

    이씨조선애들 볼때마다
    우리 조상들이 힘을 내서 몸둥이로 쳐죽이지
    참 아쉽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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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rebase 2020/10/02 10:01

    저 약이 효과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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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르딕 2020/10/02 10:02

    후대인 1821년에 역병으로 수십만이 사망한 거 보면 저건 거의 정조 개인 역량으로 막아낸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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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테이아 2020/10/02 10:12

    정조 개인 역량이 시스템을 앞질렀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결국 정조 개인 역량만큼 안 되는 군주가 등장하면서 나라가 무너져갔잖아요.
    시스템도 결국 망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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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積惡餘殃 2020/10/02 10:56

    다른걸 떠나서 저 산약백봉령백출 등 비싼 약재가 들어가는 그 안신원이라는 한방술이 효과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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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naming 2020/10/02 11:12

    積惡餘殃//효과가 있으니까 쓰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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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積惡餘殃 2020/10/02 11:31

    Nanaming// 그건 너무 막연한 추측이죠.
    조선시대에는 비 안 내리면 매번 기우제를 지냈는데 기우제도 효과가 있었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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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갈길간다 2020/10/02 11:40

    격리 뻬고는 아무런 효과 없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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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라로 2020/10/02 11:51

    그냥 그정도로 열심히 노력했단 의미일 뿐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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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norang 2020/10/02 11:52

    체력증진 정도의 효과는 있었겠네요.
    지금 현대의학으로도 코로나에 해줄 수 있는 게 격리 빼고는 대증치료 밖에 없는데, 저 시절에 왕이 적극적으로 나선 건 의미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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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쇠3 2020/10/02 12:13

    積惡餘殃// 기우제는 돈은 얼마 안들지만 저건 약재값 엄청 드는데 효과없었으면 하지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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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右相 2020/10/03 01:13

    과연 정조대왕...조선에서 세종 다음으로
    으뜸가는 군주답구나. 명군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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