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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옳은가?

악마는 예배시간에 나타났다.

부정한 사탄아 물러가라를 외쳐대는 목사의 옆에서, 악마는 물었다.

[ 그럼 너희는 옳은가? ]

십자가를 내밀고 대치한 목사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 그렇다 이 사탄아! "

악마는 다시 물었다.

[ 나는 곧 죽을 자를 666명이나 알고 있다. 네가 그들 중 하나라도 구하겠느냐? ]

" 뭐, 뭐랏?! "

목사가 당황할 때, 악마는 손가락을 뻗어 교인 한 명을 가리켰다.

[ 저 여인의 아들은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그 아들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곧 자살할 운명이다. ]

" ?! "
" 뭐라고요-?! "

지목당한 중년 여인이 깜짝 놀라 소리 질렀다! 
그녀의 아들은 실제로 얼마 전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상황이었다.
목사도 그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는지 놀란 얼굴이었는데, 악마가 제안했다.

[ 만약 네가 그 아이에게 266일간만 두 다리를 빌려준다면, 그 아이는 우울증을 극복하고 살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

목사의 두 눈이 흔들리고, 여인의 얼굴이 자동으로 목사에게로 향했다.

" 으... "

갈등은 있었지만, 목사는 실로 선한 사람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 하,할 수 있다! "

[ ... ]

악마의 표정이 변했다. 인간과 다른 그 모습이 어떤 감정인지는 몰라도, 악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하라. ]

" ?! "

그 말을 끝으로, 악마는 나타났을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교회 안 사람들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 때, 한 가지 소리가 울렸다.

' 쿠당탕! '

목사가 무대 위로 넘어지는 소리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양다리를 어루만지는 목사.

"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

교인들의 놀란 얼굴이 목사에게로 향했다.

.
.
.

처음, 교인들은 겁에 질렸다. 정말 사탄이 존재하다니!
다음, 교인들은 신기해했다. 두 다리를 잃었던 아이가 멀쩡히 걸어 다니다니!
마지막으로, 교인들은 칭송했다. 우리 목사님은 정말 훌륭하시다!

중년 여인은 거의 매일 같이 찾아와 목사에게 눈물로 감사 인사를 드렸다.
졸지에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목사였지만, 이왕 벌어진 일에 후회는 없었다. 
어차피 악마의 말이 사실이라면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만 다리를 빌려주는 것이었고, 그걸로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몇 번을 생각해도 실행했어야 할 일이다. 그것이 그가 배운 종교의 가르침이었다.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려는 악마에게 맞선 성자. 그것이 그의 현재 위치였다. 
안 그래도 따르는 교인이 많았던 목사는, 더욱더 많은 교인들의 애정을 받게 되었다.
휠체어를 타고 단상에 오르는 그의 설교 말씀은,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인기였다.

한데, 악마는 또다시 예배시간에 나타났다.

[ 너희는 정말 옳은가? ]

목사는 깜짝 놀랐지만, 이번엔 좀 더 빠르게 대답할 수 있었다. 

" 그렇다 이 마귀야! "

[ ... ]

마치 예정된 것처럼, 악마는 손가락을 뻗어 한 교인을 가리켰다.

[ 저 화가는 사고로 두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곧 자살할 운명이다. ]

" 뭐..? "

목사의 두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지목당했던 사내가 떨리는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 저, 저 말입니까?! 제 얘기를 하는 것입니까?! "

어떤 열망이 담긴 그 목소리는 목사의 무의식에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 네가 그에게 266일간만 두 눈을 빌려준다면, 그는 지난 10년간 그려온 벽화를 완성하며 우울증을 극복할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

" 아... "

모든 교인의 눈이 목사에게로 집중됐다. 목사의 두 눈은 사정없이 흔들렸지만, 그가 대답할 수 있는 말은 한가지뿐이었다.

" 할 수 있다! "

[ ... ]

악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하라. ]

악마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목사의 두 눈은 초점을 잃었다.

" 아...! 아아...! "

그 광경에 할 말을 잃은 예배실에, 환희에 찬 외침 하나가 울려 퍼졌다.

" 보, 보인다! 앞이 보인다-! "

.
.
.

목사에 대한 칭송이 하늘을 찔렀다.
화가는 눈물로 감사드리며, 목숨 바쳐 벽화를 완성하겠다 약속했다.

교회의 교인들은 물론이요, 전국의 명망 있는 종교인과 일반인들까지 목사를 찬양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에게 떠받들어졌지만 그는,

" ... "

너무 불편했다. 
그의 두 다리는 감각이 없어 걷지를 못했고, 두 눈은 앞을 보질 못했다. 보살펴주는 이 없이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알면서도 바지에 오줌을 지린 창피한 그 날, 그의 마음에 처음으로 어떤 싹이 텄다.

후회. 불만. 원망.

그도 사람이었던지라 어쩔 수 없었다.
평소 좋아하던 운동도 할 수 없었고, 책도 볼 수 없었다. 화장실에서는 수치스러웠고, 야외에서는 무서웠다.
사회생활에서의 역할도 주도적이지 못하게 되었고, 취미 여가는 사라졌다.

정말, 모든 것이 끔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받아 마땅한 그는, 훌륭하게 참았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다, 영원히는 아니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 오직 그 생각으로 버텼다.
다시 악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 너희는 언제나 옳은가? ]

" 으... "

악마의 목소리만으로도 목사는 떨었다. 이번엔 무엇일까? 귀를 먹게 되는가? 말을 못하게 되는가? 팔을 잃는가?
떨었지만, 수많은 교인이 모인 예배실이었다. 목사는 대답했다.

" 그렇다! "

[ ... ]

악마는 다시 손가락을 뻗어 교인을 가리켰다. 한데, 이번에 가리킨 교인의 사연은 목사의 예상을 웃도는 것이었다.

[ 저 여인은 오늘, 사람을 죽일 예정이다. ]

" ?! "

여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깜짝 놀란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 그녀는 10년째 전신 마비의 남편을 보살펴왔지만, 더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지쳤다. ]

" 저,전신마비..? "

목사의 얼굴에 불안감이 스쳤다.

[ 네가 266일간만 그에게 신체를 빌려준다면, 부부는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이고, 아내는 남편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

" ... "

멍해지는 목사의 얼굴.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한데, 이번에는 달랐다.

" 새,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

" 아~ "
" 아... "

많은 이들이 탄식했지만, 목사를 이해했다. 전신 마비라지 않는가? 그도 인간인데, 그렇게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오히려 사람들은, 남편을 죽이려는 여인에게 관심을 돌렸다. 
한데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도 당당했다.

" 지난 10년간 저는 할 만큼 다 했다고요! 아무도 저를 이해하지 못해요! 그 세월이 쉬웠는지 아세요?! 매일 같이 똥오줌 다 받아내고, 온종일 일해도 빚은 늘어만 가고, 중노동하고 집에 돌아와선 잠잘 시간도 없이 밥 먹이고 씻기고...! 더는, 더는 못해요! "

" ... "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소리치는 그녀를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안타까운 얼굴로 목사를 쳐다보지만, 그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마구잡이로 일그러져있었다.

이번에도 자신이 희생해야 하는가? 전신 마비를 대신하여 그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가?
왜? 왜 자신이? 그녀가 살인을 멈추면 되는 일 아닌가? 안 된다고? 그럼 어쩌라고? 그게 자신의 잘못인가?
그런다고 상황이 바뀌는가? 어차피 그는 다시 전신 마비가 될 것 아닌가!
다리와 눈만으로도 이렇게 괴로운데, 전신 마비라니!
이게 마지막일까? 266일이 지나면? 그때부터도 또 다른 희생이 찾아오지 않을까??

목사는 정말 괴롭게 고뇌했다. 그 표정은, 누군가의 외침을 불러일으켰다.

" 목사님은 거부할 수 있습니다-! "
" ?! "

그는 매우 단호한 어투로 외쳤다.

" 누구도 목사님에게 그것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있는 그 누구에게든 물어보십쇼! 자기라면 할 수 있는지! "
" ... "
" 자기 자신을 위해서 남을 구하지 않는 것은, 결코 죄가 될 수 없습니다! 모두들, 그렇지 않습니까-?! "

그의 말을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소리쳤다.

" 맞아맞아! 목사님! 목사님이 어떤 선택을 하셔도, 저희는 절대 목사님을 욕하지 않아요! 저희 눈치를 보지 마세요! "
" 나라도 못해!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한 건 당연한 거야! 희생을 강요해선 안 돼! "
" 암~ 그렇구말구! 나도 못하는 희생을 목사님에게 강요할 순 없다구! 전신 마비가 웬 말이야?! "
" 생명을 구하는 건 중요한 일이지! 하지만! 강제로 누군가에게 대신 희생을 강요하는 건 절대 옳지 못한 일이야! "

이곳의 모두가 그 말들에 동의했다. 실로 당연하고 옳은 말들이었다.

" ... "

목사의 얼굴이 격동했다. 머릿속으로 교인들의 말을 되뇌며 솔직한 자신의 진심을 물었다.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

그리고 끝내, 목사는 송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저는...그럴 수 없습니다.. 전신 마비는 자신 없습니다.. 저는 싫습니다... "

목사는 죄송하다 하였지만, 교인들은 괜찮다고 소리 질렀다.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누구라도 그랬을 거라 위로했다.

[ ...너 자신의 결정을 존중한다. ]

악마는 목사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 아..? 아아-! "

목사의 두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두 다리에 감각이 돌아와 일어나게 되었다. 그의 얼굴이 환희에 차올랐다.
이렇게나, 이렇게나 좋다니! 걸을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좋다니!

격정으로 떠는 목사에게 악마가 말했다.

[ 누구도 남에게 희생을 강요할 순 없다. 그것이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

" ... "

목사는 감히 그 말이 옳지 않다 할 수 없었다. 비록 악마의 말이지만, 그가 몸소 체험해보니 그랬다.
악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인정한다. 너희는 옳구나. ]

그 말을 남기며 악마는 사라졌다. 거짓말처럼 깔끔하게 사라졌다.

" ?! "

사람들은 당황했다. 이렇게 끝이라고?
시간이 더 흐르자, 사람들은 안도했다. 

아무 일이 없구나! 모두 끝났구나! 우리가 옳아서 악마를 물리쳤구나!

" 오오오~! "

환호하는 교인들 틈에서, 목사는 침묵했다.

도대체, 악마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
.
.

" ... "

목사는 굳은 얼굴로, 분주한 교인들을 바라보았다. 예정된 행사의 준비로 바쁜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것이었구나! 바로 이것이었구나!

분주한 교인들은, 집회 스케줄을 점검하고, 전단지를 준비하고, 피켓 문구를 그려 넣고 있었다.


[ 낙태를 중지하라! 낙태는 살인이다! ]

" 요즘 사람들은 정말, 낙태도 살인이라는 것을 전혀 몰라요! 절대 용서받지 못할 죄인데 말이야! "
" 아무리 사정이 안 된다고 해도, 낙태는 안 되지! 일단은 낳고 입양을 보내도 되는데 말이야! 눈 딱 감고 9개월만 고생하면, 소중한 생명 하나를 구하는 것인데...쯧! "
" 자기만 생각해서 그 소중한 생명을 죽이다니,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어? 안 그래요 목사님?? "

" ...... "

그 질문에, 목사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그저, 속으로 되물었다. 

옳은가?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3/25 22:06

    솔직하게 저는 희생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시선으로 쓰여진 이야기네요..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BDLefF)

  • 지울수없는 2017/03/25 22:10

    짧은 글임에도 몰입력이 있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네요.
    결론을 많이 생각해봤는데, 나쁜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 보여집니다.
    목사도 최선을 다했으나, 그 이상은 힘들었던 것입니다. 낙태도 상황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은 것이구요.

    (BDLefF)

  • 불변인 2017/03/25 22:25

    266일이 임신기간이었구나....

    (BDLefF)

  • 01236 2017/03/25 23:20

    대박

    (BDLefF)

  • 싸리비용 2017/03/25 23:31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법이 사회의 관점에서 허용할 수 있는 제한이라면
    사회가 임신=출산=육아 에 의한 손실 혹은 피해를 충분히 보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낙태를 금지시 하는 법이 있어도 되겠지만
    지금 우리나라 현실은 그게 아닙니다. 낙태법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본인 신념만을 위해서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것 같네요.

    (BDLefF)

  • 기분♡전환 2017/03/25 23:46

    언제나 글이 맛있어요...
    그... 음미하게 되는 뭔가가 있죠...
    오늘도 언제나처럼 잘 보고 갑니다♥

    (BDLefF)

  • 복날은간다 2017/03/25 23:54

    오 이런; 불안합니다; 쓰지 않았어야 할 이야기인가; 분쟁은 안 되는데...!

    (BDLefF)

  • 냉소 2017/03/26 00:59

    제가 글을 잘못 읽었나여.... 분명 복날님의 글에선 "아무리 소중한 가치를 전제하는 일이라도 타의에 의한 강요(너 이거 해야해! 라는 강요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시선이나 분위기 포함) 가 되어선 안된다." 는 게 주제였던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임신과 낙태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고 결정하는 사람은 '당사자 여성' 이 될 수 밖에 없죠.
    그러나 이 글과 같이 낙태에 대한 사회적 시선(강요) 은 '살인에 버금가는 죄' 이며, 이 낙인은 당사자 여성의 모든 고민들을 묵살한 채 특정한 선택을 강요할 여지가 아주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낙태 한정으로 두 가지 고민지점을 짚고 넘어가자면, 첫 번째는 <사실 낙태가 살인과 버금가는 죄로서 사회적인 인식이 자리잡은 것은 얼마되지 않았으며, 이는 출산률의 저하로 유소년(녀) 인구가 귀해지는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는 것입니다.
    실제로 1970년대의 한국사회나 인구증가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의 경우 낙태수술이 '권장' 되었죠.
    두 번째는 낙태에 대한 결정과 그에따른 신체적 사회적 부담은 거의 전적으로 여성이 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낙태' 의 원인은 전적으로 남성의 피임실패에 있는데, 상황을 유발한 남성에 대한 비난여론은 낙태결정권자인 여성에 대한 낙인에 비해 거의 0에 수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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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라동프린스 2017/03/26 03:55

    글은 되게 재미있게 잘 읽었는데 댓글은 무슨 일이 있었길래 죄다 삭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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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죠르노_죠바나 2017/03/26 06:04

    댓글 읽다보니 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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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리적연산 2017/03/26 09:07

    댓글 상태가....

    (BDLefF)

  • 공상과망상 2017/03/26 14:10

    언제나 그렇듯이 복날님 글을 읽고 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그 동안 믿어왔던 가치관이나 신념 같은 것들에 대해 한번쯤은 되짚어 볼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된다고 할까요? 재미있고 몰입감 쩌는데다 생각할 여지까지 던져주시는 좋은 글들을
    써 주셔서 언제나 감사합니다, 복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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