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천 코스
경주는 단 한 번의 여행으로는 갈증만 깊어지는 도시입니다. 계절마다 다르고 내 나이 들어감에 따라 보이는 게 또 달라집니다. 동선과 이동 방식에 따라서도 재해석을 뛰어 넘어 시공이 완전히 재구성되는 곳이 경주입니다. 그럼에도 무한정 시간을 낼 수 없는 바, 경주를 압축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평소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 1일차: 영원한 이방인, ‘서라벌’에 입실하다
울산항 → (모화, 입실) → 불국사 → 석굴암 → 분황사 → 황룡사지 → 월정교(남천) → 월성&계림숲 → (대릉원 및 고분군 등) → 황리단길 → 첨성대 → 동궁과 월지
✔︎ 2일차: ‘서라벌’을 타고 흐르는 신화와 설화
오릉, 삼릉 및 소나무숲(남산 서측) → 포석정 → 서출지(남산 동측) → 감은사지 → 문무대왕릉 → 주상절리 → 감포항 → 국립경주박물관 → 경주시장 등 시가지 투어
✔︎ 3일차: 이천 년을 달리는 ‘서라벌’
서악지구(무열왕릉) → 화랑지구(김유신장군묘&화랑의 언덕) → 애기청소(동국대 인근 금장대) → 옥산서원 → 양동마을 → 운곡서원 → 보문호 지구 투어
2. TMI, 서라벌이란?
경주를 방문한다는 건 옛 신라 천년수도의 흔적을 톺아본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도시를 경사스러운 고을이라는 뜻을 가진 ‘경주(慶州)’라 명명하는 건 그다지 적절치 않습니다. 고려 시대부터 사용된 호칭인 데다 이 도시 고유의 역사성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디 이 도시는 서라벌/금성이라 불리었습니다. 서라벌(徐羅伐)은 신라 고유어로 읽은 것이고, 금성(金城)은 ‘쇠(새)+벌’을 한자어로 음독한 것입니다.
어원의 유래는 분분하지만 국호가 신라(新羅)인 데서 유추할 수 있듯이 ‘새롭게 정착한 곳’ 혹은 ‘새로운 벌판’ 쯤 됩니다. ‘동쪽의 들판’으로 추정키도 하는데 동쪽에서 태양이 뜨며 새날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영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한편, 서라벌은 수도를 순우리말로 칭하는 ‘서울’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서라벌, 소벌(쇠벌), 소부리, 서부루, 사바라, 셔벌 등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발음되다 최종적으로 ‘서울’로 정착한 것입니다. 즉, 서라벌(경주)은 서울의 조상인 셈이죠.
그럼에도, 현재는 ‘경주’가 대표명사인 바 경주라 쓸 수밖에 없지만 ‘서라벌’이 갖는 의미와 위상을 안다면 경주를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3. 왜 울산항에서 시작인가?
대단한 이유는 없습니다. 경주를 좀 더 재밌게 즐기자?
지도를 보면 경주도 바다가 면해 있지만 산맥이 가로 막혀 있어 왕래가 드물었습니다; 잠시 다른 얘기로, 감포 등지의 해안 지역은 행정구역으로는 경주지만 문화권은 북으로는 포항, 남으로는 울산에 속합니다. 지금이야 교통이 발달하고 일종의 관광 루트로 동일 권역으로 인식되지만 옛날엔 그저 편하고 가깝게 갈 수 있는 곳이 내 이웃이고 내 마을. 이곳들은 본디 경주가 아니었습니다. (신라가 도시국가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했죠) 또한 경주는 관광 외엔 별다른 산업이 발달해 있지 않기에 양남・양북・입실 사람들은 울산으로, 강동・안강은 포항, 그리고 건천 및 인근 지역은 대구・경산으로 출퇴근을 하며 경제권역을 형성한다 이런 표현이 이상하지만 오리지날 경주는 딱 도심 뿐입니다. 다만 신라의 수도였기에 모두를 거느리고 있었다 정도?
아무튼 당나라와 교역이 한창 활발할 때에 평지길이 조성되어 있는 (위성도시) 울산으로 사신 및 외교사절단, 유학생 그밖의 상인들이 오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사신 체험.
나는 여왕님의 거룩한 사명을 받들어 해외 문물을 파악코자 당나라에 다녀오는 길이다 작은 신라와 달리 서방 국가와도 교역을 하는 그곳에서 실로 많은 걸 보고 들으며 세상사를 깨우쳤고, 돌아오는 길엔 풍랑도 한 차례 만나 몇 겁의 세월을 살아온 기분이다 하지만 부처님이 보우하사 무사히 고국땅을 밟을 수 있게 됐다
울산항에 내리니 밤이 깊었다 여왕님께 나의 당도함을 알리는 통발을 부친 후 객주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잠시 눈을 붙인다 그러나 깊이 잠들 순 없다 이른 새벽, 나는 경주를 향해 길을 떠난다 몸은 고단하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여왕님을 생각하니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
울산에서 경주로 들어가는 길목엔 차례로 모화와 입실이라는 마을이 있다
✔︎ 모화(毛火) 내 몸의 불순한 터럭을 모두 불태우고,
✔︎ 입실(入室)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과 여왕님이 계신 성스러운 땅으로 들어간다
말을 타면 한 나절만에 당도하지만 걸어간다면 꼬박 하루가 걸린다 약 45km 남짓의 고단한 행군이지만 이 자체가 부처님의 세계로 이르는 수행이고 고행이렸다 그리고 늦은 저녁, 불국사 아랫마을에 당도해 하룻밤을 머문 후 다시금 다음 날 새벽이다 목욕재계를 마치고 불국사와 석굴암에 올라 나의 열반과 여왕님 및 신라인들의 극락을 기원하는 성불을 드린 후에야 도성으로 들어갈 수 있다
허나, 도성에 도착했다 하여 바로 여왕님을 알현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엔 도심 내 최대 사찰인 황룡사(지)에 들러 9층목탑과 장륙삼존불상 앞에서 예를 다해 기도를 드리고 나서야 걸어서 15분 거리의 월성에 들어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첫 날의 루트는 불국사와 석굴암부터 올라가고, 분황사와 황룡사지를 연이어 보는 코스를 추천합니다. 그런 다음 월성(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엘 들어가는데 정문으로 들어가기보단, 황룡사지에서 국립경주박물관을 거쳐 뒷길로 돌아 월정교를 건너 들어가는 코스를 권장합니다. 남산을 정면으로 보며 걷는 그 길이 꽤 예쁜 데다,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에 구애하기 위해 뛰어들었다는 남천(월성천)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후 코스는 발길 닿는 대로 아무렇게나 돌아다녀도 무방하지만,
✔︎ 경주에선 무덤을 곳곳에서 지겹도록 볼 수 있는 바, 천마총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겠다는 열망을 품은 게 아니라면 굳이 대릉원에 들어갈 필요는 없으며,
✔︎ 첨성대와 동궁&월지는 야간개장도 하기 때문에 제일 마지막 코스로 잡는 게 효율적이다(단, 입장 시간 확인 필수)
4. 둘째날과 셋째날 코스
경주는 천년 동안 한 나라의 수도였던 바, 실로 많은 수의 신화와 설화가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2일차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코스로 모아봤습니다. (스팟마다 설명은 생략)
한편, 경주는 고려-조선-근대를 이어서도 주요 도시로 기능했기 때문에 한반도의 역사를 되새김질하기에도 제격입니다. 그래서 3일차는 시공을 가르는 경로로 구성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고려 시대 유적은 빈약하지만 조선 시대에 조성된 옥산서원・운곡서원 및 양동마을과 김동리의 대표작 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애기청소’는 반드시 꼭, 가봐야 합니다. (일제 시대 흔적은 도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으니 생략)
5.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경로와 스팟
경주에 갈 때면 모두 둘러 보진 못하더라도 분황사에서 시작해 황룡사지, 국립경주박물관, 월정교, 월성, 황리단길을 한 바퀴 걷는 건 꼭 합니다. (3~4시간 가량 소요) 특히 ‘황룡사지’는 우주의 시작과 끝처럼 다가오는 곳입니다. 허허벌판에 홀로 서서 상상만으로 천 년 전 역사를 그려본다는 게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요?
박물관도 매번 빠짐 없이 방문합니다. 지겹도록 보아온 유물이지만 그럼에도 이차돈 순교비와 각종 고분을 해체해 놓은 전시실에 들어가면 마음이 절로 평화로와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번엔 그 둘을 전시해 놓은 곳만 하필 11월까지 내부 공사중이라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세 번째로 좋아하는 곳은 ‘서출지’입니다. 앞서 경주에 갖은 신화와 설화가 있다고 했는데 나는 서출지를 둘러싼 설화를 가장 좋아합니다. 도심과 동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연못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특히 여름엔 연꽃이 한가득 피어 있어서 극락이 따로 없다 싶습니다.
그 밖에 의 배경인 애기청소(예기청소 아님)와 ‘운곡서원’도 자주 찾는 곳입니다; 경주에 오면 옥산서원을 많이들 가는데 워낙 규모가 크기 때문이겠지만 여행지에서마저 사람들에 치일 필요가 있나 싶은 게 제 생각입니다. 운곡서원은 아는 이가 별로 없기에 고즈넉하게 쉬다 오기에 딱 좋습니다. 게다가 운곡서원에서 천북을 거쳐 보문호로 올라가는 경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최고의 운치를 자랑합니다.
6. 사진 설명
사진1. 황룡사지에 서서 (1)
사진2. 황룡사지에 서서 (2)
사진3. 황룡사지에서 월성 방향을 바라보며
사진4. 도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무덤
사진5.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월정교로 가는 길
사진6. 남천과 교촌 풍경
사진7. (지도)황룡사지에서 월성으로의 경로
정성글은 추천이요~~~스크랩 했습니다...감사합니다~~
직접 쓰신건가요??? ㄷㄷ 추천합니다
올해 11월까지 공사중인가요?
집이 모화 근처라 주말마다 경주 놀러갔던 시절이 제일 행복했던듯..
GoogleChrome// 박물관 3, 4 전시실만 공사중이예요 다른 곳은 모두 열었구요~
경주 한번 가봤는데 ...경주는 꽃 필 때 와야 좋겠다 ...이 생각이 들던데
코너맥그리거// 전 경주는 어떤 계절에 가도 좋더라구요!
봄은 꽃놀이 하기에, 여름엔 신록과 연꽃을 감상하기에, 가을은 우수에 젖어들기에 그리고 겨울은 침묵의 서걱거림을 느끼기에! 어느 면으로서든 좋아요
200701// 오! 모화 좋죠!
나팔똥꼬// 언젠가 경주 여행 가실 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
검은색// 옙! 얼마 전에 오랜만에 경주 갔다 와서 정리 한 번 해봤네요 ㅎ
부모님댁이 옥산서원, 독락당쪽입니다.
고즈넉하고 참 좋죠ㅎ
[리플수정]다시가고 싶은 도시였는데 추천해 주신 코스로 다시 가봐야 겠네요~~ㅎ
감사합니다. 사진도 좋네요
지금도 경주갔다오는길이고 자주가는데 관광은 한번도 못해봤는데 참조할게요 고맙슴다
감사합니다
고기엔쌈무// 여강 이씨 혹은 영일 정씨?
전공자로써 회재선생 아주 좋아 합니다.
그래도 열긴 여네요. 다음주에 가보려고 했는데 참고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진평왕릉 한번 가보세요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읽고 가시면 더 좋습니다
1. 안압지-첨성대-교촌마을 걸으면서 구경하기 좋음
2. 카페는 보문관광단지 엘로우, 아덴 추천
와.. 이때싶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올해 경주 놀러가려다가 코로나 때문에 망했는데 이런글 정말 고맙습니다 ㅠㅠ 사실 코로나 아니었어도 코스 정하기 애매했는데..
와우 추천!
ㅇ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