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채널휴 HUE
1시간 전(수정됨)
토전사가 종영되었습니다.
놀랄 정도로 많은 댓글과 여러 분들이 적어 주신 사연, 토전사의 추억을 읽고, 토전사가 이 정도로 사랑받고 있었다는 사실에 저도 놀라고 감동받았습니다. 너무나 감사드리고 다른 분들도 다 같은 생각이겠지만, 제 평생의 감사로 간직하겠습니다.다만 이번 사태로 많은 분들이 정치적 외압, 정치적 결정을 의심하고 계십니다. 심지어 제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아니냐고 걱정해 주시는 분도 계신데요, 과도한 정치적 해석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프로는 녹화 후 방송이기 때문에 방송일과 녹화일이 다릅니다. 폐지 결정은 선거 전에 있었으며, 폐지를 2월에 통보했다는 얘기나 출연진이 녹화 당일날 통보 받았다는 얘기는 알고 보면 같은 이야기입니다.프로그램 편성권은 방송국에 있습니다. 저희 출연진이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년 동안 빡빡하고 열악한 상황으로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방송 전날까지 밤을 새고 겨우 2-3시간 자고 일어나 녹화장으로 달려가지 않은 날이 없다시피 했습니다.
토전사 가족 모두의 입장에서 서운한 일은 정말 많았고, 저도 할 말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안에 있을 때 건의해서 해결했어야지, 끝나고 난 다음 밖에서 떠드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봤자 방송국 안에서 우리를 도와주며 함께 일했던 분들만 괴롭히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이것만은 말하고 싶은데요, 마지막 녹화날이자 200회 기념일에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도 꽃다발 한 개도 없었어요. 저는 마무리로 그동안의 에피소드나 회상을 넣은 특집이라도 하나 할 줄 알았더니 그것도 없고.
그래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모든 걸 다 수용하고 4년 간 그랬듯이 조용히 나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사태전개에 홍보원도 당혹스럽겠지만, 뒤늦게라도 감사는 못할망정, 그런 어이없는 발언을..... 지금부터라도 출연자와 스텝 분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제가 늘 하는 말이 과거를 감정의 소재로 삼지 말고, 이기는 방법을 생각하라는 겁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이 글도 10번 넘게 썼다가 지웠습니다. 그래서 이기는 방법이 뭔가를 생각해 봤어요.토전사 가족 여러 분과 시청자 분들에게 잠시라도 추억을 나누고,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녹음을 해서 영상으로 만들까 했는데, 도저히 못하겠네요방송 첫날의 만남이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 합니다.
처음 저를 섭외했던 작가님이 방송 취지와 이런 훌륭한 멤버들이 참여한다고 기획안을 보여주셨는데, 제가 TV를 거의 안봐서 허준 씨, 윤지연 씨도 전혀 몰랐어요.(두 분 죄송합니다. 저희 집사람과 아들 딸은 알더라구요) 기자님도 몰랐고. 이럴 때 표정관리 어떻게 해야하나 우물대던 생각이 나네요처음에는 홍보원이 아니라 외부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는데, 첫날 만나니 다들 서먹서먹했죠. 한참 나중에 알았는데, 다들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서로 서로 눈치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아 저 둘은 아는 사이인가 보다”
윤 아나는 저와 이 기자 때문에 부들부들 떨면서 왔다고 했습니다. 전쟁사 전문가와 무기 전문가라고 하니 무시무시하고 험악한 남자인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처음 저에게 출연 요청한다고 전화했던 작가분도 목소리 떨면서 전화했다고...처음 시작할 때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1회 출연하고 나니 2,3회는 이미 출연자가 정해졌으니 4회부터 고정출연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솔직히 저는 안 믿었습니다. 아마 고정출연 아니면 제가 서운해 하거나 책임감 없어질까봐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고정출연이라고 해도 간간이 다른 사람 들어 올거라고 생각했죠. 우리나라에서 전쟁사 연구 토양은 정말 열악합니다. 전쟁마다 적절한 전문가를 찾기 힘듭니다. 그래서 고정출연이란 내 전공 + 구할 수 없는 전문가 사이를 때우는 자리이다. 또 제가 저렴하기도 하고.... 그 가격에 구할 사람 별로 없겠지. 이렇게 생각했죠. 그래서 제가 작가분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고정출연 욕심 없어요. 고정출연 할 맘도 없고 또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러니 얼마든지 교체해도 되고, 로테이션 해도 되고, 잘라도 되요. 세계 전쟁사를 어떻게 한 사람이 합니까. 그것도 1주일 간격으로.처음에는 지금처럼 일반 시청자 분들이 늘어날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군 장병들을 위한 서비스라는 것도 결정을 내린 이유였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이고, 군에 대한 사회적 인식, 대우, 감사의 마음, 현역, 예비역 장병들이 사회를 위히 희생한 시간에 대한 자부심이 훨씬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이런 생각은 저 뿐 아니라 모두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덜덜 떠느라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냉난방 열악하고, 촬영장이 도로 변의 지하라 펌프 소리, 지나가는 차의 사이렌 소리로 곧잘 촬영이 중단되어서 10~20%는 재촬영 하는 상황에서도 항상 즐겁게 보냈습니다. 그런 사명감과 믿기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 토전사 팀을 가족처럼 만들어준 요인이 되었던 동시에 군소리, 불평없이 일만 하는 마당쇠 팀으로 만들어 버리는 원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유튜브도 잘 몰랐죠. 유튜브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은 허준씨 뿐이었습니다. 첫 촬영 날 허준씨가 나 홀로 전문가적인 어조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숫자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조회수 00 이하면 폐지되겠지. 00 정도면 훌륭한 거고. 00이면 대박이야.
제 기억에는 훌륭함이 1만회, 대박이 10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 10만은 기한이 없었습니다. 유튜브 조회수가 어느 시점에 가면 딱 정체되는게 일반적이잖아요. 그러므로 몇 달 걸려서라도 10만을 넘어간다면 기적적인 성공이라는 거였죠.
방송 끝나고 나서 허준씨가 다시 전문가적인 포즈로 이렇게 말했어요.(정확한 복원은 아닙니다만) 이거 확실히 5만은 넘어갈 수 있는 퀄리티입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지금은 1주면 10만이 넘어 가지만 그때는 1만도 대단했죠. 몇 달 후에 10만이 넘자 “봐 내가 이렇게 될 퀄리티라고 말했잖아”라고 허준씨가 두고두고 자랑을 했습니다.저는 허준씨 말을 무시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았지만, 제가 원래 숫자에 둔감하고 그때는 유튜브 사정도 잘 몰랐기 때문에 숫자는 숫자였어요. 숫자의 의미가 실체화가 안되었죠.그런데 점점 이상한 일이 일어나더군요. 댓글에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올라오고, 길에서 사람들이 인사를 해 오고, 식당에 가면 주인분이 달려 나오고... 이 말이 인기인, 유명인이 되어 기분이 좋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분들이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마움을 표시하곤 했습니다. 이건 인기와는 다른 것이죠. 저 뿐 아니라 다른 출연자 분들도 다 같은 경험을 했고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허준씨와 윤아나가 시청자를 만난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이 프로가 진심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죠. 전문 방송인보다는 약간 둔감할 수 밖에 없는 이 기자와 저는 해외답사를 가기 시작하면서 그 말을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이 기자님과 처음 터키 답사를 갈 때 공항에서 어떤 분이 저를 알아 보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 이 기자님은 티케팅 하느라 줄 서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없이 답례를 했는데, 나중에 그 분이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이 기자님 저기 있는 걸 왜 얘기 안 했냐고 하더라구요
이게 제가 기분 나빴다거나 그 분이 무례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카타르에 내려 비행기 갈아 타면서 또 잠시 만났는데, 출장 가시면서 토전사 전부를 다운 받아서 보면서 가고 있다고 하시더군요.그 뒤로 정말 많은 분들이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고, 해외에서 연락이 오고, 기자님과 미국 답사를 갔을 때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저희가 정말 울먹일 정도였습니다. “오시면 왜 미리 공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으면 가족들 사람들 모아서 박물관에 갔을텐데요”라고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신세 지는게 부담스럽고, 신세를 최소화하자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인데요, 지금 생각하니 그게 더 미안한 행동이 되어 버렸네요.
오늘은 이만 하겠습니다.
이런 추억을 들먹이는 이유는 가장 훌륭한 마무리는 사랑과 감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기억, 좋은 추억, 그리고 4년 간의 보람을 보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운함조차도 사랑과 감사의 추억으로 덮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껏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았고, 이 사회를 위해 보람된 일을 했음을 다시 한번 체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출연진과 제작진 분들에게도 돌이켜 보니 제가 제대로 행동하지 못한 부분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저희 스승님께서 은퇴 직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나이도 많고 머리가 허연데, 사람은 정말 평생 배워야하겠더군요”
지금 제가 딱 그런 심정입니다. 반성하고 뉘우칠 부분이 무엇인가를 지금 생각하고 생각 중입니다. 나이값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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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ohabe.com/sisa/1443484
방송토전사 임용한 교수님 글 올라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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