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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히든]을 보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전, 가해와 피해의 반복 (스포 포함)


왓챠플레이 맞춤 추천으로
2005년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히든]을 보았습니다.
원제는 [Cache].
은닉처, 숨기는 곳, 숨는 장소를 뜻합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로는
작년 11월에 [아무르]로 장문의 리뷰를 썼으니
이번 리뷰가 두 번째입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이미 두 번이나 수상한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서
그의 영화 속 카메라는 흡사 칼과도 같습니다.
그 예리하게 벼려진 칼끝으로
일상 속 권력과 폭력의 폐해와 허무를 겨눕니다.
이 영화에서 그의 카메라는 한층 더 날카로우니,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을 인용하자면
"스크린을 칼로 찢는 듯한 충격"...
TV에서 문학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조르쥬(다니엘 오떼유)와
잡지사에서 일하는 안느(줄리엣 비노쉬)는
중산층의 평온한 삶을 누리는 부부입니다.
어느 날 그들에게
자신들의 일상사를 찍은 비디오테이프와
섬뜩한 메시지가 담긴 그림이 배달되면서
그들의 평화로운 일상에 파문이 일기 시작합니다.
계속해서 배달되는 비디오테이프와 그림으로
그들의 불안은 극으로 치닫습니다.
유년기의 숨기고 싶었던 기억이
악몽이 되어 조르쥬에게 돌아오고
조르쥬는 범인을 직접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러나 범인을 알아낸 순간,
조르쥬는 더욱 끔찍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위의 시놉시스를 읽었을 때
[히든]은 미스터리 스릴러로 보일 수 있겠지만
영화는 관객들의 예측을 완전히 무력화시킵니다.
영화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데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이 영화를 다 보고나서도
범인이 누구인지가 궁금하다면
당신은 영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말은 아주 적절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롱숏의 롱테이크로
꽤 오랜 시간 동안 조르쥬 부부의 집을 비추죠.
그 숏이 영화의 카메라의 시점이 아니라
범인의 카메라의 시점임이 밝혀지는 건
바로 다음입니다.
아이 또는 닭의 입에서 피가 솟구치는 그림은
조르쥬 부부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갑니다.
비디오카메라는 심지어
조르쥬의 어머니가 사는 집을 비추고
피를 토하는 아이의 그림이 그려진 엽서는
조르쥬의 아들에게까지 우송되죠.
동시에, 40년 전인 여섯 살 때의 왜곡된 기억이
조르쥬의 악몽 속으로 잠입해
잠을 자면서도 식은 땀을 흘리게 합니다.
부모님 집의 하인으로 있던 알제리인 부부가
어떤 사건으로 죽임을 당하자 조르쥬의 부모는
그들의 아들인 마지드(모리스 베니초우)를
입양하려고 했지만
여섯 살 조르쥬의 극렬한 반대와 야비한 모함으로
그 계획은 무산되고
동갑내기 마지드는 고아원으로 버려집니다.
이 영화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1년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알제리인 200여 명의 학살 사건을 알아야 합니다.
알제리는 오랜 시간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많은 알제리인들이 프랑스로 이주했죠.
자신들만을 상대로 시행되던 통행금지령에
항의해 시위를 하던 알제리인들을
프랑스 당국은 무참히 살해한 후
그들의 시신을 세느강에 유기합니다.
진실은 철저히 은폐되고
1990년대에 이르러 사건이 재조명됐을 때도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전혀 없었습니다.
생 미셸 다리 옆에 추모비를 세웠지만
지금까지도 사건의 진상에 대해
대다수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침묵합니다.
마지드의 부모는 그 희생자들 중 하나였고
위의 진실은 영화 속 조르쥬의 대사로
아주 짧게 언급된 후 무심코 지나가죠.
문제는, 조르쥬가 비디오테이프의 암시를 좇아
마지드의 집을 찾아갔을 때
마지드가 자신이 범인임을
완강히 부인한다는 점입니다.
마지드의 아들(발리드 아프키르)도
범행을 부인하기는 아버지와 마찬가지입니다.
40년 전 조르쥬의 모함이 남긴 고통은
마지드의 삶 전체에 뚜렷이 흔적을 남겼고
조르쥬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건만
40년 만에 재회한 조르쥬 앞에서
마지드는 오히려 다정하게 행동합니다.
그런 마지드에게 조르쥬는 윽박을 지릅니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전...
마지드의 부정은 거짓으로 느껴지지 않고
마지드는 완벽히 결백하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비디오테이프는 계속 배달됩니다.
심지어 마지드의 집에서
자신과 마지드가 대화하는 장면까지 녹화된
비디오테이프가 배달됐을 때
조르쥬의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지죠.
그렇다면 대체
비디오테이프를 보낸 건 누구란 말일까요.
그것은 조르쥬의 양심에 희미하게 남은
유년기의 무고에 대한 죄책감과
알제리인 학살을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외면한
프랑스인들의 죄책감을 소환해 환기시키는
영화적 장치로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결국 비디오테이프 속의 관점은
한 개인과 한 국가의 치명적 과오를 바라보는
역사적 진실의 관점으로 보아야 하며,
협박 사건을 다루는 것 같았던 스릴러는
사실 사회고발적 색체를 강하게 띠는
은유적 구조를 가진 드라마로 읽혀져야 합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조르쥬 부부가 황급히 거리로 나서다가
어느 흑인의 자전거에 치일 뻔 하는 일이 나오죠.
조르쥬는 시시비비를 가릴 여유 없이
일방적으로 흑인에게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이 시퀀스는 조르쥬의 인간성과 삶의 태도를
단면처럼 관객들에게 제시하죠.
자신이 가해자이면서도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는 몰염치의 아이러니...
프랑스 지식인들의 위선을 고발하는 묘사는
이 밖에도 영화 곳곳에 배치됩니다.
영화의 하일라이트...
마지드는 조르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집으로 그를 불러들이고
여전히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조르쥬 앞에서
자신의 목을 칼로 베며 자살합니다.
그 자살은 결백의 증명이자
상대의 오인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자
평생 동안 쌓이고 쌓였던 한(恨)에 대한
처절한 복수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림 속에 피를 내뿜는 아이는
조르쥬가 아니라 마지드였고
저질러진 죄에 벌을 받는 사람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습니다.
가해와 피해의 반복...
황망한 상태로 경악한 조르쥬는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고
비겁하게 자신의 집으로 숨습니다.
아내의 설득으로 경찰에 신고한 후에도
조르쥬는 사건이 종료됐음에 안도할 뿐입니다.
직장으로 찾아온 마지드의 아들 앞에서도
그는 여전히 당당하고 뻔뻔합니다.
어린 시절의 잘못에 대한 사죄는 없습니다.
진심어린 사죄...
그것 하나만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들...
감기 기운을 느껴 회사를 조퇴한 조르쥬는
암막커튼으로 빛을 가리고는 침대에 눕습니다.
다음 장면...
여섯 살 시절, 자신의 부모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차에 태워져 고아원으로 보내지는
마지드의 비명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그 비명에 조르쥬가
편안히 잠 못 이루길 바라기라도 하는 듯이...
영화의 엔딩은 오프닝과 수미상관을 이룹니다.
카메라는 롱숏의 롱테이크로
하교시간, 어느 학교의 계단을 비춥니다.
계단에 앉은, 또는 선 채로
저마다 무리를 지어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
프레임의 7시 방향에서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아들이
무엇인지 모를 이야기를 주고 받지만
관객들은 그 내용을 알 길이 없습니다.
이 엔딩의 의미는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가해와 피해의 대(代)를 이은 계승일지,
이전 세대가 저지른 죄에 대해
이후 세대가 뒤늦게나마 전하는 사죄일지,
영화는 함구합니다.
다만, 분명한 건
가해자는 잊어도
피해자는 결코 잊지 못한다는 것.
잘못이 존재하는 한
개인의 차원, 국가의 차원 둘 다에 있어
진심어린 사죄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
가해와 피해가 반복되거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역전되는 모순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댓글
  • thomyorke 2020/04/26 03:07

    꽤 오래 전에 봤던 영화인데, 리뷰를 보니 그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독일 국적의 감독이 프랑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룬 것이 신선한 동시에 다소 의아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일본 감독이 한국 사회의 치부를 영화로 다룬 것과 같은 위화감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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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20/04/26 03:26

    thomyorke// 이 영화를 보신 분이 불펜에 계셨네요.^^ 미카엘 하네케는 정확히는 오스트리아 국적이지만 게르만족으로서의 철저한 역사적 자기검열을 마친 감독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리뷰를 쓴 실제 이유를 읽어주셨네요. 일본의 감독에 의해 제국주의의 치욕적 가해를 반성하는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날이 언젠가 오기를 바라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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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20/04/26 03:35

    thomyorke//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페인 일본...
    과거 제국주의의 역사를 가진 국가들 중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에
    마음 편할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겠죠
    영화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감독의 칼과 같은 카메라는
    모든 강대국들을 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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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sign_zoo 2020/04/26 03:40

    피아노의 거장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작품이군요.
    저도 이영화를 못봤지만 글을 읽어보니 갑자기 보고 싶어지네요. 역시 글을 잘 쓰십니다 ㅎ
    못본 영화의 경우 혁명전야님의 후기를 먼저 읽은후 영화를 보고 다시 후기를 보면 처음과는 다른 느낌의 감상이드는 재미도 있었는데 이 영화도 찾아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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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20/04/26 03:57

    design_zoo// 피아노말구 피아니스트^^;; 퍼니게임, 히든, 하얀리본, 피아니스트, 아무르... 정말 대단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들 중 한 분이죠. 영화의 호흡은 느리지만 불안과 긴장을 쌓아가는 거장의 솜씨는 그야말로 대단합니다. 의미있게 감상하시고 편안한 일욜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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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sign_zoo 2020/04/26 04:05

    혁명전야// 아 피아니스트인데 피아노로 적었네요 ㅋㅋ 근데 생각해보니 피아노라는 영화도 있었네요.
    전 개인적으로 퍼니게임보고 감정소모가 너무 심해졌었던 기억이 있네요 ㅎ
    영화 감상후 한번 더 읽으로 올께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하고 편안한 일요일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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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20/04/26 04:24

    design_zoo// 저두 오타 무쟈게 양산한답니다^^ 맞아요 하네케 감독 영화는 감정소모가 심하죠. 아예 진을 다 빼게 합니다. 이 영화 역시 예외는 아닐 거구요. 네 다시 읽어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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