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씁슬하네요.
일단 제가 최악의 병과라고 했는데 일단 저같은 경우엔 공병이었구요.
이런...... 거 만드는 공병이었습니다. 네 빌어먹을 교량가설병이었죠.
일단 대학교 1학년 마치고 들어갔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손가락 절단 사고 및 중대형 사고가 많이 나는 병과였었지만
빌어먹게도 저는 미대 출신이었고, 아직도 왜 저 그지같은 교량에 들어갔던건지 지금도 이해가 안가지만 일단 썰을 풀게요.
애초에 군 입대전에 파오후 씹돼지였던 저는 92kg에서 30kg를 감량하고 군입대 준비를 했었죠.
여초가 강세였던 과인지라.... 파오후 씹돼지는 사람취급도 못받았던 기억에 남들 시선이나 쿠사리 듣기 싫어서 감량을 했었죠.
가장 심하게 들어본게 저와 비슷한 무게였던걸로 아는 동기는 통통, 저는 냄새나는 씹돼지 소리까지 들어봤으니 말이죠.
나름 힘들었어도 제가 저 스스로 개선하려 한거니 이건 여기서 마치구요.
일단 군생활 정말 스펙타클 환타지한 군생활을 했었네요.
나름 힘에는 자신이 있었고, 그래도 근력운동을 했다고 생각하며 자대 배치 받던날 제가 본 풍경은
이런 철덩이가 파렛트에 실려있던 장면이네요 .
보면서도 "음.....? 시발 저게 뭐지???" 이런 생각밖엔 없었고.
처음 행보관과 면담에서도 물어보더군요.
행보관: 너 다리 하나 만드는데 얼마가 걸릴거 같냐?
본인:네! 10시간에서 12시간 이상 걸릴것 같습니다!
행보관:ㅋㅋㅋㅋㅋㅋㅋ 아닌데? 30m구축에 1시간 30분 걸린다 ㅋㅋ 해체는 30분이고
본인:???????????
이런 부대였습니다. 안그래도 고된 부대여서 선임들도 안색이 그리 좋지도 못했고
수송부 인원이 아니면 공병(교량가설병) 밖에 없던 부대인데 공병의 취급은 그리 좋지도 못했고
하필이면 본인은 공병이었던 나머지 개,지1랄 맞은 간편조립교, 장간과 군생활을 보내게 되었죠.
일단 군대가면 철든다를 고증으로 나타내는 알루미늄 합금제 쓰레기의 제원의 경우
이 삼각형으로 된게 하부주형인데 197kg입니다. 파렛트 제원은 220kg구요. 옆에 결박해 놓은 벤딩기의 경우 1만 파운드 짜리
대충 파렛트 하나에 적재량이 3.8T~4.5T이니 시바 할말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전부다 사채과, MMA선수 출신 선임, 유도선수, 역도 선수 출신 선임, 후임들 사이에서도 힘은 자신있던지라
빠르게 인수인계 받았고, 그나마 총괄직에 들어가는 조교(총 인원 주임4명에 후임 2명 보조로 이루어진 총괄, 일명 핀조라고도 불렸죠)에
들어가서 그나마 쉽다는
핀조에 들어가서 드디어 로라질(참고로 이 로라위에 다리를 올려서 사람(!)의 힘으로 30T에 가까운 다리를 추진하며 가설합니다.)을
할수있게 되었으나 로라를 잠구는 타이밍이 늦게 되면 대참사(정말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협간쪽으로 다리뒤집혀요.)가 나기에
염통을 쫄깃했고, 더욱이 막장인건
조교의 조건이 6명이서도 이걸 구축할수있게 해야한다 이거였죠...
참고로 말년에 풀업 정자세로 20kg 추 매달고 20회에 벤치 110kg 데드리프트 180kg 찍을 정도였으니 말다했죠.
이러한 적재도 조교인원 6명이서 할수있어야 하는데 저 결박된 벤딩기도 정말 지랄을 쳐도 안풀리게 치려면
데드 100은 쳐야 되더군요. 하 ㅅㅂ...
보통은 위의 사진과도 같이 4인 1조지만 조교는 그런거 없음 ㅋㅋㅋㅋ
전 중대원 전멸해도 조교 인원 만으로도 구축이 가능해야 했기에 저걸 2명만 붙으면 얼마든지 할수있는 수준이어야 했죠.
특히 우리부대의 경우 문제가 뭐였냐면
이건 삼경간교 이지만 저 중간 교각이 하나 들어가면 이경간교라고 해서 저게 아주 시간을 미칠듯이 잡아먹는 귀신같은거인데
(삼경간은 사망사고가 나서 그 이후로는 잘 안했다더군요.)
저의 경우 상말쯤에 조교 최고짬으로 별의 별 지랄이란 지랄은 다쳐가면서 저거와 시름했었죠.
특히
이 사이에 들어가있는 유압기 소위 아티큘레이터라 불리우는건데
제가 복무할 당시에 저희 부대에서 개편된 교량 교범을 출간하기위해 MGB관리 및 창고 총괄이었던 제가 일일히 뛰어가며
재원 조사 및 재고 조사 그리고 주형뜨는거 발주까지 죄다 했었는데 문제는
저 아티큘레이터 가격이 15년전 가격이 2억 8천정도 되는데 다시 재문의 해보니 10억으로 올라서 (아마 120t의 인장 강도때문에 그럴지도..)
군수과에서 준위가 와서 털리고 이리 털리고 저리 털리고 아주 환장할 지경이었죠.
현재 쓰고 있는 교범 그거 제가 일일히 조사해서 들어간거 엄청 많을거에요 제손 안탄게 없었으니.
그래도.. 그래도 정말 군소리 안하고 ㅈ같은 장간하면서도 다 괜찮았지만
말년에 30분 구축 및 15분 해체라는 기행을 하는 도중에 고문관 3명을 이끌고 같이 해체하는 도중
이 하부주형을 들고있던 도중 3명이 죄다 놓아버려서 뒤로 허리가 접힌 나머지 디스크도 작살! 남은 말년도 작살 나버렸었죠.
여튼 군생활 빡신걸로는 어느 누구한테도 안뒤진다 싶었지만. 나름 괜찮았어요.
간부 손가락 절단되는것도 두번이나 구경하고 옆 대대 자살사건도 구경하고 그것도 그랬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요.
문제는 전역 이후 인데
군대+학비를 위한 1년 동안 일을 하는 동안 동기였던 여자 애들은 죄다 졸업을 했고
병아리같은 1학년들 다시 군대를 가버린 후배들이 없는 사이에
온리 여자후배 들과 같이 복학생 생활을 하다보니 그래도 친해지기도 하고 일을 잘하내 뭘 잘하내 소리도 들으며
생활하긴 했지만, 정말로 느꼈던건
얘네는 남자가 뒤지던 군대가서 뭘하던 시간을 어떻게 잡치던 그 순간만 관심있지 자기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더군요.
하루는 술을 먹으며 군대간 후배 얘기가 나와서 대화를 하던 도중에 그게 너무나 궁금해서
"여자도 징병제 하면 어떨것 같냐?" 이걸 물어보니 갈갈히 날뛰더군요.
일단 몇가지 간추려보자면
1.여자는 임신을 한다.
2.여자는 약하다.
3.남자가 군대갔다 와서 가사노동이나 그런걸 하느냐?죄다 밖에서 나도는데
4.군대를 가든 안가든 결국에는 같은 라인에 서거나 여자가 불리하다.
음...... 저같은 경우에는요.
1번은 정말 선택적인걸 의무와 비교하는걸 이해 자체가 안되니 넘어가구요.
2번 물론 신체적으론 약할수는 있지만, 군생활 하며 느낀건, 기본적인 화생방이나 생존법 그리고 구급법 정도는 배워두면 정말 좋을것이다
특히 1년 휴학동안 보안업체에서 일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 때문에 달리 생각을 해줬으면 싶었고
3번은..... 저의 경우 4인가족 식사,빨래,청소등 가사 노동일만 그때에도 10년 가까이를 지속해왔던 상태여서 말같지도 않은 소리였으며
(지금도 한식,일식,중식,양식에 베이킹까지 하는데다 이 생활은 유지중이죠. 어지간한 주부 이상으로 가사노동은 마스터한 상태입니다.)
4번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할 부분이기에 제가 논하긴 뭐하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알아낸건
동등한 기회를 놓고 서로의 자리가 달라지게 되면 유리 혹은 그렇지 않을지언정 사람은 크게 신경안쓰지만
강제성이 부여되서야 그나마 덜 피해보기 위해 거기에 시선을 돌리게 된다 덥니다.
솔직히 미술계통 학과라 그런지 유리천장이라던가 그런건 많이 약해서 본인들도 크게 물고 늘어지진 않지만
일의 효율이라던가 속도로 보면 확실히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들이 우월합니다.
그도 그럴게 평지풍파 없이 학교에서 과제와 시름하는 애들과 말그대로 살기위해 선임 눈치 간부 눈치 봐가며 뛰어온 애들의 능률이
다를수 밖에요. 당연히 클라이언트나 주문자는 그런 사람을 선호 하구요.
이건 차별이 아니에요. 군필자들은 젊은 시절을 그렇게 의무란 이름으로 바치고 그 능률을 가져온건데
그걸 차별이니 뭐니 남혐 여혐 그러며 무시하는건 너무하지 않을까요?
정 그걸 없에시고 싶으시다면 저는 실제로 여성분들이 군복무 해보는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요
의무가 아니라 선택 혹은 선택이었다면 의무로 말이죠 위의 임신과 같이 말이요.
말도 안되는 잣대인데 그걸로 싸우는것도 어찌보면 참 서글프내요. 한발자국만 양보하면 이럴일도 없는데 말이죠.
참고로 저는 미술관련 업종이어서 자리에 앉아있어야 할때가 많은데 그래도 디스크 손상간건 플랭크를 하고 약을 먹고
재활을 해도 여전히 아려와서 힘들더군요.
의무를 빙자한 희생인데, 저의 경우 여자가 아이에게 쏟은 모성 마냥 제 의무에 아가페 적인 사랑을 쏟을 순 없겠어요.
얻은것 보다 씁슬하게 잃은게 많으니까요.
교각? 교각은 모름지기 황금비율? 황금비율하면 미술품? 미술품을 다룬다면 미대생!
교각은.. 진짜사나이 볼때도 ㄷㄷㄷ했었는데요
그게 방송용이니까 많이 미화된(?) 현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사고도 많고 고생많으셨겠어요.
그게 다 강요된 희생인데 정말 들을때마다 뭐랄까.. 대단하네요.
죄송하고 감사하고 그래요.
불량식품/
여초 학과에서 파오후면 사람취급 못받는다...라
저도 남녀 1:6 정도되는 인문계열인데.. 그런행동 보이면 그런애가 외려 따 당했는데
몇몇 여자여자~한티 내고 그런애들 있었는데 여자들 내에서도 완전 무시(서로 무시)했었더랬죠
8년차이후배까지 보고 졸업했는데 갸네들도 술박스 나르거나 연극공연한다 할때 무대 만드는거나 시키면 잘했었는디
99년에 육사여생도 입학이 되고 곧 군가산점폐지가 되고 헌법소원도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당시 토론을 많이 했었는데
여성징병에 대해 남성은 대부분 반대, 여성은 반반 정도였는데요
남성은 위험해서 또는 어디 여자가.. 그런 사람들이고 여성은 임신이나 출산등 약해서..라던가 찬성은 동등한 권리쟁취 이런식이였네요
물론 단대가 운동권이 강세였고 데모를 주도하던 사람들도 거의다 여성분들이라 그랬을지도 모르지만요
또 제 누나들도 한번쯤 군인을 꿈꿨었고 사궜던 여친중 한명도 그랬고 과후배 동아리후배 등등 상당한 수의 여성들이 군대 가길 원했었더랬죠
(그래서 군게내 여성이 죽어도 군대가기 싫어한다..라는 말이 잘 공감이 안되는 것일수도...)
저도 프로 격투가를 준비하던 놈이 군대가서 무릎 아작!나서 전역한지 15년이 지났어도 통증과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수술했던 대학병원 의사가 다리 자를수도 있으니 운동 삼가해라 라는 말을 듣고 운동 접었지만...
gop 철책에 서서 민둥민둥한 북녘땅을 봤을때의 벅차오름이...(뭐 이것도 며칠 지나니 지겨워 미치는줄...)
뭐 이런 토론을 거쳐 상대성(性)에 대한 모르는 부분도 더 알게 되고
무엇이 문제인지 고쳐나갈 방안은 무엇인지 더 고민해볼 기회가 된다고 봅니다
다만 너무 대적화 한다는게 좀 씁쓸합니다
해병대라고 해서 엄청난 훈련을 각오하고 갔더니
사단전체 진지공사 사업을 크게 벌여서
전역할때 까지 건설 노동자처럼 일만 하고
구타와 가혹 행위만 당하다가 전역
나라 지키는 훈련이라고 해도 하기싫을 판에
내가 해병 아니 군대를 다녀오긴 한건가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전 일반 공병부대여서 교량은 장간, mgb,부교 정도만 해서 다행
고생많으셨네요
리본부교 하면서 옆에 교량 중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사고 소식을 보며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ㄷㄷㄷ 공병대대 운전병이어서 딱 한번 장간 조립할 일이있었죠...
헤헤 군필이지만 뭔지 잘 모르겠다 ㅋ
저는 군단예하 공병여단에 있어서 장간에 MGB 폭파에 지뢰 매설 및 제거까지.. 죽는지 알았었네요 ㅠㅠ
제일 가지말아야 할 병과를...
병과중에 안 힘든 곳 없다지만
공병은 삶과 죽음이 왔다하는 곳이라 들었는데
제가 견인포병이였는데
우리의 몇배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니깐요.
친한 후배가 공병출신이에요.
이 글 보고 놀란게 그 후배도 군대에서 자기 손 잘릴뻔 했다는 말 꽤 하거든요..
군생활 동안이나 군생활 이후 사회에서나 항상 일하다보면 여성들은 자기 서운하지 않게 하하호호하면서 해주길원함... 일이 제대로되건 안되건... 개판쳐놔서 한마디하면 바로 나만 나쁜놈되는거고...
교량가설병... 진짜 존경을 표합니다 ㅋㅋㅋ
저렇게 전문지식과 평균을 상회하는 체력이 필요한 곳은 좀 제값주고 교육시켜서 써야지...
나라가 앞장서서 무한공급되는 잉여자원 취급을 하는데, 사람들 생각이라고 달라질 리 없겠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손해가 생기기 전까지만' 공정하죠.
미술하시는분이 손가락 절단나면 거의 사망선고일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도 야공부대여서 장간이나 횡골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한 명이라도 잘못하면 사고나겠더군요.
실제로 부사관중에 손가락 잘리신 분도 있었으니 정말 몸 성히 나오면 다행인 보직이죠.
골병드는 공병.... 누군가는 부시고 누군가는 다시 만들고
3공병이었습니다. 야전공병 이었습죠.. 일반 전투부대지만 MGB 1시간20분정도에 했던 것 같아요.. M2는 재원에 23시간 몇 분 이었죠??... 저희 연대(4개 대대)에서 그거 한번 풀로 3단에 횡골까지 올려서 했는데 3주인가 4주걸렸는데 ㅋㅋ 자주포가 엄청 아슬아슬하게 지나더군요 ㅎ 뭔가 동지를 만나기 반갑네요 ㅜ
저도 아직 잊지 못해요 전공이 영문인데 군단급 행정병 예정이었다가 낙하산으로 인해 제가 공병으러 가는 거라더군요.. 처음 MGB하는데 다리풀려서 큰일날뻔했습니다. MGB는 상대적으로 쉬운건데도 ㅠ
개인적으로 22살 23살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이름 불려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말년병장이 탄약고 나가면 주어패서 양다리 피멍들어서 100일 휴가 나가고.. 그 당시만 해도 실탄지급이었는데 총구 겨누면서 죽여버린다고 하고.. 매일 죽고 싶었습니다.. 버티고 나니 그래도 인정이란걸 해주더군요 다른 선임들이..
참 많이 돌아가시더라구요.. 군대 안에서.. 우리가 언론으로 접하는 사망소식은 극히 일부일뿐이죠.. 야간 사격하다 자살한 옆중대 사람도 있었고 손가락 나간 선임도 있었습니다. 몸성히 온게 정말 감사하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내일 당장 모병제하고 기존 예비역에 아무 혜택 없다고 해도 찬성이에요.. 앞으로 결혼 하면 낳을지도 모르는 내 아이.. 그리고 이 시대 젊은 남성들.. 너무 불쌍해요.. 그렇개 죽을 고생하고 나와도 사회적 인식은 바닥이고.. 아무 혜택도 없이 의무만 강요하는 제도.. 공론화가 좀 되서 수정되면 좋겠습니다..
일단 삼경간교 사고가 참 참담했던게
군단장이 주관한다는 이유로 빨리빨리 가설했다
빨리빨리 철거하다 교량을 지지하는 와이어가
터져서 장병 한분이 와이어와 와이어 사이에
끼여서 돌아가셨는데 함부로 구조하지 못한이유가
그 와이어를 풀면 교량이 넘어가서 대참사가 일어나
니 함부로 구하지도 못한거죠. 결국 사망하셨구요.
저도 뭐.. 위에 적진 않았지만 여러번 죽을뻔 했죠.
특히 적재된 4.5t 화물 적재 훈련도중 구난차가
엎어져서 안엎드렸으면 그 화물에 직격되어
머리가 터져 죽었거나 압사 할뻔 했었죠 하늘이 도왔
다고 생각해요.
저 쇳덩이들을 보자마자 드는 생각
'시발.......'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을 이렇게 꼬아버린 주범은 따로 있죠.
원래같으면 남자만 군대 가고 여자는 다른 방법으로 군역을 이행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가장이 가족을 대표해 군대 가는건 대표적인 가부장적 사고이겠지만)
그걸 불가능하게 만든게
직업군인만 쏙 찾아먹은 페미의 평등운동을 가장한 이권운동이었죠.
거기서 모든게 꼬였습니다.
쉽게 예를 들면
1. 택배상하차를 남자만 하는건 차별이다.
2. 남녀의 근력 차이를 배려해 가벼운 짐을 들어야 한다.
3. 승진은 왜 남성중심으로 이루어지나 차별이다.
이런식으로 한가지 화제 안에도
[동등하다], [실질적 차이를 고려하자]는 입장이
자기 편리하게 섞여 있죠.
개인적으로 여군은 쟁취하지 말았어야 할 금단의 과실이었다고 봅니다.
징병제 하에 가장 값싼 군 자원이 인력이다보니
말도안되는 일들이 벌어지네요.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