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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고.. 후회하지 말고 기억해 (스포 포함)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았습니다.
프랑스의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으로
제 72회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과 경합하며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입니다.
원제 역시 [Portrait of a Lady on Fire].
원작은 따로 없습니다.
각본은 시나리오 작가를 겸하는 감독이 직접 썼습니다.
퀴어 멜로 장르에 있어
[브로크백 마운틴], [캐롤]의 다음 자리,
[문라이트],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윗자리에 놓고 싶을 만큼 훌륭하네요.
개인적으로 연초에 바쁘기도 했거니와
리뷰를 쓰고 싶은 영화도 없었던 상황에서 만난
이 빼어난 작품에 대해선 해야 할 말이 넘칩니다.
프랑스 혁명 발발 전인 18세기 후반,
브리타니의 고립된 섬 위 대저택을 배경으로
초상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와
그녀 그림의 모델이 된 엘로이즈(아델 하에넬)의
불처럼 뜨겁게 타올랐던 사랑을 영화는 그립니다.
그야말로 그립니다.
이 영화는 목탄에 의한 스케치로 출발하며
목탄이나 붓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들이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창작의 결과물 못지않게
창작의 과정을 중시하는 예술관을 갖고 있습니다.
스케치북과 캔버스를 프레임으로 치환한다면
목탄과 붓은 카메라로 치환될 수 있겠죠.
스케치의 시작은 구도를 잡는 일입니다.
이 영화의 모든 프레임에서
인물들과 배경은 완벽한 구도 속에 배치되는데,
그 미학적 성취가 너무도 뛰어납니다.
한 씬 한 씬 그 자체가 회화 작품으로 손색이 없죠.
구도만큼 중요한 것은 화가와 피사체의 관계입니다.
남성들은 부재하지만
남성들에 의해 정해진 규칙, 관습, 이념이
여전히 절대적인 세계 속에서
화가와 피사체는 지배,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교류와 공감의 관계로 점점 진입하죠.
그 교류와 공감은 계급의 벽까지 뛰어 넘습니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시선이 그걸 증명합니다.
일방적인 관찰은 쌍방적인 관찰로 발전합니다.
자신이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릴 때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냐는 마리안느의 질문에
엘로이즈는 당연하다는 듯 반문하죠.
"당신이 날 볼 때 난 누구를 보겠어요?"
예술은 또한 문학과도 연결됩니다.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에게 빌린 책에는
오르페우스 신화가 담겨있죠.
최고의 음유시인이자 리라 연주자, 오르페우스는
뱀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잊지 못해
카론의 배를 타고 저승의 세계로 찾아 갑니다.
저승의 세계를 주관하는 하데스는
그의 연주에 넋을 잃은 채
이승의 세계에 당도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에우리디케를 데려갈 것을 허락하죠.
그러나 앞서 걷던 오르페우스는
아내의 안위가 걱정된 나머지 뒤를 돌아봄으로써
결국 에우리디케를 영원히 잃게 됩니다.
마리안느가 오르페우스,
엘로이즈가 에우리디케를 각각 은유함은 당연합니다.
영화는 마리안느가 남성들이 노를 젓는 배를 타고
섬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죠.
그 배가 카론의 배임도 당연합니다.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진 화구 상자를 회수하러
마리안느는 아무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들죠.
수영을 할 줄 아느냐는 마리안느의 질문에,
자신이 수영을 할 줄 아는지를 알기 위해
엘로이즈 역시 주저하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구요.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에게 들려주는 피아노 곡은
오르페우스의 리라 연주와 다르지 않습니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3악장...
그러나 이 영화는 수없이 반복된 이 신화에 대해
신선한 의문을 제기하며 변주를 시도합니다.
아내의 안위가 걱정됐기에 돌아본 게 아니라
에우리디케가 불렀기에 돌아본 것으로.
바로 이 지점에서 한 여성의, 아니 한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와 선택, 그리고 용기가 개입합니다.
원치 않는 결혼을 거부하며
스스로 죽음을 택한 언니를 대신해
똑같은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할 운명을 맞아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엘로이즈는
자유로운 의지와 선택으로 닫힌 문을 엽니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첫 만남,
뒤따라 걷던 마리안느가 본 엘로이즈의 첫 모습은
뒤돌아보는 그녀였으며,
초상화를 완성한 후 저택을 떠나는 마리안느를
끝내 뒤돌아보게 만든 건 엘로이즈의 외침이었죠.
비록 환청과 환영이었다 할지라도...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의 환청에 뒤를 돌아본 순간,
마리안느는 화가인 동시에 시인이 됩니다.
마리안느를 고용한 백작부인(발레리아 골리노)이
섬을 떠난 5일의 한정적 시간 속에서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금기의 사랑 속으로 빠져듭니다.
저택의 하녀인 소피(루아나 바야미) 역시
자유의지에 따라 낙태를 행동으로 옮깁니다.
세 사람 각각의 시선에 따른 숏과 리버스숏으로
일관되게 구성되던 영화의 프레임은
소피의 낙태 이후 비로소 세 사람을
한 숏으로 나란히 포착하며
평등하게 실현된 그들의 자유를 축복하고 위로하죠.
소피 옆에 꽃이 시간이 흘러 시들었음에도
소피의 자수 속에 꽃이 싱싱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엘로이즈의 진녹색, 마리안느의 적색은 보색입니다.
보색이란 대비를 이루는 한 쌍의 색상이죠.
색상환에서 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배치된 두 색은
서로를 보완하면서 선명한 인상을 주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또한 물과 불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대비를 이루며
보색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와
철썩철썩 파도의 소리 역시 보색과 같이 쓰입니다.
노에미 메를랑과 아델 하에넬, 두 배우의 연기도
서로를 보완하며 둘의 사랑을 빛냅니다.
영화를 본 지 사흘이 지난 지금도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또렷하게 잔상을 남깁니다.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는 극의 흐름은
바로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듭니다.
예술과 문학의 영화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그러나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짧은 시간 타올랐지만
두 사람의 삶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불멸의 사랑이죠.
시선으로 나누던 사랑은 몸으로 옮겨지고
몸으로 나누던 사랑은 영혼 속으로 스며듭니다.
위대한 예술이 영원성을 얻듯
그들의 사랑도 영원성을 획득합니다.
마리안느에 의해 그려졌으며
자신보다 먼저 미래의 남편에게 도착할 초상화는
마치 관과 같은 상자 속에 못질로 갇히지만
그들이 나눈 사랑은 세월의 흐름을 초월합니다.
엘로이즈의 나신에 기대 세워진 거울을 보며
스스로의 나신을 그린 마리안느의 자화상은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에게 준 책,
엘로이즈의 발화로 선택된 28페이지에
문신처럼 새겨집니다.
마리안느가 연주했던 비발디의 사계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엘로이즈를 울게 합니다.
그런 엘로이즈를 건너편에서
그냥 바라볼 수 밖에 없었을 마리안느 역시
뜨거웠던 사랑을 기억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엘로이즈를 지켜보면서
똑같이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이 대표적 페미니즘 작가인 점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 영화가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영화인 점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 사실은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 영화의 가치를 폄하하는 근거로 이용됩니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작금의 페미니즘이 애초의 페미니즘과 달리
부당하고 왜곡된 방향성을 띠고 있음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올바른 방향성의 페미니즘을
부정하고 거부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감상하는 제게 느껴진 건
페미니즘이 아니라 휴머니즘입니다.
여성들의 사랑이 아니라
자유로운 의지와 불굴의 용기를 지닌
두 사람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에니스와 잭의 사랑,
캐롤과 테레즈의 사랑,
샤이론과 케빈의 사랑,
아델과 엠마의 사랑,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과 똑같이
떳떳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그런 사랑입니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리뷰에서
어쩌면... 사랑의 완성은
이별과 추억 속에 존재할지도 모르겠다고 썼습니다.
그 글을 이 영화에 적용한다면,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사랑은
완성된 사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텅 빈 캔버스를 볼 때,
오르페우스 신화가 떠오를 때,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들을 때,
벽난로에서 타들어가는 장작의 온기를 느낄 때,
책장을 넘기던 손길이
우연히 28페이지에서 멈춰질 때,
그 때마다 그들의 사랑을 기억하게 될 테니...
"후회하지 말고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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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과 캐롤의 다음 자리와 문라이트, 콜미, 블루의 윗 자리라니.. 어떤 느낌일지 전해지네요..
언젠가 극장에서 캐롤을 보고 나온 새벽1시, 거리엔 쌀랑쌀랑 눈이 내리고 누군가에게 간절히 전화를 걸고 싶지만 번호를 알 수 없었던 그때 그 느낌이 떠오르네요(?)
검은마음// 영화 매우 좋더군요. 입소문 타고 상영관도 늘어나는 추세이구요. 캐롤에서 캐롤과 테레드가 주고받던 그 뜨거운 응시가 이 영화에도 있답니다. 가능하면 시간 내셔서 극장에서 보셨음 좋겠네요.
좋은 감상 잘 읽었습니다 시간내서 영화를 볼 줄만 알지 감상을 정리할 마음의 여유는 없는 제게 함께 되짚어보고 공감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네뷸라// 때론...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이 영화감상의 여유를 방해할 때도 있습니다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같은 명작은 저절로 글을 쓰고 싶게 만드네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리플수정]영화를 아직 못봤는데 혁명전야님의 리뷰만으로도 본 거 같은 느낌까지 듭니다. 영화뿐 아니라 모든 청작물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어떻게 구슬로 꿸 것인가가 반 이상을 차지하기에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는 또 남은 재미가 있겠지요. 꼭 챙겨 볼게요. 감사합니다.
풍데쿠// 글 안에 이 영화를 가두기엔 이 영화는 너무 크답니다. 제 글로 담지 못한 많은 것들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즐겁고 의미있는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저번에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글에 대해 댓글을 남긴적이 있는데... 이 글은 더더욱 비판적으로 댓글을 달아야겠군요.
작금의 페미니즘이 아닌 착하고 옮바른 페미니즘이라... 님은 작금의 페미니즘과 옛날 페미니즘이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페미니즘은 남녀를 일종의 계급과 억압관계로 생각하고, 과격하기로는 그때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심지어 그때의 페미니즘은 인종차별도 하였지요. 그리고 지금 이 영화는 동성애와 페미니즘이 결합한 작품 아닌가요? 페미니즘과 동성애가 결합한 시점은 레디컬 페미니즘 이후 즉 작금의 페미니즘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작품은 옛날 페미니즘보다 오히려 현대적 페미니즘이 가깝지요.
님도 캐롤, 아가씨 작품을 보셨으면 아시다시피 레즈비어니즘이 여성간의 연대를 이루고 남성을 일종의 억압자로, 남성이 만든 사회는 계급을 만들고 사람을 차별하는 나쁜것으로 소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이해 할것입니다. 여성들만 있으면 여성간의 연대를 통해 사랑과 평등이 가득하고, 각자가 주체인 삶을 살 것이라는 환상을 이런 영화는 보여주지요.
근데 애초에 평등이라는 개념도 남성의 몫이 적지 않고 여성사회는 차별과 폭력이 없다는 증거도 없지요.
또한 이렇게 진보된 삶을 만든것도 남성중심 사회입니다. 근데 '남성중심'사회가 (여성을 속박하고 타자화 시키는)사회와 제도를 만든게 맞나요? 사회의 절반은 여성이고 이 여성들도 사회와 제도를 만드는 주역이었는데요. 남성은 과연 여성들에게 타자화가 안되고, 남성의 역할에서 자유로웠을까요? 남성이 그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것은 결국 여성들만 이뤄진 사회에서도 사람만 바뀔 뿐 역할의 자유는 없다라는 것입니다.
폄하라... 이런 영화가 깍아내러지는게 슬프신가보죠.. 저는 이 영화를 통해 남성과 그들의 희생들과 그 결과물들이
나쁜것으로 묘사되는게 더 슬픕니다. 저렇게 섬에서 연애하고 "난 남성에게 벗어나 여성들 끼리 있서서 행복해"라고 만족하고 있을때 누군가는 알프스 산맥에서 벌벌 떨면서 보초를 서고 있었을테니까요. 남성을 모욕했으면 이 영화도 모욕을 당할 준비가 되 있어야지요. 오히려 여러 영화적 기법으로 이런 메시지들이 포장받는것 보니 저는 슬플뿐입니다.
좋은 글 이번에도 잘 읽었습니다. 주변에서도 영화 호평이 많더라구요. 짬내서 보고 싶은데 상영관의 압박이ㅠ
[리플수정]페미니즘이 아니라 휴머니즘? 평가와 해석은 자유이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작가의 의도를 애써 외면할 필요도 없을 듯 합니다.
윗분같이 광분하며 영화를 깎아 내리려는 사람들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의 가치가 절대 폄하되지는 않을 겁니다.
저도 지난 주 금요일에 보고, 감흥이 꽤 이어졌는데요. 리뷰를 너무나 잘 써주셔서, 제 생각 또한 잘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영화를 무척 좋아해서 올려주시는 리뷰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성스런 리뷰 추천합니다. 그림으로 풀어나가는 사랑이야기라...꼭 봐야겠네요
[리플수정]hami3299// 남성을 모욕함에도 불구하고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존감이 없는것이겠지요.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사랑함에서 나오는것이고, 그 자기자신에는 자신의 성 정체성도 나오는것인데요.
차라리 저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하면 모를까, 페미니즘에 분노하는 사람에게 광분이라고 하면 그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분노를 부정하고 그저 자신의 뭔지 모를 욕구(아마도 '내가 예술을 잘 안다'는 허영심 같지만)때문에 자신의 인권을 포기한것 아닐까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막 방금 보고 나오는 길인데요..음..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엄청 찬양받을만한 영화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동성애가 불의한 시대에 부당한 차별을 받았다는 거는 이미 기존 퀴어영화에 너무 많이 나와서 좀 식상했습니다. 제가 아직 영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이 영화의 가치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만ㅎㅎ
글고 페미니즘 관련해서는 불펜에서 조심해야 하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 잘 보고 있어요 리뷰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전야님 조만간 트윈스뉴스에서 뵙겠습니다.
님의 리뷰읽고 나니 꼭 보고 싶어지는 영화네요.
후기 잘 봤습니다.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