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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상식을 뒤엎는 조선시대 일화 한가지.txt

 

경상도 양반인 노상추라는 무관이 쓴 일기가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 정조 임금 시절 이야기인데요...


조선 후기의 생활 풍속사를 알 수 있어서 


무척 중요한 사료로 평가됩니다. 



여기엔 흥미로운 대목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주인공 노상추가 열심히 무예를 닦아 무과시험에 급제를 합니다.


문/무과에 급제를 하면, 


궁으로 가서 임금님께 합격의 사례를 드리고


그 다음날에는 공자님께 사례를 드리기 위해 


성균관으로 들어가는 게 법도거든요!



재밌는 게 뭐냐면,


문과 급제자들은 유학을 공부한 유생들이고


지금으로 치자면 가방끈이 긴 교수, 박사들이기 때문에 


공부쟁이들의 대빵! 보스! 공자님께 인사드리러 갔지만


무과 급제자 대부분은 공자님께 인사 드리지 않고 


고향으로 튀었다는 겁니다.


중인이나 상놈 출신 무과급제자들이야... 


공자를 숭배하는 양반 사대부 계층이 아니니깐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추로지향'이라고 일컬어지는 영남 지역의 사대부들조차 


두 명(노상추와 노상추 친구)을 제외한 나머지는


공자님께 인사드리지 않고, 서둘러 고향으로 내려가 버린 것이죠.


노상추는 이런 세태를 자신의 일기에 고스란히 적어 놓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엔, 


조선 시대는 유교 국가라서 


공자 숭배가 철저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런 분위기는 아니라는 게 일기에서 드러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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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임인) 볕이 남.
일찍 반촌(泮村)에 들어가 알성(謁聖, 공자님께 인사)하였다. 
문과급제자와 무과급제자들이 먼저 아침 식당에 나아갔는데 식당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동쪽으로부터 서쪽을 따라 나가서 대성문(大成門)의 동쪽 협문 아래로 나아가 자리하였다.
뒤이어서 전복(성균관 하인)이 나와 협문의 계단 위에 서서 크게 “입알”이라 외쳤다.
이에 문과급제자를 앞줄이 되고 무과급제자가 뒷줄이 되어 
뜰에 들어간 다음에 문과급제자는 동쪽에, 무과급제자는 서쪽에 서서 
좌우로 열을 지어서 사배례를 거행하였다. 
알성을 마치고 나왔다. 
무과급제자의 경우에 중인(中人)과 상한(常漢)의 부류들은 
처음부터 들어오지 않았고, 
영남사람 5명 중에 오직 나와 선달 장동원만 들어왔으며 
그 나머지 사람들은 어제 저녁에 모두 한강을 건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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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역 노상추 일기, 1780년(정조 4) 3월



댓글
  • 트라부세 2020/01/09 03:51

    엄청나게 길고 격식이 딱딱해서 못 버틴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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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텔레만 2020/01/09 03:51

    효자 열녀를 국가에서 상까지 주었다는건 그만큼 드물어서였던,,,,
    공자 숭배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향교에서 열심히 제사를 드렸지만, 향교에 적을 둬야 군역이 면제되니 반강제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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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대나지완 2020/01/09 03:52

    지금 남아있는 서원 가봐도 다 공자 안향 모시고 계시는거보면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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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03:52

    [리플수정]트라부세// 그렇죠...고시 합격하면 빨리 고향으로 내려가서 부모님이랑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지, 공자님을 보고 싶겠습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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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03:53

    텔레만// 넵...맞습니다. 공자 숭배도 사실은 양반의 전유물이었지, 만백성이 믿고 따라야만 하는 일종의 강제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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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라부세 2020/01/09 03:54

    어쩌면 혹시... 제사에 필요한 예물이나 비용을 합격자들이 마련해야 하는 폐단이 있어서일 수도??
    그래서 중인이나 상민들은 돈이 없으니 토낀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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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심둘리 2020/01/09 03:56

    장수찬//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죠.
    안 써나서 모를뿐.
    무과야 그렇다 해도
    문과 급제자인 양반이 안 할 이유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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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심둘리 2020/01/09 03:56

    트라부세// 추리가 상당히 날까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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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03:58

    일심둘리// 문과 급제자는 전원이 공자님께 배알했다고 일기에 적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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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솔 2020/01/09 04:01

    [리플수정]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일반 백성들이 유교를 좋아할 이유가 없죠
    각종 차별을 정당화하는 양반들의 지배이념에 불과한 유교를 뭐하러 좋아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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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04:01

    또, 재밌는 사실이 뭐냐면...문/무과 급제자들이 임금께만 사례를 하는 게 아니라, 대비와 왕후에게까지 가서 사례를 드리더라고요. 왕실 여성의 지위가 의외로 대단했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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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심둘리 2020/01/09 04:01

    장수찬// 그럼 이상할거도 없죠.
    무과급제자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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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온즈팬 2020/01/09 04:02

    장수찬님 책 읽고 저도 고서수집 해볼까 생각했지만 안목이 없는 관계로, 조선시대 유생 성적표라든지 신기한 문서가 많더라고요. 저도 꽤 역사에 관심이 깊어서 사학과 가볼 생각도 있었지만 제가 모르는 것도 많았구나 싶어서 부끄러웠습니다. 오늘 적어주신 것도 몰랐네요 조선시대는 당연히 숭유억불이라고 맨날 국사 교과서에서 외운.. 물론 조선 왕중에도 불교를 좋아했던 왕도 있었지만..유교는 당연히 숭상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랬군요. 하긴 유교의 교리가 너무 딱딱해요. 한문 익히기도 어려운데, 유교가 힘들게 사는 백성들에게 무슨 위로가 되어 줄까요. 공자님 말씀은 서민에겐 너무나 먼 뜬구름 같은 소리긴 했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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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솔 2020/01/09 04:03

    조선 왕이나 왕비들도 대부분 불교에 관대했던 걸로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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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온즈팬 2020/01/09 04:03

    [리플수정]인의예지 이런거야 뭐 당연히 해야할 일이긴 하지만 신분 차별도 정당화 했던게 유교라 좀 그랬죠. 차라리 맹자가 훨씬 낫겠습니다. 힘들게 사는 백성에겐 그래 너 오늘 수고했다 내세에는 좋은 일 있을거라고 토닥여주는 부처님 말씀이 더 위로가 되었을거 같습니다. 다음 책은 또 안 나오시는가요?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가 파평윤씨인데 파평윤씨에 대한 일화 한 토막 있나 궁금해집니다. 말씀 들어보니 문정왕후나 정희왕후 같은 사람들 보면 뭐..여성의 지위가 낮진 않았던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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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04:04

    [리플수정]트라부세// 급제하는 잔치에는 없었던 거 같고...나중에 임용을 받아 관직에 나갈때는 관직 임용자가 관청 서리에게 일종의 사례금을 주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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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심둘리 2020/01/09 04:04

    평민들 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유교에 관심이 있을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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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04:11

    [리플수정]라이온즈팬// 사실,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 백성들은 불교를 믿었어요. 조선시대 평민들이 덕있는 양반들을 보면 '부처님 같다'라는 말을 자주 했거든요...평민들에게 위로가 된 건 불교였고, 조선 후기에 와서는 천주교도 일조를 한 걸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고서 수집 말고도 민속품 수집도 참 재미 있어요! 고서는 너무 어렵고, 옛날과 달리 지금와서는 그리 알아주지도 않는 거 같아요. 오히려, 요샌 레트로 현상때문에 올드하고 엔티크한 물건을 선호하는 거 같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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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04:12

    라이온즈팬// 넵! 책 또 나옵니다. 나오면 한 권 드릴께용...파평 윤씨 일화 한번 만화로 그려볼까요? ㅎㅎ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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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04:14

    [리플수정]일심둘리// 넵! 맞습니다. 보통사람들이야 유교나 공자사상에 관심 없죠...조선 말기에 가면 양반 사대부들조차 제사에 소홀해지는 경향을 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조병덕이라는 유학자가 남긴 편지에는 집안 제사가 있어도 친척들이 더 이상 참여하지 않은 세태를 한탄하기도 하고요. 구한말 문신인 운양 김윤식의 일기를 보면 기일인데도 조상 제사를 지내지 않는 모습도 나와요... 조선시대 내내 효자 열녀를 표창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부류의 사람이 극히 드물어서 적극적으로 상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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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04:15

    [리플수정]이진솔// 유학군주로 알려진 정조 임금도 불교에 호의적이었습니다. 수원 용주사도 중창했고..불교에 관한 서적도 간행했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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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심둘리 2020/01/09 04:21

    평민이야 당연히 불교를 좋아하겠죠. 그 당시 평민이 믿는 불교야 기복이 강한 정토불교인데
    믿음만 있으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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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온즈팬 2020/01/09 04:40

    장수찬// 영조 임금의 딸인 화순옹주가 사실 열녀인데 영조가 화를 내며 열녀문 안 세워준것도 참 여러 생각 들게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화순옹주의 선택이 이해가 갔던게 어릴때부터 외롭게 살았더라고요. 옹주라는 신분이라 행복했을거 같은데. 생모도 일찍 죽고 동복 남매 자매도 일찍 죽고 혼자 살았으니..결혼하고 남편하고 행복했는데 남편이 죽어버렸으니 못 견딘듯 해요. 그래도 딸이 먼저 죽었으니 열녀문 못 내린 아버지의 마음. 열녀문에는 수 많은 친정 아버지들의 눈물이 맺힌 거라는 글을 어디서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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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온즈팬 2020/01/09 04:41

    장수찬// 다음 책도 기대합니다 ^^ 책은 사서 봐야죠 기왕 인터넷에 푸실거면 저자 싸인본으로 ~ 저자 싸인본 모으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야구 싸인볼 모으러 다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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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04:49

    라이온즈팬// 넵! 출간되면 저자 싸인본 드릴께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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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러왔어용 2020/01/09 08:27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게 공자는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고 신도 아닌 데다가 장군도 아니니 무과랑 딱히 연결 고리도 없고 합격자들이 느끼기에도 딱히 와닿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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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산봉 2020/01/09 08:30

    라이온즈팬 / 영조 딸인 어떤 옹주는 남편이 죽자 무려 굶어죽어서 나라에서 종친 최초로 열녀문 내렸다 글을 본적 있는데, 제가 기억을 잘못한건지 잘못 쓰여진 글을 읽은건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 옹주의 손자가 추사 김정호라더군요. 그런데 영조가 자녀에 대한 차별이 엄청 심해서, 사도세자는 쥐잡듯 했지만 대부분의 딸들(모두 옹주)는 이뻐했는데 걔중 몇은 사도세자급으로 싫어했다더군요.
    구한말 선교사가 이 나라 백성들은 성관념이란게 없다고 할 정도로 문란했다니, 유교는 사대부 한정인듯 싶죠. 사대부에서도 열녀문 세우고 그런거 보면, 그만큼 잘 안지켰단 반증이기도 하죠. 그런데 후반기엔 사별한 남편 따라 죽는 사대부 마님들이 워낙 많아서 어렵게 죽어야 열녀문 줬다고 하더군요. 굶어죽는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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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ouchSmurf 2020/01/09 08:34

    유교는 충효를 강요하기 위한 통치 철학으로 시작된게 맞음
    수단으로 시작한게 목적이 되어 버리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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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만31년째 2020/01/09 09:34

    알성시라는게 공자랑 관련된 시험이었나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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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얀지슈카 2020/01/09 11:30

    양반 무과 급제자들도 그랬다는건 놀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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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een나무 2020/01/09 11:33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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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een나무 2020/01/09 11:33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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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하게 2020/01/09 12:30

    미개한 조선이네요 일본에 망한게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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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14:03

    GrouchSmurf// 유교윤리가 그 자체로는 참 좋아요. 윤치호조차도 유교윤리에 대해선 아름답다고 말했고, 부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걸 믿는 사대부들이 실천을 하지 않아서 문제라고 비꼬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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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14:04

    LG만31년째// 넵, 알성시는 국왕이 공자님 사당인 성균관 대성전을 방문한 기념으로 치뤄진 시험을 말합니다. 문,무과 모두 시험 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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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14:04

    green나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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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온즈팬 2020/01/09 15:19

    장산봉// 화순옹주 김정희의 증조모죠 친증손자는 아니고 김정희 할아버지가 양자 입적했어요 둘이 너무 사이가 좋았지만 자녀가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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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승중 2020/01/09 16:43

    글 보다가 생각나건데 문/무과 둘 다 합격한 사례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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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16:58

    연승중// 연승중// 저도 찾아봤는데 조선 전기에 딱 1명 보였던 거 같습니다. 태종 시절 장온이라는 인물인데요. 문과에 합격하고도 무과에도 응시해 합격했습니다. 물론 더 있을수도 있겠지만, 제가 조사한 바로는 한 명 보였어요...아마도 태종 시절은 국가의 기틀이 잡히지 않았던 때인지라 문무과 동시 합격이 가능했던 걸로 보여집니다. 확실한 건 인조이후 조선 후기 들어서는 한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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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꾸는아해 2020/01/09 17:40

    고등학교때 향교서 하는 제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요. 공자한테 지내는
    이게 고역입니다 두시간을 넘게하구요.
    한참을 서있다 절하고 또 절하고
    저걸 아는 분들이니
    튀지 않았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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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바닥 2020/01/09 18:33

    불교는 삼국시대에
    고래의 토착종교와 융합한 덕분에
    백성들이 받아들인거죠
    사찰에 있는
    삼신각,칠성각,대웅전이 그 흔적이죠
    유교 역시 융합됐긴 했습니다
    그게 차례,제사입니다.
    애초에 유교.공자에게는 사후세계가 없습니다.
    그건 유교에 안맞죠.
    조상이나 신에게 멀 빈다는거 없습니다.
    하지만 제사를 없앤다는건 이땅에서 불가능이라
    차대신 술, 위패나 사당으로
    기존 불교식 제사를 일부 바꾼 형태를 가지게 된거죠
    그러니 백성은 제사지내는걸 쫌바꾼걸로 유교를 퉁치게 됐고
    유학자,유학생들에게나 공자알현이 의미가 있게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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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명나그네 2020/01/09 22:23

    [리플수정]판단하기에는 너무 단편적이지 않나요. 일반 백성이야 당연히 공자를 딱히 숭배할 이유가 없으니 그런거야 짐작할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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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20/01/09 23:32

    무명나그네//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조선 후기에 쓰여진 여러 일기를 읽어 나가는 중이에요. 비슷한 내용이 있다면, 다시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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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호기 2020/01/10 03:20

    근데 사실 공자는 기골고 장대하고 전차도 잘 몰고 제자들에게 군사교육도 한 문무겸장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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