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유비의 실제 인물상에 관해서

 

 

일단 까놓고 말해서.

 

연의에서 묘사되는 인덕 넘치고 의리있고 모지리스러운 유비는.

 

그냥 개구라다.

 

그것도 아주 씹 구라.

 

그렇다고 유비를 후흑추(厚黑醜)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이런 논란 자체가 매우 잘못된 이유가 유비는 삼국시대에서 오로지 유비로 존재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 피비린내 나는 삼국 시대 속에서 '대의명분'을 지켰던 인물이 유비 뿐이었기 때문이지.

 

일단 왜 이런 모지리스러운 이미지가 연의나 창작물에 붙었는지 설명하자면 조금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다.

 

까놓고 말해서 유비의 이런 이미지는 흔히 말하는 '유방형 군주'로 묘사된다. 이 유방향 군주란 무엇인가? 쉽게 설명하면 개인의 능력은 좀 떨어지지만 인덕이 많고 주변이 그런 인덕에 끌려 도움을 줘서 마침내 천하를 거머쥐는 형의 군주를 말한다. 그래, 바로 연의에서 묘사되는 유비 바로 그 자체다.

 

헌데 이것도 쉽 구라다. 사실 유방은 저렇게 인망이 넘쳐나는 놈도 아니었고 일신상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원래 유방은 한미한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나름 그 지역에서 부농으로 이름 떨치던 집안 출신이었고, 나이 먹고 난 뒤에는 관리직에 자리를 얻어서 자기 밥벌이를 해먹고 살던 놈이었다.

그러다가 진나라 말기에 부역 공사로 인부 끌고 가다가 인부들이 도망쳐서 망한 뒤에는 산적 두목이 되어서 약탈등으로 먹고 살다가 난세의 혼란을 틈타 군벌로 자리잡고 마침내 천하를 거머쥔 것이 유방이다. 이런 놈이 능력이 없다고? 그럴리가.

이는 실제로 사서 기록에도 잘 나와 있다. 예를 들면 유방은 항상 전선에 나와서 적과 싸워댔다는 기록이라던가, 흔히 알려진 배수의 진이 벌어진 조나라 공략전도 사실은 유방의 군대가 주공이어서 조나라를 공략중이었고, 조나라 재상 진여를 한신이 이끄는 군대가 발을 묶어서 못 움직이게 막는게 원래 전략이었는데 한신 이 미친 사기유닛이 단독으로 진여를 아작내버리면서 무의미하게 돌아간 것 뿐이다. 그리고 그 이외에도 초한 시대 씹 사기 괴물인 항우를 상대로 유방은 계속해서 졌기는 했지만 '직접 맞서 싸운'장수이기도 하고.

이것 말고도 후대의 기록에 영포의 반란 시기 유방이 영포의 반란을 다른 놈에게 진압하려 맡기려고 하자 여치가 '영포의 상대는 당신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라는 식으로 유방만이 영포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다, 라고 말하는 등 유방 이놈도 알고 보면 전투에 능숙한 정복형 군주에 가깝다. 그리고 그런 정복형 군주가 아니었다면 반란으로 들끓던 전한 초창기를 무사히 흘려 보내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그렇다면 왜 저런 덜떨어진 이미지가 붙었는가? 까놓고 말해서 이건 프로파간다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한나라는 정통성에 있어서 문제가 아-주 많던 나라였다.

애초에 당시는 전국시대가 끝난 지 불과 십 수년이 지난 시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진승이 '왕뿅뿅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라는 식으로 불을 질러 놓기는 했다만, 여전히 왕은 '왕의 혈통'을 타고난, 정확하게는 옛 주나라 왕실의 혈통을 타고나거나 그 제후의 후손인 자들만이 될 수 있는 것! 이라는 인식이 강하던 시기다.

그런 시대에 비천한 시골 출신 유방이 황제가 된다는 것은 정통성에 있어서 무리가 많은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프로파간다가 필요했던 것이다. 신안 대학살등 온갖 패악을 저지르며 인세에 지옥을 만들어낸 악룡'항우'를 상대로, 천하 만민의 도움을 받아 하늘의 선택을 받으며 악룡을 무찌르고 평화를 가져온 '영웅'이라는 신화를. 그리고 이 신화를 집필했던 주역이 바로 숙순통 등 '유가의'인물들이었고 그들이 그리는 인자하고 어진 군주의 이미지로 유방이 미화되고 채색된 것이다. 물론 아무리 이렇게 미화를 해도 당대 최고의 석학중 한명이자 사기의 집필자인 사마천도 이건 쉴드 못친다! 라면서 유방의 개 썅 뿅뿅짓들을 알게 모르게 끼워 넣으면서 이거 구라임! 쌩 구라임! 하고 알려주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러한 고로 유방의 이미지, 그리고 유방이라는 인물상 자체는 그저 당대 인간들이 막연히 가지고 있던 영웅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러면 이게 왜 유비에게 그 이미지가 ㅈ달라 붙었는가? 아주 간단하다. 그 시대에 대의명분을 지킨 놈이 유비 한명 뿐 이었으니까.

 

흔히 삼국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어릴 때는 삼국지에서 유비를 가장 좋아한다. 왜냐하면 유비가 책의 주인공이니까.

헌데 나이를 좀 먹으면 조조를 좋아하게 된다. 왜냐하면 실용적이고 현실주의적이며 이익을 위해서 주저하지 않는 조조의 행보가 끌리니까.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머리가 더 굵고 나이를 더 먹고 삼국지를 진지하게 파고 들면 유비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조조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명분이고 나발이고 다다 뿅뿅까라 했지만, 유비는 대의명분을 지키며 나아갔으니까.

오나라? 손권? 슈발 그딴거 좋아하는 사람이랑은 상종도 하지 마라.

 

이 대의명분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의명분, 말로는 좋다. 옳은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헌데 이런 옳은 도리를 그 험난한 시대에 누가 지킨단 말인가?

헌데 유비는 지켰다. 사실 유비가 유일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런 대의명분에 목을 걸었던 이들 중 힘있는 자들은 대부분 초반에 쓸려 나가 버렸고, 남아 있는 이들 중에서 대의명분을 지킬 이유가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헌데 유비는 그걸 지켰다. 그렇기에 천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하나 당시 한나라가 가지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이야 한나라는 그저 옛 중국의 수많은 나라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는 '수백년'의 세월 동안 이어져 내려온 평온하던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다. 비록 수많은 우여곡절들이 있었고 나라가 망하고 다시 부활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 튀어나온 왕이 바로 그 씹사기 치트 캐릭인 광무제였기에 더더욱 한나라의 통치아래에 이루어진 평온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중원을 차지하고 사실상 중국땅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던 조조도 한왕실 그 자체를 제거하기는 힘들었던 거고. 왜냐하면 한왕실을 제거하는 순간 자기 지지가 박살날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아무튼 이렇게 유비는 당대 인물들이나 후대인물들이 보기에 '영웅'스러운 면모가 매우 강했다. 일단 정의로운 인물이고 비천한 위치에서 입지전적인 위치로 올라온 인물이며 무엇보다도 과거의 잔재라고 해야 할지 유방과 겹쳐지는 부분들이 많았으니까. 뭐 유방의 실체라던가 실제 유비의 성격 행보 등은 따로치고.

 

그러면 실제 유비는 어떤 인간이었는가? 이것도 좀 미묘한게 유비는 '진짜'유방과 닮은부분이 꽤 많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입이 거칠지 않은 산적 두목 정도가 되겠지.

 

유방이 그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절묘한 줄타기 실력이었다. 실제로 이 줄타기 능력이 빛을 발해서 뜬금없이 항우 상대로 한중왕 경쟁전을 펼치는 '경쟁자'위치 까지 떠오르는 등 운빨과 감이 기가 막혔던 인물이 바로 유방이었다. 그리고 유비는 그런 운빨과 감이 타고난 인물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능력이 없었는가? 그것도 아니다. 유방이 실제 전선에서 싸워대며 군공을 세웠듯 유비도 보면 자기가 직접 전선에 나가 싸워댔던 기록들이 많다. 물론 흔히 잘 알려진 전투는 대부분 패배로 끝나는데, 애초에 그건 싸우는 조건 자체가 헬 난이도에 가까운 상황이었으니 어느정도 감안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강동의 호랑이라던 손씨 부자는 뭐가 되겠나?

 

여기에 더더욱 대단한 점은 뛰어난 자기 컨트롤 능력이다. 이 인간은 진짜 끝까지 명분 싸움에서 밀린 적이 없다. 유일하게 결점이라 불리는게 오나라와 동맹맺고 형주 땅 차지한 다음 안 돌려준 부분인데, 이건 오나라와 약속을 깨트린 것에 대해 비난 할 수 있기는 하지만 명분 싸움으로 보면 사실 유비가 잘못한 것은 없다. 왜냐고? 유비는 '천자'의 명령을 받고 '한왕실'수복을 위해 그 대리권자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 뿐 이었으니까. 애초에 강동 지방을 차지하고 뻐팅기는 군벌 세력인 오나라 세력이 반란군이지.

헌데 오나라를 달래기 위해 자기 몸뚱아리를 인질로 내세우고 동맹관계를 맺는 등 이걸 배짱이두둑하다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간이 배밖에 나왔다고 말해야할지 모를 행보를 보여준다. 사실상 유비 인생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이 부분이기도 하고.

 

헌데 그런 유비도 의형제 죽음에는 자기 절제를 잃고 이릉대전으로 이때까지 쌓아올린 것들을 다 날려 먹는 등 그도 결국 인간임을 보여주고 만다. 사실 그 전 행보들이 워낙에 초월적인거지만. 그리고 결국 이릉에서의 패배로 유비의 인생 역시 끝나기도 했고.

 

아무튼 그래서 뭐 결론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 유비는 결코 무능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오히려 당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철저하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기 절제를 이루고 심지어 그 뜻 조차 대의명분을 확실히 챙긴 먼치킨형에 가까운 군주였지. 뭐 이 시대에 먼치킨 아니던 놈이 어디 있겠냐마는.

 

개인적으로는 이놈이 광무제 수준의 기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조조나 원소 이런 대제후급이 아니라도 최소한 자기 기반이 될 무언가가 있었다면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이 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