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1263441

내일 수술 받습니다

지난 수년동안 크고작은 여덟번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왼쪽가슴에 통증을 줄여주는 척수자극기라는 의료기기를 삽입한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생활까지는 하지 못해도, 척수자극기 덕분에 마약진통제를 거의 끊을 수있었습니다. 근래 자극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다시 진통제를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독한 약들은 이독제독 입니다. 특히 통증질환의 경우 상세불명인 경우가 많다보니, 본질적 치료가 어렵습니다. 증세를 완화시켜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더군요.
저역시 그랬습니다. 너무 늦게 치료를 시작했다보니, 사실상 완치는 불가능해서 삶의질을 높이기위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처음 발병했을 당시에 의사들도 이 병에 대해서 거의 몰랐습니다. 어떤 의사들은 마음의 병이니 정신과를 가라고 하더군요. 꾀병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나 봅니다.
마음의 병이 생긴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선후관계가 틀렸습니다. 몸이 아프다보니 마음의 병이 생긴 것입니다. 선후관계부터 인식을 못하니 치료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더군요. 대부분의 의사들이 마음의 병 또는 수술 후유장해라고해서 더 심해질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심리적인 안정에 집중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돌발통이 극심하게 찾아오더군요. 그후로 변색과 부종, 강직등이 이어졌고, 뒤늦게서야 대학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나중에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울것같아, 보훈병원에서 수개월에 걸친 투약과 관찰끝에 확진을 받았습니다. 약물치료만으로 커버가 되지 않아서 신경차단술등을 받았지만 역시 효과가 없었습니다. 통증이 어깨까지 번지려는 조짐이 있어서, 서둘러 척수자극기 삽입수술을 받았습니다. 자극기 삽입하고서도 한동안은 진통제를 복용하면서 병행치료를 받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통증이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마약진통제를 한계치로 먹어도 잡히지 않던 극심한 통증이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픔에 적응을 하게 되더군요. 아주 가끔씩 찾아 오는 심한 통증은 여전히 괴롭지만, 약을 끊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참아내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참아낼만합니다. 통증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삶이 착잡하면서도, 극심한 통증이 줄어든 것만으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병치레가 길어지면, 마음역시 병들기 쉽습니다. 언젠가 한 친구가 아픈 친구에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너보다 아픈 사람도 많아. 너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 그런 사람들도 잘 이겨내잖아. 기운내'
자신보다 더 힘들고, 아픈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아프고 힘든것은 아닐테지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저는 아픈 사람에게 위로외에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픔과 슬픔을 잘 이겨내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제 자신은 '자기합리화'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있는 무게는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하는 이들이 조금은 덜 무겁고, 덜 아프더군요. 정히 힘들때는 조금씩 삶의 무게를 나누어질때도 있겠지만, 자신이 감당해야할 최소한의 무게마저 의존하려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짊어져야할 무게를 제때에 짊어지지 않으면, 나중에는 짊어지고 싶어도 무거워서 짊어질수 없게되는 경우를 자주봅니다.
힘들수록 자신은 자신에게 계속 말해야 하더군요.
'나보다 더 아픈 사람도 많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많아'
계속 말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합리화의 늪에서 벗어날 수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이 자신의 삶에서만 벌어지는 것같지만, 그 세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삶에서 남는것은 아픔과 슬픔 뿐이겠지요.
아무리 힘들어도 매일 되새깁니다.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든 이들을보면서 위로를 얻고,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서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이 처한 처지를 비관만 하고 있으면 그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도 되더군요. 그저 오늘만 비관했을 뿐인데, 그 오늘이 모든 날들이 되고맙니다. 삶은 스스로 돕는 자에게 조금 더 자애롭습니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도 순간을 버텨내는 도구로만 쓰지만, 노력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시간을 개척해가는 매개체로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이 될지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사소한 결정과 노력같아 보이지만, 그 사소한 의지와 노력이 시간을 만나면 큰 물줄기가 되지 않을런지요.
그래서 적지 않은 나이에 가진것은 없고, 심지어 건강문제까지 있지만 비관만 하고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떳떳해야 남들의 도움도 회피가 아닌, 개척에 쓰일 수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을 만족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 남들이 보는 나로부터 벗어나기도 쉽더군요. 남들로부터 행복을 얻으려는 이의 행복은 언제든 그 남들에 의해 행복이 쉬이 깨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프면 아픈대로 그 또한 내 삶의 한 부분이고
슬프면 슬픈대로 그 또한 내 삶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그 한부분이 내 삶의 전부를 정의하도록 두지 않아야 합니다. 힘들수록 남들의 도움을 바라거나, 의존하려 하지말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위로하는 법부터 배워야하더군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도움이 희망을 품는 씨앗이 되지만, 남들의 도움부터 바라는 이에게는 그저 순간을 모면할 사소한 이유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근래 저는 수급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수급자가 될줄은 몰랐습니다. 마지막 남아있던 자존심마저 접었습니다. 그럼에도 생활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것같지는 않습니다. 수급자 복지로 나아질 상황이라면 애초에 수급자 신청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을 원망할 생각은 더욱 없습니다.
한가지 못내 아쉬운건 제 건강과 형편을 걱정하느라 늙어가시는 부모님과 이웃에게 보다 따뜻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살만한 세상은 정부가 만드는것이 아니더군요. 부자들이 만들어 주는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부요함은 소수를 구제할수있을지는 모르지만,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정부의 복지는 최저의 생계를 보장해줄지는 모르지만, 역시 따뜻함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사무적인 태도를 대할때마다 상처받을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 역시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입니다.
살만한 세상은 평범한 이들의 소소한 정성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과 이웃을 한번이라도 더 들여다보는 분들이 많아지시기를 바라봅니다. 저는 연말을 병원에서 보낼 확률이 높아졌지만, 데이트하는 커플을 보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괜찮다는 '자기합리화'를 해봅니다.
다들 더욱 행복하고 따뜻한 연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처음으로 댓글을 남겨보세요!

(DAhp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