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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트루 시크릿]을 보고.. 그녀의 가면은 벗겨졌을까... (스포 포함)


사피 네부 감독이 연출하고
프랑스의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을 맡은
[트루 시크릿]을 조금 늦게 보았습니다.
원제는 [당신이 믿는 그것]이란 뜻의
[Celle que vous croyez].
영어 제목은 [Who do you think l am].
우리나라에서 개봉시 제목은 [진짜 비밀].
세 가지 제목 모두가 나름 의미심장하네요.
드라마, 멜로, 스릴러의 세 장르를 적절히 결합해
중년 여성의 복잡하고도 모순적인 심리를
신선하고 유니크한 소재로 탐구하는 이 영화는
세 번의 서사적 변곡점을 경유해
끝까지 관객들의 흥미를 붙잡아둡니다.
욕조에 누운 클레르(줄리엣 비노쉬)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하면서 영화는 시작되죠.
클레르의 얼굴은 수면 아래 1/4이 잠겨있고
수면 위로 3/4이 드러나는데,
수면 위로 드러난 그녀의 실제 얼굴이
마치 가면처럼 보인다는 점은
처음부터 이 영화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맞습니다.
클레르는 심리적 혼돈과 분열을 겪는 인물이죠.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건강한 두 아들에,
자신보다 훨씬 더 젊은 애인까지 가진 클레르는
사회적으로 부러울 게 없는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겐 버려짐에 대한
근원적 불안감과 두려움이 있죠.
딸벌의 여자에게 남편(샤를스 베르링)을 빼앗겼고
젊은 애인 뤼도(귀욤 고익스)에게도
버림을 받기 직전의 상태입니다.
50세의 클레르는 24세의 클라라라는 이름으로
SNS 가짜 계정을 만들어 뤼도를 감시하려 듭니다.
뤼도의 룸메이트인 알렉스(프랑수아 시빌)가
뜻하지 않게 클라라에게 빠져버리고
클레르 또한 클라라로서 그와 사랑에 빠지고 말죠.
[트루 시크릿]은 캐서린 박사(니콜 가르시아)와
클레르 간의 심리상담 과정에
플래시백을 삽입시키는 액자식 구성을 통해
천국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는,
클레르의 심리적 여정에 관객을 동참시키죠.
클레르의 인격은
오프라인상의 인격과 온라인상의 인격,
클레르로서의 인격과 클라라로서의 인격으로
각각 분열되는데,
온라인상의 인격, 클라라로서의 인격이
오프라인상의 인격, 클레르로서의 인격을
차츰 잠식해 간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강의실, 도서관, 아들들이 존재하는 곳에서조차
클레르는 클라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인격의 분열이 초래한 내면의 소용돌이...
심지어, 실제의 클레르가 가상의 클라라의
젊음을 동경하고 질투하는 단계까지 이르죠.
"최악의 라이벌은 존재하지 않는 라이벌"이라는
클레르 자신의 대사에서
존재하지 않는 최악의 라이벌은 클라라인 셈이죠.
이 영화는 사랑의 맹목적 본질도 놓치지 않습니다.
몇 번의 채팅, 몇 번의 공감만으로 사랑에 빠지고
머리와 가슴 속에 그리는 사랑의 대상을
실제의 대상 속에 투영시키는 사랑의 맹목성.
클레르와 알렉스로 하여금
온라인에서 비롯된, 만나지도 못하는 사랑에
필사적으로 집착하게 만든 것 역시
사랑의 맹목성이죠.
맹목적 사랑은 끝내 알렉스를 죽음으로 이끌죠.
버려짐을 불안해했던 클레르의 내면은 이제
속였음과 버렸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ㅅㅇ합니다.
줄리엣 비노쉬...
1964년 출생, 프랑스의 국민 여배우.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마리아에게 경배를],
레오 까락스 감독의 [나쁜 피]로
데뷔하자마자 스타덤에 올라선 그녀는
이렇다 할 공백기 없이 33년 간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선 적이 없는 배우이죠.
욕망, 집요함, 불안, 질투, 혼돈, 환희, 죄책감...
인간의 오욕칠정이 그녀의 얼굴에 머뭅니다.
그녀를 관능적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영화 속의 그녀는 충분히 관능적입니다.
프랑수아 시빌...
[브루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2017)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1990년 출생의 이 배우에겐
신비로우면서도 퇴폐적인 순수함이 보이더군요.
11월 말에 개봉될 [러브 앳]에서도
주연을 맡은 것 같은데, 꼭 봐야겠습니다.
이브라힘 말루프의 음악도 훌륭하고,
발화가 미치는 영향력이
피상담자에게서 상담자에게로 향한다는,
관계의 역전도 매력적인 지점입니다.
욕망의 전염이라 말하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알렉스의 죽음으로 충격에 빠진 클레르는
직접 소설을 써서 캐서린에게 줌으로써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려 합니다.
소설 속에서의 죽음은 자신의 몫이죠.
그러나, 소설 역시 가상의 세계로 본다면
클레르의 인격은 여전히
분열에서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읽어야 하겠죠.
아무리 빗물로 혼돈을 씻어냈다 할지라도.
두 번의 변곡점을 경유한 그녀의 이야기는
이제 마지막 변곡점에 이릅니다.
직업적 삶에서의 은퇴를 결정한 캐서린은
감췄어야 할 진짜 비밀(트루 시크릿)을 말하고,
한결 편안해지고 차분해진 얼굴로
돌아온 듯 보였던 클레르는 홀로 남자마자
다시 휴대폰을 집어듭니다...
누구에게 건 전화일까요?
그는 전화를 받을까요?
전화를 건 그녀는
클레르일까요, 아니면 클라라일까요...
댓글
  • 풍데쿠 2019/11/14 06:46

    아, 그래도 올해 나온 영화군요. 그럼 원숙한 모습의 비노슈를 볼 수 있겠군요. 소개 감사합니다.
    줄리엣 비노쉬가 '마리아에게 경배를'에도 나왔던가요? 헐. 그 영화에서는 아무 기억이 없네요 ㅎㅎ '나쁜 피'와 '퐁네프의 연인들'이 그녀의 초기 영화인줄 알았는데...

    (Rj6uUY)

  • 혁명전야 2019/11/14 06:54

    풍데쿠// 몰입감 좋고 줄리엣 비노쉬는 실로 대단햬서 잼있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마리아에게 경배를이 그녀의 데뷔작으로 알고있습니다. 1983년 25분짜리 단편(못봤습니다만)을 1985년 90분짜리 장편으로 다시 찍었는데, 두 작품 다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이죠. 1983년작이 데뷔작이구요. 관람객수가 5천명이라 댓글 안달리고 묻힐 줄 알았는데, 댓글 넘 반갑네요^^

    (Rj6uUY)

  • 풍데쿠 2019/11/14 07:08

    혁명전야// 한때, 꼭 봐야 한다는 '명화'들을 숙제하듯이 너무 몰아서 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놓친 것들이 너무 많네요. 이제 신작 영화들도 좋지만, 고전들도 하나씩 다시 보다보면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 올 때가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유툽에도 있더라구요) 에서의 대사들이 스웨덴어인 걸 알아 듣고 깜짝 놀랐더랬습니다. 당연히 러시아어였을 거라 지레짐작했었는데 ...

    (Rj6uUY)

  • 혁명전야 2019/11/14 07:12

    풍데쿠// 저도 그랬던 적 있었답니다. 이제와서 종종 다시 보게되면, 이전과 전혀 다른 영화였음에 소스라치게 놀라죠. 말씀하셨네요. 가장 대표적인 양반이 바로 타르코프스키죠.^^

    (Rj6uUY)

  • 안녕요정 2019/11/14 20:32

    드라마 멜로 스릴러의 세가지를 복합적으로 만들었다라는 말씀에 무조건 봐야 될거 같습니다!!
    물론 스포는 빼고 읽었는데 궁금해서 미칠지경이네요..^^
    갠적으로 항상 줄리엣 비노쉬랑 줄리 델피랑 막 헷갈리더라구요...예전부터^^
    이렇게 매번 숨겨져있는 좋은 작품들 보게끔 해주셔서 진짜 넘넘넘 감사드립니다!!!!ㅜㅜ
    항상 행복하시고 굿밤되셔요!!!

    (Rj6u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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