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교리의 핵심 이론인 연기법의 원리는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해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음으로 해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 해서 저것이 멸한다.’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며 서로가 서로의 인因이 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의 과果가 되기도 합니다. 그로인해 홀로 상주불변하는 절대적인 존재는 있을 수가 없으며 그것이 제행무상입니다.
헤르만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보면 부처의 설법에 감화된 주인공이 한 가지 의문을 제시하지만 부처는 그에 대한 대답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그저 그럴싸한 몇 마디 말로 넘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의문의 내용은 바로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당신의 가르침은 너무나 완벽해서, 그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설하는 당신이야 말로 그 가르침에 대한 모순이다.”였습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는 분명 본인 스스로와 본인의 가르침을 제행무상의 범주에 포함시켰습니다. 심지어 약 처방전과 뗏목의 비유를 들며 그저 방편에 불과한 내용일 뿐이라고 못을 박기도 했습니다. 처방전을 아무리 열심히 읽고 외워도 약을 지어먹지 않으면 병은 고쳐지지 않고, 강을 건넌 뒤 뗏목을 머리위에 짊어지고 가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겁니다.
부처의 화두는 이 세상에 고통이 가득 차 있다는 ‘일체개고’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으로 얻은 것이 ‘무상’, ‘무아’, ‘공’입니다.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는 고통이라는 것은 타고난 절대적인 실체로서의 고통이 아니라 그저 ‘나’라는 관념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관념조차 실체적 존재가 없다는 무아를 깨닫는 순간 고통 또한 허상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체득되어 해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부처는 없다.’라기 보다는 ‘부처라고 할 만한 고정된 실체는 없다.’는 표현이 조금은 더 가까운 말이겠지만 결국 '부처'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진실 그대로 봐야 한다는 가르침이 여실지견입니다. 그리고 내가 만든 것이 아닌 원래 있는 것, 유위를 멈추면 곧 무위. 여실지견과 무위법은 결국 같은 내용을 말합니다.
부처를 부처라고 칭하는 순간 부처의 본질에서 멀어져 버립니다. 무상을 무상이라고 말하는 순간 무상하다는 본질에서 멀어져 버립니다. 결국 부처는 부처라고 딱히 칭할 만 한 것이 없는 것이고, 그저 모든 중생 만물이 부처일수도 있고, 부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뜰 앞의 잣나무’를 ‘뜰 앞의 잣나무’라고 칭하는 언어이전 수준의 본질, ‘똥 작대기’를 ‘똥 작대기’라고 칭하는 언어이전 수준의 본질, 그것이 부처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다시 부처라고 칭하는 순간 그것은 부처가 아니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부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된 나, 불성을 발견하고 깨달으라는 의미는 참된 나와 불성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며 달이 아닌 손가락만 쳐다보는 격이고, 참된 나와 불성을 발견하는 순간 결국 나라는 존재도 없고 부처라는 존재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양자역학이라는 물리학의 한 분야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죽을 때까지 납득하지 못했지만 너무나 명백한 실험데이터의 누적으로 인해 무시할 수 없어서 그를 괴롭혔던 학문이죠. 양자역학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우리가 원자핵의 주변을 돌고 있다고 알고 있던 전자는 실체가 없이 그저 확률적 혼돈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가 그것을 '관측'하는 순간 관측당한 위치에서 실체를 갖춘다는 겁니다. 그저 이론적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누적된 실험결과이구요.
불교의 '공'이라는 것은 이 양자역학의 확률적 혼돈과 매우 비슷합니다. 불교의 존재론은 모든 것이 찰나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무상'과 '무아'는 바로 그것을 이야기 합니다.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되는 순간의 찰나적 존재이고 그 찰나가 모여서 실체라고 착각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상주불변하는 존재가 없어 제행무상이요, 그래서 고정된 실체가 없어 제법무아입니다.
일체가 무상하고 무아인 가운데 서로가 영향을 주며 연기되어 있습니다. 서로가 인이 되고 서로가 과가 됩니다. 일체의 법이 고정된 인이 아니고, 고정된 과가 아닙니다.
무상과 무아는 '무'라는 글자 때문에 허무라는 착각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무상과 무아는 허무가 아닙니다. 그래서 ‘진공묘유’고 그래서 ‘일체유심조’입니다.
이 일체제법의 실상을 깨달은 상태를 명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이 실상을 깨닫지 못하여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는 상태를 ‘무명’이라고 합니다.
결국 무명으로 인해 생노병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윤회를 거듭한다는 것이고, 연기법을 깨달아 무명을 벗어나면 해탈한다는 것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이 가르침을 본인이 만들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이치를 그저 본인이 발견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 조차 떨쳐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불교의 경전에는 여러 부처와 보살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실제 존재했음이 밝혀진 부처는 석가모니 부처가 유일합니다.
아래의 글은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제자가 60명이 되었을때 명한 내용으로 '전법선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비구들이여, 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또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중생의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세상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둘이 함께 같은 길을 가지 마라.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바른 뜻과 문장을 갖춘 가르침을 설하여라.
완전하고도 청정한 수행의 삶을 보여주어라.
세상에는 더러움에 덜 물든 사람들도 있다.
다만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멀어졌지만,
만일 그들이 가르침을 듣는다면 그것을 곧 알아들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도 또한 가르침을 설하기 위하여 우루웰라의 세나니 마을로 가야겠다."
석가모니 부처는 중생들의 근기에 맞게 최대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법을 설하였으면서도 그에게 도전해오는 외도들의 공격에는 칼같은 논리적 반박으로 응수하기도 했던 달변가였습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가 존경받은 이유는 단지 그의 교리적 완성도때문이 아니라 깨달음 이후 그가 보여주었던 45년간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죽을때까지 탁발에 참여하였고, 계율을 정함에 그의 독단이 아닌 대중의 뜻을 물어 결정하였고, 결정된 계율은 부처 본인도 절대 어기지 않고 가장 철저히 실천하였습니다. 나와 남의 분별심이 없어서 전쟁, 기아, 역병 등의 재난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제하는데에도 앞장서서 달려갔습니다. 매순간 알아차리는 생활로 다른 이들에게 설법이 아닌 행동거지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삶을 살았구요.
석가모니 부처는 다른 종교의 신처럼 초월적 존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원래 있었던 가르침을 먼저 발견해서 중생들에게 쉽게 전하고, 몸소 실천해 보였던 선구자로서 존경받는 것이죠.
https://cohabe.com/sisa/1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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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과 부처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깨달음을 얻으면 아라한이 되는 것 같던데..
오랜만에 철학게에 글을 적어주셨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행무상을 설명하는데 상주불변하는 절대적인 존재를 꺼낼 수 밖에 없으니 그것이 곧
제행무상의 인因이고, 부처 또한 그것을 직접 설명 할 수 없었으니 제행무상의 진리는
인因 이며 동시에 과果 인 묶음으로만 비유할 수 있었다고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이런 대화는 뭐하러 하는 것이며 나와 남을 분리하는 짓거리에 무슨의미가
있고 부처는 뭣하러 그렇게 남에게 그것을 가르치려고 안달이었던 것입니까 순리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모순으로만 존재하는 바른모순 그딴걸 그냥 죽을때까지
찾기만 하다 뒈져버리걸 그냥 받아드리는 건 너무 화딱지가 치밀고 울화통이 터져버
리 겠네요. 부처에게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 하며 욕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딴 풀지
도 못하는 실타래는 뭣하러 설명하고 가르치려고 애썼냐구요. 압니다 불가에서 하는
말로는 이게 다 번뇌이고 무명이라는 것이겠죠. 제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죄다 아는척만 하던 병신같은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덜떨어진 무지랭이가
한숨쉬며 정신나간 푸념하다 간다고 보아주십쇼 죄송합니다.
오랫만에 좋은글 잘 읽습니다
해도 바뀌고 얼어붙었던 땅에 숨통틔우며 솟아 오르는 봄날 새싹같은 좋은 글들 올려주기실~~~~
"허공에서 오면 도리깨 " 虛空來連架打
만유의 본질이자 무아(空)라 불리는 진성에서 의문이 오면
도리깨로 두들겨 패서
아픔을 느끼며 번쩍 눈이 떠져서 육신의 본성(감각)까지 보면서
살아 숨쉬는 지금 실체가 무아(空) 이자 있는 그대로의 충만한 본질이라는
"텅비어 있되 가득차 충만하다 "
대(大)긍적적인 선불교 사상의 미묘한 수행 체계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리고 행복(상낙아정)하라는 붓다의 깊은 메시지인듯 합니다
글 읽으면서 금강경이 떠오르네요.
허상은 버리고 머물라고 했지요.
저는 깊이 공부하지않은 일반인으로...
부처는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러셨듯이 부처는 누구나가 될수 있는 존재인 것 같아요
타 종교의 신 같은 존재가 아니잖아요 부처는
인간이었던걸 누구나 다 알고 그 누구도 부처가 신이라고 하진 않아요 물론 불교를 잘 모르는 분들은 엥??부처가 신이 아니었어? 하시겠지만 부처 자체는 인간이고 깨달음을 얻은 자 인간의 번뇌를 벗어난 자 이신거고... 회사에서 화날때 예전에는 내 화 는 곧 없어지는 것인데 뭐하러 내 화 를 방출하는데 에너지를 쓰고 남들을 불편하게 하나 해서 참았는데 요 몇달간은 아예 잊고있었어요 내일부터라도 다시 평온해질수 있게 수양을 해야겠어요....제가 좋은글에 헛소리했네요 죄송해요 ㅎㅎ
독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거만 깨달아도 인생이 외롭지 않지요.
좋은 글이네요..
개인적으로 소장해도 괜찮을까요?
잘 읽었어요 ㅎㅎ ‘진공묘유’ ‘일체유심조’ 가 뭔지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좋은 글 너무 잘 봤습니다. 크리스천이지만 불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특히 저는 불교수행법으로 알려진 명상을 즐겨 하는 편인데... 하여튼 되게 좋은 말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근데 이 글을 보실지 모르겠는데..
그럼 한가지 이해가 안되는 게 있는데...
우리나라 절 보면 (제가 느낀 인상으로는) 부처님을 신*으로 모시고 기도하고 소원을 비는 듯한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이건 제 착각인가요 아님 제가 알고 있는 대승불교의 모습인 건가요?
글쓴이 님이 말씀 하신 불교가 상좌부 불교(소승불교)이고 석가모니를 신으로 모시는 게
대승불교 라고 알고 있는데... 이게 맞는지 궁금하네요.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오유 쪽지나 메일로 연락주실 수 없는지요...
물론 대답 안하셔도 괜찮습니다 [email protected]
항상 행복하시고 좋은 수행하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글을보니 왜 모든 시상식에서 "이 영광을 부처님에게 돌린다"라는 말이 없는지 어느정도 알겠습니다... 초월적 존제가 아니라 이치를 알고 깨닫고 행한다면 누구나 될수있는게 부처였군요..
안??: 부처일 수도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일어남으로 해서 저것이 일어난다....죄송합니다...음란마귀....
반야심경에 나온 공이라는 개념은 참 신기하죠 고정불변의 진리는 없다라는 말이 무슨말인지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매번 되뇌게됩니다. 한국은 지금 박정희시대의 경제발전이라는 지금에와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모델을 시대가 지났음에도 추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때문에 박근혜같은 사람들이 집권하고 유신이라는 어처구니 사고관이 지속되는거겠죠.
부처는 항상 상황에따라 바뀌는 어떤주제에 대한 답을 사람들이 스스로 찾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성공담에서 나온 답을 마치 고정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들은 모두 공해서 과거의 진리와 현재의 진리가 서로 모순되는 상황이 잦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믿어왔던 과거의 진리에 집착한 나머지 새로운 것에대한 극렬한 반발감을 보이니까요. 물리학의 다중우주와 같은 이야기를 듣다보면 얼마나 주변에 실재하는 것들이 사실 비어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불교는 너무 어려운거같음
마음공부라는 말이 있던데,,,
내마음 나도 모르는데,,,
남 마음을 어찌알리니?
불교는 믿는 종교가 아니죠.
믿지 않으려 하는게 불교.
대승불교는 쉽게 설명합니다 그냥 세상은 모든게 괴롭고 괴로은 그이유는 먼전한일로 말미암아 ㅡ업보_때문이다라고
그리고 그럼 그 업을 벗는법에 대해 삼천포로 빠지는듯 아닌듯 하죠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그런데, 양자역학 인용하신 부분은 좀 잘못된거 같습니다.
전자가 확률적으로 분포한다고 해서, 실체가 없다고 하지는 않거든요. 확률적으로 다양한 실체가 전부 다 가능하고, 그 실체 전부에 대한 다른 전자에 대한 계산이 파동함수의 중첩입니다.
오히려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서, 플랑크 길이 만큼의 오차를 감수해야 하는 전ja위치 측정행위가, 실체를 부정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접근 같습니다.
'공' 사상의 양자역학 법칙을 인용한 해석은 좀더 고려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